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8화>
168화. 어둠 속으로 (8)
동아백화점의 붕괴 사고는 발생하자마자 순식간에 전 국민에게 알려진 대형 재난이었다.
-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명동에서 동아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믿을 수 없는 사고가…….
- 서울 명동에 있는 동아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
- 처참한 상황입니다. 마치 전쟁 중인 것과 같은 이곳은 놀랍게도 명동…….
사고 직후, 모든 방송사에서 방송 중이던 모든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하고 속보로 그 사고 소식을 알린 건 물론.
- 지금 명동에 있는데 눈앞에서 동아백화점이 무너졌어요.
- 완전 장난 아님. 회사 공원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폭탄 떨어진 것처럼 건물 하나가 무너짐…….
- 명동에 있다가 급하게 찍은 영상입니다.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사망자만 수백 명이 나올 거 같아요.
그 사태의 심각성에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앞다투어 동영상을 촬영해 전국으로 삽시간에 알려진 재난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소식에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달려갔었다.
“오늘 미영 씨가 거기 갔는데…….”
“엄마…… 엄마!!”
“부, 부장님, 저 죄송한데 오늘 반차 좀 쓰겠습니다. 지금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가족이나 연인이 동아백화점에 있는 걸 알고 있는 수백 명의 시민이 이성을 잃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명동으로 달려갔으며, 그중엔 은평구조대 3팀도 있었다.
“이성하…….”
“제길. 여보, 나 좀 다녀올게!”
“이런 X새끼. 거길 어디라고 들어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백화점, 그것도 그 발생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모인다는 명동이었던 만큼,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그 소식이 순식간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에 은평구조대만큼이나, 현장 영상을 확인하고 당황한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푸웁! 이성하!?”
회사인 성화일보에서 사고 영상을 확인하다가 이성하를 발견하고, 놀란 마음에 마시던 커피를 공중에 뿜어 버린 김정호였다.
“콜록, 콜록. 야, 박 기자. 방금 보던 거 10초 전으로 감아 봐.”
“네?”
“아, 빨리 감아 보라고!”
그렇게 뿜은 커피로 바지가 엉망이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에서 본 사람이 이성하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만지던 후배에게 영상을 돌려보라며 윽박질렀고.
- 자, 잠깐만요!
- 이봐요!
돌려 본 영상에서 위험천만하게 잔해 밑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이성하의 모습에, 김정호는 바로 취재에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어? 선배, 어디 가게요?”
“취재.”
“네?”
“취재 간다고, 그러니까 빨리 따라와, 새끼야!”
말로는 취재하러 간다고 회사를 나섰지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하가 위험에 빠진 것에, 그 역시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명동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 도착해서 보게 된 광경에 답답함을 토했다.
“정말 위험합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했다가는 지반이…….”
“전부 내보내.”
“잠깐만요!”
“뭐 하고 있어. 빨리 다 끌어내!!”
자신과 같은 이유로 달려온 것 같은 은평구조대 소방관들이, 현장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서울 특수구조대의 양유철 대장입니다. 지금부터 현장은 저희 쪽에서 지휘합니다.”
“트, 특구…….”
“그리고 여기 은평대 대원들은 지금부터 제 권한 하에 특수구조대로 작전에 참여합니다. 그러니 현장 대원들은 지시가 내려지면 그에 따라 주십쇼.”
다행히 뒤늦게 특수구조대가 도착해 그런 은평구조대 대원들을 작전에 참여시키며 문제가 해결되는 듯싶었지만.
“스톱! 전부 멈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안 비킵니까!”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어딜 감히 본부 지시를 무시해!”
뒤늦게 도착한 박철민의 등장에 상황이 암적으로 흘렀고, 그 모습에 김정호는 분노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저 X새끼가 또 뭔 수작을 벌이는 거야?”
난데없이 소방본부의 고위직 간부가 나타나 현장의 지휘체계를 어그러트리는 것도 열 받았지만, 그 장본인이 은평구조대에게 말도 안 되는 징계를 부여한 박철민이라는 것에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김정호는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만, 그런데 박철민이 여기를 왜 왔지?”
소방준감이라는 박철민의 위치 때문이었다.
준감이라는 자리부터 권역 내 소방인력을 통솔할 수 있는 지휘권을 가지긴 했지만, 박철민이 과장으로 있는 구조구급과는 현장을 지휘하는 과라기보다는 뒤에서 백업을 하는 게 주 업무인 과였다.
주로 현장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취합해 구조 정책을 상정하거나 응급의료 지도 같은 시스템을 지원해 국민과의 소통 쪽에 더 신경을 쓰는 부서가 구조구급과였고, 때문에 정말 본부 쪽에서 이 상황을 중요시 여겼다면 지금 와야 할 건 구조구급과의 과장이 아닌, 재난본부과의 과장이었다.
‘아니지. 과장도 모자라. 이 정도면 본부장이 와야지.’
과장으로도 턱도 없다며 바로 고개를 내저은 김정호의 생각처럼 애초에 지휘권을 통솔해야 할 간부의 인선조차 어긋난 게 현장의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김정호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멀리서 이 상황을 카메라에만 담았다.
‘뭔가 있구나. 이 X새끼들.’
오랜 기간 소방본부의 비리를 취재하고 흠을 찾아왔던 자신의 감이 강한 확신을 발휘해서였다.
“이봐 원 단장. 난 이만 들어가 볼 테니까. 조심히 작업하고, 내일 보자고.”
“알겠습니다. 준감님.”
‘어쭈? 아무리 준감이라도 이 시국에 퇴근을 해?’
그 때문에 밤이 되자마자 퇴근을 하는 박철민의 모습에.
“저기 택시!”
“어디로 모실까요?”
“저 앞에 가는 택시 좀 따라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눈을 빛내며 그 뒤를 쫓았고, 그렇게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서초에 있는 한 한정식집이었다.
“선배님, 저 왔습니다.”
“어, 박 준감. 어서 와.”
음식점 앞에서 한 남성이 환하게 웃으며 그런 박철민을 반기는 걸 볼 수 있었으며, 그 남성의 정체에 김정호는 제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오호, 이 시간에 사임된 최명호를 만난다?’
하필 이 시간에, 그것도 대형 재난이 발생한 이 시국에 박철민이 현장을 비우고 만나는 사람이 몇 주 전 사임된 정책국장 최명호라는 것에, 치켜든 기자의 촉이 무섭게 딸랑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국장님,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최명호의 곁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하필 그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가자며 이끈 자리가 홀과는 자리가 떨어진 룸이었다.
터억.
뭔가 구린 게 있는지 남성이 경계하는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문까지 닫았고, 그에 김정호는 낭패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 거리에선 안 들려.’
문을 닫았기 때문인지, 방금까지 들을 수 있던 세 사람의 대화 내용이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김정호는 이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기자를 너무 얕보면 곤란하지.’
자신은 사회부 기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발견한 취재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다니는 건 기본이었고, 그 때문에 김정호는 그 옆 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손님, 몇 분이세요?”
“6명이에요. 일행은 곧 올 겁니다.”
“아, 네.”
자신을 잡는 직원의 물음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곧 일행이 올 거라며 당당하게 룸 자리로 들어갔으며, 그렇게 들어간 김정호가 꺼낸 건 고성능 녹음기였다.
‘쓰레기들에게는 확실한 기레기로. 그게 내 신조거든.’
본능적으로 안에서 나눌 대화가 심상치 않을 것을 느낌에, 당당한 표정으로 불법 녹음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듣게 된 내용에 김정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였다.
“이런 X 같은 새끼들이.”
얼마나 충격을 먹었는지, 이가 깨지도록 악문 덕분에 골이 아플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김정호는 어떻게든 분노를 가라앉히며 그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했다.
“이런 내막으로 구조대의 작업을 막았다는 거지.”
그 때문에 현장을 알고 있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지시를 내린 본부의 상황을 알 수 있었고, 목적을 달성한 김정호는 미련 없이 장비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여기 계산해 주세요. 제가 장소를 잘못 알았네요.”
“어? 고기를 하나도 안 드셨는데…….”
“괜찮아요. 실수한 제 잘못인데요. 뭐.”
정당한 취재비를 식당에 계산하고 걸음을 나섰으며, 그렇게 식당을 나선 김정호가 향한 곳은 다시 명동이었다.
“선생님! 명동 동아백화점 앞으로 가 주세요.”
“그 오늘 붕괴 사고 일어난 곳이요?”
“네, 거기요.”
자신이 알게 된 모든 것을 지금쯤 비밀리에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인 은평구조대에게 알려 주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긴 것이다.
현장에 없었는데 은평구조대가 비밀리에 작업을 하는 걸 어떻게 아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김정호는 필요한 때라고 판단하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기자였다.
“야, 권 대장 성격상 분명히 뭔가 할 거야. 이거 은평구조대 무전 채널 맞춰 둔 거니까. 만약 무전 들리기 시작하면 중요사항 정리해서 꼭 보내라.”
박철민을 따라가기 전, 불법으로 은평구조대에 채널을 맞춰 놨던 무전기를 후배에게 건네며 감청을 지시해 둔 상태였고, 그 덕분에 김정호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은평구조대가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설마 다 듣고 있던 겁니까?”
“저는 아니고, 후배가 듣고 있었죠. 하핫.”
상황을 짐작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는 권일섭의 표정처럼, 김정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손 위에 그리던 상황이었으니까.
“대장님,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지금 저희 이럴 시간 없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이해를 못 한 양유철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정호는 그런 양유철에게 상황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앞으로 3시간.’
해가 뜨면 지상의 작업이 시작된다는 무전의 내용을 봤을 때, 앞으로 자신이 판을 만들 시간은 3시간뿐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성하랑 통화되시죠?”
그랬기에 바로 지하주차장 한편에 노트북을 설치하며 이성하와 통화 가능 여부를 물었고.
“네. 매시 10분마다 핸드폰을 켜고 통화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5분입니다.”
그에 바로 시계를 보며 대답하는 권일섭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핸드폰 잠시만 주세요.”
다행이라는 듯 설치한 노트북에 권일섭의 핸드폰을 연결하고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으며, 그렇게 잠시 후 노트북 화면으로 이성하의 영상이 떠올랐다.
- 어? 김 기자님?
난데없는 김정호의 모습에 이성하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그런 이성하의 영상 아래로 앉아 있는 김정호의 영상까지 같이 화면에 떠 있는 상태였고, 그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는 상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성화일보의 김정호 기자입니다. 현재 현장의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렵게 이성하 소방관과 통화를 연결했는데요. 지금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터넷의 스트리밍 기능을 통해 생존자들이 처한 상황이 전국에 실시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