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3화>
153화. 이제는 안 돼 (7)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휘이이잉.
외벽이 노출될 정도로 큰 폭발이 7층 전체를 휩쓴 상황이었다.
화르르르르!
“제길, 길이…….”
그로 인해 6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물론, 뚫린 외벽 또한 불길에 휩싸여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였고.
[비상계단 찾아! 대형 건물이니 비상계단이 따로 있을 거야!]
‘네!’
그에 렉스의 말처럼 대형 건물이라면 필수로 있을 비상계단을 떠올리고 건물 안쪽으로 이동했지만, 안타깝게도 비상계단 역시 사용이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였다.
[끄응…… 폭발할 때 막힌 거 같다…… ]
“하…….”
폭발의 충격으로 안쪽의 천장이 무너져 비상계단의 출입구가 콘크리트 더미에 막힌 상황이었던 것이다.
“와, 완강기! 완강기 있어요!”
그 때문에 마지막 수단으로 완강기를 떠올리고 다시 몸을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 힘겹게 찾은 완강기 역시 사용이 불가능했다.
‘제길, 로프를 설치할 곳이 없어…….’
이미 건물 외벽은 모두 불길로 잠식됐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르!
그런 상황에서 주변을 감싼 불길이 서서히 자신을 향해 거리를 좁혀 오는 게 보였고, 그에 화가 나 바닥을 향해 쓰고 있던 헬멧을 내던졌다.
“제기랄! 이런 개 같은 건물.”
팍!
아무리 찾아 봐도 탈출할 방법이 보이지 않음에 이성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파각.
순간 헬멧을 내던진 바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화르르르르!
불타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서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파가가각.
뭔가가 조금씩 갈라지는 소리였다.
“바, 바닥……?”
그에 무슨 소리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바닥에 선명하게 금이 간 모습이 보였고.
파악.
혹시나 싶어 바닥에 강하게 발을 구르자.
파가가각.
그 금이 더욱 진하게 커졌다.
‘폭발로 바닥이 약해졌어.’
건물이 무너지는 전조 증상은, 이미 6층에도 진행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여기라면 나갈 수 있어.’
비로소 지옥 같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보여서였다.
[부숴! 뭐든지 이용해서 바닥을 부숴!]
렉스의 고함처럼 조금만 더 하면 부서질 것 같은 바닥의 모습에.
“부서져!”
퍽!
“제발!”
퍼억!
방금 헬멧을 집어던진 것처럼 근처의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 균열이 일어난 바닥을 향해 강하게 집어던졌으니까.
하지만 이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파가각.
균열이 더 짙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굳건한 바닥의 상태 때문이었다.
“안 돼, 왜 안 무너지는 거야!”
퍼억!
그에 조금 더 큰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 바닥에 던져 봤지만.
[……철근이야.]
‘뭐라고요?’
[철근이 생각보다 단단해. 그게 바닥을 지탱하고 있어.]
렉스의 말처럼 바닥을 지탱하는 철근 탓에 더 이상의 균열은 없었고, 그에 이성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마지막 방법이라고 여겼던 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까지 무산된 상황에,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털썩.
그 절망감에 이제는 모두 끝났다며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순간, 멀리 잔해 속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LPG…….’
1층 폭발 주범이었던 LPG통이었다.
상가에서 사용될 정도로 큰 사이즈는 아닌, 휴대용 난로에나 쓰이는 소형 LPG통 두어 개가 무너진 잔해 사이로 뒹구는 모습에, 이성하의 눈이 번쩍였다.
‘저걸 폭발시켜서 바닥을 부수면…….’
크기가 작다 한들 LPG 가스통인 만큼, 그걸 이용해 균열이 일어난 바닥을 아예 박살 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렉스가 고함을 지른 건 당연했다.
[뭐? 폭발? 미쳤어? 너 지금 뭘 하겠다고?]
화재를 진압하고 시민들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소방관이 인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방금 폭발이 가스 누출로 생긴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또다시 층 전체가 폭발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안 돼! 탈출이 문제가 아니야! 잘못했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어!]
잘못했다가는 탈출하기도 전에 7층에 있는 모두가 매몰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앉아서 죽을 순 없잖아요.”
[뭐?]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죽어요. 시도라도 해 봐야죠.”
어차피 공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삐익, 삐익.
이미 가슴팍에 달려 있는 공기호흡기의 경보 장치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시끄럽게 울어 대는 상황이었다. 그에 이성하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할게요.”
[야!]
렉스의 고함에도 이 방법밖에 없다는 듯 잔해 속을 파헤쳐 LPG통 하나를 꺼냈다.
“꽉 찼네. 충분해.”
들어 보니 가득 찬 것으로 느껴지는 LPG통에 환한 미소를 지었고.
터억.
그렇게 찾은 LPG통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잠깐만 계세요. 금방 끝날 거예요.”
스윽, 스윽.
바닥을 부수기 전, 정신을 잃은 선배들을 혹시 모를 폭발의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기둥 뒤로 안전하게 옮겼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균열이 일어난 바닥위에 LPG통을 놓고 벨브를 열었다.
치이이익.
불이 가스에 닿으면 바로 터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거였고, 그와 동시에 바로 기둥 쪽으로 다급하게 몸을 날리듯 달렸다.
“어디 한번 해 보자. 이 자식아!”
작은 사이즈이긴 하지만 그 대상이 폭발력이 좋은 LPG라는 걸 생각해, 바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선배들을 숨긴 기둥 쪽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화르르르르!
바로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불씨였다.
[빨리 뛰어!]
“뛰고 있어요!”
타다다닥.
가스가 흘러나오는 속도를 계산해 바로 몸을 날렸지만.
치이이익.
흘러나오는 가스 위로.
화르르르.
작지만 뜨거운 빨간 불씨가 내려앉았고,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순식간에 주변을 뒤엎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와 함께 터져 나간 LPG통의 파편이 단번에 사방을 휩쓸었다.
파가가각!
“커허억.”
잔해를 던지자마자 몸을 움직였음에도, 폭발로 인한 LPG통의 파편이 이성하의 어깨와 다리를 파고드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만족했다.
화아아악.
폭발로 인해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훤하게 뚫린 바닥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하하하…… 쿨럭. 됐어…… 됐다고…….”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생각대로 바닥이 무너진 모습에 만족한 웃음을 흘렸고, 그에 바로 몸을 일으켜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야, 인마. 너 다리가…… ]
“괘, 괜찮아요.”
지이익. 지이익.
렉스의 걱정에도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동료들을 뚫린 바닥 근처로 이동시켰으며.
“됐어요…… 다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돼요…….”
아까 완강기에서 찾았던 로프를 동료들의 허리에 묶어, 동료들을 구멍 밑으로 한 명한 명 조심히 내리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꽈아악.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절대 로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그렇게 모든 동료들을 아래로 내리고는 본인은 상관없다는 듯이 그대로 구멍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커허억.”
안 그래도 부상이 심한 상태에서 어깨와 다리까지 엉망이 된 탓에, 스스로 로프를 잡고 내려갈 힘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여전히 몸을 움직였다.
“이제 갑시다…… 나가기만 하면 돼요…….”
거듭되는 충격에 온몸이 비명을 지름에도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김필주를 등에 업었고.
꽈아악.
허석훈과 도성민은 양손으로 단단하게 잡았다.
주르륵.
그 때문에 흘러내리는 피가 손끝을 통해 바닥을 새빨갛게 물들였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가야 돼…… 빨리 나가야 돼…….”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가야만 동료들을 살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은평구조대를 구하기 위해 권일섭이 이끄는 구조대는 단번에 건물 계단을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쏴아아아아!
들고 있는 소화기를 그대로 앞으로 뿌리며 불길을 그대로 무시하며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고, 그런 구조대원들의 얼굴은 모두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빨리 길 뚫어!”
“제길, 조금만 버텨라.”
“금방 간다! 금방 간다고!”
성공적으로 건물로 진입해 희망을 기대하나 싶었지만, 방금 일어난 폭발의 진동에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중 누구보다 흥분한 건 권일섭이었다.
“제기랄!”
안 그래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추가 폭발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툭. 툭. 투두둑.
순간 건물을 무섭게 흔들었던 폭발의 충격에 건물 곳곳에서 붕괴 조짐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에 권일섭은 누구보다 앞장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뛰어! 전력으로 뛰어 올라가!”
오성수를 잃은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또다시 동료들을 잃을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달려 6층에 도달하는 순간 권일섭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분명히 7층에 있어야 할 이성하가 6층에 있었다.
“너……. 이게 무슨…….”
그것도 면체를 벗은 채 등에는 김필주를 메고 양손으로는 허석훈과 도성민을 끄는 모습으로 서 있는 이성하가.
“하하하…… 오셨네요…….”
그런 이성하가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믿었습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대장님…….”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를 정도로 피 칠갑을 한 상태로 처연하게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을 끝으로 이성하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콰당탕!
“서, 성하야!!”
자신들을 구해 낼 동료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에 달려온 구조대원들이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제길, 구급대!”
“들것 가져와! 응급 환자야!”
피를 흘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쁘게 숨을 내쉬는 이성하의 모습에 다들 다급한 표정으로 상태를 살폈고.
“괜찮습니다! 잠깐 실신한 겁니다!”
“실신? 다른 곳은요?”
“병원으로 옮겨야 알겠지만, 호흡은 정상입니다. 다른 소방관분들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만 하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잠시 후 달려온 구급대원이 상태를 살피고 괜찮다는 진단을 듣고 나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다행이네.”
“그러게요. 최악은 아닌 거 같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시죠.”
“여기는 마포서. 고립된 대원들 모두 구조했습니다. 이제 내려가겠습니다.”
이성하는 물론이고, 다른 소방관들 또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사실에, 비로소 모든 게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일섭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6층의 천장이 뻥 뚫린 모습 때문이었다.
그 밑으로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LPG통의 잔해가 터져 나간 채 보이는 것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성하야…….’
쓰러진 이성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