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48화 (148/235)

<강철 소방대 148화>

148화. 이제는 안 돼 (2)

“지원이라고? 아침부터?”

CP의 지시에 운전을 하던 허석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은 장난이 아니었다.

- 현재 서대문서에서 광역 1호 발령됐습니다.

심지어 한 개 소방서의 전 소방력이 동원되는 광역 1호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 지금 확산세가 너무 커서 역부족이라는 판단에 지원 요청 결정됐습니다. 빨리 출동해 주십쇼.

그럼에도 감당이 불가능해 인근 소방서에 지원 요청이 결정됐다는 CP의 보고가 뒤를 이었고, 그에 대원들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눈을 마주친 건 당연했다.

“대장님, 이건…….”

“성장기를 놓쳤나 보네. 지금쯤 주변으로 대대적인 연소 확산이 진행 중일 거야.”

말이 지원 요청이지 사실상 광역 2호나 다름없는 인근 소방서의 집결 명령에, 다들 본능적으로 화재의 수준이 대형 화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머뭇거리는 소방관은 없었다.

“막내야. 실린더 잔량 체크해라.”

팀장인 김필주가 바로 마동민을 향해 실린더에 남아 있는 공기 잔량 체크를 지시했다.

“허 부장. 도착까지 거리 얼마나 돼?”

대장인 권일섭 역시 바로 벗어 뒀던 방화복을 다시 입으며 일사분란하게 3팀 모두 다시 한번 출동 준비를 했다.

“10분이면 됩니다. 10분 내 도착하겠습니다!”

“좋아, 모두 대형 화재니까 정신 바싹 차려!”

“알겠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정비해 현장에 출동하는 게, 바로 자신들 소방관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석훈아. 남가좌동이면 서대문 소방서 바로 근처 아니야?”

막 방화복을 입은 김필주가 네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바로 근처 맞습니다. 신고 받고 바로 출동했으면 5분 안에 도착했을 거리입니다.”

그 말에 네비를 조작해 본 허석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5분이요? 그런데도 지원 요청이 떨어진 겁니까?”

소방서와 가까운 출동 장소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인근 소방서에까지 지원 요청이 떨어질 정도로 화재가 커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동이 몰리기라도 했나? 5분 거리에 무슨 광역 1호야?]

렉스 역시 어처구니없어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그렇게 가까운 거리의 출동이라면 보통 대형 화재로 발전하기 전에 진압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장에 다가갈수록 그 의심은 더욱 커졌다.

“대장님, 저긴 거 같습니다.”

“하…… 이거 꽤 심각한데?”

아직 도착까지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밝히는 거대한 화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

건물을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불길이 이는 모습이었고, 그렇게까지 화재가 커진 것에 대한 이유를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장님, 막혔습니다.”

“뭐?”

“앞이 꽉 막혔어요. 불법 주차 차량들입니다!”

“이런, 썅!”

아직 화재 현장까지 200미터가 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골목마다 즐비한 불법 주차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 차주를 확인해 차를 빼려는 멍청한 행동을 하는 대원은 없었다.

“모두 장비 챙겨서 내린다. 뛰어서 가는 거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이미 주변에 방치된 소방차들의 모습을 보니, 먼저 온 소방관들이 시도해 보고 포기한 게 분명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들뿐 아니라 인근 소방서에서 꽤 빠르게 지원을 왔다는 점이었다.

“급수 상황 어때?”

“아직 괜찮습니다!”

벌컥, 벌컥.

무려 5개의 펌프차에서 길게 호스를 빼 현장으로 물이 공급되는 상황이었고.

“좋아, 전부 장비 챙기고 이동해!”

“알겠습니다!”

그에 열심히 달려간 은평구조대는 눈앞에 보이는 현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1층 진입로 확보돼 갑니다.”

“외곽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3층 공격 수주하겠습니다!”

“좋아! 좀 더 쏟아부어! 불길 잡히면 진입 시도한다!”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았는지, 많은 소방관들의 진압 시도 아래 천천히 불길이 잡혀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은평구조대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은평구조대인가?”

방금까지 무전기를 잡고 좀 더 쏟아부으라며 고함을 지르던 인물이었다. 그의 물음에 권일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은평구조대장 권일섭입니다.”

상대방은 하늘색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현장에 진입하는 구조대원의 헬멧이 검정색이라면 현장을 지휘하는 간부급 소방관의 헬멧은 하늘색이었고, 그 색깔이 맞다는 듯 다가온 소방관이 자신을 소개했다.

“아, 권 대장?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대문 소방서의 현장대응단장 박규섭입니다.”

자신이 이 현장을 책임지는 서대문 소방서의 현장대응단장이라고.

그리고 그 말에 마동민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현장대응단장이 뭐 저렇게 어려요?”

자신을 현장대응단장이라고 밝힌 이가 대장인 권일섭에 비해 상당히 어려 보여서였다.

“그러게. 아무리 많이 잡아도 40대 초반인 거 같은데, 벌써 소방령이야?”

도성민 역시 그 말에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아무리 많이 잡아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물이 현장을 책임지는 대응단장을 맡고 있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이잖아.”

허석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간부후보생이요?”

“어. 저번 달에 서대문 소방서로 발령받았나 봐. 그래서 우리 대장님보다도 직급이 한 단계 위지.”

눈앞의 박규섭이란 인물은 일반 소방관들과 다른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이었다.

행정고시에 준하는 여러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격하는 만큼, 흔히 소방청의 귀족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소방간부후보생들이었고, 그런 별칭만큼이나 그들의 직급 체계는 일반소방관들보다 위에서 출발했다.

[확실히 소방위부터 시작하니깐 빠르긴 한데…….]

렉스의 말처럼 소방관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소방사가 아닌, 팀장 김필주의 직급인 소방위부터 시작하는 소방관의 꽃이라 불리는 존재들.

그랬기에 현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게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이었다.

“와, 그런데 간부 후보생이 현장에 나와요?”

이야기를 듣던 이성하 역시 의문을 표할 정도로, 간부 후보생 출신은 본청이나 상황실에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왜? 특이하냐?”

“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간부후보생 출신들은 현장 경험 거의 없지 않습니까. 아마 저보다도 없을 거 같은데요…….”

[맞아, 그래서 발암들도 많아.]

애초부터 현장이 아닌 간부의 직책을 기본으로 임용된 게 그들인 만큼, 일반 소방관들에 비해 현장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게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이기 때문이다.

허석훈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끽해 봐야 10개월도 안 됐을걸? 현장에 있는 걸 감안하면 겨우 1년 됐으려나?”

애초부터 간부후보생들이 소방행정과 지휘를 위해 뽑은 인력인 만큼, 대부분 현장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렉스, 괜찮을까요?’

[그래도 현장에 나와서 지휘할 정도면 멍청한 짓은 안 하겠지. 괜찮을 거야.]

그 때문에 이성하가 약간은 우려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지휘하는 박규섭을 바라봤지만, 다행히 눈앞의 간부는 단장이라는 직책을 허울로 단 건 아닌 듯 보였다.

“단장님! 진입로 확보됐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구조대가 왼쪽 출입구로 먼저 진입하고. 권 대장은 후속 팀으로 은평구조대에서 지원 좀 해 주십쇼.”

“몇 명이나 지원할까요?”

“세 명 정도 가고, 후문 출입구를 마포 구조대가 맡기로 했는데, 그쪽 인원이 부족해서 백업 부탁해요.”

진입로가 확보되자마자 바로 상황을 정리하며, 권일섭에게 은평구조대가 맡아 줄 위치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지휘에,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보였다.

“뭔가, 대응단장 말투가 좀 재수 없지 않냐?”

“그러게요, 무슨 초임 장교가 반말하는 느낌이네요.”

도성민과 마동민의 말처럼, 뭔가 권일섭을 막 대하는 말투에 기분이 좀 그렇긴 했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대로 후문 쪽으로 인원 선발해서 지원 보내겠습니다.”

설명을 들은 권일섭이 바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이상, 딱히 실력에는 문제 될 요소가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살짝 아쉬운 게 있었다.

“이성하. 넌 아까 출동에서 문 뜯느라 체력 소모 심할 테니, 동민이랑 같이 외곽 맡아.”

권일섭이 지원조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버렸다.

“네? 아닙니다. 제 체력 아시잖아요?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괜찮다며 들어갈 수 있다고 손을 들어 보였지만, 권일섭의 명령은 변함없었다.

“외곽 수색도 중요해, 인마. 아니면 성민이랑 동민이만 남길 거야?”

아직 경험이 적은 막내들에게만 요구조자 수색을 맡길 거냐며 이성하를 향해 눈을 부라린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끄응…… 알겠습니다. 외곽 수색 맡겠습니다.”

후배인 마동민과 함께 남아 외곽 수색을 맡겠다고.

‘쩝, 선배들만 보내고 남아 있기는 좀 그런데.’

선배들만 불길 속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만 안전한 후방에 남는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외곽 수색은 꼭 필요한 임무였다.

“동민아, 가자.”

“알겠습니다!”

그 때문에 등에 부착한 공기 호흡기를 탈착하고는 마동민과 함께 걸음을 옮겼고, 그에 이뤄지는 건 스포츠센터 건물에 입점한 1층 상가 점검이었다.

“동민아, 넌 왼쪽으로 돌아. 내가 우측으로 돌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마동민과 역할을 분담해 혹시 모를 위험 요소들을 체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특별히 문제가 될 요소는 없는 듯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네, 이미 전부 대피가 끝난 상황이에요.’

이미 화재가 일어난 지 꽤 시간이 흐른 만큼, 아직 진입을 못한 상층부는 몰라도 접근이 가능한 1층엔 남은 요구조자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응? 뭐지?’

확인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무언가 번쩍이는 게 보였다.

딸칵.

그에 무언가 있다는 생각에 휴대용 라이트를 들어 한 상가의 내부를 비춰 봐 물건을 확인했다.

“가스 온수기?”

무심코 라이트를 비춰 본 곳에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작은 가스 온수기를 발견한 것이다.

일반적인 가스 온수기라면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명원 보쌈족발>

지금 확인한 상가가 음식점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수기가 설치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건 일반적인 온수기가 아니었다.

‘이건…….’

도시가스를 사용한다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야 할 배관에, 빨간색 글씨로 뭔가가 써 있었다.

터억.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라이트를 배관에 비추자.

“제기랄…….”

건물 내에 액화석유가스가 들어 있는 LPG통을 보관해 사용하는 음식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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