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7화>
147화. 이제는 안 돼 (1)
화창한 햇볕이 내리쬐는 월요일 아침.
이성하는 활기찬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냐, 좋은 아침!”
서에 들어서자마자 먼저 보이는 진압대원들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섰고.
“좋은 아침이다.”
“어라, 다들 일찍 오셨네요.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자신보다 일찍 출근한 권일섭에게도 밝게 인사하며 자신의 자리로 성큼 다가갔다.
[어이구. 그렇게 좋냐?]
‘당연한 거 아니에요? 가족들이랑도 친해졌는데. 아버님이 저한테 사위라고 부르셨다고요. 하하.’
렉스의 비웃음에도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것처럼, 전전날 김민정의 집에서 보냈던 하루가 너무 즐거웠던 덕분에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처억.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허석훈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뭐, 뭐예요?”
씨익.
그 모습에 당황해 묻는 이성하를 아무 말 없이 위아래로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은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오.”
김필주 역시 재밌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이성하를 바라봤다.
“역시.”
“네, 맞는 거 같습니다.”
도성민과 마동민 역시 그 옆으로 서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으며.
“왜들 그래요? 저 지각 안 했는데…….”
괜히 찔린 이성하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억울한 표정으로 대장인 권일섭을 쳐다봤지만, 그 앞을 허석훈이 가로막았다.
“새끼, 다 컸네.”
뭔가 뿌듯함이 담겨 있는 표정이었다.
“어디까지 갔어?”
“네?”
“김민정 선생 말이야. 사귀기로 한 거 아니야?”
붉게 상기된 얼굴로 김민정을 이야기하며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고, 그건 모든 팀원들이 마찬가지였다.
“고백한 거야? 어떻게 고백했어?”
“뽀뽀까지 간 거지?”
“선배님. 말해 주세요. 어디까지 가셨어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다들 흥분한 표정으로 김민정과 어디까지 진전됐는지를 궁금해한 것이다.
“아, 사귀긴 뭘 사귀어요? 그냥 데이트만 했구먼. 다들 일들 해요. 얼른.”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이성하가 쓸데없는 소리라며 일축하고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그에 허석훈이 피식 웃었다.
“동작 그만. 증거가 있는데 이렇게 발뺌하면 곤란하시죠. 이성하 소방교님.”
핸드폰을 꺼내며 하는 말이었다.
“이래 놓고도 안 사귄다고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에 사진 하나를 띄워 앞으로 내밀었고, 그렇게 보게 된 사진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걸 어떻게…….”
자신과 김민정의 사진이었다.
“안 사귀어? 안 사귀는 사람들이 이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나?”
허석훈의 말처럼 자신과 김민정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했다.
[큭큭큭.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
‘끄응…….’
렉스의 비웃음처럼 누가 봐도 김민정과 사귀는 걸로 보이는 사진에, 할 말을 잊은 것이다.
사진의 출처가 궁금하진 않았다.
‘제길…… 홍대라는 걸 깜빡했네.’
김민정과 데이트를 했던 장소가 은평서에서 가까운 홍대라서였다.
‘아, 진짜. 누군지는 몰라도 혼자만 알고 있지. 그걸 퍼트리냐…….’
휴일을 맞아 서에 동료 중 누군가 홍대에 갔다가 자신을 보고 사진을 찍은 게 뻔했을 테니까.
그랬기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귀는 거 아니에요. 아직 고백 못했어요.”
동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
“뭐? 고백 안 했어?”
“안 한 게 아니고 못했어요. 데려다주면서 고백하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가족들 만나는 바람에 못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중에 김민정 선생 만나면 아는 체 하지 마세요. 당황할 수도 있어요.”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건 확인했지만,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보니 괜히 동료들이 나중에 김민정을 만나 쓸데없는 소리를 할까 하는 걱정에.
하지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족들?”
허석훈이 상기된 얼굴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럼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 뵌 거야?”
무슨 생각을 했는지 흥분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팔을 잡고 흔들며 대답을 요구했고.
“아, 진짜 왜들 그래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냥 인사만 드리고 나온 거밖에 없어요.”
그에 당황해 아니라고 말하며 빠르게 고개를 내저어 봤지만, 3팀의 대원들은 오랜만에 굴러 온 건수를 놓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뭐? 인사를 드리고 나와?”
고백을 못했다는 말에 자리로 돌아가려던 김필주가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는 건 집에 들어갔다는 거지?”
“그렇죠.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서 담소를 나누다 나왔다는 거네요. 흐흐흐.”
도성민과 마동민 역시 그 옆에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성하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그 모습에 렉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멍청해도 어쩜 이리 멍청할까…….]
혼자서 미주알고주알 동료들에게 계속 건수를 내주는 이성하의 답답함 때문이었다.
‘렉스, 나 좀 도와줘요.’
[뭘 도와줘. 인마. 지가 다 말해 놓고는. 쯧.]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끝날 걸, 꼭 끝에 사족을 달아 동료들에게 건수를 잡히는 이성하의 멍청함에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대, 대장님!”
그 때문에 이성하가 구세주를 찾는 심정으로 대장인 권일섭을 찾았지만, 그건 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왜? 사진 더 보여 줘?”
바로 이 사달을 만든 범인이 바로 권일섭이었다.
“뽀뽀하나 하고 계속 지켜봤는데, 뽀뽀를 안 하더라고. 뽀뽀를.”
방금 허석훈이 보여 줬던 사진 외에도 자신과 김민정을 찍은 사진 몇 장을 더 보여 주며 재밌어 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말해. 들어가서 뭐 했어?”
자신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협박하는 허석훈은 물론.
“성하야, 혼났냐? 들어가서 무릎 꿇은 거 아냐?”
“아, 선배 궁금해요. 빨리 말해 줘요.”
“어떻게 된 거야, 빨리 말해 줘.”
“끄응…….”
그 옆에서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다른 동료들의 모습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단 걸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그때.
이에에에엥!
사무실 벽면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사이렌이 터져 나왔다.
- 화재 출동. 녹번동 412-35번지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 사고 발생. 다시 말한다. 녹번동 412-35번지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 사고 발생.
“출동!”
“화재 출동이야! 전부 일어나!”
“다들 서둘러! 빨리빨리!”
그와 동시에 사무실 안에 모든 대원들이 일어나며 출동을 서둘렀고, 그에 이성하는 화재가 발생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휴, 나이스 타이밍!’
화재가 일어난 건 안타깝지만, 일단 그로 인해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게 됐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움켜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
“마동민 방화복 다 입으면 실린더 체크해!”
“네!”
누구보다 빠른 모습으로 방화복을 착용하며 사용할 장비들을 체크했다.
“상황실 서. 여기 은평 구조대입니다. 현장 도착까지 5분 남았습니다. 현장 상황 보고 부탁드립니다.”
바로 버스에 설치된 무전 설비를 키며 CP에 현장 상황을 물었고, 다행히 CP가 알려 준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 현재 2층 주택에서 화재 발생한 상황이고, 다행히 선착대가 불길 잡고 있습니다.
선착대의 도착이 빨랐는지 불길을 진압 중이라는 상황이 보고됐다.
“요구조자는요?”
- 건물 안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불길 때문에 아직 정확한 수색은 못했지만, 불길 확산 전에 사람들 모두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요구조자 역시 불길이 확산되기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켜 없다는 보고가 이어졌고, 그에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은 없겠는데요?”
“그러게. 전부 대피시켰다고 하니까.”
화재로 발생한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인명 피해만큼은 확실히 막아 낸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는 건 아니었다.
보고에 따르면 요구조자는 없지만, 수색이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성하야, 충전식 유압 스프레더 챙겨라.”
혹시 모를 요구조자 수색을 위해 권일섭이 잠긴 문을 뜯어 낼 유압 장비를 챙기라고 말했고, 그에 이성하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출발 전 배터리 체크 해 뒀습니다.”
이미 출발 전 화재 출동이라는 정보를 듣고, 차에 올라타기 전 배터리의 완충 상태를 확인해 둔 상태였으니까.
그랬기에 구조대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화재가 발생한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문 닫혀 있는 곳 모두 열어!”
“알겠습니다!”
문이 닫혀서 진압대가 수색하지 못한 집들을 강제로 개방하며 혹시라도 남아 있을 요구조자들을 수색했고, 그렇게 모든 층의 수색을 마치고 상황을 정리했다.
- 4층 없습니다.
- 3층도 이상 없습니다.
“오케이, 2층도 없다. 팀장님, 구조대 수색 마치고 나갑니다.”
- 확인했습니다.
“좋아, 모두 나간다!”
“넵!”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확인하고, 건물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임무를 마친 구조대는, 잠시 후 타고 온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민아, 여기 물.”
“감사합니다, 부장님.”
“감사하기는 무슨. 내가 더 고맙지. 오늘 백업 고맙다.”
“아닙니다, 헤헤헤.”
“웃기는, 짜식.”
소방관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아무 일 없는 하루에 감사함을 느끼며.
그리고 그런 버스 안에서 이성하는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연기를 하고 있었다.
“후우…….”
자신 역시 방금의 출동으로 땀을 좀 흘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물병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동료들의 모습에 속으로 웃으며 물을 들이켰다.
‘좋았어, 나이스 출동이었어. 딱 좋은 출동이야.’
인명 피해가 없는 출동인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방금의 요구조자 수색으로 휴식을 취하느라 자신과 김민정의 이야기를 까맣게 잊은 동료들의 모습에 만족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쟤들이 까먹었겠냐. 지금은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지, 인마.]
그런 이성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렉스가 바로 핀잔을 던졌지만, 이성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돌아가자마자 장비 점검해야 한다고 빠지면 되죠. 후후후.’
동료들의 단순한 성격을 생각했을 때, 어떻게든 오늘만 흘려보내면 아무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 은평서, 지금 어디쯤 계십니까?
버스 안의 무전 설비에서 CP의 다급한 음성이 울렸다.
“은평서, 현재 불광역 지나서 귀서중입니다.”
- 그럼 그대로 차 돌려서 서대문구로 지원 가시기 바랍니다.
“서대문구요?”
- 네, 긴급 상황입니다. 서대문구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서 화재 발생. 현재 규모가 너무 커서 모든 인접 소방서에 지원 요청이 온 상황입니다. 그러니 은평서도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오늘의 출동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리는 새로운 출동 명령이 떨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