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62화 (162/235)

<강철 소방대 162화>

162화. 어둠 속으로 (2)

동아백화점은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문제가 많다고 여겨지던 백화점이었다.

“미영아. 오늘 2층 천장에서 물 샌 거 들었어?”

“천장에서?”

“응. 저번 달에도 3층 화장실에서 홍수 났었잖아. 점장님한테 물어보니까 배수관 쪽에 문제가 있나 봐.”

“배수관? 작년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는 거야? 으, 정말 싫다.”

일하던 직원들이 종종 인상을 찌푸리며 수군댈 정도로 내부적으로 잦은 사고가 발생하는 백화점이었고, 최근엔 사람이 크게 다칠 뻔한 사고도 발생했었다.

콰가각.

“꺄아악!”

“처, 천장이.”

“모두 물러나요!”

다행히 미리 소리를 듣고 대피해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천장의 석고보드가 갑자기 떨어져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큰 부상을 입을 뻔한 상황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별문제 없겠네. 다친 사람 없으니까 그냥 덮고 마무리해.”

상황을 파악하러 온 본사 본부장이 부상자가 없다는 사실에, 그대로 사고 소식을 덮기로 결정해서였다.

“그, 그냥 덮으라고요? 여기 천장 무너진 거 밖에서 다 보여서 들킬 겁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백화점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본사 책임자는 당당했다.

“뭐가 문제야? 부상자도 없겠다, 어차피 오픈 전에 일어나서 지금 당장 본 사람도 없으니까 직원들 입단속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본사 본부장의 말대로 다친 사람도 없고, 오픈 전에 일어나 밖에 알려지지 않은 사고였다.

“그냥 쉽게 가자고. 이거 밖에 알려지면 자네랑 나랑 둘 다 모가지야. 직원들 입단속만 잘하면 그냥 넘어갈 문제니까. 여기는 차단막 치고 리뉴얼 공사 중이라고 붙여 놓자고. 알았지, 공 팀장?”

우물쭈물하는 담당자에게 본부장은 괜히 문제가 커지면 직장에서 잘릴 거라는 말을 돌려 말하며 사건을 덮을 걸 지시했고, 그에 담당자는 불안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수고하도록 해.”

“네, 들어가십쇼. 본부장님.”

권유하듯 말하는 것 같지만, 표정만 봐도 잘못되면 자르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애초에 거부할 권리도 없었고.

“오늘 발생한 사고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본부장님이 엄중 지시한 사항이니까 절대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그랬기에 본부장의 지시대로 담당자가 직원들을 단단히 입단속하며, 동아백화점은 여전히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갔다.

<가을맞이 특별 리뉴얼 공사 중>

“엄마, 나 치마 사 줘.”

“민혁 씨, 이 옷 어때요?”

“여보, 이거 한 번 신어 봐. 이거 엄청 이쁘다.”

본부장이 말한 것처럼 리뉴얼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세워, 천장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은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손님들과 달리, 사실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이거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거 아냐?”

“왜 그래. 불안하게.”

“아니, 그렇잖아. 천장도 무너졌는데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 거잖아.”

일부분이긴 하지만 직접 천장이 무너진 걸 본 상황이기에, 혹시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원들이 한창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그때.

드드드드.

정말 그 일이 벌어지려는 듯 순간적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것에, 모두 다급한 표정으로 건물을 뛰쳐나갔다.

“어, 어……!”

“무너진다!”

“밖으로 나가!”

“건물 무너져요! 빨리 나가요!”

원래대로라면 안내방송이 나온 이후 상황을 파악하고 손님들과 함께 건물을 빠져나갈 테지만, 건물이 부실하다는 것을 안 직원들이 알아서 손님들을 대피시키며 백화점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빨리 대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엇.”

콰당탕.

갑자기 일어난 혼란스러운 상황에 서두르다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 잠시만요, 제 가방 좀…….”

“민지야! 민지야 어디 있니!”

“안 돼! 여보!!”

그 외에도 여러 사유로 탈출이 늦어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모처럼 월차를 내고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에 쇼핑하러 온 김석훈도 그중 한 명이었다.

“엄마, 빨리 휠체어 앉아요. 빨리요.”

갑작스런 건물의 흔들림에 다급히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히고 탈출을 서둘렀지만.

파가가각!

“제, 제길!”

순간 바닥으로 꺼지는 바닥에 그대로 엄마를 껴안았다.

콰콰콰콰쾅!

그렇게 제시간에 탈출하지 못해 일제히 머리 위로 쏟아지는 콘크리트 더미와 함께, 건물 깊이 매몰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끄으으…… 내 다리…….”

다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손을 뻗어 만져 봤더니, 철근으로 보이는 길쭉한 쇳덩이가 다리를 꿰뚫고 있었다.

“으으으…….”

그에 어떻게든 다리를 꿰뚫은 철근을 뽑아 보려 했지만.

“허억, 제기랄…….”

조금만 움직여도 다리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힘겹게 다시 몸을 누였고.

“어, 엄마.”

그러다 뒤늦게 같이 있던 엄마를 떠올리고 다급히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라이트…….”

바닥 밑으로 함께 떨어진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화아아악.

“엄마 어디 있어? 엄마!”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바로 핸드폰의 라이트 기능을 켜 엄마를 찾았고, 곧바로 보게 된 광경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엄마.”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누워 있는 엄마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아서였다.

“엄마, 괜찮아…….”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채 힘없이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에.

“흐윽, 엄마!”

자신과 마찬가지로 큰 부상을 입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다급한 표정으로 엄마를 안심시키며 핸드폰을 내렸다.

“어, 엄마 잠깐만.”

119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119…… 119에 전화해야 해.”

밖의 상황은 모르지만, 분명히 건물이 무너진 걸 알고 출동해 있을 119에 상황을 전해야만 엄마와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119에 전화를 거는 건 불가능했다.

삐익. 삐익. 삐익.

힘겹게 손을 놀려 119에 긴급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 기능은 작동되지 않았다.

<서비스지역이 아닙니다>

“아, 안테나가…….”

건물이 무너지며, 건물에 설치된 전화망 시스템 또한 같이 붕괴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 포기할 순 없었다.

‘엄마…….’

자신 혼자만이라면 몰라도 엄마가 곁에 있었다.

“끄으으으.”

그랬기에 다리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파아앗.

다시 핸드폰의 불빛을 켜 주변을 훑었다.

‘저거야.’

그러다 한쪽에 자신의 다리를 꿰뚫은 것과 같은 철근 하나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몸을 끌었으며.

꽈아악.

그렇게 다가가 발견한 철근을 잡고, 옆으로 보이는 쇠파이프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까앙!

그 충격에 쇠끼리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공간을 강하게 울렸지만, 김석훈은 멈추지 않았다.

까앙! 까앙!

핸드폰이 안 된다면 원시적인 방법으로라도 외부에 신호를 보낼 생각에서였다.

‘분명히 영화에서 이렇게 외부로 신호를 보냈어. 이렇게 하면 외부로 그 진동이 전달된다고.’

확실하진 않지만, 영화에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던 배우들의 모습이 떠오름에.

빠드득.

까앙!

이를 악물며 계속 철근을 휘둘렀으니까.

주르륵.

그 충격에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제발, 전달돼라. 제발!!’

어떻게든 밖에 소식을 전달해야만 살 수가 있다는 생각에.

까앙! 까앙! 까앙!

전력을 다해 옆으로 보이는 쇠파이프를 향해 철근을 부딪쳐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짐에 김석훈의 얼굴엔 절망이 어렸다.

‘왜지…… 전달이 안 되는 건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돌아오는 응답이 없어서였다.

까앙! 까앙!

벌써 십여 분이 넘도록 철근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웅. 우웅.

들려오는 건 자신이 때린 쇠파이프의 진동음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하하…… 역시 영화에서 본 이야기일 뿐이었나…….’

그저 자신이 두드릴 때만 소리를 내는 쇠파이프의 모습에, 모든 희망을 버리고 철근을 손에서 내려놓은 순간.

파캉.

쇠파이프가 작은 울림을 토해 냈다.

‘서, 설마…….’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파캉! 파캉!

다시 한번 쇠파이프가 울림을 토해 냈고, 그에 김석훈은 다시 철근을 들고 신호를 보냈다.

“여기 있어!”

까앙!!

“우리 여기 있다고!!”

까앙! 까앙!

드디어 외부에서 자신의 신호를 알아채고 응답을 보내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김석훈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 * *

파캉!

무너진 건물 위에서 이성하가 한 배관을 향해 근처의 돌덩이를 들어 후려치고 있었다.

파캉! 파캉!

들려오는 신호에 대답하기 위해 소리를 토하는 배관을 찾아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까앙! 까앙!

그에 맞춰 다시 보내오는 신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예요.”

[그래. 진짜 생존자네.]

신호를 듣자마자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생존자에게 답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몰된 생존자의 구조는 당장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

렉스의 말처럼 딱 봐도 깊게 매몰된 생존자의 상태 때문이었다.

‘최소 15m. 아니 그보다 더 될 수도 있겠어요.’

깊이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요구조자의 신호를 생각하면 당장은 구조가 불가능했고, 그건 뒤늦게 보고를 받고 상황을 확인한 현장 지휘자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안 됩니다. 이 요구조자를 구하자고 다른 사람들을 포기할 순 없어요.”

지금 신호를 보내온 요구조자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아직 건물에 매몰돼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요구조자를 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제길, 확실하게 지반만 받치면서 진입 시도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성하가 국제구조대에서 배워 왔던 도시탐색구조작업이었다.

[내 생각도 그래.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 있었어. 중간에 보강대 몇 개만 세우면 무너지지 않고 진입할 수 있을 거야.]

렉스 역시 그 의견에 한 표를 던진 것처럼, 이미 생존자가 신호를 전달해 온 배관 밑으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확인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그 의견을 현장 지휘자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도시탐색구조 과정을 경험해 본 소방관이 아니야.’

눈앞의 현장 지휘자는 특수구조대가 아니었다.

“반대편 들어!”

“셋 하면 옮긴다!”

“네, 알겠습니다!!”

찾아보면 몇 명은 있겠지만, 지금 구조작업을 벌이는 소방관들을 보면 도시탐색구조 과정을 경험한 소방관은 없는 듯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현장 지휘자의 판단에 아무 말없이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지금으로선 특수구조대가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현장 지휘자가 계속 자신을 경원시하는 눈빛을 보인 것 때문도 있었다.

“아, 그리고 지금까지 도와주신 건 괜찮지만 이제 물러나 주십쇼. 일반인 신분으로 구조활동에 참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은근슬쩍 자신에게 현장에서 손을 떼 달라고 요청하는 지휘관이었고, 이성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그의 요청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 나 징계받아서 해임됐지.’

소청심사를 넣어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게 자신의 신분인 건 맞았으니까.

그 때문에 아직까지 전화를 끊지 않고 상황을 듣고 있던 양유철에게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빨리 오셔야 할 거 같습니다. 저 이제 쫓겨납니다.”

어떻게든 특수구조대가 조금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방금 발견한 생존자를 구할 수 있다고 보고했고, 그에 양유철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 걱정 마. 앞으로 10분이야. 안 그래도 엄청 밟고 있다.

이성하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상황의 심각성을 알기에, 미친 듯이 도로를 달려 현장 도착 시간을 앞당기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10분이면 괜찮네요. 아직 지반은 괜찮…….”

그런 양유철의 대답에 이성하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으려는 순간.

드드드득.

지반이 또 한 번 무섭게 흔들렸다.

콰르르르!

“물러나!”

“2차 붕괴다!! 전부 물러나!”

고함을 지르며 물러나는 소방관들의 말처럼 중앙 쪽에 쌓여 있던 잔해들이 움푹 가라앉으며 무서운 굉음을 토했고, 그에 이성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썅…….”

방금의 충격으로 생존자가 신호를 보내오던 배관의 지반 또한 밑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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