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9화>
149화. 이제는 안 돼 (3)
이성하는 급하게 근처에 있는 다른 상가들을 확인해 봤다.
‘제발!’
터억!
LPG 가스를 이용하는 상가의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라이트로 건물 내부를 다시 꼼꼼하게 비추고 난 뒤, 확인한 결과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야…….’
지금껏 몰랐단 게 이상할 정도로 상가 대부분이 LPG 가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부 중심이다! 가스통이 중심 쪽에 있어.]
심지어 렉스의 말처럼 그에 연결된 배관이 건물 내부로 향하는 상황이었고, 그에 얼굴이 사색이 된 이성하는 바로 무전기를 들어 고함을 질렀다.
“대장님! LPG입니다.”
- 갑자기 무슨 말이야?
“LPG라고요. 이 건물 1층 상가들. 도시가스가 아니라 LPG 사용하고 있어요. 빨리 안에 들어간 구조대를 모두 대피시켜야 됩니다. 언제 폭발할지 몰라요!”
지금 건물을 태우고 있는 불길이 가스통을 달구고 있을 상황이 자연히 떠오름에, 바로 대장인 권일섭에게 무전을 보내 상황을 알린 것이다.
하지만 권일섭으로서는 영문을 모를 보고였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LPG가 여기서 왜 나와?”
LPG 가스를 사용하는 건물이라면 애초부터 진입 허가가 안 났을 테니까.
- 지금 확인했습니다! 이 건물 상가들 LPG 사용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고함을 지르며 다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성하의 무전에.
“단장님 어디 계십니까?”
“저쪽 통제단 버스 쪽에 계십니다.”
“아, 고마워요.”
바로 서대문 현장대응단장인 박규섭의 위치를 물어 걸음을 옮겼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 단장……
다급한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성하의 음성이 무전을 통해 울리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몸이 날아가는 걸 느꼈다.
콰콰콰쾅!
“끄아아!”
강렬한 폭음과 함께 건물 1층이 통째로 터져 나간 것이다.
상황은 심각했다.
삐익! 삐익! 삐익!
터져 나간 1층 외벽 파편에 부딪힌 차들이 일제히 경보음을 발생했으며.
“크허허억.”
“으윽.”
“이, 이게 무슨…….”
그 주변으로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고통 어린 신음을 토하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창진아!”
“임 부장님! 임 부장님!”
“이런 X발!”
LPG 가스통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1층 전체가 터져 나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그 아수라장을 보며, 뒤쪽에서 지시를 내리느라 무사했던 박규섭이 멍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마, 말도 안 돼…….”
생각지도 못한 대폭발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다, 단장님. 정신 차리십쇼.”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뭐가 터진 거야?”
“일단 일어나십쇼! 물러나야 됩니다!”
“아…….”
휘하 대원들이 어떻게든 부축해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도,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멍하니 현장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박규섭의 모습에 누구보다 분노하는 이가 있었다.
“끄으으으.”
폭발에 반동에 몸이 날아가 바닥으로 나뒹군 권일섭이었다.
“이 X새끼…….”
그 역시 반동에 휘말린 덕분에 부상을 입어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박규섭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고.
“대, 대장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장님.”
그 성난 모습에 몇몇 대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권일섭은 작정한 상태였다.
“비켜.”
“대, 대장님.”
“비켜, 새끼들아!”
콰악.
단번에 앞을 막아선 대원들을 뿌리치며 박규섭의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 나는 그게…….”
“왜 1층 상가들이 LPG를 사용하는 걸 놓쳤냐고요!”
그렇게 잡은 멱살을 당겨 박규섭을 일으켜 세우고는 고함을 질렀고, 그런 권일섭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박규섭을 죽일 듯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으으으…….”
“빨리 말해! 말하란 말이야!”
현장을 지휘해야 할 책임자가 기본적인 시설 체크조차 안 했단 사실에 엄청난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시고 말씀하시죠, 대장님.”
그 모습에 서대문 지휘 팀의 대원들이 어떻게든 권일섭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 팔을 잡고 하소연했지만, 권일섭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놔, 새끼들아.”
건물 안에 자신의 대원들이 있었다.
‘필주, 석훈이, 성민이.’
눈앞의 멍청한 놈 때문에 건물에 진입한 대원들의 모습이 떠오름에.
“대장님…….”
“놓으란 말이야!”
그 결과를 만든 박규섭을 찢어놔야만 그 화가 조금이나마 해소될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권일섭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대장님…… 안에 연락이 안 돼요…….”
팔을 다쳤는지 피가 흐르는 한쪽 팔을 부여잡은 채 울부짖는 이성하의 목소리였다.
“팀장님이랑 부장님, 전부 연락 안 받습니다…… 빨리 어떻게든 해 주십쇼…….”
어떻게든 빨리 동료들의 생존을 확인해 달라며 구슬픈 눈물을 흘리는 이성하가 눈앞에 서 있었고, 그에 권일섭이 드디어 잡고 있는 박규섭의 멱살을 풀었다.
짜악!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두 손으로 강하게 얼굴을 두드렸으며, 그렇게 이성을 되찾고 박규섭을 바라봤다.
“설계도면 어디 있습니까?”
“뭐, 뭐요……?”
“설계도면 어디 있냐고, 이 새끼야! 안에 들어간 내 동료들! 동료들 구해야 될 거 아니야!”
이미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박규섭에게 화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건 건물로 진입한 동료들의 생사였다.
“선배님, 민규입니다. 안에 괜찮습니까? 응답하십쇼, 선배님!”
“이영민, 강 부장이다. 응답해, 안에 어떻게 된 거야?”
“다들 응답해! 다들 괜찮은 거 맞아?”
자신들뿐만 아니라 애타게 무전기를 잡고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는 다른 소방서의 소방관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했고, 그에 무전기를 들었다.
“으으…….”
“은평구조대의 권일섭이라고 합니다. 현 시점부터 현장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아직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박규섭을 대신해 현장을 지휘하기 위함이었다.
“서대문서에서 단장 다음으로 책임자 누굽니까?”
- 서대문서의 송현우 팀장입니다. 현재 진압대장님이 부상당해서 그다음으로 현재 제가 선임입니다.
“마포서는?”
- 김지우라고 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종로서.”
- 고민우 팀장입니다. 구조대는 없고 경방 팀만 왔습니다. 선배님.
건물 안에 고립된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지휘 팀을 다시 조직해 현장에 모여 있는 대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다.
“끄으으…….”
“정훈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
“아파요…… 너무 아파…… 으으윽.”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방금 폭발로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의 반수 이상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스포츠 센터의 1층 전체가 매몰됐단 사실이었다.
“제, 제기랄…….”
“굴삭기 불러! 흐윽. 저 안에 학진이가 있단 말이야! 꺼내 줘야 한다고!”
몇몇 소방관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매몰된 건물의 입구를 파헤치는 것처럼, 건물이 매몰돼 내부로 진입할 방법이 완전히 꽁꽁 막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권일섭은 침착했다.
“부상자부터 모두 뒤로 옮긴다! 진입은 그다음이야!”
현장의 정리를 위해 일단 혼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부상자들부터 안전한 뒤로 옮겼다.
“여기는 은평서. 현재 남가좌동 현장이 가스 폭발로 건물이 매몰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인근 소방서의 전 소방인력과 가용 가능한 굴삭기 전부 수배해서 지원 바랍니다.”
이제는 화재가 아닌 매몰된 건물의 수색을 위해 필요한 추가 인력과 장비들을 CP에 요청했고, 그 지시에 갑작스런 폭발로 당황해하던 소방관들의 눈빛이 변했다.
‘좋아, 할 수 있어.’
‘살릴 수 있어. 지원 인력만 오면 구조가 가능해!’
‘동민아, 구해 줄게. 조금만 기다려.’
단번에 지휘를 맡아 상황을 정리하는 권일섭의 모습에서, 매몰된 동료들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아올랐으니까.
하지만 아직 희망을 가지기엔 일렀다.
“궈, 권 대장님. 여기 도면.”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박규섭이 내민 건 어처구니없게도 건물의 내부구조도가 그려진 설계도면이 아니었다.
“이게 설계도면이라고요?”
“내,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그의 손에 들린 간단한 평면도와 건물의 정보가 적혀 있는 건축물관리대장을 본 권일섭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이런 썅! 지금 이따위 걸 가지고 지휘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거 아닙니까!”
한마디로 현장 지휘자란 사람이 제대로 된 건물의 설계도면도 없이, 현장을 지휘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권일섭은 자연히 눈앞이 막막해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 X발…….”
제대로 된 설계도면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저 지원 인력이 올 때까지 넋 놓고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은평서의 권일섭입니다. 남가좌동 화재 발생한 건물이력 카드. 바로 사진 찍어서 핸드폰으로 좀 보내 주십쇼.”
- 건물 이력 카드요? 그건 현장에……
“있으면 제가 말하겠습니까? 빨리 찍어서 보내 주십쇼. 당장 필요합니다!”
바로 현장에서 작전을 짤 수 있도록, CP에 화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의 건물 이력 카드를 사진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상황은 다들 봐서 알겠지만 최악의 상황입니다. 설계도면도 없고, 현장에 장비도 부족해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합니다. 우리 동료들이 안에 있어요. 아직 구조하지 못한 요구조자들도. 그러니 우리는 올 때까지 맨손으로라도 진입로를 뚫습니다. 알겠습니까?”
현장 지휘관으로서 누구보다 절망에 빠져야 할 상황인데도, 먼저 나서서 당황해하는 선임대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어넣었고, 그에 모든 선임대원들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갔다.
“서대문서는 주수하며 길 만든다!”
“마포서는 전원 삽이랑 망치 들고 달라붙어! 지원 팀 올 때까지 맨손으로라도 뚫는다!”
“종로서도 마포서랑 함께한다. 빠루든 뭐든 다 들고 와! 어떻게든 진입로 만들어 내!”
그들 역시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맨손으로라도 길을 뚫어 동료들을 구해 내겠다며 독기를 뿜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방관들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끄으으으…….”
이성하였다.
“허억, 허억.”
폭발의 충격을 가장 앞에서 받아낸 탓에 중상자로 분류돼 뒤쪽으로 옮겨진 상황인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땅에 발을 디뎠고.
화르르르르!
그렇게 몸을 일으켜 불타는 건물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늦어…… 그건 늦는다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이성하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