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3화>
163화. 어둠 속으로 (3)
배관의 지반이 밑으로 가라앉자 이성하는 조금도 지체 없이 바로 배관이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거기 뭐 하는 거야!”
“아직 접근하면 안 돼요!!”
그 모습에 소방관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안 된다며 소리쳤지만.
‘생존자!’
그런 소방관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신호를 보내온 생존자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잔해를 파헤쳤다.
와르르르.
[아직 안정화 안 됐어, 조심해!]
렉스의 말처럼 방금 일어났던 2차 붕괴 때문에 근처의 지반이 움푹움푹 꺼지는데도.
‘알아요!’
터억. 터억.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배관 위를 뒤덮은 잔해더미를 파헤쳤고.
‘됐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배관에 바로 근처의 돌덩이를 집어 강하게 내리쳤다.
파캉!
조금 전 배관을 통해 생존자와 신호를 주고받았던 것처럼.
‘응답해!’
파캉! 파캉!
생존자의 생사 확인을 위해 다시 돌덩이를 힘차게 부딪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온 소리에 이성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앙.
생존자였다.
까앙. 까앙.
‘살아 있어.’
처음 들었을 때보다 소리의 진동이 약했지만, 다시 생존자가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파캉!
이성하가 배관에 돌을 내리쳐 신호를 보내면.
까앙.
그에 맞추어 살아 있다고 대답하는 생존자의 구조 신호가 들려왔고, 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팀장님, 현장에 2차 붕괴 발생했습니다. 방금 붕괴로 지반이 1m 정도 가라앉았고, 다행히 생존자 신호는 확인되지만, 얼마 못 버틸 거 같습니다. 빨리 오셔야 합니다.”
생존자의 생사는 확인했지만, 2차 붕괴가 발생할 정도로 지반이 약해진 광경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하지만 듣게 된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 끄응. 미안한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네?”
- 앞쪽에 사고가 난 모양이야. 완전히 꽉 막혀서 다른 길로 도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아. 한 30분은 더 걸릴 거 같다.
곧 10분이면 도착한다는 특수구조대의 도착 시간이 30분으로 늘어났다.
- 젠장, 길 좀 비켜 주세요!
- 빠앙! 빵!
- 긴급 상황입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상황을 보면 그 30분도 확실치 않아 보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그 시간은 못 버틸 거야…….’
당장 발밑으로 느껴지는 지반의 불안함을 봤을 때, 언제 다시 붕괴가 일어나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게 생존자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도 있었지만, 항상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까앙.
드드드드드.
생존자에게 처음 구조 신호를 받을 때와 달리, 지금은 생존자가 구조 신호를 보낼 때마다 지반에서 묘한 울림이 느껴지고 있었고, 그 느낌을 이성하는 예전에 경험해 본 적 있었다.
‘3차 붕괴…….’
작년 국제구조대로 파견된 네팔의 지진 현장에서, 이런 떨림 이후에는 꼭 건물의 재붕괴가 일어나는 상황을 지겹도록 경험한 적이 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밖에 없나…….’
생존자를 살리기 위해, 무너진 건물 밑으로 직접 들어갈 것을.
[어휴, 썅!]
그 결정에 렉스가 답답한 듯 고성을 내질렀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었다.
‘진입로는 있어.’
무너진 건물의 잔해 밑으로 아까 확인했던 배관 밑의 공간이 보였다.
투둑. 투둑.
배관 밑으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가능해. 공간의 틈은 그대로야. 버티고 있어.’
2차 붕괴에서도 계속 공간을 유지하는 걸 보면 충분히 진입이 가능한 듯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핸드폰을 들었다.
“팀장님, 작은 사이즈긴 하지만 진입로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작전의 허락을 받기 위함이었다.
- 진입로?
“네. 생존자가 신호를 보내온 배관 밑으로 틈 하나가 있는데, 사람 한 명이 기어 들어갈 정도의 크기는 됩니다. 제가 그 안으로 진입해서 생존자 확보하고 보강대 세우겠습니다. 보강대만 세운다면 어떻게든 특수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건 가능할 겁니다.”
내부로 통하는 진입로의 존재와 함께, 자신이 그 안으로 진입해 보강대를 세워 시간을 벌겠다고 말했으며.
‘끄응…….’
그 보고에 잠깐 막막한 표정을 지었던 양유철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최대한 서두를 테니까. 어떻게든 해서 버텨 봐.”
현장에 있는 이성하의 판단을 존중한 거였다.
“팀장님, 아무리 그 친구라도 단독 진입은 무리입니다.”
“맞습니다. 이야기 들어 보면 겨우 기어 들어갈 사이즈인데 들어가서 보강대를 세운다뇨. 자재도 없을뿐더러, 있어도 어떻게 가져간다고요?”
그 결정에 같이 통화를 듣던 대원 몇몇이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방법이긴 했지만, 양유철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저놈이면 가능해. 다들 기억 안 나? 저놈 네팔에서도 저런 식으로 무너지는 통로 받쳐서 생존자 살려 낸 거.”
상황은 다르지만, 예전 네팔 구조 작전에서 이성하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생존자를 살린 적이 있어서였다.
“이럴 때 받치려고 가져온 거 아닙니까? 으라차.”
첨벙, 첨벙.
갑자기 터진 물줄기에 토굴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자재를 들고 토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건 물론.
쏴아아아아!
“버틸 수 있겠어?”
“괜찮습니다! 빨리 하십쇼!”
건물 안에 매몰된 생존자가 구해질 때까지 악착같이 무너지던 토굴을 받치던 구조대원이 바로 이성하였고, 그 기억이 아니더라도 양유철은 지금의 의견을 허락했을 터였다.
“당장 해. 최대한 서두를 테니까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내. 요구조자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한다. 그게 우리 특구의 방침이야.”
다른 구조대와 달리, 요구조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건물을 부수든 폭발을 시키든 어떤 수라도 동원해야 한다는 게 그가 생각하는 구조대의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를 종료했다.
“알겠습니다.”
뚝.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받은 이상, 이제 남은 건 진입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바로 진입을 시도하는 건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까 물이랑 의약품 좀 챙겨야겠어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물과 의약품을 구비해 들어가야 했다.
[소방관 쪽에 말해서 얻는 건 안 되겠지?]
렉스의 말처럼 현장 소방관들에게 말해서 지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안 되죠. 말했다가는 바로 현장 접근도 불가능하게 될걸요.’
자신에게 일반인이라며 구조 작업에서 손 떼라고 요구하던 현장지휘관을 생각하면 자칫하다가 아예 현장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었고, 때문에 이성하가 선택한 건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이거 전부 계산해 주세요.”
“전부요?”
“네, 전부 다요.”
“아, 네…….”
계산하는 직원이 당황해할 정도로 물 세 병과 함께 편의점 내에 있는 의약품과 에너지 바를 가방에 잔뜩 쓸어 담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편의점 내에 있는 공구까지 몇 개 빌려 갔다.
“저 죄송한데 혹시 망치랑 스패너 있습니까?”
“망치랑 스패너요?”
“네, 소방관인데 공구가 좀 필요해서요.”
“아…… 여, 여기 있어요.”
“감사합니다. 조금만 쓰고 갖다드릴게요.”
당당하게 직원에게 소방관 공무원증을 꺼내 보이며, 진입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가방에 단단히 챙겨 담은 것이다.
“어? 저기 들어오는 거 뭐야? 뭐 하고 있어? 막아!”
그리고 그렇게 꽉 찬 가방을 들고 배관 쪽으로 접근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아까 전 현장에서 물러나라고 했던 지휘관이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터억.
단번에 달려간 이성하가 잔해의 틈을 잡고 밑으로 내려갔다.
“자, 잠깐만요!”
“이봐요.”
그에 지시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들이 다급히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이성하의 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파아앗.
‘됐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진입을 방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을 켜며 배관 밑의 틈으로 몸을 집어넣은 상황.
[하…… 너 이러다가 괜찮겠냐?]
그 단호함에 렉스가 차후의 일이 걱정됐는지 푸념을 토했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잘렸는데 더 달라질 거 없잖아요.’
이미 징계를 받아 소방관에서 잘린 상태였다.
‘해임이나 파면이나 거기서 거긴데 뭐.’
어차피 근무 기간도 얼마 안 되다 보니 지장이 생길 건 연금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열심히 손을 놀려 좁은 굴을 기어갔다.
까앙. 까앙.
“알았어요, 가고 있으니까 기다리라고요.”
계속해서 살려 달라고 말하는 저 요구조자의 신호에 응답하기 위해, 악착같이 좁은 굴을 기어간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길, 잔해가 생각보다 많아.’
애초부터 건물이 무너져 생긴 틈이다 보니, 곳곳에 이동을 방해하는 잔해가 너무 많았다.
“끄윽.”
그 때문에 삐져나와 있는 잔해에 몸을 긁혀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좁아지는 틈이었다.
[야, 안 되겠다. 돌아가자. 이거 요구조자를 만난다고 해도 아예 공간이 없겠어. 몸을 움직일 틈이 없을 거야.]
안으로 들어갈수록 틈이 좁아져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토굴의 크기를 보면, 생존자가 있는 공간 역시 좁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렉스의 생각이었다.
‘끄으으. 안 좁아요. 생존자 있는 공간은 넓어요.’
이성하는 생존자가 있는 공간이 넓다고 판단했다.
[넓다고?]
‘네. 아까 보니까 잔해 위 중앙부가 대각선으로 무너져 있었어요. 그걸 보면 V형 붕괴일 게 분명해요.’
[V형?]
‘중앙부가 단숨에 무너지며 삼각형 모양으로 빈 공간이 생기는 붕괴형태예요. 단숨에 무너진 덕분에 반대로 사이드는 단단하게 지지되고, 그렇게 V형으로 무너지는 공간은 대부분이 커요. 아마 열댓 명은 들어가도 될 공간이 있을 거예요.’
다른 분야라면 몰라도, 도시탐색구조에서만큼은 이성하의 공부가 렉스보다 출중했다.
‘분명해. 이쪽 지반의 붕괴 형태는 똑바로 대각선을 유지했어.’
국제구조대 참가 이후에도, 나중을 대비해 도시탐색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이어 온 이성하였고, 그 노력은 다행히 헛되지 않았다.
“끄아아아!”
마지막으로 굽이진 틈에 몸을 밀어 넣음과 동시에.
와르르르르.
“허억, 허억.”
흙더미가 무너지며 넓은 공간이 보였으며, 그 공간으로 떨어진 이성하의 눈에 보이는 건.
“흐윽.”
눈시울을 붉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요구조자였다.
“소방관입니다. 일단 상황이 있어서 먼저…….”
“으허허헝.”
얼마나 무서웠는지,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밝히자마자 하염없이 우는 요구조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좋아할 수 없었다.
[네 명이야. 한 명이 아니었어.]
렉스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요구조자가 네 사람이라서였다.
“허억, 허억.”
“끄으으으…….”
다들 의식은 있지만, 무너지는 잔해에 큰 부상을 입은 듯 움직이지는 못하는 상태였고.
“일단 물부터 드세요. 안에 진통제도 있어요.”
그에 물과 의약품이 든 가방을 통째로 요구조자들에게 넘기고는 핸드폰의 불빛을 위로 밝히며 지반을 살폈다.
‘어디 보자.’
양유철에게 보고한 대로, 약해진 지반을 파악해 보강하기 위함이었다.
[되겠냐?]
‘되겠어요? 그냥 근처에 널브러진 잔해라도 세워서 받치는 정도죠 뭐.’
특수구조대원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보강할 자재는 없지만, V형 붕괴라는 걸 감안해 적당한 크기의 잔해라도 대충 세워 조금이라도 추가 붕괴 상황을 막아 볼 마음을 먹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최대한 조심히 들어!”
“거기 발밑 조심해!”
위에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던 소방관들이었다.
“방금 소방관 들어간 쪽은 당분간 중지해!”
“알겠습니다!”
이성하가 밑으로 진입한 상황이기에 최대한 그 지역만큼은 피해서 잔해 제거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엇!”
쾅!
그중 한 대원이 콘크리트 더미를 들다가 실수로 놓치는 일이 발생했다.
“조심해!”
콰가가각.
그 때문에 놓친 콘크리트 더미가 낮은 지대 쪽으로 떨어지며 바닥을 휩쓸었고.
“아…….”
실수를 저지른 대원이 그 광경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상태였다.
콰르르르르!
방금의 충격으로 겨우 고정됐나 싶던 지반이 다시 밑으로 움푹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