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7화>
157화. 공정 VS 부조리 (2)
상황은 심각했다.
“선배님. 저 권일섭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민 선배. 저 필주입니다. 혹시 본부 분위기 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나름 친분 있는 간부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해 봤지만.
-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본부에서 작정했는지 이번 징계위원회 구성원 중 4명을 본부 인맥으로 결정했어.
-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무슨 수를 썼는지 청장님 승인 떨어진 사안이야. 미안한데 연기는 힘들 거 같다.
본부에서 단단히 준비했는지, 통화하는 이마다 절망적인 상황을 전하며 난색을 표했고.
“어쩔 수 없어. 김 기자한테 부탁해 보자.”
“김 기자요?”
“그래. 다른 기자들 소개해 달라고 하자고. 지금 기댈 수 있는 곳이 언론밖에 없잖아.”
결국 언론의 힘을 빌리는 것밖에 남은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김정호를 통해 다른 기자들을 소개받으려 했지만, 그 역시 본부가 힘을 써 둔 상태였다.
- 안 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이야기해 봤는데 다들 거부하네요.
“다른 언론사도 말입니까?”
- 네. 이번에 수작 부린 양반이 이쪽에 인맥이 좀 있나 봅니다. 완전히 꽁꽁 막아 놨어요. 위에서 당분간 수작질 부리지 말라고 했다고. 죄송합니다.
본부 역시 은평소방서가 기댈 곳이 언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미리 그 힘을 빌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압력을 넣어 둔 상태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권일섭이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어쩔 수 없지. 필주야. 오늘 일 끝나고 본부 좀 다녀오자.”
“본부 말입니까…….”
“그래. 가서 빌든, 질질 짜든 뭐라도 해 봐야지. 우리는 몰라도 애들은 살려야 되지 않겠냐?”
어떻게든 최악만은 막아야 된다는 생각에, 직접 본부로 찾아가 해결할 마음을 먹었다.
“은평소방서 권일섭 소방경입니다. 최명호 정책국장님 뵈려고 왔습니다.”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먼저 온 손님과 이야기 나누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근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복장을 갖춰 입고 본부로 찾아가 이번 징계위원회의 책임자인 정책국장에게 면담을 청했으며.
“끝났답니다. 들어오셔도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필주야 들어가자.”
잠시 후, 들어와도 좋다는 안내직원의 말에 표정을 바로 하고 정책국장실로 들어섰다.
“이거 징계위원회 때 볼 줄 알았는데 일찍 봅니다. 권 대장.”
“…….”
방 안에 정책국장 외에도 며칠 전 봤던 박철민 준감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는 잠깐 표정을 굳혔지만.
척.
“권일섭 소방경입니다.”
“김필주 소방위입니다.”
오늘 온 목적을 상기하며 이번 징계위원회의 책임자인 정책국장에게 경례했다.
“그래.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지?”
“이번 징계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라온 남가좌동 사건에 대한 소명을 위해 왔습니다.”
“소명?”
“네, 보고서로는 모든 상황이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직접 당시 상황을 설명드리려 왔습니다. 당시 불법 주차 차량을 강제로 밀어 길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상자가…….”
바로 용건을 묻는 정책국장의 말에 이번 징계위원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남가좌동 사고에 대한 문제들을 설명했으며.
“그래서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
그 설명에 피식 웃음을 짓는 정책국장의 모습에, 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책임은 있지만 그 책임은 저와 여기 있는 김필주 팀장에게만 물어 주셨으면 합니다.”
“자네들만?”
“네. 대원들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력한 죄밖에 없고, 그 책임은 당연히 그런 상황을 만든 저와 담당 팀장이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징계위원회. 저희 둘로 마무리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책임을 면하게 해 달라는 게 아닌, 이번 징계위원회에 대한 책임을 김필주와 둘이서 지겠다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책국장은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는 징계위원회를 관리하는 박철민에게도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너희 둘로만 끝내 달라고?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몰라? 너희들이 박살 낸 차량만 총 14대야. 거기다 소방차도 4대가 박살 났어. 한 대당 2억이 넘어가는 소방차가 4대. 거기다 뭐? 건물을 폭발시켜?”
이야기하다 보니 화가 났는지 박철민이 눈앞에 있는 신문을 권일섭에게 집어던졌다.
“이 미친놈들아. 아무리 급해도 절차가 있고, 규정이란 게 있어.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고 해도 소방관이 고의적으로 가스 폭발을 시도해? 너희들이 그러고도 소방관이야? 운 좋게 넘어가긴 했지만 언론에서 얼마나 떠들어 댄 줄 알아? 서울 한복판에서 소방관이 건물을 폭발시켰다는 기사가 신문 일면에 나왔단 말이야!”
사망자 없이 무사히 마무리된 사건이긴 했지만, 만약 사망자가 한 명이라도 나왔다면 상부의 몇 명은 그대로 목을 걸었을 정도로 아찔했던 사고가 이번 남가좌동에서 일어난 스포츠센터 사고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새끼들이 요즘 오냐오냐하니까. 소방사 출신 주제에 감히 현장에서 간부를 물 먹여? 그것도 규섭이를? 건방진 새끼들 같으니라고.’
사고 당시의 지휘팀장 박규섭이 그의 직속 후배였던 것도 있지만, 일반 소방사 출신이 간부에게 대들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분개한 사람이 박철민 준감이었다.
“거기다 현장에서 상사인 박규섭을 개 무시하질 않나.”
“아닙니다. 당시 현장에서 박규섭 단장은.”
“건방진 새끼가 끝까지 변명이야. 나가!”
“과장님…….”
“나가라고, 이 새끼야! 너같이 위아래도 모르는 새끼랑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 돌아가서 얌전히 징계위원회나 기다리라고!”
끝까지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권일섭의 태도에 잔뜩 성내며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고.
“국장님. 한번만 재고해 주십쇼.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에 마지막 희망을 담아 정책국장을 쳐다봤지만, 그가 내놓은 대답 또한 박철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안한데,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우리 간부 모임에서도 그렇지만, 담당구의 국회의원들도 들려서 한바탕 들들 볶고 갔어. 무슨 소방관들이 무식하게 차 때려 부수고, 건물 폭발시키고 그러냐고 말이야. 그러니까 돌아가. 이번 건은 너희 둘로 덮을 문제가 아니야. 우리 소방본부가 니들 은평구조대 때문에 온갖 욕을 다 먹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야.”
그래도 체면은 있는지 박철민처럼 막말을 하진 않지만, 그 역시 일선에서 뛰는 소방관들의 고충을 알기는커녕,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기에 안달이 나 있는 간부이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권일섭과 김필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 채 소방본부를 나왔다.
“하…….”
아무것도 얻은 게 없던 방문이었기에, 축 처진 얼굴로 소방본부를 나왔고.
이튿날 아침.
“대장님. 어제 본부 가신 거 어떻게 됐습니까?”
“간부 놈들이 뭐래요? 징계위원회 강행 한데요?”
출근해서 결과를 묻는 후배들의 모습에 미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잘 안 됐어.”
“잘 안 됐습니까?”
“그래. 너무 강경하네. 내가 너무 위에 밉보였나 보다.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대장으로서 팀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허석훈이 피식 웃었다.
“에이, 대장님이 왜 미안해하십니까? 윗대가리들이 문제지. 괜찮습니다.”
권일섭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함이었다.
“맞습니다. 저희 상관 안 합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아무리 나와 봐야 정직 아니겠습니까?”
“동민이 말이 맞습니다. 저희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쇼. 대장님.”
마동민과 도성민 역시 그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그에 권일섭 역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들.”
안 좋은 소식에 충분히 실망할 법한 상황인데도, 자신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웃음 짓는 후배들의 모습에 기꺼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이성하 저놈은 저기서 혼자 뭐하고 있는 거야.’
다른 후배들과 달리 혼자 컴퓨터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치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하아…….”
타다다닥.
뭐가 그리 근심이 많은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치는 모습이었고.
스윽.
그에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뒤로 다가간 권일섭은 보이는 화면에 인상을 찌푸렸다.
<강철소방대>
“끄응…….”
화면에 띄워진 인터넷 창 제목이 이성하의 팬클럽 이름이라서였다.
※ 공지사항
※ 가입인사
※ 이성하의 이모저모
※ 이성하와 함께라면
※ 아이언맨 응원 게시판
그 아래로 이성하의 이름이 적힌 팬 카페의 게시판 제목들이 보였고, 그에 권일섭은 주저 않고 이성하의 뒤통수에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아!”
“이 새끼가 일은 안 하고. 어디서 팬 카페질을 하고 있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지 다른 대원들과 달리 혼자서 팬클럽 사이트에 접속해 팬 관리를 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분통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이거 김정호 기자님이 시킨 거란 말이에요.”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김 기자가?”
“네! 팬 카페 회원 수가 꽤 된다고 여기에 글 올리면 도움될 수 있다고 해서 글 올리고 있었는데…….”
자신 역시 이 사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팬 카페에 가입까지 하며 글을 남기고 있었는데, 상황도 모르면서 주먹을 휘두르는 권일섭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권일섭은 당당했다.
“그럼 미리 말해야지. 말 안 하고 있으면 누가 알아?”
“…….”
“빨리 쓰고 차고로 와. 정비나 하게.”
말을 안 한 이성하의 잘못이라며 빨리 쓰고 차고로 오라며 걸음을 옮겼고, 그에 이성하는 억울했지만 서둘러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뒤를 따랐다.
“장비 함부로 만지시면 안 돼요. 제가 어제 싹 다 정리해 놨단 말이에요.”
괜히 선배들이 자신이 정리해 둔 장비들을 뒤섞어 번거롭게 할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글을 마무리하고 차고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몰랐다.
<게시판 글이 작성되었습니다>
자신이 팬 카페에 올린 글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를.
그깟 팬 카페가 얼마나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성하가 출연했던 위 워 솔져스는 예능 시청률 1위를 달성할 정도로 화제성이 컸던 예능이었다.
회원 수 – 12,831
방문 수 – 320
심지어 예능뿐만 아니라 그간 벌여 왔던 활약이 어마어마한 탓에,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팬클럽 회원 수를 자랑하는 강철소방대였고, 그에 이성하가 올린 글의 조회 수는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다.
30…… 257…… 1250…… 2403…… 8302……
단번에 하루 방문자 수를 돌파하며 거의 회원 수에 다다를 정도로 조회 수가 치솟았으며, 그렇게 글은 삽시간에 수많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 이성하 소방관 안타깝네요.
- 말도 안 되는 소방청의 행사.
- 한번만 읽어 주세요. 소방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말도 안 되는 처우에 고통 받는 소방관들을 응원합시다.
- 사람들을 구했음에도 징계를 받아야 하는 소방관들이 있습니다.
강철소방대가 은평구조대를 구조하기 위해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