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40화 (140/235)

<강철 소방대 140화>

140화. 빈 자리 (5)

“이게 무슨…….”

꿈이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현실이었다.

화르르르르!

엄마가 주무시고 계실 작은 4층 빌라가 순식간에 거센 불길에 잠겨 들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은평 소방서 이성하 소방교입니다. 상수동 337-19번지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 사고 발생. 현재 건물 외곽으로 불길이 확인되는 상황이고, 주변 건물과의 거리가 좁아 연소 확대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상수동 337-19번지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가…….”

아무런 장비가 없는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는 다른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게 최선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와장창!

불길의 온도를 견디지 못한 1층 창문이 일제히 터지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뿐만 아니라 더 거세진 불길이 빠르게 건물 외곽을 타고 오르며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전력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엄마, 일어나! 나와야 돼, 엄마!”

엄마는 물론이고 건물 안의 사람들이 모두 화재가 일어난 걸 알아채길 바라며 고함을 지른 것이다.

다행히 그 고함이 닿았는지, 건물 곳곳에서 불이 켜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맙소사, 일어나 여보. 불났어! 불!”

창문이 열리며 당황한 사람들의 고함이 건물 밖으로 흘러나왔고, 옆에 다른 건물에서도 불이 켜지며 소란을 피는 사람들의 고함이 울렸다.

“불이야, 나가야 돼!”

“혜미야, 일어나! 빨리 일어나!”

이성하의 고함 덕분에 다들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걸 알아채고, 하나둘씩 대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만든 이성하의 표정은 여전히 조급했다.

‘나올 길이 없어……. 어떡하지.’

불이 일어난 건물의 주민들이 대피할 길이 막혀 있었다.

화르르르르!

완전히 1층을 휘감으며 계단 입구까지 휘감은 거센 불길에.

“콜록, 콜록. 사, 살려 줘요!”

“허억. 불길 때문에 나갈 수가 없어요.”

잠시 창문에서 모습을 감췄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 고통 어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그에 밖으로 나온 다른 건물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저, 저기 사람 있어요!”

“모, 못 나온 거야? 저 사람들 어떡하지?”

“여보, 119 신고했어? 빨리 119 신고해!”

화재 난 건물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본 사람들의 우왕좌왕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제길, 안 돼.”

“못 들어가. 너무 뜨거워.”

가까이만 다가가도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불길에, 차마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용기를 보일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무리 속에서 이성하는 분통이 터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을 사리는 사람들에게 열 받아서?

아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움직여! 제발 움직이라고!’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덜덜덜덜.

“제, 제길.”

처음엔 괜찮았지만 불길의 열기를 느끼자마자 몸이 수시로 떨리고 있었다.

터억.

그럼에도 악착같이 이를 물고 한 걸음을 내디뎌 봤지만.

화르르르르!

눈앞으로 보이는 짙은 불길에 결국 주저앉았다.

“오지 마. 성하야.”

“서, 선배…….”

“와선 안 돼…….”

털썩.

어김없이 불길 속에서 고통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성수의 모습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구조대 위치 확인해! 어디까지 왔는지 빨리 확인해!]

렉스의 말처럼 방금 전 자신이 신고한 구조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사, 상수동 화재 신고한 은평소방서 이성하입니다. 현재 구조대 위치 어디쯤입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구조대가 현장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니까.

- 곧 염리 센터에서 출동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상황실 대원의 말에 이성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출동한 센터가 가장 가까운 서교 센터가 아닌, 꽤 먼 거리의 염리 센터였다.

그것도 출동 상태가 아닌, 이제야 출동하려는 상황.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교 센터는요? 근처에 마포 소방서는요?”

그에 당황해 가까운 소방서의 위치까지 거론하며 고함치듯 이유를 물었지만, 들을 수 있는 대답에 이성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서교, 마포 모두 지금 연희동 출동 중입니다. 음주운전 사고 때문에 차량 몇 대가 전복된 상황이에요. 그나마 염리 센터도 겨우 보낸 겁니다. 지금 그쪽도 화재사고가 발생해서 마무리하고 겨우 출발하는 겁니다.

“아…….”

하필 다른 곳에서도 사고들이 발생해, 모든 소방대가 출동에 나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으로 불길을 바라봤다.

화르르르르.

‘출동대가 없어…….’

꼭 이런 날이 있었다.

한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우후죽순처럼 다른 곳에서도 사고들이 터지는 불운한 날이.

그리고 그런 날에는 꼭 뒤처진 현장에서 사상자가 나오곤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으허허헝.”

자주 있던 일은 아니지만, 가족의 사망에 구슬피 울던 유족들의 모습에 아무 말을 못했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아, 안 돼!”

그랬기에 안 된다며 다시 걸음을 옮겨 보려 했지만, 몸은 여전히 그런 이성하의 의지를 거부했다.

‘으으으.’

조금만 다가가도 금방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맹렬한 불길에,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엄마…….’

그 불길 너머로 엄마가 보였다.

“아, 아들…….”

엄마 역시 자신을 봤는지, 자신과 엄마의 보금자리인 3층의 창문에서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그 순간 이성하의 다리는 거짓말처럼 앞으로 내디뎌졌다.

“엄마!”

불길 속에서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에, 그 뜨거움을 견뎌 내고 기어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이성하는 바로 뒤로 걸음을 돌렸다.

‘소화기가 필요해.’

두려움이 가시면서 머리가 차가워진 덕분이었다.

[진입로를 뚫는 게 먼저야.]

‘네, 알아요.’

렉스의 말처럼 진입로를 뚫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근처의 상가 건물로 빠르게 달렸고.

[여기!]

‘네.’

그렇게 도착한 건물에서 소화기 두 개를 챙겨 다시 집 앞으로 돌아왔다.

터어억.

열기 속에서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입고 있던 상의를 코끝까지 끌어올렸으며, 그렇게 다시 불길 앞으로 다가갔다.

‘불길 잡으면서 단번에 들어간다.’

건물 안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진입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우려의 소리를 내뱉은 건 당연했다.

“이봐, 학생 위험해요.”

“하지 마세요. 119 신고했으니까 금방 올 거예요.”

“맞아요. 그러지 마요.”

방금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하던 청년이 갑자기 소화기를 들고 불길 앞으로 다가서는 모습에, 다들 무모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한 중년 남성이 밝은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소방관! 저 친구 소방관이야, 소방관!”

이웃 주민인 탓에 이성하가 소방 근무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봤는지 확신하는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고, 그에 사람들의 시선에는 안도가 깃들었다.

“지, 진짜예요?”

“소방관?”

“다행이다. 저 사람 소방관이래.”

방화복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소방관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불길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렉스는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

[역시 아직 아니야. 무서워하고 있어.]

움직이고는 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이성하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아직 불길 속에 진입하지 않았는데도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이성하의 몸을 보면, 여전히 불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으니까.

렉스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성하야…….”

이성하는 아직도 불길 속에서 들려오는 오성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오지 마. 나처럼 될 거야.”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을 만류하는 오성수의 모습을.

하지만 바뀐 게 있었다.

‘아니요. 이번엔 구해 줄게요.’

바뀐 마음가짐이었다.

‘무조건 구할 겁니다. 꼭이요. 꼭.’

오성수든 그 어떤 요구조자든 이번엔 구하겠다며 희미한 웃음을 지은 채, 단번에 불길 속으로 진입했다.

쏴아아아아.

사람을 살리기 위해.

‘렉스 도와줘요. 모두 구할 수 있게.’

곁에 있는 유일한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오에 렉스 역시 대답했다.

[천장부터 잡아!]

단호한 표정으로 느껴지는 불길의 흐름을 이성하에게 전달했다.

[그다음 오른쪽!]

사람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화점을 이성하에게 전달해 계단의 불길을 잡는 걸 도왔고, 그에 이성하는 단번에 2층에 도달했다.

쏴아아아아!

“소방관입니다! 나오세요!”

2층에 도착해서도 끝까지 계단의 불길을 잡으며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오라며 고함을 질렀으며, 그렇게 건물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힘겹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온다!”

“사람들 나와요! 다 나오고 있어요!”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탄성만큼이나, 소중한 생명들이 하나둘씩 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향해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괜찮니…….”

엄마 강희은이었다.

“괜찮아요, 엄마. 빨리 나가요. 얼른.”

그런 엄마의 모습에 이성하가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은 엄마 희은을 더 슬프게 하는 말이었다.

“뭐가 괜찮아. 아프잖아. 아들. 맨날 꿈꾸잖아. 흐윽.”

그동안 매일 악몽 속에서 괴로워하던 아들의 모습을 익히 봐 왔기 때문이었다.

“서, 선배…… 으으으으.”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왔던 만큼, 이성하가 불길 속으로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안 봐도 두 눈에 선했으니까.

그랬기에 다급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팔을 잡았다.

“우리도 어서 가자. 아들.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아들을 이 불길 속에서 빼내기 위함이었다.

화르르르르!

이미 2층 창밖으로 새빨간 불길이 치밀어 오른 걸 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더 이상 빠져나갈 사람은 없는 듯했다.

“다 나갔어. 우리도 얼른 나가자, 아들.”

자신을 끝으로 더 이상 계단에 남은 사람이 없었기에,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빠져나갈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 4층 할머니 아직 안 나왔어요.”

계단 위쪽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이성하가 살고 있는 빌라는 4층짜리 빌라지만, 4층은 옥상으로 이뤄져 한 세대만 살고 있었다.

“제가 데리고 나와야 돼요. 아시잖아요.”

아직 사람이 있기에 아직은 나갈 수 없다며 엄마에게 웃음을 지었고.

“아, 아냐. 나가셨을 거야. 그래, 먼저 나가셨을 거야. 그러니까 아들. 우리도 나가야 돼.”

그 말에 안 된다며 이성하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이성하는 그 맘을 다 안다는 듯 엄마를 끌어안았다.

“우리 엄마 왜 이럴까? 아부지 아시면 놀리게.”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하는 말이었다.

“나 안 다쳐요. 금방 구해서 올게. 그러니까 엄마 먼저 나가자. 응?”

“흐윽. 하지 마…… 안 돼…….”

“에이, 왜 그래요. 얼른 내려가자. 얼른.”

끝까지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엄마를 부축해 1층까지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내보냈고, 그러고는 고민도 없이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무조건 구해서 올게요.”

끝까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화르르르르!

또다시 불길 속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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