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5화>
145화. 상처를 떨치고 (2)
* * *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들어가.”
“네, 식사 맛있게 하십쇼.”
이성하는 산을 내려오자마자 동료들과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향했다.
“끄응…… 이거 멍드는 거 아냐?”
[무슨 멍이야?]
“진짜 멍든 거 같아요. 아까 제대로 때린 거 못 봤어요?”
허석훈에게 밥도 같이 안 먹고 빠진다며 등짝을 얻어맞아 조금 얼얼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얼마 만에 제대로 만나는 거야?”
꽤 오랜만에 김민정 선생과 데이트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뭔 소리야. 2주 전에도 얼굴 보고 밥 먹었으면서.]
그 말에 렉스가 뭔 소리냐며 핀잔을 던졌지만, 그건 단순히 밥만 먹은 거였다.
“에이, 그건 그냥 밥만 먹은 거죠. 데이트가 아니었잖아요.”
이성하나 김민정이나 서로 불규칙적인 스케줄을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보니, 당시엔 근무 도중 잠깐 시간을 내 말 그대로 밥만 먹은 경우였다.
그에 반해 오늘은 모처럼 둘 모두 비번이 겹쳐 하루를 같이 보내기로 한 상태였다.
‘어제 사 둔 옷이 어디 있더라.’
하루 전 오늘을 위해 옷을 구매해 둘 정도로 온전히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날인 것이다.
그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준비하는 이성하는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왁스까지 발라?]
‘데이트인데 기본이죠.’
스윽, 스윽.
모처럼의 데이트인 만큼, 오래 봉인해 뒀던 왁스까지 꺼내 머리를 만졌다.
‘향수 뿌릴 땐 이렇게 돌던데.’
칙칙칙.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머리 위로 향수를 뿌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돌렸고,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복장을 정돈하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죠?”
[조금?]
“조금은 무슨. 완전 괜찮구먼. 이걸로 준비 끝!”
김민정과의 데이트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을 나서 향한 곳은 홍대의 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다.
“이성하 이름으로 예약했는데요.”
미리 예약을 해 뒀기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에게 자리를 안내 받기 위해 이름을 밝혔지만.
“여기요!”
그 순간 멀리서 한 여성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에 씨익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일찍 오셨네.”
김민정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여기, 여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환한 표정으로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제가 만나러 온 건 김민정 선생님인데 누구시죠?”
“저도 김민정인데요.”
“어라…… 제가 아는 김민정 선생님은 매일 부스스한 머리로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니시는 분인데?”
“아하. 그래서 불만이었다?”
“하하하하. 장난이죠. 오래 기다렸어요?”
얼굴을 보자마자 농담을 건넬 정도로 아름답게 꾸미고 나온 김민정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흐뭇하기는 김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도 금방 왔어요. 근데 성하 씨, 오늘 향수 뿌렸네요. 처음인 거 같은데?”
이성하가 자신과 만나면서 향수를 뿌리고 나온 건 처음이었다.
‘음~ 좋은 냄새.’
예전이었다면 그냥 청바지에 면 티만 입고 나오던 사람이 확 달라진 모습으로 꾸미고 나온 모습에 배시시 웃음을 지었고, 그에 저도 모르게 이성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우, 예뻐라.”
“어, 왜 이래요?”
“예뻐서 그래요. 가만히 있어요. 헤헤.”
딱 봐도 자신과의 데이트를 위해 신경을 쓰고 나온 이성하의 마음이 느껴져, 흡족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에이, 왁스 발라서 손 끈적거려요.”
그 때문에 이성하의 말처럼 손에 왁스가 묻어 끈적거림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괜찮아요. 씻으면 되죠. 잠깐만 있어요. 금방 씻고 올게요.”
이 정도야 씻으면 그만이라며 털털한 모습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세트 메뉴도 있네요. 세트 메뉴 괜찮아요?”
“네, 전 뭐든 좋아요. 사실 지금 운동하고 와서 배고파 죽을 거 같거든요.”
“호호호, 얼른 시켜야겠네요.”
봐도 봐도 예쁜 이성하의 모습에 웃으며 메뉴를 골랐고, 잠시 후 그렇게 나온 음식을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 교수님이 계세요?”
“그렇다니까요. 매일 수술실 들어갈 때마다 저한테 그래요. 오늘도 졸면 내쫓는다고. 딱 한 번 졸았는데. 흥.”
그녀 역시 오랜만에 즐기는 데이트다 보니, 그간 있던 일들을 이성하에게 털어놓느라 정신이 없던 것이다.
이성하 역시 즐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저 오늘 민정 씨 만나러 간다고 해서 부장님한테 한 대 얻어맞았잖아요.”
“석훈 씨요?”
“네, 오늘 훈련에서 안 봐 줬다고요.”
과장된 표정으로 오늘 있던 일을 이야기하며 김민정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호호호, 그래서 다 잡았어요?”
“다 잡았죠. 제가 체력 하나만큼은 괴물이잖아요. 하하하.”
편법을 사용해 훈련을 마무리한 것은 비밀로 한 채 뽀빠이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몸을 자랑했고.
[와, 편법 써서 이긴 건 이야기 안 하네.]
그 말에 렉스가 바로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핀잔을 던졌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몸조심해야 돼요. 아직 나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네, 그럴게요, 민정 씨.”
자신을 걱정하는 김민정의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렉스의 핀잔 따위는 가볍게 한 귀로 흘렸으니까.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렉스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슬슬 일어날까요? 영화 시간 다 됐는데.”
“네, 가요.”
오늘은 김민정과 처음으로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영화는 무슨. 콱 사고나 터져라.]
그 말에 렉스가 바로 저주를 퍼부었지만, 이성하는 오늘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아직 지어진 지 3년 밖에 안 된 건물이야. 화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예전처럼 데이트 도중 사고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일부러 준공된 지 얼마 안 된 영화관으로 영화를 예매했다.
‘근처에 서교 센터는 달려서 5분 만에 도착하는 거리야. 오늘 변수는 없다.’
그것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근처에 위치한 센터 위치까지 고려하며 영화관을 정한 상태였고, 그에 이성하는 무척 긴장을 한 상태였다.
‘오늘 손을 잡게 되는 건가…….’
영화와 TV로만 봤던 그 순간이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오름에.
스윽. 스윽.
자꾸 손에 땀이 맺혀 바지에 문지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연애는 글로 배우면 안 되는 듯했다.
‘첫 영화인데 뭘 봐야 되지?’
태어나서 이성과 처음으로 보는 영화기에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다.
‘멜로를 봐야 되나? 아니면 액션?’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가늠이 안 가 인터넷으로 무슨 영화를 볼지 검색을 해 봤고, 그렇게 얻은 답변은 공포 영화였다.
<이성과 처음 스킨십을 할 때는 언제다? 바로 영화관입니다. 공포 영화를 예매해 깜짝 놀라 자연스럽게 손을 잡게 되는 거죠. - 추천 3215 / 반대 135>
“아, 공포 영화를 봐야 하는 거구나. 오케이. 공포 영화.”
커뮤니티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게시물의 내용에 흡족한 표정으로 공포 영화를 예매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가 생각 못한 게 있었다.
“공포 영화요? 나 공포 영화 엄청 좋아하는데.”
김민정은 흔히 말하는 공포 영화 마니아였다.
끼야아아악.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의 등장에도.
“와, 실감 나게 잘 만들었다.”
놀라기는커녕 재밌다는 표정으로 영화를 감상했고, 안타깝게도 이성하는……
“꺄아아악.”
“어억.”
주변의 놀라는 사람들과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아…….”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불은 안 무서워해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만큼은 무서워하는 몸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속으로 침울한 상태였다.
“풋.”
그런 자신을 보는 김민정의 웃음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자신이 보호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던 김민정이, 오히려 웃는 모습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망했어…… 완전히 망했어…….’
마음 깊숙이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터억.
김민정이 이성하의 손을 잡았다.
“손잡고 봐요. 그럼 좀 덜할 거예요.”
당황해 하는 이성하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는 그대로 영화를 관람했고, 그 뒤로 이성하는 그 어떤 타이밍에 귀신이 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너 영화 안 보냐?]
‘안 들어와요. 지금 아무 소리도 안 들어와요.’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집중하느라, 아예 영화에 대한 신경 자체를 놔 버린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잡게 된 손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성하 씨. 우리 저기 가 봐요.”
“네, 그래요.”
영화를 보고 거리로 나와서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돌아다녔다.
“어? 인형 뽑기다.”
“인형 뽑기 잘해요?”
“그럼요. 저 고수예요. 고수.”
그동안 못해 본 걸 다하겠다는 듯 꼭 손을 잡고 다니며 정신없이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후련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저도요. 호호호.”
드디어 처음으로 같이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서로를 향해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평소라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바로 헤어졌을 두 사람은 걸어서 김민정의 집이 있는 연희동까지 이동했다.
“아, 아쉽다.”
서로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저도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걸어서 같이 가잖아요.”
언제 또다시 이렇게 휴일이 맞아떨어질지 오는 상황이 올지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 김민정의 집까지 이성하가 데려다 주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도 금세 끝나 버렸다.
“아, 다 왔다.”
“그러게요. 다 왔네요.”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김민정의 집 앞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계속 아쉬운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얼른 들어가요.”
“민정 씨 들어가는 거 보고요.”
너무 즐거운 하루였던 덕분인지 계속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도,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봤고 그에 이성하가 조심히 용기를 냈다.
“잠깐만 눈 감아 볼래요?”
“네?”
“잠깐만 감아 봐요.”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운 감정에,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오오오! 설마 키스!]
그 행동에 지금껏 지루해하던 렉스가 호기심에 목소리로 소란을 떨었지만, 이성하는 거기까지 갈 마음은 없었다.
‘고백만 할 거거든요.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해요. 후아-.’
오늘에서야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김민정에게 고백하기 위해 이마에 손을 얹은 순간.
쿠웅!
심장이 강하게 욱신거렸다.
철컥.
집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동작 그만.”
들린 목소리에, 이성하와 김민정 모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