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70화 (170/235)

<강철 소방대 170화>

170화. 어둠 속으로 (10)

작업이 시작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드릴 챙겨!”

“지반 받칠 목재 전부 밑으로 이동한다!”

“2팀은 현장에 작업장 만들어!”

열댓 명의 특수구조대원들이 길을 뚫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들고 건너편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특구!”

특수구조대원들은 곧바로 안간힘을 쓰며 길을 만들고 있는 은평구조대와 교대해 자리를 잡았고, 그에 따라 미적지근하던 구조 작업의 속도가 빨라졌다.

“모두 시작해!”

“악!”

카가가가각.

드디어 굴을 파낼 때 쓰이는 제대로 된 장비들이 현장에 사용돼, 작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금까지 그들을 대신해 길을 만들던 은평구조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좋아, 잔해 들어내!”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작업을 진행하느라 다들 땀범벅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세해 그들이 파내는 잔해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끄으으으!”

“좀 더 힘써!”

“보강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좀 더 빨리해!”

조금이라도 길을 만드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고, 그런 지원 속에서 특수구조대는 지금까지 낭비한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더 가열차게 길을 만들었다.

“크리빙부터 제대로 작업한다!”

“수평 맞춰! 균형 틀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망치질 더!”

깡! 깡! 깡! 깡!

카가가가각!

이미 지하주차장 내부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걸 보고받은 이상, 조금이라도 빨리 길을 만들어야만 생존자를 구할 확률이 올라가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생각만큼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드드드드드.

지상의 작업으로 지반이 많이 약해졌는지, 길을 파낼 때마다 지반에 흔들림이 발생했다.

“제길, 흔들린다. 작업 중지!”

“전부 물러나!”

그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발생했고, 그렇게 조심을 했음에도 약해진 지반은 결국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콰르르르.

“어, 어?”

“차, 창수야!”

튼튼하게 보강대를 세우며 진행을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파내던 지반의 천장이 무너져 앞쪽의 대원 두 명이 잔해에 매몰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괘, 괜찮습니다.”

“콜록, 콜록. 저도 괜찮습니다.”

다행히 바로 몸을 일으키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면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길을 파내던 특수구조대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길…… 설마 건너편도…….”

그나마 지반이 안정된 이곳에 매몰 상황이 벌어졌다는 건, 건너편 역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확률이 있었다.

드드드드드.

안타깝게도 그 예감이 사실이라고 말하듯 지반 너머로 무언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음이 들리고 있었고.

“이런 썅! 서둘러야 합니다. 빨리요!”

“제길! 다시 뚫어! 빨리 시작해!”

그에 특수구조대와 은평대가 온 힘을 다해 다급하게 다시 길을 파내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생존자들이 있는 공간은 이미 붕괴가 발생한 상태였다.

콰콰콰쾅!

“……!”

“모두 머리 숙여요!!”

가장 균열이 심한 천장의 가장자리가 그대로 무너져 상부 쪽의 잔해물이 그대로 지하주차장을 휩쓴 것이다.

“다, 다들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 저도 괜찮습니다.”

다행히 생존자들이 있던 위치가 균열이 있던 쪽에서는 좀 떨어져 있던 덕분인지, 그에 휩쓸린 사람은 없는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무 피해가 없던 건 아니었다.

“끄으으…….”

이성하가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 앞에는 부상이 가장 심한 여성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상황을 파악한 김석훈이 고함을 질렀다.

“……소, 소방관님!”

자신은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 곧바로 머리를 숙였지만, 소방관인 이성하는 다친 어머니를 위해 날아오는 파편을 막다가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괘, 괜찮아요…….”

그에 손을 들어 괜찮다고 말하는 이성하였지만, 김석훈은 기겁한 표정을 입술을 깨물었다.

“피범벅이 됐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떨어져 튕긴 잔해에 정통으로 부딪쳤는지 옷 한쪽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길, 제길.”

그에 김석훈은 빠르게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 지혈을 위해 그 팔을 동여맸고, 그러고는 이성하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러면 제가 너무 미안하잖아요.”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진입한 소방관이, 끝까지 자신들을 보호하다 부상까지 입어 버렸다.

“씨이. 이러면 제가 너무 미안해서 살 수가 없잖아요.”

단지 소방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어둠 속으로 진입한 것도 모자라 끝까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성하에 대한 감사함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석훈은 억지로 이성하를 바닥에 눕혔다.

“일단 누우세요. 소방관님. 얼른요.”

더 이상 이성하에게 무리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움을 드려야 해. 더 이상 소방관님께 짐만 안겨 드릴 수 없어.’

지금까지 자신들을 위해 고생만 하다가 부상을 입은 이성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잠시 고민하던 김석훈은 바로 이성하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제가 소방관님 핸드폰으로 구조대에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볼게요. 거의 올 시간 됐잖아요.”

이성하가 매시간마다 핸드폰으로 구조대와 연락을 취한 걸 떠올린 거였다.

‘구조대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든 구조 시간을 앞당겨야 해.’

그가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구조대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려, 조금이라도 구조 시간을 앞당길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조대와의 통화는 불가능했다.

<서비스지역이 아닙니다>

방금까지 잘 잡히던 신호가 거짓말처럼 끊긴 상태였다.

“갑자기 왜 안 되는 거야.”

갑작스럽게 끊긴 신호에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을 켜 내려올 때 확인했던 중계기를 비춰 봤고, 그렇게 보게 된 광경에 김석훈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주, 중계기가…….”

좀 전까지만 해도 잘 작동되던 중계기가, 방금의 붕괴로 인해 박살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져 가는 상황에 김석훈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왜,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끄흡, 끄흐윽!”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법하면 그것보다 큰 시련이 계속해 찾아오는 상황에,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김석훈의 모습에 이성하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런 모습도 석훈 선배랑 닮았네.’

갑자기 혼자 의욕에 차서 움직이다가, 안 된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모습이 꼭 선배인 허석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핀잔을 던졌지만,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큭큭큭큭.”

“흐윽. 소방관님. 왜 웃어요?”

“콜록, 콜록. 하하하하.”

“왜 웃냐고요…….”

어떻게든 참으려 했지만, 자꾸 저 생존자의 얼굴에, 곰 같은 허석훈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하지만 웃는 것도 잠시, 김석훈에게 따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요.”

“네?”

“우리 살아서 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안 울어도 돼요.”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는 살아서 나갈 테니, 울지 말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전에 무너질 거 같은데.”

그 말에 김석훈이 힘 빠진 목소리로 울상을 지었지만, 이성하의 웃음은 여전했다.

‘살 수 있어.’

위기 상황 때만 되면 요동치던 심장이 오늘은 조용해서였다.

드드드드.

나머지 천장 역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심장의 고동 소리는 여전히 평소와 같았고, 그에 이성하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다 온 거죠? 그렇죠? 선배님들.’

설령 심장의 느낌이 틀렸다 한들, 어떻게든 자신과 요구조자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길을 만들고 있을 선배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짐작은 사실이었다.

“뚫어!!”

권일섭이 가장 앞에서 천공 드릴로 벽을 부수고 있었다.

까앙! 까앙!

그 옆에서 김필주와 허석훈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곡괭이를 내리치고 있었고.

퍼억! 퍼억!

도성민과 마동민 역시 미친 듯이 잔해를 옮기고 있었다.

“183에 75! 빨리! 빨리!”

“갑니다!”

“이쪽도요!”

정신없이 길을 파는 특수구조대의 옆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노력이 드디어 건너편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전달됐다.

카가가가각!

작지만 드릴이 땅을 파는 소리가 지반을 통해 생존자들이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전해 오고 있었다.

드드드드드.

그 충격에 균열이 일어난 천장 역시 무섭게 떨리고 있지만.

“이성하!!”

그 전에 꺼내 주겠다는 듯, 이성하의 이름을 부르는 굵은 목소리가 지반 너머로 울려 퍼졌고, 그렇게 잠시 후.

콰르르르르!

그 소리가 환청이 아니라고 말하듯, 단단하던 벽면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성하!”

드디어 기다리던 구조대가 이성하와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성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늦으셨습니다.”

안도의 감정이 어린 목소리였다.

“너 이 X새끼.”

그 모습에 권일섭이 입술을 깨물며 다가갔지만, 따로 이성하를 부축할 필요는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구조자 먼저. 그게 소방관 아닙니까.”

건방지게 부상을 입은 몸임에도 뒤쪽에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들을 가리키며 그들부터 옮기자 말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뒤에 있던 양유철이 자신의 헬멧을 풀어 이성하에게 내밀었다.

“구조대로 나갈 거면 헬멧 쓰고 나가. 이게 우리의 상징이니까.”

구조대의 상징인 빨간 헬멧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구하겠다는 헌신을 뜻하는 색깔이 그 빨강이기에.

“감사합니다.”

이성하가 흔쾌히 그 헬멧을 착용했고, 그렇게 이성하까지 포함된 구조대는 오랜 시간 지하에 갇혀 있던 생존자들과 함께 지상으로 올라갔다.

“나온다! 생존자다!”

“진짜 구출했어! 구조대가 생존자를 구했다!”

파바바밧.

드디어 건물에 매몰돼 구조를 기다리던 생존자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성하.’

모두가 이 상황이 있기까지 누구보다 노력한 소방관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터벅터벅.

그 때문에 다른 소방관들과 다르게 당근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빨간 헬멧을 착용하고 걸어 나오는 이성하를 모두 울컥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그에 터져 나오는 건 박수 세례였다.

“좋았어!”

“해낼 줄 알았다고!”

“와아아아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매몰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한 소방관을 향해 경외의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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