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6화>
166화. 어둠 속으로 (6)
당연히 콘크리트 재질의 바닥을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이성하가 균열이 있는 부분을 찾아 어떻게든 시도는 하고 있지만, 바닥은 결코 그 속살을 쉽게 보여 주지 않았다.
파각!
챙겨 온 망치로 전력을 다해 내리치는데도.
그그그극.
그저 균열의 크기만 조금 늘어날 뿐이었고, 정작 부서지는 건 다른 쪽이었다.
투둑. 투두둑.
[제길, 가능하겠냐? 이러다 천장이 먼저 무너지겠어.]
렉스의 짜증 섞인 고함처럼, 오히려 그 충격으로 천장의 균열만 더 커지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망치를 휘두르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파각!
어떻게든 바닥에 길을 뚫는 것만이 자신과 생존자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끼이익, 끼이익.
물론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천장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소리가 계속 신경을 건드렸지만,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천장이었다.
‘절대 쉽게 죽지는 않아.’
그냥 앉아서 멍하니 죽음을 기다릴 바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살길을 찾는 게 더 나은 건 당연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계속해서 망치를 내리쳤다.
파각.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뚫려라, 제발!’
두 눈에서 지독한 독기를 뿜으며 길을 뚫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질리게 할 정도로 처절했다.
“아…….”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이성하의 팔에서 피가 흩날리고 있었다.
파각. 파각.
내리치는 횟수만큼이나.
화아아악.
새빨간 핏방울이 주변으로 튀고 있었고.
“그, 그만…….”
“안 그래도 돼요, 소방관님…….”
그 처절한 모습에 생존자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그만해도 된다며 이성하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성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파각.
어떻게든 찾아온 희망을 움켜쥐기 위해 망치를 휘둘렀으며.
그리고 마침내.
콰르르르.
생존자를 살리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그 굳건하던 바닥에, 드디어 빈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됐다!’
기어코 뻗어진 희망을 움켜잡아 당당하게 눈앞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그 광경에도 이성하는 웃지 않았다.
투두두둑.
바닥에 길을 뚫어 낸 건 좋았지만, 그러는 동안 천장의 균열이 더 격화된 상황이었다.
[서둘러! 안 그러면 매몰돼!]
렉스의 말처럼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몸을 빼지 않으면, 어렵게 길을 뚫었음에도 그대로 생매장될 다급한 상황에 이성하는 계속해서 망치를 내리쳤다.
파각, 파각, 파각.
망치를 내리쳐 모습을 드러낸 구멍을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넓혔다.
‘이 정도면 되겠어.’
그렇게 넓혀진 구멍을 확인하고 생존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생님, 먼저요!”
“아, 알겠어요.”
아래에서 받쳐 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가장 먼저 부상 상태가 나은 남성 생존자를 구멍으로 내려가게 도왔고.
“다음!”
“네, 네!”
마찬가지로 다른 남성 역시 같은 방법으로 내려보냈다.
“어머니, 아프셔도 참으세요.”
“허억, 허억.”
그 뒤로 가장 부상이 심한 여성 생존자와.
“석훈 씨, 제 팔 잡아요.”
“끄응. 고마워요.”
그 아들인 김석훈까지 무사히 구멍 밑으로 내려보내는 데 성공했으며,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하 역시 지체 없이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파가가가각.
[제길, 빨리!]
‘네!’
이제 정말 한계에 이른 천장이 우르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어진 필사의 탈출이었고, 다행히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콰콰콰쾅!
“소, 소방관님. 괜찮아요?”
“콜록, 콜록. 네, 괜찮습니다.”
“흐윽. 하마터면 잘못되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그들이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공포스런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모든 생존자를 데리고 권일섭이 알려 준 지하 밑으로 대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도할 때가 아니었다.
“석훈 씨, 잠시만요.”
생존자들은 몰라도 소방관인 자신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끄응.”
아직 건물 밖으로 탈출은 한 상황은 아니기에, 자신을 끌어안는 김석훈을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고.
화아아악.
그렇게 몸을 일으키며 바로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을 켰다.
‘대장님에게 위치를 알려 줘야 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권일섭에게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아까까지의 장소였다면 여전히 정확한 위치를 몰랐겠지만, 지금 이성하가 있는 곳은 주차장이었다.
‘번호가 있을 거야. 번호.’
중간중간 무너진 잔해 사이로 망가진 자동차가 보이는 것처럼, 주차장에는 위치를 알 수 있는 이정표가 곳곳에 표시돼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47F>
다른 곳들과 다르게 어느 정도 그 형태가 유지되던 주차장인 만큼, 우뚝 선 기둥으로 현재의 위치가 선명하게 표기돼 있었으며, 그 표시를 확인한 이성하는 바로 권일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장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위치는 47F, 노란색 기둥입니다!”
자신들이 밑으로 내려온 건 물론, 현재의 위치까지 정확히 전달해 권일섭에게 구조요청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신호에 지금까지 조용히 연락을 기다리던 권일섭이 움직였다.
“왼쪽입니다. 여기서 20m 지점이에요.”
가지고 있던 내부구조도와 주차장 지도를 맞춰 보며 이성하가 말한 위치를 단번에 특정했다.
“벽 쪽이네요. 요구조자 위치 확인됐다. 모두 장비 챙겨서 이동한다.”
그 정보에 지휘권을 가진 양유철이 바로 휘하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몸을 일으켰고, 그와 동시에 모든 대원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이다! 인원 통제해.”
“드릴 있는 대로 다 가져와.”
“장비선 이쪽으로 연결한다. 모두 준비해!”
마치 지금을 위해 기다렸다는 듯 바짝 날이 선 모습으로.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대원들 중에는 당연히 3팀도 있었다.
“가자.”
“모두 일어나!”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안 그래도 기다리던 명령이었던 만큼, 3팀은 바로 권일섭의 뒤로 붙어서 그 어떤 대원보다 더 앞장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고, 그 때문에 졸지에 그 뒤를 따라가게 된 양유철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은평대인가.’
생각보다 더 단단히 준비한 듯한 모습 때문이었다.
철컥.
위이이잉.
교육은 받았겠지만, 분명히 생소할 게 틀림없는 드릴 장비들을 거침없이 확인하는 3팀의 모습에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랬기에 이번 작업은 왠지 모르게 조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쉽게 끝날 수도 있겠어.’
이성하가 전달한 위치는 백화점의 외곽이었다.
무너진 백화점의 내부 쪽이 아닌, 바깥쪽에 해당하는 가장자리였고, 운 좋게도 그 방향에는 대형 건물이 있었다.
<위성프라자>
백화점보다는 작아도 그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형 상가 빌딩이었다.
그리고 그런 빌딩에는 필연적으로 대형 지하주차장이 존재했다.
“대장님, 준비됐습니다.”
“장비선 전부 옮겨 왔습니다. 명령서만 떨어지면 바로 주차장 진입해서 길 뚫으면 됩니다.”
근처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말처럼, 눈앞에 보이는 건물의 주차장에서부터 길을 뚫어 생존자들이 있다는 공간으로 진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양유철은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이성하와 생존자들의 구조는 문제없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 방법이라면 확실히 구할 수 있어.’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불안정한 지반을 무시하고 진입하는 만큼 생존자들의 안전만큼은 확실할 테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저 대장님…… 본부에서 외부 건물 진입 불허한다고 합니다…….”
사적 재산인 다른 건물의 지하주차장을 훼손하는 문제가 있어, 본부에 허락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한데, 그 작업을 본부에서 거절한다는 회신이 전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안 된다는 거야!?”
“본부 판단으로는 수직으로 굴을 파도 생존자들 구조가 가능한데, 왜 다른 건물까지 피해 입히면서 시간을 버리냐고 합니다.”
다른 건물에 피해를 주지 말고, 수직으로 굴을 파서 요구조자를 구하라는 본부의 명령이 전해졌고.
“서울 특수구조대의 양유철 대장입니다. 지금 지반이 불안정해서 수직으로 굴을 팠다가는 생존자들이 있는 지하주차장까지 무너질 위험이 너무 높습니다.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쇼.”
그 때문에 양유철이 직접 전화를 받아 본부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본부의 명령엔 변함이 없었다.
- 이쪽에서는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무슨 소리야? 딴말 말고 바로 작업 시작하게. 골든타임을 지키는 게 무조건 최우선이야.
현장을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골든타임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바보 같은 답변이 들려왔으며, 그에 어이없어한 양유철이 다시 설명하려 했지만 더 이상 본부의 대답은 없었다.
“현장 상황이 그렇지 못하…….”
뚝.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듯, 양유철과의 통화를 바로 끊어 버린 것이다.
양유철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
도대체 무슨 보고를 받았기에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지, 담당자가 앞에 있었다면 바로 그 머리를 열어 해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내 무언가 결심했는지, 양유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필요 없어. 그냥 강행한다.”
“가, 강행이요?”
본부의 명령과 다르게 강행한다는 말에 대원 한 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양유철의 결심은 확고했다.
“현장에 있는 건 우리야. 우리가 보고 느낀 대로 결정한다. 그게 정답 아니었나?”
특수구조대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다.
전국 수천 명의 구조대원 중에서도 엄선된 대원들이 바로 자신이 속한 특구였고, 그런 특구로서 쌓아 온 경험에 의하면 이 현장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가는 게 맞았다.
‘기다려라. 이성하.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전하게 구해 준다.’
어떻게든 자신들을 대신해 먼저 진입한 이성하를 구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으며, 그건 현장에 있는 모든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끄덕.
서로를 바라본 특수구조대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들어간다!”
“네!”
은평구조대는 행동으로 대답했다.
“괜찮겠습니까?”
“뭐 일 있겠습니까? 저도 사람 구하고 징계받으면 되죠.”
권일섭의 물음에 양유철이 피식 웃으며 대답한 것처럼, 이곳에 징계 따위를 걱정할 소방관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의 발길을 막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스톱! 전부 멈춰!”
지금까지 조용히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쪽에 박혀 있던 현장지휘관이었다.
“거기 너 장비 내려놔. 지금 어디 들어가려는 거야.”
달려오자마자 앞쪽에 있던 대원의 장비를 뺏으며, 구조대원들의 앞길을 당당히 막아서는 모습.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안 비킵니까!”
그에 양유철이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순간 더 큰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어딜 감히 본부 지시를 무시해!”
뒤를 돌아보니 한 소방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고, 그 소방관의 등장에 김필주가 생전 안 하던 욕을 내뱉었다.
“X발, 박철민 저 인간이 여기 왜 온 거야.”
나타난 인물이 은평구조대에 징계를 내린 데 일조한 바 있는 박철민 준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난 인물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지이잉.
누군가 그 모습을 멀리서 카메라로 녹화하고 있었다.
“X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