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4화>
144화. 상처를 떨치고 (1)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짹짹.
완연한 봄의 계절이 왔다는 걸 알리듯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솨아아아.
하얀 겨울의 색깔을 벗어 낸 숲의 나무들은 잎사귀를 흔들며 자신들의 푸르름을 드러냈고, 그렇게 완연한 봄의 풍경을 보며 사람들의 얼굴엔 즐거움이 어렸다.
“아빠! 나 핫도그 사 줘!”
“정호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어머, 지연아. 너 엄청 예뻐졌다.”
도시 곳곳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처럼, 그 해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계절이 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달리 봄이 찾아온 걸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억, 허억. 안 보이죠?”
“몰라. 빨리 달려.”
“끄응. 제길…….”
누군가에게 쫓기는지 간간이 뒤를 돌아보며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가는 두 사람이었다.
“동민아, 중턱에 흔들바위 알지? 여기서 갈라져서 거기서 보자.”
“네, 형!”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두 방향으로 갈라지며 길도 만들어지지 않은 산길을 그대로 질주하는 두 사람이었고, 그들이 머리에 착용한 헬멧에는 둘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은평구조대 – 도성민>
<은평구조대 – 마동민>
“이런 X부랄!”
“으아아아!”
은평구조대의 막내인 도성민과 마동민이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가고 있던 것이다.
“저 사람들 뭐하는 거야?”
“글쎄…… 훈련 중인가?”
“훈련? 요새 소방관들은 훈련 재밌게 하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등산로를 올라가던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지만, 두 사람은 절대 지금의 상황이 즐겁지 않았다.
“허억, 허억.”
너무 달려서 목구멍이 메말라 비틀어질 거 같은데도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흐, 흔들바위.”
서로 만나기로 약속했던 흔들바위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걸음을 멈출 수 있었고,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바위에서 다시 조우한 두 사람은 서로의 꾀죄죄한 몰골을 보며 서글픈 눈물을 흘렸다.
“우리 주말에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성하, 죽여 버릴 거야. 제길. 흐윽.”
원래대로라면 비번이라 집에서 휴식을 취할 날인데도 불구하고, 선배인 이성하의 지시 때문에 북한산에서 훈련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억울할 일은 아니었다.
각종 상황에서의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구조대는 쉬는 날에도 이렇게 종종 훈련을 하는 일이 많았다.
본인들의 임무인 구조를 위한 훈련인 만큼, 사전에 미리 훈련 계획서만 올린다면 초과 근무로 시간 외 근무 수당까지 받아, 어떤 소방관들은 오히려 비번인 날에 훈련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이야기였다.
“선배. 벌써 두 달째예요…… 이러다 현장이 아니라 훈련하다 순직하겠어요…….”
서러움이 가득한 마동민의 하소연처럼, 벌써 두 달째 쉬는 날을 반납하고 훈련 중이었다.
“크윽.”
그 말에 지난 두 달간의 고행이 떠오르는지, 도성민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심지어…….
- 허억, 허억. 팀장님 어디세요.
- C, C지점…… 금방 갈게, 석훈아.
무전으로 울리는 김필주와 허석훈의 음성처럼, 3팀 전원이 북한산에서 등반 훈련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성하 역시 3팀이기에 당연히 북한산에 있었다.
“15분 됐네요. 저도 이제 슬슬 출발합니다.”
그것도 네 사람을 쫓는 추격조의 입장으로 훈련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성하가 훈련을 주도하는 이유는 오성수가 떠나며 맡긴 직함 때문이었다.
- 서무반장님. 5분만 더 늦게 출발해 주십쇼.
“안 됩니다, 부장님.”
- 야, 이 새끼야. 성민이랑 동민이는 그렇다 쳐도 팀장님이랑 나는 나이 생각해 줘야지! 5분만 더 이따 출발해, 인마!
허석훈이 어떻게든 이성하의 출발 시간을 늦춰 보려고 잠깐이나마 올려 부른 호칭처럼, 출동에 관한 기록과 훈련 및 구조대의 모든 서류작업을 도맡아 하는 직책이 이성하가 맡게 된 서무반장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가 서무반장을 맡으며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 지금처럼 비번 중 하루는 같이 모여 팀 훈련을 진행하는 거였다.
“훈련?”
“네, 팀장님은 몰라도 저를 포함한 네 명은 당분간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직 구조대로 활동한 경험이 적으니까요.”
서무반장 직책을 맡게 되며 대장인 권일섭에게 정식으로 훈련 계획서를 제출했고, 그에 권일섭은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수락했다.
“오케이. 서장님께 말해 둘 테니까 이대로 진행해 봐. 훈련하면 좋지.”
“대, 대장님!”
“뭘 그리들 놀라? 후배가 열심히 하겠다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참 그리고 필주도 같이 해라. 너 저번에 보니까 체력 많이 떨어졌더라.”
“…….”
난데없는 훈련에 당황하는 대원들의 모습에도, 오히려 이성하가 생각지도 않았던 김필주까지 훈련에 포함시키며 이성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요즘 은평소방서에서 살모사로 불렸다.
- 에라이 살모사 새끼! 어떻게 된 게 같은 팀을 못 괴롭혀서 난리냐! 넌 꼭 천벌 받을 거야, 인마!
매주 계속된 훈련에 무전으로 저주를 퍼붓는 허석훈의 고함처럼, 요즘 자신이 소속된 3팀을 잡아먹을 듯 괴롭히는 존재가 바로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후배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허석훈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 더 못 벌었지만 됐어. 15분이면 충분해.’
아무리 이성하라도 15분의 차이를 두고 출발한 이상 자신들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허억, 허억. 막내 애들 잡고 우리까지 잡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럼요. 걔들 위치가 우리랑 반대편인데. 걔들 잡고 우리까지 잡는 건 불가능합니다.”
김필주의 말처럼 반대편으로 이동한 막내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자신들의 탈출은 100퍼센트 확실했고, 그에 허석훈은 웃으며 무전기를 잡았다.
“이성하. 너 약속 지켜라. 못 잡은 팀은 앞으로 주말 훈련에서 제외다.”
- 그럼요. 못 잡은 팀은 제외하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성하에게 다시 확인한 것처럼, 오늘 잡히지 않고 북한산을 무사히 내려가는 팀은 앞으로의 훈련에서 제외하기로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허석훈은 밝은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오케이!”
매몰차고, 싸가지없고, 악독하고 아무튼 재수 없는 후배지만, 약속만은 확실히 지키는 게 이성하였으니까.
하지만 허석훈이 모르는 게 있었다.
[야, 너 이렇게 거짓말해도 되냐?]
‘뭘요?’
[너 10분에 출발했잖아.]
동료들은 모르겠지만 사실 이성하는 이미 5분 일찍 출발한 상태였다.
<김필주, 허석훈 1.0km> / <도성민, 마동민 0.8km>
그것도 훈련을 위해 갖고 있는 GPS 추적기를 확인하며 팀원들과의 거리를 이미 꽤 많이 줄여 둔 상태였고, 아직 두 팀 모두 능선에 해당하는 비봉을 넘지 못한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오늘 이성하의 손길을 벗어날 팀원은 없었다.
[쟤들 불쌍해서 어떡하냐…….]
렉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산 능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미 결과가 뻔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에이, 저도 같이하고 있잖아요.”
모두가 같이하는 훈련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야, 그래도 거짓말은 좀 그렇지.]
그 말에 렉스가 거짓말은 너무하다며 동료들 편을 들었지만.
‘뭐, 어때요? 안 걸리면 되지.’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이성하는 당당했고, 내심 앞으로도 이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 중이었다.
‘다들 체력이 많이 좋아졌단 말이지. 특히 팀장님이.’
굴리면 굴릴수록 몸이 좋아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좀 더 올라가는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팀장님 말씀대로 인간은 좌절할수록 강해지는 법.’
1팀 팀장 정철호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단번에 산길을 박차며 올라갔고, 곧이어 보이는 광경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타깃 발견.’
첫 번째 목표물로 생각했던 도성민과 마동민이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허억, 언제!”
“이런 썅! 빨리 뛰어!”
두 사람 역시 그런 이성하를 발견했는지 바로 식겁한 표정으로 산길을 뛰어올랐지만, 그 모습은 이성하를 더욱 즐겁게 하는 행동이었다.
“아웃이요.”
터억.
산길이 익숙한 것도 있었지만,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체력으로 단번에 그 뒤를 쫓아 두 사람의 등을 터치한 것이다.
도성민과 마동민으로서는 망연자실한 순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아…….”
분명히 자신들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순식간에 자신들을 따라잡은 이성하의 체력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성민이 형이랑 동민이 잡았습니다. 곧 갑니다. 선배님~”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먹잇감들을 향해 얄미운 목소리로 무전을 보냈고.
“이런 쌰발!”
“뭐, 뭐야! 뭐가 이리 빨라!”
그 무전에 김필주와 허석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바로 속도를 붙여 달렸지만, 그런다고 이성하의 손길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0.5km>
착용하고 있는 GPS가 그런 선배들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0.3km>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해도 방향만은 맞다는 듯 착실히 좁혀지는 거리가 보였고, 그렇게 잠시 후 이성하는 정신없이 산길을 내려가는 선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안 돼!”
“야, 이 새끼야! 우리 선배야! 선배라고!”
자신의 등장에 사력을 다하며 거리를 벌리는 선배들을 발견했으며, 그렇게 김필주와 허석훈의 바람은 산산조각 났다.
“선배님, 스톱이요. 다쳐요. 허억, 허억.”
어느새 뒤따라온 이성하가 두 사람과 나란히 서며 멈출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에 허석훈이 울분에 찬 고함을 지른 건 당연했다.
“크흑, 나의 주말이…….”
일장춘몽이었다.
짹짹.
조금만 더 갔으면 저 참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나날이 순식간에 멀어져 버린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이성하는 활짝 웃었다.
“아, 땀 잘 흘렸다.”
나름 즐거운 훈련이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주 염장을 질러라, 염장을.]
그 말에 렉스가 빈축이 담긴 목소리를 던졌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울해하는 동료들을 보며 활짝 웃었고, 그에 네 사람은 화난 표정으로 이성하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
“미친놈…….”
“진짜 싫다.”
“동감이요…….”
이성하의 미소를 볼 때마다 속에서 치솟는 짜증에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네 사람은 그렇게 내려가다 서로를 보며 실소를 지었다.
“에휴…… 그래도 축 처진 것보단 낫네요.”
“맞네. 그때보단 낫지. 그때 저놈 눈치 보느라 다들 힘들었잖아.”
이성하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뭘 또 그렇게 수군거려요?”
“넌 몰라도 돼.”
“에이, 팀장님. 섭섭하게 그러시면 안 되죠.”
“섭섭은 무슨.”
PTSD를 완전히 떨쳐버렸는지 더 이상 예전의 우울함은 없어진 얼굴에 다들 웃음을 지었고, 그에 허석훈이 이성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빨리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 오늘 내가 쏠게.”
시간이 꽤 흐르긴 했지만, 예전처럼 활기찬 얼굴로 웃는 후배의 모습에 괜스레 흡족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 허석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이따 데이트 있는데.”
“데이트?”
“네. 점심 민정 씨랑 같이 먹기로 해서요. 하하하.”
밥도 같이 안 먹고 가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웃음을 짓는 이성하가 보였고, 그에 허석훈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걸 죽여?’
오늘 또 한 명의 후배를 가슴에 묻어야 할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