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2화>
152화. 이제는 안 돼 (6)
상황은 심각했다.
와장창창!
순식간에 터져 나온 폭염에 건물 상층부의 유리가 모두 터져 나갔다.
“뭐 하고 있어요! 제정신이에요!”
그 모습에 곁에 있던 마포서의 진압대장이 권일섭을 밀쳐 내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고, 그런 모습은 주변의 다른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바바바박!
“젠장! 모두 물러나!”
“다들 대피해!”
“조심해!”
폭발로 인해 건물의 잔해들이 자신들을 향해 무섭게 떨어져 내리는 모습에, 모두가 기겁하며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드러난 처참한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콰르르르르.
방금까지 자신들이 서 있던 자리가 떨어진 건물의 잔해들로 완전히 엉망이 돼 있었다.
파지직. 콰콰쾅!
심지어 그들이 있던 자리뿐 아니라, 근처에 가깝게 주차돼 있던 소방차들도 반파되다시피 망가진 모습에.
“맙소사…….”
“이, 이게 무슨…….”
다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이게 무슨, 건물주 어디 있어…….”
몸을 일으키면서 악에 받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권일섭 때문이었다.
“대, 대장님. 몸부터 챙기십쇼.”
“비켜, 안 잡아도 돼.”
“대장님!”
“건물주 어디 있냐고! 일단 폭발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야 할 거 아냐!”
방금의 폭발로 가슴을 다쳤는지, 한 손으로 가슴을 감싸면서도 사고 초기부터 현장에서 대기하던 건물주를 찾는 모습이었고, 격정적인 그 모습에 모두의 마음이 먹먹하게 잠겨 갔다.
“살아 있을까…….”
“늦었어…… 저 정도 폭발이면 휘말렸을 거야…….”
“X발…… 정말 개 같네. 썅!”
그들 또한 현장에서 무전을 같이 듣던 상황이었기에, 방금 폭발로 터져 나간 7층에 권일섭의 동료인 은평구조대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건물주가 나타났다.
“저를 왜 찾으시는지…….”
그 또한 권일섭의 고함을 들었는지 겁을 먹으며 나타난 모습이었다.
“당신이야?”
“왜, 왜 그러세요?”
잔뜩 성이 난 권일섭의 모습에 건물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그 모습은 권일섭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당신 알고 있었죠?”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폭발. 가스 폭발이잖아. 내가 모를 줄 압니까? 지금 가스가 유출돼서 폭발한 거 아닙니까!”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로서는 영문을 모를 모습이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
“방금 게 가스가 폭발해서 발생한 거야?”
“그런데 그걸 왜 건물주에게 말하는 거지?”
방금의 폭발이 가스로 인한 발생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건물주에게 탓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권일섭의 고함에 건물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모, 몰라요. 나는 모릅니다.”
누가 봐도 찔리는 게 있는 듯한 표정으로 바로 모른다고 말하며 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터억!
그대로 팔을 잡는 권일섭의 행동에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해! 알고 있었잖아! 지금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조치를 취할 거 아냐!”
“으으으…….”
분노에 찬 표정으로 윽박지르는 권일섭의 고함에, 질린 표정을 지은 건물주가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어, 어쩔 수 없었어요. 알았으면 당신들 안 들어갔을 거잖아요…….”
방금 폭발의 이유가 가스 때문임을 시인하는 말이었다.
“뭐? 안 들어갔을 거라고?”
“그, 그래요. 가스 차단기가 작동 안 한 건 내 잘못이에요. 사우나 시설 때문에 일부러 화재 경보기 온도 설정을 바꿔놓은 건 맞으니까. 하지만 알았다면 당신들 안 들어갔을 거잖아요. 안에 와이프랑 내 아들이 있었다고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면 당신들이 안 구해 줬을 거 아니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작심한 듯 당당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권일섭의 눈이 뒤집히는 건 당연했다.
“이 X새끼야!”
“야! 대장님 말려!”
“이거 놔! 저 미친 새끼! 네 가족만 중요하고 우리 식구는 뭐 기계야? 이딴 이기적인 새끼 때문에 우리 식구가 위험해졌잖아.”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들의 위험을 방치했다는 말에 이성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건물주로서는 당연히 억울했다.
“내,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폭발이 일어날 걸 알고 거길 누가 들어가? 내가 말했으면 당신들, 사우나가 있는 상층까지는 아무도 안 갔을 거야. 다들 5층까지만 수색하고 포기했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다면 분명 안 들어갔을 거였다.
다행히 자신의 가족이 5층에 있어서 구조됐기 망정이지, 아무리 소방관이라도 1층의 그 엄청난 폭발을 본 상황에서 찜질방이 있는 6층과 7층까지 갈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 말에 권일섭을 말리던 소방관 한 명이 뒤돌며 입을 열었다.
“갔을 겁니다.”
“뭐, 뭐라고요?”
“폭발이 일어나든, 그곳이 무너지든 당신이 어떤 말을 했더라도 우리는 갔을 겁니다. 당신은 우리를 몰라요. 요구조자가 있다면. 특히 동료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곳이라도 갑니다. 그곳에서 제가 죽을 수 있어도요.”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며 어떤 상황이라도 자신들은 건물 안에 진입했을 거라 말했고, 그에 건물주는 더 이상 아무 말을 못했다.
“거, 거짓말…….”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스스로의 긍지를 토해 내는 모습에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그 긍지가 정말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소방관들은 보여 줬다.
“대장. 언제까지 그럴 겁니까? 안 들어갈 겁니까?”
아직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권일섭에게 한 소방관이 고함을 질렀다.
“살아 있을 겁니다. 쉽게 갈 친구들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며 훈련하는 게 우리입니다.”
“괜찮을 겁니다. 그 정도 폭발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준비하셔야 됩니다. 빨리 지시 내려 주십쇼.”
다른 소방관들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권일섭을 바라보며 지시를 내려 달라 요구했고, 그에 권일섭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번 들어간다. 이번엔 내가 직접 들어간다.”
한쪽에 내팽개쳐진 헬멧을 머리에 쓰며 불타오르는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으며, 그 뒤를 모든 소방관들이 뒤따랐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요. 아직 공기 여분 있습니다!”
“좋아. 불길 잡아!”
“주수 해! 진입로부터 뚫는다!”
“악!”
생존자를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인데도, 모두 동료들을 구하러 가겠다며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 * *
한편, 폭발이 일어난 7층의 상황은 마치 지옥에 가까웠다.
투두둑. 투두둑.
폭발의 충격으로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들이 이리저리 떨어져 내렸고.
화르르르르!
건물 내부는 완전히 화염에 휩싸여, 안에 있는 모든 걸 불태우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 한 곳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있었다.
툭, 툭. 투둑.
폭발의 여파로 쌓여 있는 건물의 잔해 위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질 때마다.
“끄으으…….”
그 잔해 속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드드득.
잠시 후 그 잔해 속에서 이성하가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괜찮냐?]
“괘, 괜찮아요.”
피를 흘리는 모습이긴 했지만, 스스로 몸을 일으킬 정도로 괜찮은 몸 상태였다.
하지만 이성하는 알고 있었다.
“선배…….”
폭발을 피한 게 아니었다.
“제길! 이성하!”
콰콰콰쾅!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자신을 밀치며 감싸는 따스한 손길을 기억했고, 그 때문에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건물의 잔해를 파헤쳤다.
“부장님! 허 부장님!”
자신을 대신해 폭발의 충격을 받아 낸 선배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그 흔적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그 고함에 허석훈이 응답했다.
“끄으…… 여기야…….”
다소 힘이 빠진 듯했지만 확실한 허석훈의 목소리였다.
“서, 선배!”
“그래, 여기 있다…….”
그 목소리에 이성하가 서둘러 소리를 들린 방향을 파헤쳤고, 이내 본 허석훈의 모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다리 한쪽이 잔해에 짓눌린 채 피범벅이 돼 있었다.
“아파, 이 새끼야. 빨리 꺼내 줘. 하하하하…… 콜록.”
폭발의 충격에 내부 장기 역시 부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허석훈의 몸을 덮은 잔해들을 파헤쳤다.
“왜, 그랬어요! 왜!”
딱 봐도 위중해 보이는 선배의 상태에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도 허석훈은 웃고 있었다.
“……너 괜찮냐?”
“괜찮아요. 그러니까 말하지 마요…….”
“새끼야, 네가 제대로 못 피하니까 내가 대신 막은 거 아냐. 하하하…… 폭발의 전조 증상 똑바로 기억 안 할래? 콜록.”
그래도 이성하만은 살렸다는 생각에서였다.
‘성수야. 보고 있냐. 막내는 내가 살렸다. 하하하.’
자신의 부사수였던 오성수는 구해 내진 못했지만, 막내인 이성하만은 살렸다는 생각에 후회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 멀리 쓰러져 있는 김필주와 도성민을 바라봤다.
“끄으으으…….”
“허억, 허억.”
숨은 쉬고 있는 듯 보였지만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입어 가망이 없는 모습이었고, 그에 허석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무리겠네…….’
이미 두 번이나 폭발의 충격을 받아 낸 건물이었다.
화르르르르르!
그런 상태에서 건물 내부를 뜨거운 불길이 지독하게 달구고 있었고, 그걸 감안하면 곧 건물이 무너질 건 분명했다.
툭. 툭. 투두둑.
‘길어야 10분인가…….’
한 부위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게 아닌, 천장 전체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건 층 전체가 통째로 붕괴되는 전조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허석훈은 결심했다.
“성하야…….”
“네, 부장님…….”
“너 먼저 나가야겠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콜록콜록. 이 새끼야, 딱 보면 몰라? 건물 언제 무너질지 몰라…… 빨리 먼저 나가. 너라도 살아야지…….”
자신들을 버리고 이성하 혼자라도 살아남으라고.
이성하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였다.
“미친 소리 하지 마십쇼! 내가 이곳에 왜 왔는데! 살아 있는 걸 확인한 이상 포기 못합니다. 아니, 안 합니다. 안 해요!”
혼자 살기 위해 동료를 버리고 간다는 생각 따위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 지옥을 나보고 다시 겪으라고?’
오성수를 잃었을 때의 그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이었다.
“뭐라고 말씀하셔도 안 갑니다! 무조건 같이 나갈 거라고요!”
지금까지 수십 번의 사선을 같이 넘어왔던 동료들을 버리고 갈 거였다면, 애초부터 소방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말에 허석훈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출혈이 심해. 의식 잃었어.]
렉스의 말처럼 출혈이 심해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허석훈을 안전한 곳에 누이고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잠깐만 계세요.”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 데리고 나갈 겁니다.”
허석훈은 물론이고, 다른 동료들 또한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