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60화>
160화. 공정 VS 부조리 (5)
징계위원회의 결정은 삼일 뒤로 미뤄졌다.
“위원들 간의 의견이 너무 팽팽한 관계로 이번 징계위원회의 투표는 삼일 뒤에 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은평구조대 분들은 서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원래는 출석 당일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게 보통이지만, 이성하와 권일섭의 마지막 발언이 민간위원들을 고심하게 만들었는지 조금 더 논의를 해 보고 투표를 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에 은평구조대원들은 희망을 품고 본부를 나올 수 있었다.
“됐어!”
“잘된 거 같습니다. 다들 민간위원들 표정 보셨죠?”
“대장님, 결과 기대해 봐도 될 거 같습니다. 투표를 미룰 정도면 표가 많이 갈린 거 같아요. 징계가 떨어진다고 해도 큰 징계는 안 떨어질 거 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투표가 미뤄진 결과도 봐도 긍정적이지만, 소명을 마치고 나오면서 본 민간위원들의 표정을 보면 징계가 떨어져도 큰 징계는 아닐 거 같다는 기대감이 솟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언론을 통해 흘러나갔다.
“저기 나온다!”
“빨리 카메라 들어! 카메라!”
“KBC의 현지영 기자입니다. 권일섭 소방관님, 징계위원회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찰칵찰칵.
워낙 화제가 된 징계위원회다 보니 기자들이 그 결과를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앞에서 기다리던 상황이었고.
“결과는 3일 뒤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징계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모르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 드렸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그에 권일섭이 후련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마치는 모습에, 대한민국 곳곳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그렇지!”
“잘됐구나! 잘됐어!”
“당연히 그래야지. 얼마나 고생한 분들인데, 나이스다! 나이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화면에 비치는 은평구조대의 밝은 모습에 징계위원회의 방향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좋게 흘러간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삼일 후, 소방본부에서 통고한 징계위원회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소방본부, 은평구조대 전원 징계 확정>
이번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전 대원의 징계를 확정했다.
※ 징계위원회 결과 통고서
- 권일섭 소방경 (해임)
- 이성하 소방교 (해임)
- 김필주 소방위 (정직 2개월)
- 허석훈 소방장 (정직 2개월)
- 도성민 소방교 (정직 1개월)
각각의 차이는 있지만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전 대원에게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결정했고, 그중 문제가 되는 건 권일섭과 이성하의 해임 통고였다.
“해임?”
“X발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말도 안 됩니다. 정직은 그렇다 쳐도 해임이라뇨. 대장님, 이거 서 차원에서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은평소방서의 전 직원이 결과를 받자마자 흥분해 고함을 지를 정도로, 대원들의 상식선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처분이 은평구조대에 내려진 것이다.
국민들 역시 그 결과에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
- 해임이라고? 이거 미친놈들 아냐?
아무리 센 처분이 나와 봤자 감봉이 최대라고 생각하던 참에 떨어진 어이없는 처분이라서였다.
- 욕이 흘러나오네, 징계위원회 위원들은 당시 영상 안 보고 심사함?
- 이건 아니지. 칭찬은 못 해 줄망정 징계를 준다고?
- 불법주차 차량은 누가 봐도 밀었어야 했음. 문제가 됐다는 LPG통 폭발도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안이고. 그런데 해임? 야이, X새끼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 미쳐 버리겠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했는데, 그걸 징계 주면 누가 소방관 합니까?
조금만 검색해도 당시 현장 상황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은평구조대에 내려진 징계가 부당하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한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열이 받은 국민들은 당장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겼다.
- 소방본부의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징계 처분에 분노합니다. 쓰레기 같은 소방본부.
- 지난주 말 많았던 소방관들 징계위원회 결과. 혈압 주의.
- 은평구조대 전원 징계 확정.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SNS에 이번 징계위원회에 결과를 올려 사람들의 공분을 유도했다.
- 소방본부에서 내린 징계위원회 처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당한 소방관들의 인명구조 활동에 징계가 내려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 이번 소방본부의 징계위원회 심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도 효과를 봤던 걸 떠올린 사람들은 국민권익위원회, 국회, 국민안전처 등 이번 징계위원회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관련 부처에 민원들을 신고했고, 더 행동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소방본부에 찾아가 그 앞을 지켰다.
“위험에 빠진 소방관들을 구합시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소방관들에게 징계가 웬 말이냐!”
“119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한 번만 관심 가지고 읽어 주세요!”
징계위원회가 발족된 이유부터 내려진 결과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모두 지켜봤기에, 직접 은평구조대 소방관들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거리 시위를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방본부는 당당했다.
- 소방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해진 매뉴얼과 규정에 의거해 사람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저희 소방본부에서는 이번 사고는 결과는 좋았지만 자칫했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위험한 사고라 판단했고, 그에 위험한 구조 활동을 벌인 소방관들에게 징계를 내린 것입니다. 소방관은 절대 도박과 같은 구조 활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공무원으로서 규정에 의거한 징계를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소방본부는 매뉴얼과 규정에 의거해 은평구조대에 징계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소방관이기 이전에 공무원이라는 사항을 들어 규정에 의거한 처분이었다고 당당하게 발표했고.
-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야!
-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무조건 규정만 지켜야 한다고?
- 은평구조대가 한 게 무슨 범법 행위냐? 구조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는 면책을 인정해야지!
-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라는 거임. 소방관들을 지켜 줘야 할 본부에서 그따위 소리를 하면 그 어떤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들어갑니까!
그에 많은 사람이 분개해 소방관에게는 면책 사항을 인정해야 한다며 의견을 높였지만, 소방본부는 그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를 간단히 막아 버렸다.
<중앙소방본부 정책국장 최명호, 징계위원회 처분을 이유로 사임>
<최명호, 소방관에게 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론의 분위기를 생각해 책임지고 사직하겠다.>
<소방본부. 어떤 상황에서도 규정을 지키겠다는 국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직서 수리>
이번 징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최명호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한 것으로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사임이요? 말도 안 됩니다. 이번 징계위원회를 회부한 당사자가 그렇게 사임하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최명호의 사직 소식에 허석훈이 바로 본부로 전화해 불공정한 처사라고 항의했지만, 소방본부는 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어쩔 수 없습니다. 징계위원회 결과에 불만이 있으시면 규정대로 소청심사 넣어서 심사받으세요.
그저 규정대로 소청심사를 넣어서 재심사를 받으라며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고.
“소청심사요? 그럼 그동안 우리는 뭐 하라고요?”
심사 접수에만 한 달은 걸리는 소청심사를 넣으라는 담당자의 대답에 허석훈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관련 부처의 담당자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뚝.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 허석훈과의 통화를 바로 끊어 버린 것이다.
“이런 썅!”
파악.
그에 열 받은 허석훈이 전화기를 부수듯 내려놨지만, 더 이상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다들 퇴근하자.”
쭉 상황을 보던 권일섭이 일어나며 짐을 챙겨 들었다.
“대장님!”
“어쩔 수 없잖아. 본부 말대로 소청심사 넣고 심사기일 결정 날 때까지는 길게 휴가받은 셈 쳐야지.”
잔뜩 성난 허석훈의 고함에 씨익 웃으며 다독였고, 그에 김필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대장님 말씀처럼 일단 들어가자. 명령서 떨어졌으니 다들 퇴근하고 전화로 이야기하자고.”
이유야 어쨌든 간에 본부에서 대원들의 정직과 해임을 확정하는 명령서가 떨어진 이상, 소방관으로서 그에 대한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됩니다. 왜 선배님들이 징계를 받아야 합니까. 이건 아닙니다. 제가 본부로 찾아가서 이번 결정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 요청하겠습니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혼자 이번 징계에서 빠진 마동민이 성난 표정으로 분개했지만, 그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동민아. 그냥 있어.”
“선배!”
“너까지 징계받으면 선배들 칼 물고 본부 갈지 몰라. 모르냐?”
툭.
그런 마동민의 모습에 이성하가 피식 웃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살짝 쳤고, 그렇게 구조3팀은 정식해체됐다.
“일단 소청심사는 내가 넣을 테니까. 결과 나오기 전까지 다들 쉬자. 알았지?”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권일섭을 대신해 고개를 끄덕이는 김필주의 말처럼, 소청심사 기일이 나올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소청심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쉽게 되겠냐? 본부에서 아예 작정한 거 같은데.]
렉스의 말처럼 완전히 작정한 본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요. 소청심사는 인사혁신처에서 진행하는데. 인사혁신처까지 그러진 않을 거예요. 서장님이랑 다른 팀원들도 힘써 주신다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소청심사가 본부가 아닌 인사혁신처에서 진행되기에 좋게 생각해 보려 했지만, 정말 렉스의 말처럼 본부는 완전히 결심한 모양이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접수가 안 됐다고요?”
- 네, 이번 달에 사건이 좀 많아서 접수가 좀 밀리네요. 죄송한데 조금 더 기다리셔야 될 거 같아요.
“…….”
뒤에서 수를 썼는지, 통상 3주 정도면 심사를 접수해 기일을 통보하는 소청심사가 한 달이 지났음에도 접수가 안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망 없겠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짐작돼서였다.
‘앞으로 서로 돌아갈 순 없겠어.’
소청심사에까지 손을 쓴 본부의 행태를 보면 징계의 감경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는 듯 보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집을 나섰다.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
현실적으로 실업자가 된 상황이기에 새 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서점에 가서 자격증 참고서랑 토익 교재나 몇 개 사야겠네.’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서점에 가서 공부를 위한 참고서나 몇 개 살 마음이 들었고.
“아저씨, 광화문 가죠?”
“네,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에 서점은 무조건 큰 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순간.
- 뉴욕 시티~ 서취 어 뷰티플~
주머니에서 울리는 달콤한 핸드폰 벨소리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야. 데일 저놈은 일 안 한대? 왜 자꾸 전화해?]
‘모르죠. 큭큭.’
렉스의 말처럼 데일의 전화라서였다.
“야, 너 왜 자꾸 전화해.”
반가운 마음과 다르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음에도.
- 심심해서 전화했지. 밥 먹었냐?
전혀 상관하지 않는 어투로 밥을 먹었냐고 물어 오는 데일이었고.
“안 먹었겠냐. 한국 시간으로 곧 있으면 저녁인데.”
그에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이성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PTSD 다 나은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전화하고 난리야. 좀 그만하라고 해라. 남자끼리 안 징그럽냐?]
렉스의 푸념처럼, 이성하가 PTSD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걱정한 데일이, 못해도 이 주에 한 번은 전화를 걸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렉스와 달리 이성하는 지금 데일의 전화가 반가웠다.
- 그래? 이제 일어나서 아침 먹으려는데 생각나서 전화했지. 뭔 일 없었냐?
시크하면서도 꼬박꼬박 안부를 물어 오는 데일의 말 때문이었다.
“일은 무슨. 안 그래도 바쁜데 저주하냐?”
- 들켰냐?
“미친놈.”
- 큭큭큭큭.
그 때문에 서로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오랜만에 머리를 복잡하게 하던 징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 내가 엄청 바빠서 그래. 요즘 사고가 왜 이리 많은지 몸이 두 개면 좋겠어.
“거기도 그래?”
- 거기라니. 넌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고가 많아. 한국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곳이 바로 이 몸이 계신 곳이거든.
“개소리하기는.”
- 야, 개소리가 아니고. 진짜야!
같이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를 빠져나온 경험 때문인지, 누구보다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네팔에서 친구의 인연을 맺은 데일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한참 통화를 이어 가던 이성하는 고민이 됐다.
‘이야기해야 하나.’
자신이 징계로 인해 소방관을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해야 할지를.
[아직 정확히 결정도 안 났는데, 뭘 벌써 이야기하냐? 결정되면 나중에 이야기해.]
그에 렉스가 확실히 결정되고 말해도 늦지 않는다며 일축했지만,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 말하면 이놈 성격상 절 한 대 후려칠지도 몰라요.’
괜히 나중에 말했다가는 제대로 한 소리를 할 게 틀림없는 데일의 성격 때문이었다.
사실 데일이 이렇게 전화를 자주 하는 것도 이성하가 PTSD에 걸렸을 당시, 아무 도움이 못 된 것에 자책해 거는 이유도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야, 나 앞으로 소방관 못 할지도 몰라. 몇 주 전에 징계받아서 잘렸어.”
징계를 받아 소방관에서 잘리게 됐다는 것을.
그런데 데일은 신이 나 말하는 나머지 그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 챈들러랑 어제 클럽, 어? 뭐라고?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뭐라고 했냐며 다시 물었고.
“어휴. 나 앞으로 소방.”
그에 이성하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하려는 순간.
드드드드드.
달리고 있는 도로가 무섭게 흔들렸다.
끼이이이익!
콰당탕!
그에 달리던 버스가 급정거를 하며 앞 좌석으로 넘어가 거꾸러지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이성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짙은 먼지바람이 버스 앞 창문을 뒤덮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