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65화 (165/235)

<강철 소방대 165화>

165화. 어둠 속으로 (5)

“서, 선배예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봤지만, 확실히 전화가 연결된 게 맞았다.

- 그럼 누구겠냐? 정신 안 차릴래?

자신이 기억하는 허석훈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울렸다.

- 이성하, 나 권일섭이다. 지금 상황 어떤지 제대로 보고해.

놀랍게도 그 뒤를 이어 대장인 권일섭의 목소리 역시 핸드폰을 통해 울렸고.

“서, 설마. 전부 현장에 와 계신 겁니까?”

상황을 묻는 권일섭의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팀원 전부가 현장에 있냐고 물었지만, 그건 괜한 물음이었다.

- 그럼 없겠냐. 인석아.

따뜻한 김필주의 목소리는 물론.

- 어휴, 나쁜 새끼.

분을 참지 못하는 도성민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고.

- 아, 진짜 맨날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후배 쫄려서 죽겠습니다.

심지어 출근해서 서에 있어야 할 마동민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하하…… 전부…….”

- 웃지 마. 이 썩을 놈아. 너 때문에 씻지도 못하고 급하게 나왔으니까.

당황한 자신의 웃음에 바로 짜증을 토하는 허석훈의 목소리처럼, 3팀 전원이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3팀은 정말 현장에 있었다.

“이성하,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상황부터 보고해. 부상 상태는? 같이 있는 생존자는 몇 명이야?”

권일섭이 진중한 표정으로 백화점의 내부구조도를 펼치며 이성하에게 상황을 묻고 있었다.

“석훈아, 지반 어떤 거 같아?”

“조심스럽게 파면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일단 파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생각보다 지반이 너무 불안정해요.”

김필주와 허석훈이 그 옆에서 무너진 잔해들을 살펴보며 진입로를 찾고 있었고.

“동민아, 장비는 가능하대?”

“특수구조대에서 빌려준다고 합니다. 원하는 거 다 말하면 지원해 준대요.”

도성민과 마동민 역시 선배들과 본인들이 착용할 장비들을 체크하며 언제든 현장 진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은평대. 반대쪽 준비됐답니다.”

“오케이, 감사합니다.”

그런 대원들에게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달려와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처럼, 단순히 구경꾼으로서가 아닌, 당당히 구조 작업에 참여하는 소방관으로서 현장에 자리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새삼 그런 자신들의 모습이 웃겼는지, 장비를 챙기던 도성민이 피식 웃었다.

“저 씻지도 못하고 나왔습니다.”

방금까지 자신이 집에서 티비를 보던 상황이라서였다.

“나도 그래, 난 밥 먹다 나왔어.”

김필주 역시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히 그 이유는 이성하였다.

- 큰일 났습니다. 지금 명동의 동아백화점이 무너졌는데, 그 현장에 성하 선배가 있는 거 같습니다.

징계를 받아 모두 집에서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백화점이 무너진 현장에 이성하가 있다는 마동민의 연락을 받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놀랄 판국에 그 현장에 이성하가 있다는 보고에 다들 깜짝 놀랐으며.

- 지금 인터넷으로 현장 중계되고 있는데, 거기 성하 선배가 있습니다. 바로 링크 보낼게요.

다시 상황을 설명하며 영상의 링크까지 보낸 마동민의 조치에, 3팀 모두는 이성하가 붕괴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 자, 잠깐만요!

- 이봐요!

이성하가 생존자가 있는 지하로 진입하는 장면은 물론.

콰르르르르.

- 끄으으으.

- 3차 붕괴다!! 전부 물러나!

- 제기랄, 조심해!!

그렇게 진입한 지반에 붕괴가 발생해 무너지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지켜봤고, 그 다급한 상황에 집에서 자숙 중이던 3팀이 모두 현장에 달려온 거였다.

- 전부 명동에서 보자.

- 바로 가겠습니다.

- 제길, 출발합니다.

- 저도 가겠습니다.

- 저도 어떻게든 허락받고 출발하겠습니다.

동료인 이성하가 위험에 빠진 모습에, 모든 대원이 조금도 지체 없이 현장으로 출발하겠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은평구조대의 등장에 현장이 시끄러워진 건 당연했다.

“모두 멈추세요! 재붕괴가 일어난 상황에서 섣불리 작업했다가는 지반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권일섭이 바로 고함을 지르며 소방관들의 구조 작업을 중지시켰고, 그에 현장지휘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 다가왔다.

“당신 갑자기 여기 와서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여기 지휘자는 접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게 무슨 행패예요! 당장 물러나세요!”

자신이 지휘하는 대원들을 막는 모습에 권위를 침범당했다고 여겼는지 바로 얼굴을 붉히며 권일섭을 몰아세웠고, 그 때문에 은평구조대는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구경만 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정말 위험합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가는 지반이…….”

“전부 내보내.”

“잠깐만요.”

“뭐 하고 있어. 빨리 다 끌어내!”

경고를 했음에도 끝까지 구조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권일섭의 모습에, 현장지휘자가 은평구조대를 강제로 현장에서 쫓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방관들은 당장 구조 작업 중지합니다.”

뒤늦게 한 소방관이 현장으로 들어오며, 권일섭이 한 것처럼 모든 소방관들에게 구조 작업의 중지를 지시했다.

“당신은 또 누구야! 누군데 감히 내 현장에서 이래라 저래라야!”

그에 현장지휘자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고성을 질렀지만, 지시를 내린 소방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권일섭에게 경례를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누가 봐도 존경심을 담은 자세로 깍듯이 상사의 예의를 취했으며, 그러고는 현장지휘자를 바라보며 매서운 표정으로 소속을 밝혔다.

“서울 특수구조대의 양유철 대장입니다. 지금부터 현장은 저희 쪽에서 지휘합니다.”

“트, 특구…….”

그보다 계급은 낮지만, 재난 상황에서 작전의 우선권을 지닌 특수구조대 소속이라는 걸 알리며, 성난 표정으로 고성을 지르던 현장지휘관의 입을 단번에 다물게 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그리고 여기 은평대 대원들은 지금부터 제 권한 하에 특수구조대로 작전에 참여합니다. 그러니 현장 대원들은 지시가 내려지면 그에 따라 주십쇼.”

그렇게 지휘권을 확립한 양유철은 보란 듯이 권일섭과 3팀 대원들을 자신의 팀에 포함시켰다.

“자, 잠깐만요. 저 친구들은 일반인입니다. 소방관이 아닌 일반인들을 구조 작전에 참여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에 현장지휘자가 그것만은 안 된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가 지휘자입니다. 그에 대한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휘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리며 그 입을 다물게 했고, 그런 양유철의 배려 덕분에 권일섭과 3팀은 임시로나마 특수구조대로 현장에 참여하는 상황이 되었다.

“팀장님, 장비 왔습니다. 명령 떨어지면 언제든 진입 가능합니다.”

“오케이.”

당당하게 구조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착용하며, 구조대원으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며.

하지만 상황이 좋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길, 이거 시간이 얼마 없겠는데요.”

지반의 상태를 파악한 허석훈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잘못 팠다가는 또 무너지겠어.”

그 말에 함께 지반을 살펴보던 김필주 역시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허석훈이 한쪽에 서 있는 현장지휘자를 노려봤다.

“저 X새끼 때문에 도대체 이게 뭡니까.”

저 현장지휘자가 안 그래도 어렵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만해. 이미 지난 일 어떻게 하겠어?”

“어떻게 그만합니까? 저 새끼 때문에 지금 성하가 위험해진 건데.”

지금처럼 지반이 불안정해진 이유가 저 현장지휘자가 제대로 현장을 지휘하지 못했기에, 여러 차례 재붕괴가 일어난 탓이 큰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저 지휘관과 대거리할 때가 아니었다.

“잔해 너머로 빈공간이 보인다고?”

대장인 권일섭이 이성하와의 통화를 통해, 매몰된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 네, 대략 사람 여섯 명 정도는 들어갈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 공간 너머에 뭐가 있었는데?”

- 행사 매대로 보이는 게 몇 개 있었습니다.

“어떤 매대?”

- 여성 의류였어요. 수영복 같은 것도 있었고요.

“오케이, 여성 의류랑 수영복.”

이성하의 눈으로 보이는 잔해들을 파악하며, 현재 이성하와 생존자들이 매몰된 위치를 서서히 좁혀가고 있었고, 그렇게 모인 정보들을 조합하던 권일섭이 결심했는지 이성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성하, 혹시 밑으로 탈출로를 잡는 건 가능하겠냐?”

- 밑이요?

“그래.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 네가 매몰된 위치는 지하 1층 지점이야. 가라앉은 깊이는 그보다 더 깊겠지만, 바로 아래 벽을 무너트리면 주차장으로 연결될 수도 있어. 내 생각이긴 하지만 주차장은 이 충격에서도 아직 형태를 유지하는 거 같고 말이야.”

벽을 뚫다가 포기한 이성하에게 새로운 탈출 방향을 알려 주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지켜보던 모두가 환한 표정으로 권일섭을 바라봤다.

“주차장? 이거 가능성 있겠는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잔해가 쌓인 높이가 생각보다 높은 걸 보면 주차장 지반은 버티고 있을 확률이 있겠어요. 아니, 버티고 있을 겁니다. 주차장이 무너졌다면 이쪽 지반은 전부 가라앉아야 해요.”

그 옆에서 내부구조도를 살피던 특수구조대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처럼, 다들 권일섭의 추측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환한 표정을 지은 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다급한 상황에 침착함을 잃었는지, 그저 본능적으로 위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잔해가 쌓인 천장과 벽 쪽만 살펴봤다.

‘아래였어. 그래. 아래로 가면 되는 거였어.’

지하가 있는 건물에서 위가 안 된다면 당연히 아래로 탈출로를 잡으면 되는 거였고.

[주차장이라…… 일리는 있긴 하지만, 공간이 유지되고 있을까? 3번이나 붕괴가 일어난 걸 감안하면 폭삭 무너졌을 거 같은데?]

그 말에 렉스가 불안한 목소리로 권일섭의 추측이 틀린 추측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성하는 권일섭의 지시에서 이미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아니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분은 버티는 게 분명해요.’

[분명하다고?]

‘네, 통화가 되잖아요. 중계기가 살아 있는 거예요.’

방금까지 통화가 안 되던 핸드폰이 갑자기 통화가 된 게 그 증거였다.

백화점 같은 대형 건물의 경우엔 층 곳곳에 중계기가 설치돼야만 통화가 가능했으며, 그 때문에 지하에 진입한 이후부터는 계속해 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분명히 3차 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신호가 안 잡혔어. 석훈 씨 옆에 앉았을 때 신호가 잡힌 거면 이 밑에 중계기가 설치된 공간이 있는 거야.’

김석훈의 옆에 앉고 나서야 통화가 가능했다는 걸 생각하면, 자신의 발밑으로 중계기가 설치된 공간이 오롯이 살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멀리 던져 뒀던 망치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균열이 일어난 곳. 가장 약한 곳을 찾아야 해.’

드디어 찾아온 새로운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을 살폈으며.

‘여기.’

그러다 발견한 바닥의 균열을 향해 강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파각!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 작은 희망에.

‘살 수 있어.’

다시 살아서 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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