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39화 (139/235)

<강철 소방대 139화>

139화. 빈 자리 (4)

* * *

이성하의 상태는 정식으로 서장에게 보고됐다.

“결국 그렇게 된 건가?”

“네, 중증이라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고.”

서장의 주도하에 병원 진료를 받았던 만큼, 보고와 사후 처리는 곧장 이뤄졌다.

“이성하.”

“네, 대장님.”

“서장님 지시다. 당분간 내부에서 재난관리과의 일을 돕도록 해.”

현장을 담당하는 현장대응단이 아닌, 내부에서 그를 보조하는 재난관리과의 내근직으로.

그리고 그 지시를 이성하는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재 자신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오롯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어.’

처음이었다면 부정하면서, 보직 변경을 취소해 달라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또 겁에 질렸어.’

직접 깨달은 자신의 상태 때문이었다.

덜덜덜덜.

불꽃을 보자마자 온몸을 감쌌던 공포가 아직까지도 몸에서 느껴지는 듯했고, 그 공포가 단발성이 아니란 걸 깨달은 이상 현장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나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현장에서, 그런 자신의 증상 때문에 동료들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정리했다.

“천천히 해.”

“아닙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더 이상 사무실에 있으면 미련이 남을 것만 같아서였다.

<구조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별 의미 없을 보직일지 모르지만, 이성하에게는 이 구조대 자리가 전부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돌아온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기필코 회복해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자고.

그리고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빠르게 바뀐 삶에 적응했다.

“이성하 반장. 소방용수 시설 점검 벌써 끝낸 거야?”

“네, 오전에 잠깐 시간이 남길래 그때 확인해서 끝냈습니다.”

“그래? 엄청 부지런한데?”

배치된 재난관리과의 대원들이 놀랄 정도로 빨리 업무에 적응했으며, 상황을 인정한 만큼 매주 정신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의용소방대 대원들과 나가서 제설 작업을 같이했습니다, 선생님.”

“제설이요? 그것도 소방관분들이 해요?”

“네, 저희랑 의용 소방대원들이 같이합니다. 자주는 하지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한다고 해요.”

“좋은데요? 많은 이들과 함께 일을 하는 건 현실과의 괴리감을 좁히는 데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잘하고 있네요. 성하 씨.”

틈틈이 하루의 일과들을 의사에게 이야기하며, 마음속에 깊게 자리하게 된 불길에 대한 공포심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치료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소방관의 PTSD는 완치율이 10%도 안 될 정도로 중증에 속하는 질환이었다.

화르르르르!

“허억.”

현장을 떠났음에도 매일같이 불길에 위협받는 악몽에 잠을 설쳤다.

“서, 선배…….”

꿈이 아닌데도 수시로 앞을 아른거리는 선배의 그림자에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치료를 받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음에도 점점 피폐해질 정도였다.

“이성하 반장.”

“…….”

“반장.”

“네?”

“잠깐 휴게실에 가서 쉬다 오게. 요즘 너무 무리했어.”

“아, 감사합니다…….”

일을 시키기 위해 불렀던 재난관리과의 과장이 한숨을 쉬며 휴식을 권할 정도로, 계속되는 악몽에 고통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라면 의지가 나약해서 그런 거라 폄하할 수도 있지만, 올해 PTSD의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의 숫자는 열둘이었다.

최근 5년간으로 집계하면 그 수는 41명으로 늘어났고, 그 기간 동안 현장에서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의 숫자가 그보다 적은 26명이란 걸 생각하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됐다.

“하…….”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저앉으며 한숨을 토해 낼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후배의 모습에 구조3팀 역시 괴로워했다.

“성하야, 괜찮냐?”

고통스러워하는 이성하의 모습에도 괜찮냐고 묻는 거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네,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음에도 자신들이 걱정할까 괜찮다고 대답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그래.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알았지?”

“네, 선배님.”

“그래. 괜찮을 거야…….”

그저 어깨를 토닥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들 속으로 깊은 울분을 토했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이 상황에 좌절하는 건 렉스였다.

[눈치채지 못했어.]

이성하가 행복할 수 있도록 친우나 다름없는 이성훈의 부탁을 받고 항상 곁에 있었음에도, 그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다.

[야이, 새끼야. 너 내가 하지 말랬지!]

‘하하하. 아무 이상 없잖아요.’

[어휴, 이걸 진짜.]

이성하가 무리를 할 때마다 조금 더 단호하게 혼내야 했는데도, 환하게 웃는 모습에 혼자 스르륵 풀어져 가볍게 넘긴 자신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에 렉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좋은 소방관이 되게 해 주겠다는 거야…… ]

이성훈을 대신해 보호자로서 좋은 소방관이 되게 해 주겠다며 스스로 다짐했음에도,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깊은 자괴감이었다.

더해, 이성하가 겪고 있는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거냐.]

그 역시 소방관인 만큼 한때 PTSD를 누구보다 깊게 겪어 본 경험이 있었다.

“안 돼. 마이크 버텨!”

“미안…… 더 이상 무리야…….”

“이 새끼야!”

“미안하다, 렉스.”

화르르르르!

“으아아아아아!”

수년, 아니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영혼 한 구석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고통의 기억에.

[크흑.]

이성하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익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역시 구조3팀과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 경험을 말해 줘 봤자 PTSD 증상만 더 심해지겠지…….]

PTSD는 시간이 답이었다.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피하려는 기억을 혼자 마주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게 PTSD였고, 그런 상황에서 렉스의 조언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아…….”

지금처럼 수시로 불안 증세를 겪는 상황에서 다른 이의 경험과 조언을 들어 봤자, 오히려 불안 증세만 심해지는 질환이 소방관의 PTSD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렉스는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오늘 밥 맛있겠는데?]

‘밥이요?’

[그래. 아까 보니까 너 좋아하는 제육볶음이더라. 오늘 한 세 접시는 비우냐?]

철저히 일상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만 꺼내 들었다.

[너 그러고 보니까 스키 좀 탄다고 하지 않았냐?]

‘어? 기억해요?’

[기억하지, 인마. 한때 여자 꼬드기려고 스키 열심히 배웠다며.]

‘아, 그건 제가 아니고 친구죠. 전 그냥 옆에서 따라 배운 거고.’

곁에서 항상 지켜 본 아들 같은 존재가 이성하였기에, 소방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꺼내며 틈틈이 이성하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에 이성하는 조금이나마 어깨를 짓누르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장님. 혼자 커피마시는 거 보니 오늘 대장님께 혼났나 봐요?”

“성하구나.”

“같이 마셔요. 외롭게 혼자 마시지 말고. 헤헤.”

“이 새끼, 진짜.”

덕분에 두어 달이 지나자 사무실에 혼자 찾아가 선배들에게 농담을 던질 정도로 꽤 나아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발전은 오로지 렉스만의 노력 때문에 이뤄진 건 아니었다.

“아들!”

매일같이 틈만 나면 이성하를 보기 위해 소방서로 찾아오는 엄마도 있었다.

“이놈 봐. 너 또 밥 안 먹었지?”

“아, 그게 좀 바빠 가지고.”

“네가 바쁘면 뭘 바쁘다고 그래. 너 식사 거르면 엄마 오늘 가게 안 가.”

“아, 알겠어요. 먹을게요.”

PTSD 진단을 받고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린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소방서로 찾아와 이성하가 딴생각을 품지 않게 달달 볶고 있었다.

“오늘도 파이팅해, 아들.”

“하하하. 그럴게요.”

엄마도 PTSD가 얼마나 지독한지 과거 아빠의 상황을 보았기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그런 엄마와 렉스의 노력 덕분에 이성하의 상태는 회복되는 듯 보였다.

“흐음. 좋네요.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그, 그런가요?”

“네, 제가 보기에도 감정 기복이 많이 줄어든 게 보여요. 물론 아직 현장은 무리지만 이렇게 천천히 다음 치료로 나가면 될 거 같아요.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성하 씨.”

처음만 해도 심각한 중증이라며 고개를 내젓던 의사가 웃으며 호전되는 게 보인다고 할 정도로, 꽤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니까.

물론 현장에 복귀하는 건 아직도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끄응…….”

아직 불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화르르르.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불길만 보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에.

덜덜덜덜.

다시 무섭게 온몸이 떨리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

하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았다.

[나아지고 있어. 의식을 잃는 경우는 없잖아.]

렉스의 말처럼 여전히 두려움은 느끼지만 예전처럼 정신을 잃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고, 그렇게 세 달이 지나갈 무렵 이성하는 문득 생각했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네.’

현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내근직으로 근무하는 모두를 도와주는 소방관의 삶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아들 왔어?”

자신의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밝아지는 엄마의 미소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 나가지 않는 만큼 다칠 일이 없다 보니 어머니의 얼굴 한편에 어려 있던 걱정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얼른 밥 먹자. 엄마가 고기 좋은 거 있어서 맛있게 삶아 놨거든.”

아직 PTSD를 겪고 있지만 아들이 더 이상 위험한 현장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힘들지만 결정할 수 있었다.

‘내일 대장님께 말씀드릴래요. 상황실로 보직 변경하고 싶다고요.’

언제 현장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행복해하는 엄마를 위해 완전히 내근직으로 보직 변경을 신청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3팀의 동료들이 알면 섭섭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직 변경만큼은 온전히 스스로의 생각으로 선택하고 싶었다.

‘아버지, 이해해 줄 거죠?’

무엇보다 존경하는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자 소방관이 된 거였기에, 선택을 하더라도 본인의 결정으로 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선택을 렉스 역시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 편할 대로 해.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자신이 이성하의 곁에 있는 이유가 오로지 그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생각에서였다.

현장직이든 내근직이든 이성하가 하고 싶은 걸 한다면 딱히 반대할 마음은 없었고, 그에 이성하는 사무실에서 빠르게 작성하던 서류들을 마무리했다.

‘곧 해가 뜨겠네.’

곧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은 다음 달에 있는 소방 행사 때문에 야근을 하던 상황이었는데, 마침 내일이 쉬는 날이라 아침 새벽까지 밀린 업무를 보던 참이었다.

‘슬슬 퇴근해 볼까.’

이 정도면 맡은 서류는 정리가 끝났다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 소방서를 나섰고.

“택시!”

“어디 가세요?”

“상수역 방향으로 가 주세요.”

그렇게 서를 나가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알면 좋아하겠지?’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자신이 내근직으로 근무하는 걸 좋아하던 엄마에게 바라던 소식을 들려 드린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상수역에 도착해 몇 걸음을 내딛는 순간.

“……!?”

오랜만에 느끼는 심장을 옥죄는 통증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현장에서 위험한 상황에서나 느꼈던 그 통증에, 정신없이 집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아, 안 돼…….’

눈앞에 불길이 있었다.

화르르르르!

금방이라도 주변을 모두 태울 것 같은 새빨간 불길이.

“어, 엄마!”

자신과 엄마의 보금자리가 거친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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