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67화 (167/235)

<강철 소방대 167화>

167화. 어둠 속으로 (7)

결국 지하에 매몰된 생존자들을 구하는 방법은, 본부의 주장대로 붕괴 위치에서 수직으로 길을 뚫는 걸로 결정이 났다.

“안 됩니다, 준감님. 지반이 너무 불안정해서 이 방법은 너무 위험합니다!”

뒤늦게 나타나 대원들을 막는 대원들을 막는 박철민에게 양유철이 상황을 설명하며 설득을 시도했지만, 박철민은 그런 설득이 통할 인물이 아니었다.

“위험? 본부 이야기 못 들었나? 지금은 골든타임을 우선하는 게 최선이야. 생존자들 중에 심한 부상자들이 있는 거 모르나? 그러니 잔말 말고 본부 지시대로 작업 시작하게. 명령일세.”

아까 들었던 본부의 지시처럼 골든타임을 우선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작전의 변경을 요구했다.

“안 됩니다! 그 방법대로 했다간 말씀하신 부상자들이 모두 사망할 위험이 있다고요!”

“안 돼?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 시간부로 양유철 대장의 지휘권을 박탈한다. 현장의 모든 소방관들은 여기 원준섭 단장의 지시를 받고 구조 작업 시행하도록.”

그럼에도 양유철이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지휘권을 박탈하는 등의 강수를 두며 본부의 지시를 강행했고.

“준감님!”

그에 양유철이 성난 표정으로 항명 의사를 드러냈지만, 박철민의 의지는 확고했다.

“불만 있으면 본부에 이야기해. 난 구조구급국 과장으로서 그 지시를 받고 온 거니까.”

더 이상의 이견은 듣지 않겠다는 듯 본부의 지시를 언급하며, 양유철의 항의를 지위로 찍어 누른 것이다.

그랬기에 양유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장.”

“제길…….”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젓는 휘하대원의 표정처럼, 이미 지휘권이 넘어간 건 확정된 상황이었으니까.

권일섭이 이끄는 은평구조대 역시 암담하지만 한발 물러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 일반인들도 이제 장비 내려놓으시죠.”

“뭐라고요?”

“험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얌전히 내려놔요.”

“끄응…….”

박철민의 위세를 업은 현장지휘관이 기세등등하게 은평대가 배급받은 구조 장비들을 회수해 갔고, 그 때문에 생존자들의 구조 작업은 애초 정한 작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작됐다.

카가가가각.

“더 세게 뚫어! 굴삭기 팀도 잔해 들어내는 거 시작하고!”

“알겠습니다!”

오로지 구조 시간을 앞당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추 형식의 방식으로.

그리고 그 현장에 더 이상 은평대의 모습은 없었다.

카가가가각!

“드릴 교체해!”

“잔해 제거 팀 더 필요합니다!”

활발하게 땅을 파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현장 어디에도 은평대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나 또 골치 아프게 할 수 있었기에 박철민은 현장에 남아 있었다.

“라이트 켜! 시야 확보해!”

“알겠습니다!”

밤이 찾아와 조명을 켜는 상황이 됐음에도 여전히 사복을 입은 은평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에 한참을 현장을 지키던 박철민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타고 온 관용차에 올랐다.

“이봐 원 단장. 난 이만 들어가 볼 테니까. 조심히 작업하고, 내일 보자고.”

“알겠습니다. 준감님.”

항명하던 양유철의 지휘권을 박탈함은 물론, 거슬리던 은평대의 모습까지 더 이상 현장에 보이지 않는 것에 안심하고 퇴근을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박철민의 착각이었다.

“쓰레기 새끼. 드디어 가네.”

그렇게 박철민이 가는 모습을 한 건물에서 은평대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그래도 준감한테 쓰레기가 뭐냐? 쓰레기가.”

“그럼 뭐라고 하는데요?”

“폐기물 쓰레기지. 저놈은 분리수거가 안 되잖아.”

박철민이 탄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욕설을 주고받는 모습이었으며.

부르릉.

그렇게 박철민이 탄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모두 은신하던 건물에서 몸을 일으켰다.

“슬슬 가시죠.”

모두 좀 전과는 달리 구조 헬멧과 당근복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장비 점검은?”

“체크 다 끝냈습니다. 언제든 작업 개시 가능합니다.”

심지어 언제든 구조 작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굴을 파는 장비까지 완비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권일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건물을 나섰다.

“좋아, 그럼 우리는 당당하게 건물로 진입해서 작업을 시작한다.”

“악!”

박철민은 몰랐지만, 사실 은평대는 현장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며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사라지긴 했었다.

수십 명의 소방관이 있는 현장에서 그들이 입고 있는 사복이 워낙 튀었기에, 원래 은평대가 사용하는 당근복과 장비를 챙기기 위해 소방서에 다녀왔었다.

“서장님, 죄송한데 의류랑 장비 좀 사용하겠습니다.”

징계 중임에도 당당히 성환용 서장을 찾아가 의류랑 장비를 사용하겠다는 허락을 구했고, 성환용은 흔쾌히 허락했다.

“가져가. 그 대신 나는 모르는 거야.”

“감사합니다!”

그 역시 현장에는 없지만, 상황을 꾸준히 전해 들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때문에 피식 웃으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식으로 권일섭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덕분에 은평대는 아무런 제지 없이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저기 들어오는 사람들 어느 팀이야?”

그렇게 나타난 은평대의 모습에 몇몇 소방관이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성동서 애들 아냐? 아까 그쪽에서도 지원 온다고 했잖아.”

“아, 그런가. 지원이 워낙 많아서 알 수 있나.”

워낙 많은 소방관이 현장에 있는 상황이다 보니 무심코 넘겼고, 그에 은평대는 바로 외곽을 돌아 처음 작전의 장소였던 건물로 향했다.

“진입해!”

“네!”

조심히 주변의 눈을 살피며 단번에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화아아악.

“거기 누굽니까?”

그러다 건물을 지키던 야간 경비원을 만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은평대는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들의 소속을 밝혔다.

“아까 말씀드렸던 소방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권일섭이 앞으로 나서 은평대임을 밝혔고, 그 말에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거 타고 내려가시면 됩니다. 그럼 바로 47F가 나올 겁니다.”

이미 사전에 경비원을 포섭해, 미리 작전의 시행을 준비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준비를 도운 사람은 먼저 지하주차장에 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바로 특수구조대의 양유철이었다.

꾸벅.

그 옆으로 이미 안면이 있는 특수구조대원 두 명도 자리해 고개를 숙였으며, 그 모습에 권일섭이 정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대원들이 상부에 징계를 받을 걸 각오하고, 초안의 구조 작업을 시행하기로 뜻을 모은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준비는 완료된 상태였다.

“중간에 수도관 파이프가 있어서 이 위치로 돌아서 파고 가야 합니다. 여기서 돌아서 파면 바로 무너진 동아백화점이에요.”

지하로 먼저 진입해 지도를 대조한 양유철이 이미 굴을 파야 할 위치를 파악해 둔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시죠. 다들 장비 준비해.”

그에 권일섭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은평대에 작업을 지시했고.

“우리는 옆에서 잔해 치우면서 거리를 계산한다.”

양유철 역시 자신들의 할 일을 정하며 위치에 섰다.

“시작해!”

“네!”

카가가가각!

드디어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구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은 굉장히 고되면서도 기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좀 더 세게!”

“네!”

카가가가각.

벽을 뚫는 데 사용되는 드릴은 총 2개였다.

그 두 개의 드릴이 벽에 구멍을 내면.

“좋아, 파내자.”

“알겠습니다!”

파각! 파각!

대기하던 대원들이 곡괭이를 가지고 그로 인해 균열이 일어난 벽들을 파쇄했고.

“좋아, 잔해 들어내고 다시 한다.”

“네.”

그렇게 부서진 잔해를 근처로 밀어내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카가가가각.

단순하면서도 길을 뚫기 위한 기계적인 반복.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반대로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효과는 사실 미비했다.

“후우우…… 이거 이대로는 반도 못 끝내겠는데요?”

한창 곡괭이질을 하던 허석훈이 한숨을 내쉴 정도로 작업의 진척 속도는 느렸다.

“2시간에 1미터인가…….”

상황을 주시하던 권일섭이 씁쓸한 표정으로 수긍하는 것처럼, 시간에 비해 작업 속도는 굉장히 느린 상태였고, 그 때문에 옆에서 계산을 하던 양유철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끄응…… 굴 크기 넓히면서 진행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이거 꽤 걸리겠는데요.”

작업이 진행될수록 시간이 배가 걸리는 게 토굴 작업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침이 오기 전까지 작업을 끝내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무리인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 특수구조대원이 박철민에 대한 원망을 토해 냈다.

“그 X새끼만 아니면 우리 장비 이용해서 단번에 뚫었을 텐데.”

박철민의 방해 덕분에 정작 이 상황에 필요한 특수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작업 속도가 이렇게 느린 것이었다.

파가가가각!

옆에서 도성민과 마동민이 은평소방서에서 챙겨 온 드릴로 열심히 벽에 균열을 내고는 있지만, 실제 이런 작업에 용이한 천공 드릴과 같은 대형 장비는 재난에 출동하는 특수구조대에게만 배급이 된 상황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상황을 주시하는 권일섭과 양유철은 막막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젠장…….”

“하…….”

어떻게든 아침까지 이 작업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직 주차장 상황은 괜찮다고 했었죠?”

“네, 양 대장. 진입 전에 성하랑 통화했는데, 지상팀의 작업으로 천장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괜찮다고 했습니다.”

진입 전 이성하와의 통화를 통해 아직은 지반이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했지만, 균열이 일어났다는 걸 보면 안도할 상황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최소한 아침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작업을 끝내야 했다.

“민철아, 지금 밖에 상황 어때?”

- 방금 전원 휴식 명령 떨어져서 쉬고 있습니다. 날 밝으면 다시 시작한답니다.

밖에 있는 특수구조대원이 전해 오는 무전처럼, 지금이야 밤이 돼서 작업이 중지돼 망정이지, 날이 밝아 지상팀의 작업이 재개되면 언제 생존자들이 있는 주차장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양유철은 결정했다.

“제길, 보강대 세우는 작업 없이 간다. 중간에 T자만 세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굴을 팔 때 세워야 하는 보강대 작업을 최소한으로 하기로 했다.

“T자만요? 안 됩니다. 직진으로 파는 것도 아니고 꺾어서 파는 거리 감안하면 10미터는 파야 하는데 절대 무리입니다. 위험합니다. 대장님.”

그 말에 특수구조대원 한 명이 안 된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양유철은 결정한 상태였다.

“그렇게 가시죠. 그러면 아슬아슬하지만 아침까지 반은 뚫을 수 있을 겁니다. 나머지 거리는…… 신에게 맡겨보고요.”

권일섭에게 이 방법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고, 그 의견을 권일섭은 거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뚫어 봅시다.”

“네.”

그 역시 이성하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깨달음에, 그 손을 맞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렇게 소방관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잠깐만요!”

한 사람이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기다려요, 기다려!”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어깨에는 큰 가방을 동여맨 모습으로 뒤뚱뒤뚱 뛰어오고 있었고,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웃으며 말했다.

“허억, 허억. 돕겠습니다.”

구조에 필요한 장비도 없으면서 돕겠다는 말에 의아해할 법도 했지만, 권일섭은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김 기자!”

나타난 인물이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인물이라서였다.

“네,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판 다 준비됐습니다.”

은평구조대와 한 식구라고 할 수 있는 김정호가 야심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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