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4화>
164화. 어둠 속으로 (4)
지반이 밑으로 꺼지기 시작한 충격.
그런 지상의 충격이 이성하와 생존자들이 있는 공간까지 전달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드드드드.
애초부터 무너진 잔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생성된 공간이 생존자들이 있던 곳인 만큼.
“꽈, 꽉 잡아요!”
와르르르르.
“끄아아아!”
“아아악!”
그들이 있는 공간 역시 순식간에 지반 밑으로 가라앉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상황에서도 용케 공간이 유지됐다는 거였다.
[야, 괜찮냐?]
‘끄응…… 괜찮아요.’
갑자기 공간이 통째로 떨어지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충격에 온몸에서 고통이 느껴졌지만, 불행 중 다행히 부상을 입은 건 아니었다.
“다, 다들 괜찮아요?”
“허억, 허억. 괜찮습니다…….”
“끄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생존자들 역시 밑으로 떨어진 충격에 다들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대화를 나눌 만큼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건 건물을 잘 지은 거야? 못 지은 거야?]
‘그러게요…… 이걸 천장이 버티네요.’
지반이 통째로 가라앉는 붕괴 현상이 일어났음에도, 그 충격에서 버텨 낸 천장의 단단함에 이걸 기뻐해야 하나라는 짧은 고민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투둑. 투둑.
방금의 충격으로 천장에 균열이 일어났는지 곳곳에서 돌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어…….”
“소, 소방관님. 천장이.”
“네, 보고 있어요.”
생존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찾을 정도로, 그동안 굳건히 지반을 받쳐 주던 천장에 균열이 일어난 상태였고.
“혹시 모르니까 다들 여기 벽 쪽으로 물러날게요.”
“아, 네.”
그에 이성하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생존자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균열이 일어난 부분의 경도를 확인했다.
툭. 툭.
잔해를 받치고 있는 천장의 균열이 얼마나 벌어졌는지, 챙겨 온 망치로 금이 간 부분들을 조심히 두드렸으며.
와르르르.
그 작은 충격에도 순식간에 돌 부스러기들이 떨어지며 철근이 노출되는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얼마 못 버티겠는데요?’
[그래. 이미 골조가 끊어졌어. 이대로는 오래 못 버티겠어.]
이미 천장의 골조를 구성하는 철근이 끊어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 그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 어때요?”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생존자들 때문이었다.
“소방관님. 괜찮은 거 맞죠?”
“안 무너지는 거죠? 아직은 괜찮죠?”
그들 또한 균열이 일어난 천장의 상태가 걱정됐는지, 그 상태를 파악하는 이성하에게 앞다투어 경과를 물어봤고,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생존자들을 본 이성하는 웃으며 거짓말로 답했다.
“괜찮습니다. 골조가 많이 손상되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에요.”
“저, 정말인가요?”
“네. 방금 같은 붕괴 현상만 벌어지지 않으면 문제없을 거예요.”
희망을 기대하고 있을 생존자들에게 사실을 알려 봤자, 불안감만 가중될 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붕괴 현상만 없다면 말이지.’
균열이 일어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 맞았지만, 아직까지는 천장이 버텨 주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안심하고 좀만 계세요.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랬기에 다시 한번 생존자들을 안심시키며 이번엔 천장이 아닌 벽을 살펴봤다.
‘끄응…… 장난 아니네.’
무너진 내린 건물의 잔해와 백화점 내의 구조물이 엉켜 있는 벽 쪽을 수색하는 거였고, 벽 부분을 수색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너 설마 굴이라도 파 보려는 거냐?]
‘네,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천장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다른 곳을 찾아야죠.’
아직 천장이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렉스의 말처럼 굴을 파서라도 다른 공간을 찾아 이동할 마음을 먹었으니까.
물론 그 방법은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방법이었다.
[되겠냐…… 아예 꽉 막혀 있는데.]
그 말에 렉스가 바로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벽이 잔해들로 빼곡히 막힌 상황이었고, 그보다 더 난감한 건 그렇게 막힌 잔해를 빼다가 천장이 곧바로 무너질 수 있다는 거였다.
투둑. 투둑.
생존자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보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게 천장의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럼 그냥 가만히 있다 죽어요?’
자신은 죽으려고 온 게 아니었다.
“우리 살 수 있겠죠…….”
“살 수 있을 거예요. 저렇게 소방관님이 우리를 구해 주러 오셨잖아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구조를 기다리는 저 생존자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해 이 어둠 속으로 내려온 거였고, 그렇게 손을 잡은 이상 절대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무조건 나간다. 당신들도. 그리고 나도. 무조건 살아서 가족의 얼굴을 보는 거야.’
남게 되는 사람들의 고통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곳을 탈출해 기필코 살아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상황이 완전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작은 공간만 있으면 돼요.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특구가 올 겁니다.’
곧 도착할 특수구조대의 존재가 희망이었다.
‘특구 선배들이라면 기필코 최단시간 내에 날 꺼내 줄 거야.’
꽤 늦어지긴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특수구조대의 실력이라면 버티기만 한다면 살아날 희망이 있었고, 그랬기에 가장 잔해가 헐거운 부분을 정해 거침없이 손을 내뻗었다.
[천장에 부담 안 가게 해!]
‘네’
렉스의 고함처럼 약해진 천장에 무리를 안 주기 위해 최대한 조심히 잔해를 파헤쳤으며, 그렇게 잠시 후, 잔해 사이로 보이는 공간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속도를 높였다.
‘있다!’
정확히 가늠은 안 되지만, 잔해의 틈 너머로 사람 몇몇이 들어갈 크기의 작은 공간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이성하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철근이…….’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삐져나온 철근들이 그 공간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다.
‘제길 너무 단단해.’
지금까지 들어냈던 잔해들과 달리, 철근들이 콘크리트 더미에 단단히 연결돼 길을 막고 있었고.
그그극. 그그극.
그에 다른 쪽으로 길을 우회하기 위해 어떻게든 잔해를 치워봤지만, 길은 없었다.
[안 돼, 죄다 콘크리트 더미들이야. 이건 못 빼내.]
지금까지 용케 잔해물을 제거하며 길을 만들긴 했지만, 그 주변이 죄다 통으로 연결된 콘크리트 더미들로 막혀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힘겹게 만든 굴을 빠져나와, 다시 주변을 살폈다.
‘안 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제길, 제길!’
언제 천장이 무너질지 몰랐기에, 어떻게든 굴을 뚫어 새로운 공간으로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생존자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무리 안 하셔도 돼요. 소방관님. 콜록, 콜록.”
이성하의 다급한 모습에 상황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이었다.
“사실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만하셔도 돼요.”
또 다른 남성 역시 이성하에게 괜찮다며 웃음을 지었고.
“허억, 허억.”
계속 누워 있던 여성 역시 고통 때문에 말은 못 하지만 이성하를 향해 웃음을 보였다.
“감사…… 해요…….”
어떻게든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 힘겹게나마 입을 열어 이성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그 옆으로 이성하가 처음 진입했을 당시 눈물을 터트렸던 남성 역시 감사를 표했다.
“흐윽. 저도 감사해요. 저희를 구하려고 혼자라도 오신 거잖아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남성은 연신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리고 죄송해요. 흐윽……. 괜히 저희 때문에 소방관님만 위험하게 됐네요.”
곧 천장이 무너져 모두 죽게 될지도 모르는 암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눈앞의 소방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진입했다는 사실에 감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길…….’
웃으며 마지막을 준비하려는 생존자들의 마음을 짐작해서였다.
“죄송합니다…….”
이성하 역시 속으로 더 이상 다른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던 만큼.
“그럼 우리 손이라도 잡고 있을까요. 안 무섭게.”
“그럴까요?”
“콜록, 콜록. 좋아요.”
“네, 그래요.”
처연히 웃으며 손을 잡아 달라는 한 생존자의 말에, 얼른 옆으로 앉아 같이 손을 잡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잡은 손이 거칠고 부르튼 것에 이성하가 씁쓸히 웃었다.
‘아까 그분이구나.’
손을 잡은 생존자가 처음 자신이 진입할 때, 한 손에 철근을 든 채로 눈물짓던 남성이라서였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통성명을 안 했네요. 이성하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구조 신호 보내신 분 맞으시죠? 배관 통해서 신호 보내는 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도 외부로 SOS 신호를 보낸 생존자의 기지에 감탄해 편하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렇게 듣게 된 사유에 깜짝 놀랐다.
“하하. 영화에서 본 기억이 떠올라서 해 봤습니다.”
“영화요?”
“네, 예전에 본 영화에서 건물이 무너졌는데 생존자들이 쇠파이프로 배관을 두드려서 밖으로 신호를 보낸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와, 대단하시네요.”
영화에서 본 장면을 이런 상황에서 떠올린 것도 신기했지만, 그걸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사실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알게 된 생존자의 이름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석훈이요?”
“네, 김석훈이라고 합니다.”
선배인 허석훈과 같은 이름이었다.
[뭐야? 이 새끼 그 꼴통이랑 친척 아냐?]
‘성이 다른데 친척은 아니죠. 그런데 얼굴은 좀 닮았네요. 이거 설마 이름이 같으면 외모랑 성격도 따라가나.’
렉스가 친척이 아니냐고 말할 만큼, 영화에서 본 장면을 보고 따라 했다는 엉뚱한 성격도 비슷했지만 어떻게 보면 외모도 좀 닮은 듯 보였고, 이성하는 방금까지 라이트 기능으로만 쓰던 핸드폰에서 사진첩을 열어 생존자에게 허석훈의 사진을 보여 줬다.
“저희 구조대 선배님이신데, 석훈 씨랑 이름이 똑같으세요. 허석훈이라고. 어떻게 석훈 씨랑 외모 좀 닮은 거 같지 않으세요?”
실없는 소리긴 했지만, 외모와 성격 모두 약간은 허석훈과 닮은 생존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에이…… 그래도 이분보다는 제가 더 낫죠.”
“하하하. 그런가요?”
“네, 저 이래 봬도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편입니다.”
“큭큭큭.”
자애심이 깊은 성격까지 허석훈과 똑같은 모습에,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와 웃으며 마지막을 맞이하면 조금은 위안이 될 듯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어?”
허석훈의 사진을 켜 둔 핸드폰의 화면이, 당근복을 입은 허석훈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저, 전화예요!”
김석훈이 당혹스러워하며 다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허석훈의 전화가 오면 뜨게 설정해 뒀던, 근무 때의 사진이 화면에 뜬 거였고.
스으윽.
그에 멍한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슬라이드 한 순간, 정말 허석훈의 음성이 핸드폰을 통해 울렸다.
- 야이, X새끼야!!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적같이 외부와 통화 연결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