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59화 (159/235)

<강철 소방대 159화>

159화. 공정 VS 부조리 (4)

이번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는 소방관은 총 다섯이었다.

“권일섭 대장, 전부 출석한 거 맞습니까?”

“네, 본부에서 선처한 마동민 대원을 제외한 다섯 명 모두 출석했습니다.”

대장인 권일섭과 구조3팀의 총인원은 여섯이지만, 막내인 마동민의 경우 1차 폭발 때 정신을 잃은 상황이라는 걸 참작해 다섯만 출석하는 걸로 변경된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는 은평구조대의 표정은 나름 밝은 상태였다.

‘약속대로 민간위원의 숫자가 다섯이야.’

‘본부 측 위원이 둘이긴 하지만 다섯이 빈 표라면 괜찮겠어.’

‘대장님, 가능성 있겠어요. 본부 측에서 약속을 지켰네요.’

출석 명단에서 막내인 마동민이 제외된 것도 긍정적이지만, 정말 언론에 공표된 대로 징계위원의 자리에 두 명의 본부 측 인원 외에도 다섯 명의 민간위원이 자리한 모습에 공정하게 진행되겠다는 희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이성하 소방관. 소방차를 이용해 불법 주차된 차량들을 밀어 버렸다고요? 그것도 독단적으로 말이에요.”

징계위원회가 시작되자마자 위원장으로 참석한 정책국장 최명호가, 바로 이성하가 상부의 지시 없이 불법 주차 차량들을 밀어 버린 것을 트집 잡았다.

“권일섭 대장, 은평구조대는 위계질서가 없는 겁니까? 휘하 구조대원이 상사의 지시도 없이 단독으로 움직였을뿐더러, 권일섭 대장 본인도 당시 지휘팀장이던 박규섭 단장의 지휘권을 박탈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은평구조대가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입니까?”

그걸 시작으로 같이 위원으로 참석한 박철민이 권일섭을 질책하며 은평구조대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켰고, 그에 민간위원들 역시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제가 알기로 소방관들에게는 원칙이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매뉴얼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야 결과가 좋게 나왔지만, 자칫하다 큰 사고라도 터졌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파손된 주차 차량들에 대한 민원이 줄을 이었다고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했다고 하지만, 좀 더 유도리 있게 진행해도 됐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수의 민간위원들 참여로 나름 징계위원회가 공정하게 진행될 거라고 기대한 것과 달리, 대다수가 이번 사고 자체의 책임을 은평구조대의 탓으로 몰고 있던 것이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제출한 증거자료들과 현장대원들의 진술서를 보고 말씀해 주십쇼.”

“그렇습니다. 주차 차량들을 강제 처분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희생이 일어났을지 모릅니다.”

“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언제 건물이 무너질지 몰랐어요.”

그 때문에 대원들이 하나둘씩 준비한 자료들을 제출하며 그에 대한 소명들을 이어 갔지만, 징계위원회의 위원들은 그런 자료들을 본체만체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이어 갔다.

“소방차 파손 수리 비용만 4억이네요. 강제 처분한 차량들 소송 금액도 2억 정도 나오고요.”

“근처의 주택 주민들도 민원을 신청했다고 해요. 불법 주차 차량들이 밀리면서 주택의 벽들이 훼손됐다고요. 그것까지 생각하면 피해 금액이 어마어마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LPG통을 고의로 폭발시킨 거 아닙니까? 제가 조사해 봤는데, 현직 소방관이 고의로 LPG통을 폭발시킨 건 아직 유례가 없는 사안이더라고요. 검증되지 않은 구조 방법을 현장에서 실시하는 건 소방관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망자가 없이 무사하게 끝낸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규정과 원칙을 어긴 사안들을 강조하며 은평구조대의 책임을 물었고, 그런 징계위원회의 분위기에 박철민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니들이 아무리 용 써 봐야 소용없지.’

사전에 미리 민간위원들 몇 명을 포섭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부탁드립니다. 이번 한 번만 감싸 주신다면 정말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 이미 심정우 본부장님한테 이야기 들었어. 동문 좋다는 게 뭐야? 이럴 때 챙겨 주는 게 동문이지. 그 새끼들, 이번 건으로 완전히 작살 날 거니까 그렇게 알아. 권일섭 그 새끼는 당연히 직위 해제될 거고. 감히 소방사 출신 주제에 현장에서 간부에게 대들었다고? 용납할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상사인 본부장과 징계를 받은 박규섭의 청탁을 받은 것 때문도 있지만, 그 또한 귀족으로 여겨지는 간부 출신으로서 예전부터 툭하면 문제를 발생시키는 은평구조대에게 이를 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오늘 징계위원회의 분위기는 박철민의 마음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거 같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법 차량을 밀어 버린 게 문제가 아니에요. LPG통을 폭발물로 사용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할 소방관이 인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고요. 이건 완전히 미친 짓입니다. 사건을 일으킨 소방관의 정신 감정을 의뢰해야 할 만큼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 주차 차량들을 민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워낙 사안이 중대한 폭발물에 대한 논의까지 끼었던 탓에, 박철민에게 포섭된 민간위원들이 은평구조대를 향해 날 선 질타를 내뱉었고, 심지어 정책국장의 지인으로 완전히 본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김판수 변호사는 지난 사건들까지 거론하며 한술 더 보탰다.

“은평구조대는 반년 전에 순직한 소방관이 있었네요. 오성수 소방관.”

반년 전 사망한 오성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소방관이 사망한 이유가 이번 상황과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에 일어난 사고처럼 공명심에 무리하다 사망한 사고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순직 처리를 받았어요. 이거 본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인데 순직 처리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엔 애꿎은 세금만 나가는 거 같은데.”

그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오성수를 거론하면서 그 당시 일어났던 사고 또한 은평구조대의 공명심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이 뭘 압니까?”

“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성하 소방관.”

“당신이 뭘 아냐고 했습니다. 소방관들이 공명심에 불탄다고요? 성수 선배가 공명심에 무리하다가 죽었다고요? 아닙니다. 누구보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매번 불길 속에서 자신의 몸이 다치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사람들을 수색하던 선배가 성수 선배였단 말입니다!”

지금까지 고분고분하게 듣고만 있던 이성하가 눈시울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하, 그만해.”

그 모습에 권일섭이 매서운 눈빛으로 만류했지만,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하라뇨. 대장님. 저는 사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출석하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저희가 왜 이곳에서 질타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어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고, 길이 막혀서 그걸 뚫었어요. 뚫으면 안 됐다고요? 왜 안 됩니까? 사람이 죽어 가는데. 내 동료들이 죽어 가는데. 내가 왜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하냐고요!”

참아 왔던 현실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말씀해 보십쇼. 당신이 뭘 압니까? 공명심? 그깟 공명심 때문에 누가 불길 속으로 뛰어드냐고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음에도 원칙과 매뉴얼을 이야기하는 징계위원회의 민낯에 서러움을 토했고, 당연히 김판수 변호사는 아무 말도 못했다.

“어허, 거참.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닌데 말이야.”

울부짖듯 포효하는 이성하의 모습에서, 자신이 말실수를 한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켜보던 박철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성하의 호소에 징계위원회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하는 걸 느껴서였다.

“흠흠.”

“그렇긴 하지…….”

“사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건 인정해 줘야죠.”

방금까지 날 선 비판을 이어 가던 민간위원들이 민망한 표정으로 그에 대한 동조 의견들을 내놓고 있었고, 그에 박철민은 서둘러 주제를 전환했다.

“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시죠. 이번 사건으로 들어온 시민들 민원에 관한 건데요. 폭발이 발생한 건물의 건물주가 고소를 한 상황입니다. 아까 잠시 말씀 나누셨던 것처럼, 파손된 차량 주인들과 근처 주택가 주민들 역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온 상황이고요.”

어디까지나 그가 원하는 건 은평구조대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처벌을 받는 거지, 그들의 속사정을 듣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박철민의 속셈은 실패했다.

“잠깐만요. 저는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이번 징계위원회에 대학교수 자격으로 참석한 곽지훈 교수가 손을 들었다.

“대원들 이야기는 일단 안건들을 모두 논의하고 들으시죠.”

그에 박철민이 안건 논의부터 먼저 하자며 웃음을 지었지만.

“대원들 이야기 안 들으면서 논의할 거면,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는 겁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있는 건데.”

곽지훈은 냉정히 고개를 저으며 위원장인 최명호를 바라봤다.

“안 그렇습니까. 위원장님?”

자신은 꼭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의원으로서 정식으로 의견 제의를 한 거였고, 그에 박철민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X발. 저 새끼는 갑자기 왜 X랄이야.’

어디까지나 징계위원회의 모든 의원은 공정하게 대원들에게 질의할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곽지훈이 평상시 소방본부의 부조리를 못마땅해하는 인물이라는 것 때문도 있었다.

<명운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 곽지훈.>

자신들과 밀접한 소방행정학과의 교수로서, 간부 출신들만 소방본부의 고위직을 차지하는 현직 소방 시스템의 문제에 평소 날 선 비판을 가하기로 유명한 인물이 눈앞의 곽지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곽지훈의 발언에 박철민이 화색을 띠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성하 소방관. 사실 저는 이 소방관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소방관의 말처럼 그 당시 수많은 사람이 고립돼, 시간을 지체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아무 문제도 없었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곽지훈이 이성하를 향해 질책성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요?”

“네. 당시 권일섭 대장이 본부에 굴삭기와 지원 헬기를 요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출동 시간으로 판단했을 때 20분이면 도착할 게 분명했고, 그렇다면 기다렸어도 무방했다고 볼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이번 사고는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는 사고였으니까요. 한마디로 권일섭 대장의 지시에 따랐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는 거죠. 재산 피해도 줄었을뿐더러, 몇몇 소방관들이 더 큰 부상을 입는 경우 같은 거요. 제 말이 틀렸나요? 이성하 소방관?”

자신이 포섭한 민간위원들이 했던 것처럼 은평구조대의 무모함을 탓하는 질책성 질문에.

‘이 새끼가 웬일이야? 우리 손을 다 들어 주고.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선배님이 손을 쓴 건가.’

그 역시 자신들 쪽에 포섭된 민간위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곽지훈은 은평구조대를 질책하는 게 아니었다.

‘네 진심을 말해 봐. 방금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 진심을.’

오늘 징계위원회의 독단적인 진행에 아무런 말도 못 하던 은평구조대에게 제대로 된 발언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게 그의 진짜 목적이었고, 그런 곽지훈의 말에 이성하는 우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그럽니까? 20분이라고…….”

“20분이 아닌가요?”

“위원님, 저는 단 한 번도 그깟 통계를 믿으면서 일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잘난 숫자 계산 때문에 어릴 때 아버지를 국가에게 빼앗겼고요. 소방관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제 목숨 같은 사수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통계요…… 20분만 기다리면 헬기와 굴삭기가 올 거라고요?”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도대체 누가 보장합니까……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게 보이는데…… 뜨거운 불길이 휘감은 건물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칠 동료들이 보이는데…… 의원님, 저는요. 제가 무슨 잘못을 한지 알고 있습니다.”

“잘못한 걸 알고 있다고요?”

“네. 시민들의 재산인 자동차를 부순 행위, 시의 재산인 소방차를 함부로 한 행위. 그리고 위원님들이 방금 미친 짓이라고 이야기했던 LPG통을 고의로 폭발시킨 행위. 모두 현장 매뉴얼을 벗어난 행동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살았으니까요.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진 많은 시민을 구했고, 제 자신보다 더 소중한 동료들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제 동료들이 지금 이렇게 옆에 있으니까.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동료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목소리를 높이지도, 울분을 토해 내지도 않으며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성하였다.

다시 한번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동료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똑같이 행동하겠다 말하고 있었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대원들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새끼…….’

‘흐윽.’

‘이성하 이 자식.’

자신들을 생각하는 이성하의 마음에 울컥해, 마음이 저려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말에 곽지훈이 권일섭을 바라봤다.

“할 말 없습니까? 대장님?”

이번 사태에 대해 대장으로서 따로 밝힐 소명이 없냐고 물었고, 그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26년. 제가 소방관으로 살아온 기간입니다. 사람을 구한다는 사명감에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던 지난 삶이었고, 요구조자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아, 내가 오늘 또 한 사람을 살렸구나. 나 때문에 한 가정이 슬픔에 젖지 않게 되었구나 하고요. 하지만 그 보람이 오늘 다 덧없어졌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잃었던 동료들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모두 해서 11명입니다. 제 손으로 눈을 감겨 준 동료들도 있었고, 시신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모습에 며칠이고 눈물을 흘린 동료들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그러면서도 후배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

“목숨을 잃은 동료들이 그렇게 바라고 열망하던 꿈을 우리가 대신 이어받자. 그들을 대신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 주자. 동료들이 바쳤던 뜨거운 열정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그걸 이어받자.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을 못 할 거 같습니다. 매년 비슷한 사고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음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썩어 빠진 시스템에. 동료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매뉴얼만 언급하는 본부의 지침 때문에요.”

잠시 울컥한 권일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이성하 소방관. 제 후배였던 동기였던 이성훈 소방관의 아들입니다. 15년 전 일어났던 장안동 화재 사건에서 순직한 이성훈 소방관의 아들. 그런데 이 녀석이 그런 아버지를 존경해서 소방관이 되었답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사람들을 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존경해서요. 그런데 전 그 모습을 존경하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

“미안해서입니다. 지켜 주지 못했으니까. 어떻게든 성훈이를 지켰어야 했는데, 그걸 못해서 영결식장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으니까. 그러고서 한 말이 하늘에서는 소방관 같은 거 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편하고 안전한 직업을 하라고. 아무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던져도 칭찬은커녕 질책만 하는 소방관 따위는 하지 말라고. 그래서 슬픕니다. 내가 소방관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없다는 이 현실의 잔인함에.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사람들을 구하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이 잔혹한 현실에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위원들을 향해 굳은 얼굴로 그간의 한을 이야기했고, 그런 권일섭의 말에 방금까지 은평구조대를 비난하던 민간위원들의 얼굴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끄응…….”

지난 수십 년간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이 겪어 왔던 비애가 그대로 느껴졌던 것이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생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버림만 받았던 그들의 깊은 비애가.

그랬기에 징계위원회에는 잠시간 침묵이 돌았다.

‘하, X발…….’

‘그래. 쟤들이 무슨 문제가 있겠어. 잘못된 법률과 정책이 문제지. 제기랄.’

권일섭이 소방관이란 직업에 얼마나 깊은 회한을 가지고 있는지가 뼈저리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아직 권일섭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저 하나로 끝내 주십쇼.”

지지직.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 지겠다며 자신의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뜯었다.

“제 부하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리도록 잘못 지휘한 제 잘못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구조대의 대장으로서 지휘를 제대로 못 한 자신의 책임이라며 고개를 숙였고, 그에 모든 위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대원이나, 대장이나 서로를 생각하는 지극한 감정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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