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8화>
공정 VS 부조리 (3)
“대박!”
소리가 울려 퍼진 곳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대학교의 강의실이었다.
지루한 교수의 수업에, 노트북을 이용해 잠깐 웹서핑을 하고 있던 임현지는 강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소리를 질러 버렸다.
“너 이름이 뭐야?”
“네? 아…… 임현지입니다.”
“수업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딴짓이야? 집중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쯧. 아무튼 간에.”
그 때문에 당연히 수업을 진행 중이던 교수의 호통에 다급히 일어나 사죄를 청해야 했지만, 지금 임현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맙소사, 성하 오빠가 직접 글을 쓴 거야?’
자신이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 강철소방대의 팬 카페에, 카페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하가 직접 글을 올린 사실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뻐한 것도 잠시, 확인한 글 내용에 이가 빠드득 갈렸다.
‘이게 뭐야?’
이성하가 처음으로 작성한 글 내용이 궁지에 몰려 팬클럽 회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라서였다.
- 안녕하세요. 이성하입니다. 처음으로 가입해서 글을 쓰게 됐는데, 처음으로 쓰는 글이 여러분께 부탁을 드리는 글이라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번에 제가 속한 은평구조대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바로 두 달 전 있었던 남가좌동 현장에서 잘못된 구조 활동을 벌였다는…….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두 달 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사고가 남가좌동 사고였기에, 현재 은평구조대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를 잘 알았으니까.
그랬기에 임현지는 바로 작성된 글에 한 줄의 댓글을 남겼다.
타다다닥.
- 오빠 걱정 마요. 제가 도와줄게요.
수업 중이란 것도 망각한 채, 전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성하를 돕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뭘 그리 분노하냐고 할 수 있지만, 임현지에게 이성하는 그냥 선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쁜 놈들. 감히 우리 오빠를 건드려?’
이성하에게 목숨의 빚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콰앙! 그그그그극.
“으아아앙! 엄마.”
아직도 눈만 감으면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가 추돌해 대교 밑으로 떨어질 뻔했던 2년 전의 사고가 떠올랐고.
“잡아요!”
그때 영웅처럼 나타나 자신에게 손을 뻗은 사람이 이성하였다.
“빨리요! 얼른!!”
“……!”
언제라도 대교 밑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버스 안으로 진입해, 자신을 그 지옥 속에서 구해 준 영웅.
그 때문에 임현지는 절대로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때 오빠가 날 살려 줬으니까, 이번엔 제가 살려 드릴게요.’
단순히 멋있고 듬직해서 좋아하는 게 아닌, 생명의 빚을 진 은인에게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강철소방대 팬클럽 회원의 대부분이 그랬다.
※ 가입 사유
- 예전 경포대에서 제 목숨을 구해 준 소방관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소방관분들에 관심이 있어서 가입했어요.
- 대구지하철 사고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연기에 쓰러져 있는 저를 업고 뛰는 소방관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울컥합니다.
- 소방관 지망생입니다. 어릴 때 저를 불길 속에서 구조한 소방관님의 모습을 보고 현재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이성하는 모르겠지만, 강철소방대는 사실 소방관들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가입해 모인 모임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팬클럽 이름이 이성하 개인을 지칭하는 게 아닌 소방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오늘 하루 강철소방대의 방문자 수는 만 명을 넘어섰다.
- 더러운 탁상행정에 분노하며 글을 씁니다.
- 항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칭찬은 못 할망정 괴롭히는 정부.
- 도움은 주지 못 해도 괴롭히진 맙시다. 징계위원회가 웬 말입니까.
- 남가좌동 스포츠센터 사건. 2개월 뒤에 뜬금없는 징계?
- 이러진 말자. 현장이나 뛰어 보고 이야기하자 X새끼들아!
이성하의 글을 읽고 분노한 강철소방대 회원들이, 일제히 자신들이 활동하는 모든 커뮤니티로 그 글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철소방대 팬클럽 회원 중에서 자신은 좀 늦은 편이었다.
‘히잉…… 이미 내가 활동하는 곳은 다 누가 올려놨네.’
자신 또한 이성하의 글을 공유하려고 봤더니, 이미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발 빠른 다른 회원들이 글을 올려 둔 상황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임현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걸 생각했다.
‘챌린지! 난 챌린지 해야겠다!’
몇 년 전부터 SNS로 유행하기 시작한 챌린지 켐페인이었다.
- 안녕하세요. 가수 김지수입니다. 성민 오빠 덕분에 이렇게 뜻깊은 소방 챌린지 캠페인에 참가하게 되었…….
- 축구선수 정세현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방관분들을…….
위 워 솔져스 당시에도 이성하의 출연 때문에 한때 SNS를 통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챌린지 캠페인을 떠올렸고, 임현지는 그걸 좀 특별하게 해 보기로 했다.
“편지지 어느 쪽에 있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 근처의 문구점으로 달려가 예쁜 편지지 세트 하나를 구매했다.
- 저는 소방청에서 왜 은평구조대에 남가좌동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탁상행정…….
그렇게 구매한 편지지에 이번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소방본부에 보낼 자신의 항의서한을 꾹꾹 써 내려갔고.
“됐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편지지의 내용에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바로 건물을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어디 가세요?”
“종로구에 있는 소방본부요.”
우체국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닌, 직접 본부에 편지를 전해 주기 위해 소방본부로 향했으며, 그 과정을 빠짐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통해 녹화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대학생 임현지라고 합니다. 최근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소방청의 징계위원회 소식을 들으셨나요? 저는 영상을 보고 굉장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소방관분들에게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징계를 주려고 하는 소방청의 행사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에 대한 항의서한을 작성해 이렇게 소방본부에 투서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걸 캠페인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건방지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그룹 비스트돌의 김두준과 영화배우 이정훈 씨에게 조심스레 부탁드려봅니다. 항상 불길 속에서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분들을 지켜 주세요.
편지를 작성해 소방본부에 전달하고 같이 동참해 줄 사람들로 유명 연예인들을 언급하는 영상을 만들어 자신의 SNS에 업로드했고, 놀랍게도 그 영상에 언급된 연예인들은 흔쾌히 캠페인에 동참했다.
- 김두준입니다. 남가좌동 사고 영상 저도 봤는데, 칭찬은 못 할망정 징계를 준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 동참하겠습니다.
- 이정훈이에요. 오늘 한 팬이 고맙게도 저를 지목해 주셔서 그에 대한 대답을 위해 이렇게 편지를 작성해 소방본부에 오게 됐습니다.
이미 두 달이 지났지만, 인터넷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지켜봤던 사고가 남가좌동 화재였던 만큼, 그 당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소방관들에게 징계가 내려진다는 말에 그들 역시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시작으로 소방본부에 편지를 전달하는 캠페인은 무섭도록 번져 갔다.
- 동참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징계.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 끝나자마자 소방본부에 왔습니다. 제 지인들 편지까지 써 왔어요.
- 고맙게도 제 친구 김서연의 지목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저도 동참합니다.
- 저는 지목한 사람이 없었지만 그냥 왔습니다.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지목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이번 징계위원회에 부당함을 느낀 사람들이 앞다투어 소방본부에 편지를 전달하는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고.
“야, 박민철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네가 언론만 막으면 된다며 새끼야! 어떻게 할 거야, 이거!!”
그에 부담을 느낀 정책국장이 잔뜩 대노해 후배인 박민철을 향해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소방청, 은평구조대에 남가좌동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징계위원회 소집>
<두 달이 지나서야 열린 징계위원회. 이유는?>
<한 대학생의 편지로 시작된 편지 전달 챌린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다.>
압력을 통해 막아놨던 언론이, 뜨거워지는 여론 분위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 냈다.
- 요즘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소방본부에 매일 수백 개의 편지가 전달된다는 건데요.
- 두 달 전 발생했던 남가좌동 스포츠센터 사고에 관해 소방본부가 당시 출동 대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징계위원회를 열었습니다.
- 아직 사고 처리가 끝나지 않은 남가좌동 사고에 대해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에 방송사들도 뒤처질까 하는 마음에 그에 관련된 보도들을 쏟아 냈고, 당연히 여론의 분위기는 소방본부에 좋지 못했다.
- 1년 전, 저는 은평구조대의 이성하 소방관님께서 목숨을 구해 주신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불길이 뿜어지는 걸 대신 맞았던 분이 이성하 소방관님이죠. 그런데 이성하 소방관님이 이번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알아봤더니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그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거죠? 사람을 구한 거잖아요. 사람을 구하다 보면 소방차도 부서질 수 있는 건데 그걸로 책임을 묻는다고요? 전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소방청에서 내린다는 징계가 뭘 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 지난해 낙상 사고에서 은평구조대 덕분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지킬 수 있었어요. 긴급한 상황에서도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분들이죠. 그런 그분들이 안전을 도외시한 채 구조 활동을 펼쳤을 리가 없어요. 이번 소방청의 발표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차를 박살 내고 건물을 폭발시켰다고요? 전 다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 지난달 교통사고에서 은평구조대 소방관들께 목숨을 구함 받았던 사람입니다.
- 재작년 공장화재에서 은평구조대 소방관들에게 은혜를 입었어요.
워낙 이번 사고가 대대적으로 국민들에게 보도된 탓에, 이제까지 은평구조대에게 생명의 구함을 받았던 요구조자들이 그들의 무고함을 공정하게 밝혀달라며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심지어 이번 사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시민들도 증언에 나설 정도였다.
- 불법 차량들 안 밀어냈으면 다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들이 한 대도 못 들어갔거든요.
- 정말 지옥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1층 전체가 박살 나면서 소방관들이 얼마나 다쳤는데요.
- 마지막에 들어가는 소방관들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나같이 부상을 입은 모습에도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며 그 연기 속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방관들이 무리하게 구조 작업을 벌인 게 아닌,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 주는 제보자들이 나타난 거였고, 그 여론에 침묵을 지키던 일선 소방관들도 동참했다.
“공정하게 해 주십쇼. 은평구조대는 죄가 없습니다.”
“징계위원회를 본부 쪽 인물들로만 구성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일반인들로 구성해 주십쇼.”
“이런 식으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하면 일선 소방관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없습니다. 공정한 징계위원회를 원합니다.”
고위직 간부들의 눈치를 보던 현장직 소방관들도 그 무리에 동참하자, 단순히 시늉만 하고 넘기려 했던 징계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히 이성하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글을 올린 지 며칠도 안 돼, 신문은 물론 TV에서조차 자신들의 상황을 보도하는 모습에 황당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야, 너 인기 좋다…….”
“이거 생각한 거 이상 아닙니까?”
“그러게…… 이거 잘하다가 징계위원회 아예 취소되는 거 아냐?”
동료들 역시 어이가 없었는지 몇 번이고 기사를 찾아볼 정도였고, 며칠 후 발표된 소방본부의 입장에 이성하는 드디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소방본부. 남가좌동 화재 징계위원회에 다수 민간위원 포함 결정.>
<소방청. 이번 징계위원회는 소방공무원 2명 외 일반인 5명으로 구성해 공정한 결과를 내릴 것.>
징계위원회가 취소된 건 아니지만, 본부에서 징계위원회의 구성원에 자신들과 상관없는 민간위원들을 대거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은평구조대는 침착한 마음으로 징계위원회 출석을 기다렸다.
“성민아, 불법주차 차량들에게 전화 걸었던 발신 내역 받았어?”
“네, 방금 해당 대원 통해서 전달받았습니다.”
“오케이.”
확실한 소명을 위해 자신들이 규정을 어길 수밖에 없던 상황의 증거들을 모으며 징계위원회를 준비했고, 그렇게 며칠 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소방서를 나섰다.
“가자.”
“네.”
당당하게 자신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소방본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