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1화 (171/235)

<강철 소방대 171화>

171화. 태양은 뜬다 (1)

동아백화점의 붕괴 사고는 전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보는 재난이었다.

<진풍백화점. 붕괴 5분 만에 완전히 주저앉아.>

<역대 최악의 참사 발생한 진풍백화점 붕괴 현장, 502명이 희생됐다.>

<죽음의 서울. 거리 곳곳에는 유족들의 눈물이 메아리쳐.>

21년 전 비슷하게 무너졌던 진풍백화점의 붕괴 사고가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켜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걸 기억하면 지금의 관심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와 생존자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대한민국 전역에 기쁨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나왔다!”

“그 소방관이야!!”

“전부 살아 있어!!”

매몰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 한 명이 지하 밑으로 들어간 사실도 감동적이지만, 그렇게 들어간 소방관이 기어코 생존자들을 구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의 함성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 갔다.

“새, 생존자다! 생존자가 더 있어요!”

이성하와 생존자들이 구조된 지하주차장에서 추가 생존자들이 발생해서였다.

“저 아직 살아 있어요…… 살려 주세요…….”

“소, 소방관님…….”

“여기요…… 저 살아 있어요…….”

곳곳에 균열이 발생한 상태긴 했지만 다른 곳보다 지반이 튼튼하게 버텨 주던 지하주차장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생존자들이 추가로 발생했고.

“클리빙 제대로 작업해!”

“지반 확실히 받치면서 잔해 들어낸다!”

“구급대! 구급대 지원해!”

그런 생존자들의 존재에 특수구조대와 다른 소방관들이 다시 가열차게 움직이면서, 대한민국은 기쁨의 눈물로 가득 찼다.

<동아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추가 생존자 발견!>

<기적에 기적. 스물여덟 명의 생존자 더 있었다.>

<안도의 눈물 흘린 가족들. 소방관들 껴안으며 감사 표해.>

이성하와 네 명의 생존자를 시작으로, 무려 스물여덟 명의 생존자가 추가로 구조되며 우울하던 현장의 분위기가 단번에 끌어올려진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언론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 놀라운 일 아닙니까? 한 소방관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뉴스를 진행 중일 땐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할 아나운서가 흥분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 네, 지금 이성하 소방관이 구조된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벌써 수십 명의 생존자가 추가로 구조됐거든요. 곳곳이 매몰돼 아직 진척 상황이 느리지만, 주차장이 지하 6층까지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추가 생존자가 있을 확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전문가 역시 기쁜 얼굴로 추가 생존자들의 존재를 언급하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고, 그 둘의 내용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이름은 이성하였다.

- 이제는 정말 이성하 소방관을 히어로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 히어로죠. 놀라운 건 이성하 소방관이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한 현장에 맨몸으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 서점에 가는 도중이었다고 하죠?

- 그렇습니다. 사고 당시 백화점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대로변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더 놀라운 건 그곳에서도 사고 여파를 막기 위해 현장을 정리 중이었다고 합니다.

- 현장 정리요?

- 네. 붕괴 여파로 발생한 교통사고 상황을 정리하다가, 백화점이 붕괴된 걸 알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온 거죠. 그건 정말 아무나 못 하는 일입니다. 진짜 소방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아나운서와 전문가가 흥분된 표정으로 계속 이성하를 칭찬했다.

- 정말 대단하네요.

- 그럼요. 만약 제가 여자였다면 반해서 고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이 절망적인 재난에 영웅처럼 나타나 생존자들을 구한 용기에 깊은 존경을 표현한 거였고, 그건 이 방송사의 진행자들만이 아니었다.

- 믿고 있었다. 북한산 화재 때부터 내가 진짜 응원하는 소방관.

- 건물 밑으로 들어갈 때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습니다.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생존자가 있다는 걸 알아도 누가 섣불리 저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옵니다.

- 남가좌동 사고 때 소방차를 몰고 길을 뚫던 이성하 소방관의 모습을 현장에서 본 적 있었습니다. 저분은 정말 변하지 않네요. 정말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뭔지를 보여 주는 제대로 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위 워 솔져스를 재밌게 봤던 애청자입니다. 그때 다른 팀 대원을 CPR 하는 장면을 보고 연출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분은 진짜 찐이네요. 응원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용기를 보여 주셔서.

- 오늘 강철소방대 가입하러 갑니다. 진짜 존경밖에 안 나옵니다. 평생 건강하게 오래 근무해 주세요.

- 이성하 소방관님. 팬입니다. 예전 소방관님 영상 보고 그때부터 소방관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언제나 항상 응원합니다!

언론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이성하가 보여 준 의로운 행동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가 입원한 걸로 알려진 근처 병원엔 수많은 기자들이 밀집한 상태였다.

“이 병원이지?”

“상태는 어떻대?”

“빨리 카메라 돌려, 카메라!”

이번 재난으로 국민들에게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는 이성하에 대한 기사를 하나라도 쓰기 위해, 다들 부리나케 달려온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 기자들 중 병원 안으로 들어간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물러나세요. 기자분들 출입은 모두 금지입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병원 앞을 꽁꽁 막은 보안요원들 덕분이었다.

“딱 사진 한 장만 찍으면 됩니다.”

“안 됩니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사진 한 장만…….”

“안 된다고요.”

기자들이 어떻게든 이성하와 한마디라도 나누기 위해 애를 써 봤지만, 보안요원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아, 진짜 사진 한 장만 찍는다고. 당신들 이렇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해도 되는 거야?”

그에 한 기자가 성난 표정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했지만, 보안요원들은 그 말에 오히려 비웃음을 던졌다.

“알 권리요? 그럼 가서 다른 거나 취재하세요. 괜히 이성하 소방관이랑 생존자분들 쉬는데 괴롭히지 마시고.”

“뭐요?”

“왜요? 더 말해 드릴까? 여기서 이성하 소방관 징계받을 때 기사 쓴 기자 있어요? 있으면 말해 봐요. 내가 들여보내 줄 테니.”

“…….”

“그럼 그렇지. 여기 있는 기자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화장실도 못 쓰게 해.”

“네, 알겠습니다!”

이번 재난으로 이때까지 이성하에게 있던 일들이 모두 알려지며, 은평대에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당시 비겁하게 언론이 침묵했던 상황들도 같이 알려졌던 것이다.

물론 한 명 예외는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보안요원들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들며 안으로 들어가는 김정호였다.

“일찍 오셨네요.”

“아침만 먹고 왔어요. 이따 뵐게요.”

“네, 들어가세요.”

김정호의 어깨에는 기자를 상징하는 카메라가 버젓이 들려 있음에도, 보안요원들은 그 인사를 받으며 길을 열어 줬고.

“아니, 저 인간은 되고, 우리는 왜 안 됩니까!”

“그래. 우리도 들여보내 달라고! 공평하게 해야지!”

그 모습에 몇몇 기자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항의했지만, 당연히 그 의견은 보안요원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저 기자님이랑 당신들이 같습니까?

“김정호 기자님은 이성하 소방관이 방문 허락하신 분입니다. 기자님들이랑은 상황이 달라요.”

애초부터 이성하의 영상을 단독으로 인터뷰해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것도 있었지만, 이성하가 병원에 이야기해 방문을 허락해 둔 지인이 김정호였다.

“그럼 난 다르지. 내가 한 고생이 얼만데.”

그 때문에 김정호는 그런 보안요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승자의 표정으로 이성하가 입원해 있는 병실까지 유유히 들어갔고.

“몇 명 정도는 인터뷰해도 된다니까요.”

그 모습에 병실에 앉아 있는 이성하가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김정호는 절대 그럴 맘이 없었다.

“됐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놈들인데, 뭐가 이쁘다고 데려와?”

힘들게 고생해 얻은 권리인 만큼, 고상하게 책상에 앉아서 주어진 기사만 받아먹는 얌체 같은 놈들과는, 권리를 나눌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놈들은 안으로 들여 봤자, 이성하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할 게 뻔한 놈들이었다.

‘바로 플래시 터트리며 영웅심이 어쩌고, 진입할 때 어떤 마음으로 진입했습니까 할 놈들이지 뭐.’

이성하를 보자마자 부상보다는 영웅심을 들먹이며 어떻게든 여론의 관심용 질문만 할 놈들이었고, 그 질문은 이성하의 기분을 안 좋게 할 게 뻔했다.

“으허허헝.”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이…….”

“구하지 못했어…… 구하지 못했다고.”

지금까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많은 소방관들을 봐 왔던 만큼, 생명의 무게를 가장 가까이서 지는 이들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때 아내를 잃었던 슬픔에 그 마음을 모두 거짓이라 생각했던 김정호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근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혼자만 씻으시고.”

“왜, 너도 씻고 싶으면 되잖아.”

“와, 붕대 때문에 못 씻는 거 아시면서 그러네.”

겉으로는 저렇게 웃으면서 농을 던지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까지 살아 있을 생존자들에 대한 걱정에 이성하의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주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동성일보>, <정문일보>, <성화일보>…….

오늘 자로 발행된 대형 언론사의 신문이 테이블 위에 모조리 놓여 있었다.

- 현재 동아백화점에는 수백 명의 소방관이 계속 탐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요. 다섯 시간 전 구조된 남성 이후, 아직 추가 생존자의 소식은 없는 상황입니다…….

켜져 있는 TV는 하루 종일 뉴스만 진행하는 뉴스 채널이 틀어져 있었고, 이성하의 옆으로는 그런 구조 현황을 빼곡히 정리한 종이 한 장이 있었다.

※ 1일째 사망자 82명, 부상자 114명.

※ 2일째 생존자 5명 구조. 사망자 3명 추가.

- 특수구조대 우회 투입. 생존자 2명 추가 구조.

- 지하주차장 생존자 추가 확률 가능성 높아짐.

- 사망자 8명 추가. 생존자 4명 추가.

- 야간작업 개시.

- 생존자 7명 추가 구조.

.

.

.

김정호가 구조 현황을 정리한 종이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먼저 와 있던 은평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놈 그거 계속 체크 중이에요.”

“에이, 체크는 무슨. 그냥 뉴스 보다가 신경 쓰여서 적는 거죠.”

“어쭈, 이놈 봐라. 아까는 현장 가고 싶다며.”

“아,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은평대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성하를 타박하는 모습처럼, 병실에 있으면서도 생존자의 숫자가 늘어나기를 기다리는 게 이성하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김정호는 영상 말미에 나오는 한 인물의 모습에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박철민이 제대로 똥줄 탔구나.’

현 재난 상황에 대해 소방본부의 책임자로서, 언론에 인터뷰를 하는 박철민의 모습 때문이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당시 지시는 본부 측에서도 많은 고민을 통해 결정된 계획이었습니다. 26년 전 진풍백화점 붕괴 당시, 구조작업이 늦어서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났던 만큼 저희 소방본부는 오로지 생존자의 빠른 구조를 위해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우회 접근을 거부한 거지 다른 의도는 전혀 추호도 없었음을…….

거센 국민들의 여론을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초반 문제가 됐던 본부의 입장을 기자회견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 김정호는 가방에서 바로 녹음기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곧 박철민 올 거예요. 허 부장님은 그놈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멱살 같은 거 잡으시면 안 됩니다.”

곧 병실로 박철민이 찾아올 걸 알리며, 은평대에서도 유난히 성격이 급한 허석훈을 향해 씨익 웃음을 지었고.

“네? 박철민 그놈이요?”

그에 한쪽에 누워 있던 허석훈이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김정호를 바라본 순간.

똑똑똑.

잠시 후, 누군가 갑자기 병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

덜컥.

“어때, 몸은 괜찮나?”

현장에서 은평대에게 장비를 내려놓으라며 구조 작업을 방해하던 박철민이, 이성하의 병문안을 위해 병실로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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