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43화>
143화. 빈 자리 (8)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유서…….”
모든 소방관들은 자신이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할 걸 대비해 가족과 동료들에게 따로 유서를 작성해 둔다.
평소 가장 사선에서 활동하는 구조대원은 몇 개월마다 그 유서를 새로 작성해 자신의 개인 장소에 보관하곤 했고, 눈앞에 있는 건 그중 하나가 분명했다.
“원래는 일찍 전해 주고 싶었는데 대장님이 성하 씨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나중에 주라고 해서 갖고 있었어요. 지금은 줘도 될 거 같다고 말씀하셔서 가지고 온 거고요.”
언제 눈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눈을 한 이성하를 보며, 정유경이 얼른 읽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억.
이성하가 복잡한 표정으로 천천히 봉투를 개봉하였다.
그리고 열린 봉투 안엔, 짤막하다면 짤막한 편지와 함께 작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선배…….’
길현대 시절, 오성수가 현장에서 방화복을 입은 채 3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씨익.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이었으며, 그 사진에 이성하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크흑.”
그토록 보고 싶은 오성수가 환하게 웃는 모습에, 단단히 막아 뒀던 감정의 골이 터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울어선 안 됐다.
‘아니야, 선배는 내가 울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사수인 오성수의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막내가 말이야. 항상 웃으면서 분위기 띄워야지. 그렇게 폼 잡는 거 아냐, 인마.”
아직도 꿈이었는지 환상을 본 건지 헷갈리지만, 장례식장에서 자신을 향해 웃으며 말하던 선배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선명했으니까.
그랬기에 웃음을 지으며 편지지를 펼쳤다.
‘그래 웃자. 웃으며 읽자.’
오성수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전언이기에 웃으며 읽자고 다짐하며 편지지를 펼쳤다.
[성하야. 이걸 볼 때면 난 더 이상 네 곁에 없겠구나.
혹시나 해서 남겨 둔 편지다.
만약에 내가 떠나면 네가 대성통곡을 할까 걱정이 되더라고.
내가 아는 너는 누구보다 여린 놈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우는 건 상관없지만 그걸 길게 가져가진 마.
네가 울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불편해. 알지?
소방관이라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안타깝게도 그 일을 겪게 된 게 나라서 좀 슬프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소방관의 삶이란 게 언제든지 동료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삶이고, 그중에 하나가 내가 됐을 뿐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오래 울지는 마라. 슬픔은 짧고 굵게 터트려 주고, 그 뒤부터는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
그래야 내가 맘 편하게 떠날 수 있지 않겠냐?
그런데 갑자기 쓰다 보니까 궁금하네. 나 어떻게 죽었냐? 멋있게 가긴 했지?
내가 또 사람들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구하니까 말이야.
사실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재작년에 떠난 내 동기가 떠올라서야.
너는 모르겠지만, 사실 너 오기 전에 내 동기가 죽고 몇 달을 폐인처럼 지냈었거든.
겨우 회복하긴 했지만, 너는 그러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해서 쓰는 거야.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 친구가 그런 내 모습을 봤다면 엄청 슬퍼했을 거 같거든.
뭐,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나는 죽지 않을 거니까. 흐흐흐.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당부하마.
사람들은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내가 아는 너는 마음이 너무 여려.
만약에 내가 죽었다면 보나마나 자기가 구하지 못했다고 몇 날 며칠이고 자책하겠지.
하지만 소방관은 그러는 거 아니야.
동료의 죽음은 슬프지만 오래 슬퍼해선 안 돼.
가장 먼저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게 우리인 만큼, 또 누굴 떠나보낼지 모르는데 매일같이 그럴 순 없잖아.
그러니까 넌 그러지 마. 빠르게 정리하고 빠르게 일어서.
사수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고, 사수로서 가르쳐 주는 마지막 배움이야.
형이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내 말 이해할 거라고 알고 줄이마.]
오성수가 남긴 유서를 읽는 내내, 굵은 눈물이 편지 위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크흑…….”
끝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선배의 모습이 그려짐에 참으려던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리고.
- 형, 오성수가 사랑하는 성하에게.]
“으허허헝. 혀어어엉!”
유서의 마지막에 적힌 문구에, 이성하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선배가 아닌 형으로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전언에 오성수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정유경이 끌어안으며 다독거렸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성하 씨는 아무 잘못 없어. 성수 씨가 그랬는걸? 자기가 죽으면 가장 슬피 울 동료가 성하 씨라고. 그러니까 오늘만 울어요. 그게 성수 씨가 바라는 거예요.”
진심으로 오성수를 그리워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등을 두드렸고, 그런 정유경의 품속에서 이성하는 한참을 울었다.
“으허허헝.”
오늘을 끝으로 앞으로 더 이상 울지 않기 위해.
* * *
이성하의 입원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직 화상 치료가 덜돼 몸 곳곳에 붕대를 감은 상황이긴 했지만, 애초부터 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옆 건물로 넘어가며 금이 갔던 늑골의 상태 때문이었다.
“선생님, 이제 퇴원해도 되나요?”
“네. 크게 무리만 안하면 괜찮겠네요. 그 대신 가슴 보호대는 꼭 착용하고 다니셔야 됩니다. 아시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성하의 X-ray 사진을 살펴보던 의사가 문제없겠다며 흔쾌히 퇴원을 허락했고, 그렇게 이성하는 퇴원을 하자마자 바로 엄마의 가게로 향했다.
“엄마, 저 왔어요.”
최근 사고로 자신에 대한 걱정이 많아진 엄마 때문이었다.
“너 왜 벌써 퇴원했어? 가방 이리 줘. 가방.”
병원을 나온 자신의 모습에 바로 걱정하며 가방을 뺏어드는 모습처럼, 요즘 자신에 대한 걱정이 부쩍 많아진 엄마였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그렇게 하루를 엄마 곁에 있었다.
“아, 좀 들어가라니까!”
“또 그런다. 오랜만에 이렇게 같이 일하면 얼마나 좋아? 이거 내가 치울 테니까 엄마는 좀 쉬어.”
“아니, 그래도.”
“에이, 다 나았다니까, 그러네.”
집에 들어가서 쉬라는 엄마 말에도 끝까지 가게에 붙어 일을 도왔고, 그렇게 엄마의 퇴근길도 함께했다.
“엄마. 얼떨결에 이사한 꼴이 되긴 했는데, 가게랑 가까워서 좋지 않아?”
“좋긴 뭐가 좋아? 그 전 집보단 작은데.”
“에이, 그래도 새집인데 뭐. 예전 집은 너무 오래됐잖아.”
화재로 살던 빌라가 전소된 바람에 새로 이사한 집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으며, 집에서는 오랜만에 엄마에게 능글맞게 애교를 부렸다.
“엄마, 오늘 아들이 저녁 해 줄까?”
“애가 갑자기 왜 이래?”
“헤헤. 아들 밥 오랜만에 드셨으면 하는 거지.”
이제는 괜찮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엄마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당연히 엄마인 희은으로서는 피식 웃음이 나올 모습이었다.
“어휴. 어쩜 이런 건 지 아빠를 꼭 닮았을까?”
남편 이성훈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아빠?”
“그래. 네 아빠도 항상 뭔가 잘못할 땐 이랬거든. 곰같이 생겨서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니까.”
지금은 없는 남편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는 아들의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나왔으니까.
그랬기에 아들이 뭘 말하려 하는지를 희은은 알고 있었다.
“너 구조대 복귀하려고 그러지?”
“아, 그게…….”
정답을 말했는지, 당황해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씁쓸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복귀해. 아들이 정한 길이잖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걱정은 되지만 막을 수 없는 거 알아. 네 아빠도 그랬거든. 이게 자신의 길이라고. 그러니까 복귀해. 그 대신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와야 해. 엄마 혼자 남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미안해하는 이성하에게 그저 집에만 들어오면 된다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럴게요, 엄마.”
엄마의 말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를 혼자 남게 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상 엄마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됐어. 얼른 자자.”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이번에도 믿고 기다려 주면 될 일이었다.
“엄마, 고마워요.”
“애가 부끄럽게 왜 이래. 빨리 자. 내일 출근해야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성인으로서 스스로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엄마의 허락에 이성하는 마음을 다시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이튿날 새벽.
“엄마, 저 먼저 나가요.”
“응……? 아들 벌써 나가?”
“네, 들릴 곳이 있어서요.”
몇 시간도 채 자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아저씨 서울역으로 가주세요.”
아직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 아니기에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고.
“대전으로 가는 KTX 한 장이요.”
그렇게 도착한 서울역에서 대전행 KTX 표를 사고 열차에 올라탔다.
철컹철컹. 철컹철컹.
두 시간을 말없이 KTX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으며, 그런 여정을 거쳐 이성하가 도착한 곳은 국립대전현충원이었다.
<지방 소방장 오성수>
“선배. 저 왔어요. 이제 와서 미안해요.”
다시 구조대로 복귀하기 전에, 자신의 사수인 오성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묘소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그 인사는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주르륵.
“선배 좋아하는 술이에요. 오늘은 금방 가지만 나중에 또 올게요. 다른 선배들이랑.”
소방관의 이별은 기억에서 잊는 게 아닌, 가슴에 묻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오성수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기사님. 은평소방서요.”
출근을 위해 근무지인 은평소방서로 향했고, 도착해서는 바로 2층의 재난관리과로 향했다.
“저 짐 챙겨 가겠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없이 짐을 챙기겠다는 말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재난관리과의 과장은 그 말에 웃으며 바라봤다.
“결심이 섰나 보네.”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케이. 고생했다.”
당당한 목소리로 감사하다 말하는 이성하에게 알겠다며 손을 들어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짧게 경례했다.
처억.
객식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가족처럼 돌봐 준 상사를 향해 존경의 마음으로 경례를 올렸으며, 그렇게 짐을 들고 나와 이동한 곳은 1층의 현장대응단실이었다.
“이성하?”
“야, 너 언제 퇴원했어?”
“성하야, 너 몸은? 너 몸 괜찮냐?”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입구 쪽에 앉아 있던 진압대원들이 놀라 일어나며 안부를 물었지만, 그에 이성하는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꾸벅.
인사는 나중에 하겠다는 듯 고개만 숙이고는 안쪽으로 걸어갔다.
“서, 성하야?”
“재 왜 저래?”
저벅저벅.
진압대 선배들의 당황한 음성에도 흔들림 없이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걸어가 멈춰 선 곳은 구조대장인 권일섭의 앞이었다.
“출근하겠습니다.”
“출근?”
“네! 오늘부터 구조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처억.
정식으로 구조대로 복귀하겠다고 대장인 권일섭에게 복직신고를 올린 것이다.
“복귀? 할 수 있겠어?”
그 말에 권일섭이 고민되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이성하는 그 물음에 행동으로 대답했다.
저벅저벅.
자신의 자리는 이곳이라는 듯,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처억.
비어 있던 그 책상에 가지고 온 짐을 내려놨으며, 그 모습에 지켜보던 3팀 동료들이 후련한 웃음을 지었다.
“새끼…….”
“오래 걸렸네.”
이성하가 내려놓은 자리 때문이었다.
“성수 자리. 앞으로 네가 맡는 거냐?”
비어 있는 책상은 둘이지만 이성하가 짐을 내려놓은 자리가 오성수가 예전에 사용하던 자리라서였고, 그에 이성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 빈 자리는 제가 채우겠습니다.”
품속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들며 하는 말이었다.
꾸욱.
압정으로 꺼내든 사진을 파티션 벽에 고정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성하를 보며 사진 속 오성수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3팀에 빈 자리는 없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동료들은 물론이고, 먼저 떠난 오성수에게도 각오를 이야기하며 마음을 다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 권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지. 서장님께는 내가 말해 두마.”
3팀이 다시 제 모습을 찾는 순간이었다.
“축하한다.”
“이성하, 복귀 축하한다!”
짝짝짝짝!
그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대원이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으며, 그에 이성하는 비로소 입고 있는 근무복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다.
‘열심히 할게요. 선배.’
가슴에 묻은 선배의 몫까지 열심히 하기 위해, 다시 소방공무원의 사명감을 마음에 새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