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6화>
156화. 공정 VS 부조리 (1)
그 때문에 이성하를 비롯한 대원들이 서로 벙찐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준감이라고?’
‘그 소방준감이 여길 왜 와?’
큰 행사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계급이 소방준감이었다.
소방청의 귀족이라 불리는 간부 후보생들조차 특별한 공이 없으면 달기 힘든 고위 계급.
심지어 소방준감부턴, 각 지역의 소방 정책을 집행하고 본부에 상정할 수 있는 지휘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야, 진짜 비싼 몸 오셨네. 전국 통틀어 봤자 30명도 안 되는 몸 아니야.]
렉스가 바로 휘파람을 불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처럼, 전국으로 따져 봐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 고위 공무원에 속하는 계급이 소방준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이나 소방준감은 희소성이 있는 존재였다.
“준감님 오셨다며? 어디 계셔?”
언제나 능글능글한 유상명 과장이 소란을 피며 달려올 만큼 쉽게 볼 수 없는 계급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동료들과 함께 바로 정자세를 취했다.
“안전! 은평구조대장 권일섭입니다!”
대장인 권일섭 역시 바로 자세를 취하고 경례를 올릴 만큼,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상급자가 서에 찾아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나 절도 있는 그 인사를 받은 박철민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현장에서 상급자에게 항명했다지?”
“네?”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이야기 들었다고.”
권일섭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하는 말이었다.
“깜짝 놀랐어. 하급자가 상급자의 지휘권을 박탈했다는 말에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었는데 그게 진짜더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권일섭 소방경.”
언제 웃었냐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권일섭을 노려보는 모습에, 서의 분위기가 싸늘해진 건 당연했다.
“야. 지금 준감이 말하는 거 남가좌동 스포츠센터 건 이야기 아니야?”
지휘권 박탈이라는 말에, 바로 두 달 전 발생했던 남가좌동 사건이 떠올라서였다.
“맞는 거 같은데 아. 그때 권일섭 대장이 현장 지휘자 밀어내고 대신 지휘했잖아.”
“설마 지금 그거 따지러 온 거야?”
“에이, 설마? 그거 이미 끝난 일인데.”
권일섭을 노려보며 말하는 소방준감의 모습에서, 딱 그걸 문제 삼으려고 왔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상급자가 지휘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 다음 권한자가 책임을 맡아 지휘를 하는.”
그 때문에 권일섭이 표정을 굳히며 대답을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걸 그렇게 요란하게 해야 했나?”
소방준감은 그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말을 싹둑 자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
“자네 때문에 우리 소방청 이미지가 박살이 났어. 그걸 꼭 왜 사람들 앞에서 그랬냔 말이야. 모양 떨어지게.”
이유는 말하지도 않은 채, 오직 그걸 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랬냐며 권일섭을 타박하는 모습에 이성하는 어이가 없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지금 소방준감의 말은 한시가 바쁜 그 상황에서 소방청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권일섭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지휘권을 인계했어야 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그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왜 내 말이 불만인가 보지?”
한참 권일섭을 노려보며 일장연설을 펼치려던 소방준감 박철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성하를 바라봤다.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딱 봐도 불만 있는 표정이구만.”
바로 아니라며 피식 웃는 이성하의 모습에 바로 핀잔을 던졌고,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같이 온 부하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 용건만 간단히 하고 돌아가지 뭐. 정 팀장. 줘 봐.”
“네, 여기 있습니다.”
그 말에 부하 직원이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박철민에게 내밀었으며.
스윽.
박철민은 그걸 그대로 권일섭에게 건네며 비릿하게 웃었다.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야. 자네와 남가좌동 사고에 출동했던 은평구조대 전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네. 오늘 그거 전달하러 온 거야.”
권일섭과 3팀에 대한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였다.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말에 권일섭이 당황해하며 바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출석 통지서>
성명 : 권일섭
직급 : 소방경
이유 : 중앙소방본부 징계위원회 출석 진술
일시 : 2016년 8월 21일 14시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1길 42 이마빌딩 중앙소방본부
공무원 징계령 제 10조에 따라 출석 통지함.
2주일 후, 소방본부로 권일섭의 출석 참가를 요구하는 본부 명령서가 가장 앞에 있었고, 그 뒤로 다섯 장의 명령서가 더 있었다.
<김필주>
<허석훈>
<이성하>
<도성민>
<마동민>
정말 박철민의 말처럼 권일섭을 비롯해 구조3팀 전원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것이다.
그 때문에 침묵을 지키던 허석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장님. 이거 잘못 나온 거 아닙니까? 남가좌동 사건은 이미 두 달 전에 끝난 거지 않습니까?”
남가좌동 출동이라면 후속 처리까지 모두 마무리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징계위원회라뇨. 남가좌동 건이라면 박규섭 단장 징계 건으로 모두 끝난 거 아니었습니까?”
권일섭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박철민에게 물을 만큼, 이미 남가좌동 사고에 대한 징계 문제는 두 달 전 박규섭이 정직을 받는 걸로 정리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박철민이 피식 웃었다.
“누가 끝났대?”
“네?”
“박규섭 징계는 상황 증거가 완벽해서 빨리 결정 내린 거야. 자네들 징계는 그동안 의견이 갈려서 심의 상태에 있던 거고.”
박규섭의 징계만 부분적으로 먼저 결정했다는 말이었다.
“무려 두 달이나 심의 중이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 말에 권일섭이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박철민은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꽤 큰 건이지 않나? 그만큼 위에서도 심사숙고한 거네. 소방차를 이용한 기물 파손에, 고의로 LPG통을 폭발시킨 상황이니까 말이야. 결정이 늦어진 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사안이 너무 커서 심의가 늦어져 미안하다고.
잠시 어이없단 표정을 짓던 권일섭이 상황을 파악한 듯, 냉소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심사숙고해서 늦어졌다고요? 일부러 늦춘 건 아닙니까?”
“궈, 권 대장. 왜 그래.”
그 모습에 유상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 팔을 잡았지만, 권일섭은 참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시지 마십쇼. 여론이 잦아들길 기다린 거 아닙니까? 그 당시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면 그냥 넘어갈 게 뻔했으니까요.”
일부러 자신들에게 징계를 내리기 위해 심의를 늦춘 게 아니냐는 질문에, 박철민은 피식 웃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뭐라고요?”
“우리가 그간 자네들 때문에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아나? 툭하면 무모한 구조 활동으로 일을 벌이지 않나. 공무원이란 것들이 자꾸 TV에 나와서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나. 그래서 늦춘 거야.”
사실상 권일섭의 말처럼 고의로 징계의원회를 늦췄다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같은 수법에 언제까지 당해 줄 순 없잖나. 이번에도 바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면 또 언론을 이용해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넘어갈 게 뻔한데. 안 그런가?”
이번만큼은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거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에 권일섭은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사람 구하는 게 죕니까. 무모한 구조 활동이라고요? 그럼 무모하지 않게 지원해 주셨으면 될 거 아닙니까? 우리가 다치고 욕먹지 않게 앞장서서 보호해 주셨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매번 느끼지만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대원들의 처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문제없이 직장생활만 하려는 고위간부들의 행태에 끔찍한 역겨움을 느낀 것이다.
“권일섭 소방경. 지금 예의 없게 과장님께 뭐하는 겁니까!”
그 모습에 같이 따라온 직원이 하극상이라며 성난 표정으로 일갈했지만, 박철민은 그런 권일섭의 말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둬. 워낙 불같다고 소문난 양반인데, 이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근엄한 표정으로 이 정도의 항의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해 주겠다며 나서려는 직원에게 손을 들어 보였고, 그러고는 이성하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쓸데없는 짓하지 말게.”
“네?”
“자네랑 친한 기자 말이야. 김정호라고 했던가? 그동안 좀 성가셨거든.”
이성하로서는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
“알면서 왜 그래? 이번엔 안 당한다니까.”
툭툭.
“…….”
자신과 김정호의 친분은 익히 안다는 듯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두드리는 박철민의 모습에 아무 말을 못했고, 그에 만족한 박철민은 그대로 권일섭을 바라봤다.
“권대장 그럼 징계위원회 때 보자고. 용건 끝났으니 이만 가겠네.”
용건을 모두 마쳤다는 생각에서였다.
“유 과장. 서장에게는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 줘요.”
“아…… 네.”
한쪽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유상명에게 서장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서를 빠져나가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남은 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X된 거 같은데.”
“어떻게 두 달 전 일을 이러냐.”
“아, 본부 놈들 또 이러네. 진짜.”
원래대로라면 가볍게 팩스로 보낼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소방준감이 직접 들고 와서 전하는 모습에 본부가 작정하고 일을 벌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사자인 구조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대장님. 이거 괜찮겠습니까?”
“저 새끼. 김정호 기자까지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단단히 맘먹은 모양인데요.”
박철민의 경고도 경고지만, 김정호를 언급하며 비릿하게 웃는 모습이 유난히 맘에 걸려서였다.
“제가 전화 좀 해 보겠습니다.”
“어, 그래. 전화 좀 해 봐.”
“네, 바로 해 볼게요.”
그 때문에 일단 상황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이성하가 핸드폰을 들어 김정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듣게 된 내용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 그래서 컴퓨터 뺏어 갔네.
상황을 듣자마자 푸념을 하는 김정호의 말 때문이었다.
“컴퓨터를 뺏겨요?”
- 어. 작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건설업체 관련해서 기사 쓴 게 하나 있는데, 그거 소송 들어와서 당분간 기사 쓰지 말라고 자리 뺏겼거든. 그런데 네 말 들어 보니 이것 때문에 그랬네. 너희 쪽 윗대가리 중 하나가 힘 쓴 거야.
“그게 말이 돼요?”
- 그럼 법원 판결 난 것도 아니고 소송 들어온 걸로 펜대 뺏긴 건 말이 되냐?
“끄응…….”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소방본부에서 언론사에 압력을 넣어 김정호의 보도권을 막아 버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서장님. 지금 일 났습니다. 빨리 들어오셔야 될 거 같아요.”
그런 구조대의 모습에 유상명이 바로 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했지만, 서장이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
서장보다도 계급이 높은 소방준감이 직접 저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들고 왔다는 사실에.
“하…….”
절로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