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6화>
146화. 상처를 떨치고 (3)
짙은 살기가 어린 음성이었다.
“성하 씨. 빨리 가요!”
그 음성에 김민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밀며 빨리 가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김민정은 뒤로 물러나시고.”
딱 봐도 운동을 좀 한 걸로 보이는 탄탄한 체구의 중년 남성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김민정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쪽으로 오시고.”
그러고는 이성하를 향해 근엄한 표정으로 가까이 오라며 손을 흔들었고, 그에 이성하가 급히 공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성하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민정과 닮진 않았지만, 그녀가 집이라고 말한 곳에서 나온 남성이기에, 본능적으로 눈앞의 남성이 김민정의 아버지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성은 옆에 있는 김민정을 힐긋 보고는 이성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정근일세. 자네 바쁜가?”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이성하의 시간을 물었다.
“네?”
“바쁘냐고.”
“아, 아닙니다. 말씀하십쇼.”
“안 바쁘면 잠깐 안에 들어가서 커피나 마시고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말이야.”
난데없이 집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아빠!”
그 말에 김민정이 무슨 소리냐며 그런 아빠의 팔을 잡으며 그를 향해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지만, 당연하게도 이성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
“들어오게.”
김민정의 아버지인 김정근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집안으로 걸음을 옮겨 버렸다.
“여보! 커피 좀 올려 줘.”
집안에 어머니도 계시는지 커피를 올려 달라며 외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는 그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성하 씨. 그냥 가도 돼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어떻게 그래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커피만 마시고 갈게요.”
김민정이 안 그래도 된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어른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들은 이상, 안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게 맞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그냥 돌아가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오오, 미래의 장인어른과의 면담인가?]
렉스의 말처럼 정말 나중에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는 관계여서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아직은 한참이나 먼 미래의 일이기에 바로 아니라며 렉스의 말을 일축했지만, 김민정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옷을 한 번 정리하고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예정에 없는 방문이기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올라섰고.
“이리 앉지.”
그런 자신에게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앉으라고 권유하는 김정근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게 잘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왜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요? 얼른 이쪽으로 앉아요.”
이내 인자한 미소로 앉기를 권유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마음을 편히 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성하라고 합니다.”
“민정이 엄마 한은희라고 해요. 어려워 안 해도 되니까 편히 앉아요. 참 잘생겼네.”
자신의 인사에 바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민정의 엄마라 소개하는 여성이었고, 그 소개가 아니었더라도 이성하는 이미 그녀가 김민정의 어머니라는 걸 알아본 상태였다.
“민정 씨가 어머닐 닮았네요.”
“호호호. 그래요?”
“네. 눈매랑 웃으시는 게 똑같습니다. 아름다우신 것도요.”
“어머. 고마워요.”
“아닙니다. 어머니 진짜 아름다우세요.”
외모가 닮은 것도 있지만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성격까지 같은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흠흠. 여보. 커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김정근이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줬지만, 엄마인 한은희는 그 말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편하게 있어요. 민정이 아빠가 안 그래도 우리 민정이 연애한다고 요즘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뭐라고 해도 조금만 이해하고요.”
“엄마, 아직 그런 사이 아니라고…….”
“얘는,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니?”
그런 둘을 보며 김정근이 입을 열었다.
“아, 거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어.”
“왜요? 내가 틀린 말했어요?”
“끄응. 아니야. 얼른 커피 좀 줘.”
“알겠어요. 있어요.”
오히려 눈치를 주는 김정근에게 눈을 실룩이고는 이성하에게 편하게 있으라며 주방으로 건너갔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마음을 편히 할 수 있었다.
계속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셔 딱딱한 성격인가 했지만, 김정근이 아내와 투닥투닥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란 생각에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조금은 편한 분위기에서 김정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딸과는 얼마나 만났나?”
“만났다고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서로 알게 된 지는 거의 2년 정도 됐습니다.”
“2년? 그렇게 오래 됐나?”
“네, 우연찮게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인연으로 알게 됐습니다.”
조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잠깐만 2년이면 너 그때 버스 사고로 입원했을 때 아냐? 김민정 너 그때부터 만난 거야?”
난데없이 김민정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이시는 모습에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 만난 게 아니고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라니까.”
“야, 이 기집애야. 그때 막 울고불고 하면서 집에서 짐 챙겨서 나간 걸 기억하는 데 뭘 알아가!”
“아빠!”
그동안 딸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하는 김정근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난데없이 자신의 흑역사가 오픈됨에 빨개진 얼굴로 고함을 지르는 김민정의 모습이 너무 재밌었던 것이다.
“항상 둘이 이러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리 딸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하며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한은희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아, 엄마까지 왜 이래!”
“조용해. 귀청 떨어지겠다. 얘.”
“아 씨.”
“풋.”
딱 봐도 정이 끈끈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는 다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TV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말이야. 자네 소방관인가?”
직업을 확인하는 김정근의 물음 때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현재 은평소방서 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워낙 위험도가 높다 보니 어른들이 싫어할 직업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거짓을 말할 순 없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이어서 들을 수 있는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자네. 앞으로도 계속 소방관으로 근무하나?”
“아빠!”
“가만있어 봐.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물어는 봐야지.”
앞으로도 계속 소방관으로 근무할 것을 묻는 모습에, 이분 역시 딸의 남자 친구로 소방관을 꺼려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는 듯했다.
“좀 걱정이 돼서 그래. 자네 꽤 유명하더라고.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것도 있고 말이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활약이 뉴스로 몇 번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봤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을 물었고, 그에 이성하는 김민정을 슬쩍 보고는 조금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네, 앞으로도 계속 소방관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그 위험하다는 구조대로 말인가?”
“네, 몸 상태만 된다면 구조대로 정년까지 쭉 오래 있고 있습니다.”
위험이라는 말을 붙여서 다시 묻는 말에도 정년까지 오래 있고 싶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인마. 그냥 두리뭉실하게 대답하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까지 이야기해.]
그 말에 렉스가 괜한 말을 한다며 핀잔을 던졌지만, 이성하는 그 누구보다 소방관이란 자신의 직업에 당당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에 그 어떤 일보다 자부심을 가지며 일하고 있거든요.”
“사람을 구한다?”
“네. 저는 이 직업을 너무 좋아합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공기가 없는 깊은 심해 속에서도 생명을 구한다는 자부심에 이 직업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허락만 한다면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면서도 숭고한 직업이 소방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흠…….”
물론 그 말에 고민을 하는 김정근의 모습을 보면 조금은 돌려 말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아니야, 잘 말한 거야. 나는 평생 소방관으로 일할 거야. 그래서 다시는 내 눈앞에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거다.’
먼저 떠난 오성수의 빈 자리를 이어받으며 맹세를 했던 것처럼, 다시는 그 어떤 요구조자라도 죽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현장에 복귀한 거니까.
그랬기에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봐야 될 거 같습니다.”
자신의 말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굳어졌다는 생각에서였다.
“…….”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자부심을 밝혔음에도 아무 말이 없는 아버님의 모습에 자신을 꺼려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에 김정근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은 거 같은데?”
옆에 있는 한은희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거 봐요. 내가 뭐랬어요. 괜찮을 거라고 했죠?”
그 말에 한은희가 김정근을 타박하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이성하가 이게 무슨 그림인가 하며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모습에 김정근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긴 어딜 가. 온 김에 나랑 술이나 해.”
“술이요……?”
“응. 사실 나 자네 팬이거든. 공격! 위 워 솔져스 말이야.”
방송에서 이성하가 하는 불무리부대의 경례를 따라 하며 하는 말이었다.
“성하 씨는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성하 씨 본 적 있어요. 민정이 보러 병원에 갔다가 둘이 같이 있는 거 본 적 있거든요. 그래서 이이가 엄청 좋아했어요. 나중에 민정이가 데리고 오면 꼭 같이 사진 찍겠다고요.”
그 모습에 한은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고, 그 말이 맞다는 듯 김정근이 웃으며 말했다.
“난 소방관 좋아해. 그리고 자네처럼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는 소방관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몸은 좀 사리게. 자네가 크게 다칠 때마다 민정이가 엄청 운단 말이야.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
몸을 일으켜 주방에서 술과 잔을 가져오며 하는 말이었다.
터억.
“우리 집에 맥주는 없네. 남자는 오로지 소주지.”
주르륵.
이성하의 앞에 잔을 놓고는 그 잔을 가득 채웠고.
“제, 제가 따르겠습니다.”
“좋지.”
주르륵.
이성하 역시 술병을 들어 김정근의 잔을 채우면서 집 안엔 다시 훈훈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캬아. 좋구나. 이게 아들 말고 사위랑 마시는 맛이구나.”
“아빠!”
“왜? 너도 한잔 달라고?”
“끄응…….”
“말아라. 그럼 나는 사위랑 오늘 오래 밤을 불태울 거니까. 안 그래, 사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연거푸 잔을 채우는 김정근의 모습에, 방금까지 긴장하던 이성하 역시 웃음을 지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뭐 막장도 아니고…….]
그 모습에 렉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지만, 이성하는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짐에 술자리를 거부하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 집도 이랬었는데.’
잊고 있던 옛날의 추억이 떠올라서였다.
“아들!”
“아빠 또 술 마셨어?”
“하하하. 조금! 엄청 조금 마셨어. 그렇지? 여보.”
“이게 무슨 조금이야! 빨리 가서 안 씻어!”
고된 출동을 마친 날이면 꼭 술을 마시고 들어와 엄마와 투닥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림에 피식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이성하는 김민정과 온전한 하루를 끝까지 보냈다.
“민정이가 말이야. 중학생 때 학교 선배에게 고백을 했다가.”
“아, 진짜! 왜 이래!”
“추억이잖아. 추억.”
“엄마! 아빠 좀 어떻게 해 봐!”
김민정은 물론, 사람 냄새 나는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