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9화>
169화. 어둠 속으로 (9)
이성하로서는 당연히 어안이 벙벙한 순간이었다.
‘뭐야? 왜 갑자기 김정호 기자님이…….’
권일섭의 전화라 받았더니, 난데없이 김정호가 받은 것도 놀라웠지만.
[아니, 지금 상황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 갑자기 뭘 설명해 달라는 거야?]
답답해하는 렉스의 짜증 섞인 말처럼, 지상의 구조 작업으로 자신이 있는 지하주차장에 균열이 일어난 사실은 이미 권일섭에게 보고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하는 바로 어떤 상황인지를 짐작했다.
‘방송! 지금 이거 방송이구나!’
그간 김정호와 여러 번 손발을 맞춰 왔던 경험 때문이었다.
‘기자님이 방송으로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서 여론을 움직이려는 거야.’
지금까지 그의 기사를 통해 대중들의 힘으로 여러 번 위기를 넘겨 왔던 만큼, 순식간에 김정호가 뭘 하려는지를 눈치챘고, 그에 이성하는 거짓말처럼 바로 표정을 고쳐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처음 진입한 장소에서 생존자 네 분과 함께 간신히 지하로 탈출해 버티고는 있지만, 보시다시피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주변을 비추며 균열이 일어난 지하주차장의 상태를 보여 줬다.
- 아니, 지하주차장 상태가 왜 그런 겁니까? 제가 현장 소방관분들께 듣기로는 그곳만큼은 아직 단단히 버텨 주고 있다던데요.
“단단했습니다. 지상의 구조 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요.”
지하주차장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를 묻는 김정호의 말에, 그 모든 원인이 지상에서 진행되는 구조 작업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그런 형식의 문답은 계속 이어졌다.
- 지금 지상에서 진행되는 구조 작업이 문제라는 겁니까?
“네, 현재 방법은 잘못됐습니다. 시추 방식으로 구멍을 뚫고, 매몰된 잔해를 들어내는 게 틀린 방법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직접적으로 길을 뚫는 것보다는 우회해서 길을 뚫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 계신 특수구조대 분들이 우회해서 접근하려고 했었고요.”
김정호가 문제를 지적하면, 그에 대한 대답을 이성하가 계속 이어 갔다.
- 잠시만요. 지금 이성하 소방관님 말씀대로라면 처음엔 다른 방법으로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이 논의됐다는 겁니까?
“네, 저는 지하에 갇혀 있는 동안 매시간을 정해 현장 지원을 온 저희 대장님과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숨을 잠깐 고른 이성하는 이어 말했다.
“처음의 구조 작전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저와 생존자들의 안전을 위해 다른 건물의 지하주차장을 통해 우회 접근하는 방법으로 계획됐거든요. 하지만 그건 본부의 개입으로 무산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본부는 무조건 골든타임을 지키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로 구조 작전을 변경했다고 들었습니다. 작전 변경을 위해 우회 접근 방법을 계획한 특수구조대의 지휘권마저 박탈했고요.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진 게 지금의 상황입니다.”
이성하는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 불안한 지하주차장의 천장을 영상으로 보여 줬고, 그걸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밤이라 작업이 중지돼 겨우 버티는 상황이지만, 아침이 밝아 지상의 작업이 재개되면 이 지하주차장은 그대로 매몰될 확률이 높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현장의 소방관들이 계획한 작전을 그대로 진행할수록 지휘권을 돌려주세요. 저희는 살고 싶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지는 모르지만,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이 제대로 된 구조 작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며 간곡한 부탁을 영상으로 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을 끝으로 중계는 종료됐다.
“지금까지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들어간 이성하 소방관님의 의견을 들었는데요. 그 말씀대로라면 현재 명동에 발생한 동아백화점의 붕괴 사고는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셔야 할 부분 같습니다. 여기까지. 성화일보의 김정호 기자였습니다. 시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김정호의 멘트와 함께 녹화 중이던 동영상이 종료됐으며.
“오케이! 끝났어.”
그에 환한 표정으로 엔터를 누르는 김정호의 손끝에, 녹화 중이던 영상이 인터넷에 업로드됐다.
<동아백화점 붕괴 현장에 있는 진짜 소방관 이성하. 그의 간곡한 외침>
약간은 낯간지러운 제목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확실한 제목으로 동아백화점의 현장 영상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지켜보던 소방관들로서는 어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저게 뭐야…….”
“원래 뉴스 다 이렇게 찍는 거야?”
갑자기 표정을 바로 하고 짜고 치듯 본부의 잘못된 행태를 고발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어이없었지만.
- 기자님, 저 어땠어요?
“완전 굿. 너 진짜 연기 많이 늘었다. 사람들이 그 영상 보면 아주 난리가 날 거야.”
그렇게 찍은 영상에 만족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었다.
투둑. 투둑.
핸드폰의 영상 너머로 이성하가 있는 공간의 불안함이 느껴졌다.
- 믿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 불안한 공간 속에서 이성하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믿는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주체는 당연히 건너편에서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였다.
“좋아, T자는 취소한다. 김 기자 믿고 확실하게 보강대 세우며 작업해!”
“알겠습니다!”
그런 이성하의 대답에 특수구조대와 은평구조대가 다시 굴을 뚫기 위해 장비를 들었으며, 그 모습을 김정호가 녹화하고 있었다.
“좋아, 나도 다시 시작해 볼까.”
어떻게든 시간 내에 이성하와 생존자들을 매몰된 백화점에서 구조해 내기 위해, 모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방금 올렸던 이성하의 모습과 더불어 빠르게 온라인으로 퍼져 나갔다.
조회 수 – 8313
이슈성이 높은 제목 덕분인지, 늦은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조회 수가 순식간에 약 만 명44에 치달았다.
- 방금 뜬 동아백화점 인터뷰 영상 봄?
- 동아백화점?
- 위 워 솔져스 이성하 인터뷰 영상임. 놀랍게도 매몰된 백화점 내부에 생존자들 구하러 들어갔다고 함.
- 이성하? 진짜임?
- ㅇㅇ 지금 막 디씨에 올라옴. 대박임. 보면 욕 나올지 모름.
- 보배에도 올라옴. 진짜 개판임. 이거 빨리 많은 사람들이 봐야 됨. 안 본 사람들 빨리 보셈.
영상을 보고 분개한 사람들은 그 영상들을 빠르게 각 커뮤니티로 퍼 날랐고, 그 때문에 날이 밝을 무렵엔 깨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영상을 시청하는 상황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MBS의 강성훈입니다. 몇 시간 전, 모두가 잠들었을 시각에 올라온 한 영상이…….
- 동아백화점 내부로 진입한 소방관의 인터뷰 영상이 확보됐습니다. 생존자들을 확인하고 내부로 진입한 소방관은 은평소방서의 이성하 소방관으로…….
- SBC의 김지연 아나운서입니다. 현재 동아백화점의 붕괴 현장에 진행되고 있는 구조 작업이 생존자들의 안전을 무시한 방법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김정호가 올린 영상이 동아백화점 내부로 진입한 소방관의 인터뷰 영상이라는 것에, 대박이라는 걸 직감한 지상파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그 영상을 아침 뉴스로 보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 소방본부 미친놈들 아님? 지반이 불안정하다는 보고가 있었는데도 무시하고 강행했다고?
- 지금 내 생각이 잘못된 거임? 일반인인 내가 봐도 옆 건물로 우회해서 들어가는 게 더 타당한 걸로 보이는데.
- 건설업계 종사자임. 저거 인터뷰한 소방관 말이 맞음. 저렇게 지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위에서 바로 접근하면 밑에는 무조건 무너짐.
- 아니, 현장지휘관이 안 된다고 했다며? 근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윗대가리들이 그걸 방해하는 거임?
- X발. 이래서 매일 대형 재난 일어나면 사망자 숫자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늘어나는 거임. 제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는 윗대가리들 좀 현장에 방해 좀 하지 마라.
- 와, 진짜 저번부터 그랬지만, 소방본부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 특수구조대가 괜히 그랬겠냐. 좀 전문가들 말 좀 들어라, 제발!
안 그래도 지난 남가좌동 참사부터 본부의 잘못된 지휘 때문에 일이 더 커졌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일제히 그 분노를 댓글로 터트렸으며, 그 분노가 사고가 발생한 동아백화점의 현장까지 잠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X새끼들아! 니들이 사람이냐!”
“전부 손 떼고 물러나! 겨우 살아 있는 사람마저 죽이지 마라.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책임자 누구야! 그 말도 안 되는 지시 내린 놈 누구야!”
“소방본부는 각성하라!”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지시로 살아 있는 생존자들을 더 위험에 빠트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내 아들 살려 내! 내 아들 살려 내라고. 이 X새끼들아. 으허허헝.”
지금까지 영상으로 전해졌던 여러 차례의 붕괴부터 시작해, 현재 진행되는 구조 작업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의 안전을 무시한 방법이라는 것에, 현장에 대기하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현재 동아백화점의 재난 책임자로 박철민으로서는 날벼락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 너 이 새끼 지금 어디야?
“지, 집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 이 X새끼야! 지휘자란 놈이 현장 통솔 안 하고 어디 간 거야! 빨리 현장으로 안 튀어가!
“아, 알겠습니다.”
전날 기분 좋게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던 와중에, 본부 차장으로부터 제대로 한소리를 듣게 됐으니까.
“이런 썅.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 때문에 바로 일어나 일을 수습하기 위해 다급히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상태였다.
“이게 무슨…….”
몇백 명의 시민들이 팻말을 든 모습으로 현장의 소방관들을 무섭게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라!]
[현장 소방관들의 정당한 의견을 무시하지 말라!]
[이건 재난이 아닌 인재! 현장도 와 보지 않고 펜대만 굴리는 놈들 저주한다.]
자신들의 의지를 담은 팻말을 앞으로 내세우며 현장 소방관들의 구조 작업을 방해하는 모습이었고.
“다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도 생존자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구조 중입니다.”
그에 어떻게든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앞으로 나서봤지만, 돌아오는 건 계란 세례였다.
“너구나, 그 X새끼가!”
“내 아들 살려 내!”
“니들 때문에 붕괴 일어났어. 니들만 아니었으면 더 살릴 수 있었다며! 이 나쁜 놈들아!”
퍽! 퍼버벅!
이미 영상을 통해 현장지휘자가 누군지 알고 있던 시민들이 박철민을 보자마자, 미리 준비해 뒀던 계란을 그 얼굴에 무섭게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앞에서 김정호가 그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로 녹화하고 있었다.
“너 이 새끼. 누구 명령받고 이따위 짓을 벌인 거야! 감히 우리 허락도 없이 생존자랑 통화 영상을 맘대로 언론에 보도해? 너는 기자 윤리 조항도 몰라!”
그 모습에 김정호가 이 상황을 만든 주범이라는 걸 알아본 박철민이 계란을 맞아 엉망이 된 모습으로 울분을 토했지만, 김정호는 상관하지 않았다.
“윤리 조항? 네 걱정이나 해. 앞으로 넌 지옥이니까.”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그런 박철민의 모습을 더 카메라 안에 담았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뒤에서 나타난 양유철이 자신의 핸드폰을 박철민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뭐야.”
“본부 전화입니다. 지금부터 현장의 지휘권은 특수구조대에서 다시 가져갑니다. 박철민 준감님은 본부로 복귀하시랍니다.”
싸늘한 표정으로 박철민을 바라보며 지휘권을 다시 가져가겠다고 밝혔으며.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에 박철민이 황당한 표정으로 받아 든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양유철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 박철민 준감. 소방총감 김정후일세. 당장 양유철 대장에게 지휘권 반납하고 본부로 돌아오게.
“아…….”
받아 든 핸드폰에서 대한민국 모든 소방관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는 김정후 소방청장의 목소리가 매섭게 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박철민의 모습을 매섭게 바라본 양유철이 뒤를 돌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부 집합!”
지휘권을 가진 소방관으로서의 목소리였다.
“특수구조대 전원은 장비 챙겨서 지하로 즉시 내려가고, 다른 소방관들은 장비선 연결하고, 작업 지원한다. 알겠나!”
처음 계획했던 우회 작전의 재개를 현장의 모든 소방관들에게 강한 목소리로 고지했으며, 그에 모든 소방관들이 불을 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
드디어 매몰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구조 작전이 시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