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1화>
161화. 어둠 속으로 (1)
현재 일어난 상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화아아악.
버스의 앞 창문은 물론, 옆으로도 짙은 먼지바람이 앞을 자욱이 가려 도저히 시계가 확보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이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흔들렸었죠?’
[그래. 약하지만 지진이었어.]
렉스의 말처럼 지진이었다.
심지어 진도가 몸으로 느껴질 정도의 지진이라면 보통 사태가 아니었고, 그에 이성하는 고민도 않고 버스의 하차 문 쪽으로 달려가 고함을 질렀다.
“기사님. 문 열어 주세요!”
“……네, 네?”
“문이요! 소방관입니다. 상황 좀 파악하게요.”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방금의 진동이 지진으로 발생한 상황이라면, 근처의 건물들이 몇 채는 주저앉았을지도 모르는 재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 야, 무슨 일이야! 지금 거기 무슨 일 일어난 거야?
데일 역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물었지만, 이성하는 그에 길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지진 같아. 나중에 통화하자.”
뚝.
상황만 간단히 전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철컥.
“문 열었어요!”
“감사합니다.”
그와 동시에 열린 하차 문에, 바로 버스기사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팔로 입을 가리며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고.
[좋아, 슬슬 보인다.]
마침 렉스의 말처럼 눈앞을 가리던 먼지바람이 서서히 흩어지며 시야가 확보되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큰 사고는 없네요.’
걱정한 것과 달리 방금 지진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깜빡, 깜빡.
몇몇 차량이 바짝 붙은 모습으로 비상등을 켠 걸 보면 추돌이 있던 걸로 보이지만.
“이게 무슨 일이야.”
“아후. 완전 깜짝 놀랐네. 다들 괜찮으세요?”
“전 괜찮아요. 그쪽은 괜찮으시죠?”
금세 차에서 내려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을 보면 다들 괜찮아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한 번 더 주변을 살피고 핸드폰을 들었다.
“은평소방서의 이성하 소방관입니다. 현재 시청역 근처 경한은행 앞 도로에 추돌 사고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119 상황실에 현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차량 세 대가 추돌로 조금 망가진 상황이고, 큰 부상자는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구급차 출동 부탁드립니다.”
부상자는 없다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추돌 사고가 발생한 상황이기에 구급대원이 출동해 부상자들을 살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상황실 대원의 다급한 음성에 이성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죄송하지만 지금 출동이 힘든 상태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출동이 힘들다는 대답 때문이었다.
“출동이 힘들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출동이 늦어지는 것도 아닌 힘들다는 대답에 이해가 안 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고, 그 뒤로 이어지는 대원의 말에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 현재 관할 구역에 광역 2호가 떨어진 상황입니다.
관할 내의 소방서를 포함해 인근 3개 이상의 소방서가 총출동하는 광역 2호가 떨어진 상황이었다.
“광역 2호? 설마 방금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 겁니까?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그 때문에 방금 전 발생한 지진에 생각이 미쳐 상황실 대원에게 정확한 피해 상황을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원의 대답은 이성하를 벙찌게 만들었다.
- 지진이 아닙니다.
방금 전 그 진동은 지진이 아니었다.
- 방금 명동의 동아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건물 전체가 매몰된 상황입니다.
근처에 위치한 명동의 동아백화점이 붕괴됐다는 대원의 씁쓸한 대답이 귓가를 울렸으며, 그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 했다.
[지진이 아니고 백화점이 무너져 생긴 진동이었어.]
“…….”
렉스의 말처럼 백화점이 무너지며 발생한 충격으로 지반이 흔들린 거였다.
화아아악.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연기가 자욱해 뿌연 한 편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고.
“제길.”
이내 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백화점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 현재 건물 전 층이…….
뚝.
더 이상 대원과 통화할 이유는 없었다.
‘저 사거리만 넘어가면 바로 백화점이야.’
조금만 길을 가면 바로 그 백화점이 있는 명동이었기에.
타다다닥.
바로 속도를 붙여, 그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백화점을 떠올리며 빠르게 달려갔으니까.
하지만 골목을 돌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이성하는 걸음을 멈췄다.
“거, 건물이…….”
기억대로라면 7층 크기의 대형 건물이 우뚝 서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화아아아악.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곳을 자욱이 가리던 짙은 먼지 연기가 그 공간을 자욱이 가리고 있었고, 그 연기 사이로 보이는 건 지옥이었다.
“들것! 들것 더 필요해! 빨리!!”
“이봐요, 괜찮아요!?”
“의식 잃으면 안 돼요. 정신 차려요!”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흰색 헬멧을 착용한 구급대원들이 정신없이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으아아앙.”
“여보…… 여보…….”
“끄으으으…….”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
그런 구급대원들에게 끌려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피범벅이 된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 뒤로 가망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시신이야…… 사망자 수가 엄청날 거 같아…….]
렉스의 말처럼 건물이 붕괴하며 그대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이 곳곳에 보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현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지연 엄마!”
“안 돼! 내 딸이 저 안에 있어!”
“으허허헝. 여보! 여보!!”
매몰된 건물 안에 가족이 있는지, 다시 건물 쪽으로 다가가며 울부짖는 부상자들의 고성에.
“물러나요! 물러나!”
“김 순경! 인력 지원 더 요청해! 빨리!”
속속들이 도착하는 경찰 병력이 그런 부상자들을 말리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와야 해.’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저 지옥 속에서 구하기 위함이었다.
“당신 뭐예요! 물러나세요!”
“소방관입니다!”
“뭐?”
“은평소방서 이성하 소방관입니다. 요구조자 구조 돕겠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을 말리는 경찰관에게 소방관임을 증명하는 공무원증을 꺼내 보이며 그대로 안쪽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는 소방관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여기 일반인은 접근하시면 안 돼…….”
“은평소방서의 이성하 소방관입니다. 목장갑 하나만 쓰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막는 소방관을 향해 소속을 밝히며 근처에 있는 보급 박스에서 목장갑 하나를 꺼내 착용했다.
“여기 한 명 더!”
“네!!”
그러고는 한쪽에서 콘크리트를 잡은 채 도움을 요청하는 소방관의 고함에 바로 대답하며 달려나갔으며.
“이쪽 들게요!”
“……!”
그렇게 소리친 소방관 옆으로 자리해, 콘크리트 더미의 한쪽을 잡았다.
“뭐합니까! 얼른 들어요! 끄으으으!”
한참 전만 해도 해임을 당한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맨몸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잡은 채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 요지부동하던 콘크리트 더미가 옆으로 서서히 밀려갔다.
“된다! 좀 더요!”
“끄으으으으!!”
그에 이성하와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콘크리트 더미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불어넣었고, 그 힘에 결국 콘크리트 더미는 완전히 들려 옆으로 떨어졌다.
“끄으으으…….”
그렇게 들려 옮겨진 콘크리트 더미 아래로 신음을 흘리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으며, 그에 현장엔 환호성이 솟아올랐다.
“드, 들것! 아직 살아 있다!”
“빨리! 빨리!”
아직 한참이나 구해야 할 사람이 많은 상황이긴 하지만, 생존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사실에 다들 기쁨의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을 구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이성하는 기뻐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런 속도로는 힘들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구조현장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쪽 기둥부터 들어낸다!”
“생존자부터 찾아!”
“여기 사람 있어! 이쪽 잔해부터 들어내!!”
속속들이 근처 소방서에서 지원이 도착하며 붕괴된 건물의 잔해들이 빠르게 들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모든 요구조자를 구하기에는 무너진 건물의 범위가 너무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성하는 소방관들을 도와 잔해를 드는 걸 멈추고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최대한 특수구조대가 빨리 오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건물붕괴와 같은 대형 재난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특수구조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상황실 대원의 말대로라면 이미 출발했을 거야. 언제 도착할지 알아야 해.’
광역 2호 발령부터 권역 내의 특수구조대가 출동된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쯤 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그런 이성하의 생각은 정확했다.
- 성하야, 미안하지만 지금 바빠서.
국제구조대로 연을 맺었던 양유철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음성으로 통화를 끊으려 했다.
“알고 있습니다, 팀장님. 지금 명동 백화점에 오시는 중이시죠?”
-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상황을 알고 있는 듯한 이성하의 말에 양유철이 바로 당황하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이성하는 바로 말을 자르며 상황을 전달했다.
“저 지금 명동 현장에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십니까? 현재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지금쯤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을 특수구조대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 어느 정도야?
“7층 백화점 전체가 통째로 무너진 상황입니다. 건물 외곽은 살아 있지만 그 안쪽 내부는 완전히 전부 주저앉았고, 현재 40, 아니. 50명 정도의 소방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잔해들을 들어 올리고 있지만, 추가 붕괴 위험이 있다 보니 작업속도가 느립니다. 그리고 건물 전체가 무너지긴 했지만, 잔해 흔적을 보면 곳곳에 요구조자가 생존해 있을 빈공간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생존자를 늘리려면 빨리 와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미 상황실로부터 정보를 전달받고는 있겠지만 특수구조대의 주 전공인 도시탐색구조 작업을 경험해 본 대원으로서,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활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빠르게 전달했으며.
- 좋아. 안 그래도 정보가 많이 부족했는데, 지금 알려 준 정보대로 작전 구상하마.
정보를 듣자마자 환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양유철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러면 특수구조대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구조작업에 속도가 붙을 거야.’
미약한 도움일지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생존자의 구조 시간을 앞당겼다는 기쁨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 앞으로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20분이요?”
곧이어 들리는 특수구조대의 도착 시간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내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 그래. 가용 가능한 장비 모두 챙겨서 가는 중이다.
모든 장비를 동원해 출동했다는 양유철의 말 때문이었다.
- 수도권 특수구조대도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고 했으니까 그쪽도 그 시간 안에는 도착할 거야.
심지어 남양주에 있는 수도권 특수구조대까지 이번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지원을 오는 상황이었고, 얘기를 들은 이성하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그러면 충분해.’
두 개의 특수구조대가 지원을 결정한 상황이라면, 그 정도 시간쯤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까앙.
어디선가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잘못 들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까앙. 까앙. 까앙.
여전히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귀를 간지럽히는 것에.
‘어디지? 어디서 들리는 소리야?’
자세를 낮추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고, 잠시 후 그렇게 알게 된 소리의 진원지에 이성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닥.’
그 소리가 바닥에서 들려오는 걸 깨달아서였다.
까앙. 까앙. 까앙.
자신의 발밑에서 생존자가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