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51화>
151화. 이제는 안 돼 (5)
그런데 그때.
- 이성하!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가슴에 매달려 있는 무전기에서 권일섭의 불 같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 당장 멈춰!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거 안 돼! 당장 차에서 내려!
당장 행동을 멈추고 차에서 내리라는 권일섭의 고함이 귓가를 울렸고, 그에 이성하는 사이드미러를 흘깃 쳐다봤다.
‘전달이 빠르네…….’
어떻게 권일섭이 지금의 상황을 알았는지 짐작이 돼서였다.
쾅! 쾅! 쾅!
“이성하, 그만두고 차에서 내려! 빨리 내려!”
창 너머로 방금까지 자신을 말리던 진압대원 선배가 무전기를 잡은 채 내리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볍게 여길 상황은 아니었다.
- 이성하!
무전기를 통해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 자신의 상사인 권일섭이기 때문이었다.
[목소리 보니까 장난 아닌데 계속할 거냐?]
렉스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뱉을 만큼 잔뜩 성이 난 목소리였고, 실제로 권일섭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 너 그거 가솔린 차량인 거 몰라? 여기까지 거리만 해도 200미터야. 강제로 차 밀다가 또 다른 화재 위험이 있어! 이렇게 좁은 곳에서 그랬다가 또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소방차를 이용해 불법 차량을 밀어 버린다?
말이야 좋지만 소방관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성하가 떠올렸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억 단위의 소방 차량에 대한 훼손 책임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화재나 폭발 같은 2차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전에서 들려오는 이성하의 대답에 권일섭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 기다리면 늦잖아요……
“뭐?”
- 아버지도 그렇게 갔습니다.
“…….”
- 그때처럼……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처럼…… 몇 시간이고 들어올 수도 없는 중장비 차량을 기다리면서 바보같이 시간만 날릴 생각은 없어요.
이성하가 하는 말은, 권일섭이 항상 가슴에 묻어 두고 있던, 과거의 후회였다.
“너……”
알고는 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에 권일섭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고, 그렇게 조용해진 무전기를 보며 이성하는 핸들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다시는 잃지 않아.”
권일섭에게 말한 것처럼 또다시 후회를 반복할 수는 없기에.
부아아아앙!
스포츠센터까지 길게 늘어선 불법 차량들을 밀어 버리기 위해 맹렬한 돌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권일섭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쾅! 드드드드득!
길을 막고 있는 차량을 불도저처럼 박살내며 질주하는 이성하의 모습을.
그러나 이내 당황하며 골목길을 내달렸다.
피시시식!
“이, 이성하!”
워낙 불법 주차 차량이 많았던 탓에, 밀고 오던 공작차가 중간에 멈춰 서 연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발걸음은 이내 멈춰졌다.
부르르릉!
멈춰 섰던 공작차가 다시 거친 엔진음을 토해 내서였다.
끼이이익. 쾅! 드드드드득!
언제 멈춰 섰냐고 말하듯 공작차가 뒤로 후진했다가 다시 돌진해 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공작차가 다시 골목길을 올라오는 모습에 권일섭은 기어코 눈시울을 붉혔다.
“성하야…….”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성하의 모습 때문이었다.
“비켜!”
빵! 빵!
“앞에 비켜!”
운전대를 잡은 채 피범벅이 된 채로 소리를 지르는 이성하의 처절한 모습에, 절대로 동료들을 잃지 않겠다는 한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어 번을 반복하고 겨우 현장에 도착한 공작차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피시시식!
엔진에 무리가 갔는지 자욱한 검정색 연기를 뿜어내는 것은 물론.
“서, 성하야. 괜찮냐? 젠장. 이거 문이 왜 안 열려!”
쾅! 쾅!
충돌의 흔적에 차체 자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문도 안 열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덕분에 길이 열렸다는 거였다.
“대장님. 길이 열렸습니다…….”
망가져 버린 공작차 뒤로 펌프차를 비롯해 굴절 사다리차가 진입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에 현장에 있떤 소방관들이 고함을 지른 건 당연했다.
“퍼, 펌프차다!”
“사다리차도 왔어!”
“3층 쪽 불길 잡아! 이쪽으로 진입로 만든다!”
“됐어! 이제 구할 수 있다고!”
안에 있는 동료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단 사실에,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권일섭이 바라보는 건 이성하였다.
“이제 구하러 가겠습니다…….”
차에서 겨우 내리고서 하는 말이 구조에 참여하겠다는 말이었다.
“이 멍청한 놈아. 내가 네 몸부터 챙기랬지!”
“괜찮습니다…… 아시잖아요, 이 정도는 따끔한 거. 그 대신 다녀와서 휴가 좀 주십쇼.”
“뭐?”
“사실 조금 많이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다녀오면 휴가 좀 주십쇼. 동료들 구해 온 거 핑계 삼아서 좀 쉬게요. 하하…….”
방금의 행동으로 부상이 더 커졌을지 모르는데도 구조 작업에 참여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에, 권일섭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바보 같은 놈.’
한때 자신을 향해 건방지게 말하던 후배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대장님, 들어가시죠.”
“뭐?”
“들어가자고요. 사람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가슴에 묻은 지 너무 오래됐음에도, 자신을 향해 사람을 구해야 한다며 환하게 웃던 바보 같은 후배가.
그랬기에 권일섭은 욕을 내뱉었다.
“오냐. 며칠이고 주마. 며칠이고 준다. 이 개자식아!”
말린다고 들을 놈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이성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료의 위기 앞에선 몸을 사릴 놈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바로 무전기를 들어 고함을 질렀다.
“올라오는 펌프차, 공작차 모두 이용해서 주변 차량 전부 밀어 버려!”
- 정말 밀어도 됩니까?
“방금 뭘 봤어? 후배 녀석도 하는데, 선배가 돼서 밀리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될 것은 다 치워 버리고 시작한다. 바로 시작해!”
이성하가 보여 준 모습처럼 최선의 구조 작업을 위해 모든 방해 차량을 밀어 버리고 올라오라며 단호히 명령을 내렸고, 그에 모든 소방관들의 눈에 불꽃이 어렸다.
- 알겠습니다!
- 싹 밀어 버립니다.
- 감사합니다. 대장님.
명령을 내리는 권일섭이나 그에 대답하는 소방관들이나,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며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하지만 그 명령에 유일하게 고함을 지르며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
“뭐, 뭐라고? 권 대장, 당신 미쳤어?”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사달에 겁을 먹고 한쪽에서 구경만 하던 박규섭이었다.
찌릿.
“끄응…….”
순간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권일섭의 싸늘한 눈빛에 겁을 먹나 싶었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소방차를 사용해서 주차 차량들을 미는 건 안 됩니다. 그렇게 사용했다가는 싹 다 징계예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일선 책임자들 전부 모가지라고요!”
기본이 억 단위에 해당하는 비싼 소방차량들을 굴삭기처럼 사용했다가는, 본부에서 어떤 징계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모가지요? 이 목이 얼마짜린지는 모르지만 동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걸겠습니다.”
그 어떤 것도 동료들의 목숨보다 소중할 순 없었다.
“저도 걸겠습니다.”
“징계 따위가 무서웠으면 애초부터 현장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모가지. 저도 겁니다.”
다른 간부들 역시 그 말에 동참하며 이런 상황에서도 징계 걱정이나 하는 박규섭을 노려봤고, 그에 더 이상 구조 작업에 난항은 없었다.
“밀어 버려!”
“뭐 하고 있어! 더 과감하게 벽 쪽으로 붙여 대.”
쾅! 쾅! 드드드드득!
안 그래도 이성하의 처절한 독기에 불타오르던 참이었다.
“전부 밀어!”
“쪽팔리게, 후배한테 밀릴 거냐? 빨리 길 만들어!”
그 몸으로 공작차를 운전해 차를 밀어 버린 것도 소름이 돋을 판국에, 구조대로 건물 안에 진입까지 하겠다는 처절한 독기에 다들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모든 소방차량이 건물 앞에 집결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잔해 들어 내!”
“3층으로 진입로 만들어!”
“아래 유리 떨어지니까 조심해! 깨부순다!
명령도 내려졌겠다 더 이상 방해할 게 없어진 소방관들이 더욱 저돌적으로 소방차량을 사용해 잔해들을 파헤치고 진입로를 뚫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른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저, 저기 봐. 사람이다!”
“소방관이야!”
“차, 창식이다! 창식이 여기 있어요!”
잔해들이 파헤쳐지며 건물에 매몰된 소방관들이 하나둘씩 구조됐다.
“구조대, 진입해!”
“알겠습니다!”
성공적으로 확보된 진입로에, 추가로 조직된 구조대 역시 고립된 동료들과 요구조자 구조를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작했고, 그렇게 잠시 후 차츰차츰 전해지는 소식에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 서대문 구조대 찾았습니다! 부상자는 있지만 다들 괜찮습니다.
- 4층에서 요구조자 발견. 부상자 다수 있어서 바로 들것으로 이송하겠습니다.
- 5층에서 마포 구조대 만났습니다. 요구조자 다섯과 같이 있는데 심한 부상자는 없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요구조자는 물론, 먼저 진입한 구조대원들까지 큰 부상은 없다는 무전이 속속들이 이어짐에.
“좋았어!”
“구급대! 바로 들것 준비해!”
“선배, 다들 괜찮답니다. 지금 나온데요!”
다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제길, 어떻게 되는 거야.’
현장에서 애타게 은평구조대의 소식을 기다리는 권일섭이었다.
“이성하, 어떻게 되고 있어? 필주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거야?”
다른 구조대는 모두 구조해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은평구조대의 소식만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성하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흘러나왔다.
- 대장님, 성하입니다. 7층에서 허 부장님 만났습니다.
“석훈이? 석훈이 상태는 어때? 나머지는?”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에 다급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았고, 그렇게 들을 수 있는 소식에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대장님, 석훈입니다. 팀장님이랑 성민이가 좀 다치긴 했는데, 큰 부상은 아닙니다.
“하, 무사했으면 연락해야지. 사람 간 떨어지게 뭐하는 거야!”
- 아니, 무전기가 박살 났는데 어떻게 연락합니까?
“아, 몰라. 아무튼 넌 내려오면 죽여 버릴 거야. 빨리 내려 와. 다른 거 할 생각 말고, 일단 복귀부터 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니라는 다행인 소식에 평소의 목소리로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마동민을 불렀다.
“동민아, 저쪽 의용소방대에 가서 사발면 몇 개만 좀 부탁해라.”
“사발면이요?”
“그래, 인마. 안 그래도 힘들었을 텐데, 애들 내려오면 우선 뜨끈한 국물부터 먹이자.”
이제 막 구조돼서 빠져나올 후배들이나, 그런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부상을 입은 몸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진입한 이성하에게 수고했다며 따뜻한 국물을 먹이고 싶었으니까.
“휴…… 드디어 끝났네.”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구조대와 요구조자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 밑에 다 대피해!
무전을 통해서 이성하의 날카로운 고함이 울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무전에 권일섭이 다급히 무전기를 들며 건물의 상층부를 바라봤고.
콰콰콰쾅!
그와 동시에 후배들이 있는 건물 7층이 폭발로 터져나갔다.
“안 돼!”
방금 전 1층이 터져 나갔던 것과 비슷한 폭발이 은평구조대가 있는 7층에서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