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38화>
138화. 빈 자리 (3)
* * *
불광동에서 일어난 건물 화재는 빠르게 진압되기 시작했다.
“1층부터 잡아!”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
빠르게 출동한 것도 있지만 정확한 주수 덕분에 지하에서 발생한 불길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화아아……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에 건물 주변으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도 빠르게 사라지며 상황은 마무리됐다.
“요구조자는?”
“없었습니다.”
“오케이. 그럼 잔불 확인하고 철수한다!”
“알겠습니다!”
화재 진압은 물론, 내부에 구출할 요구조자도 없다는 게 밝혀짐에 따라 현장을 마무리하고 귀서의 과정을 밟은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서로 돌아가는 모두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
아무 부상자 없이 출동을 마무리했음에도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어떤 거 같아?”
“어떻겠어요? 심각하죠…….”
진압대의 한 소방관이 선배의 대답에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녀석…… 아까 어땠는지 기억도 못할 겁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으니까요.”
자신이 타고 있는 펌프차 뒤쪽으로 달리는 구조버스를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구조버스에 탄 이성하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말해 줘요, 선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왜 아무 기억이 없죠……?”
분명히 창문을 깨라는 권일섭의 지시에 움직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쏴아아아아!
“좋아, 거의 다 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불길을 다 잡아 가는 진압대 선배들의 뒤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마무리되어 가던 그 현장에서 자신은 오롯이 분리돼 있었다.
“혹시 저, 정신 잃었어요?”
“…….”
“대답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모두가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은 상황에서, 자신만 홀로 깨끗한 방화복을 입은 채 앉아 있었다.
항상 다 함께 불길을 끄던 그 장소에, 자신이…… 없었다.
“…….”
모두가 씁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저 걱정만 가득한 그 눈빛에.
“아니, 말을.”
답답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려 했지만, 그 순간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에 이성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PTSD다…….]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렉스의 말이었다.
‘PTSD…….’
[너 오성수 부르면서 쓰러졌어…….]
자신이 어떻게 쓰러졌는지를 씁쓸한 목소리로 렉스가 설명했고, 그에 이성하는 비로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선배…….’
불길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오성수의 모습이 다시 떠오름에.
덜덜덜덜.
다시 겁을 집어먹고 온몸을 무섭게 떨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하!”
“성하야! 야! 인마!”
그 모습에 권일섭과 허석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몸을 잡았지만, 그 떨림을 멈출 순 없었다.
“아, 안 돼!”
그때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콰콰쾅!
“안 돼! 선배!”
오성수가 있던 건물이 무너지던 그때의 순간이.
“이성하, 정신 차려!”
“이성하!”
정신없이 자신을 흔드는 선배들의 모습에.
“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방금까지 자신이 본 게 환상이라는 걸 깨닫고 바로 정신을 차렸지만, 그 모습은 선배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제길…….”
“하…….”
지금 이성하가 보이는 모습은 자신들이 아는 PTSD 증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권일섭은 서에 도착하자마자 서장실로 뛰어올라갔다.
“서장님. 저희 대원 중 한 명이 PTSD인 거 같습니다.”
상황을 보고 하기 위함이었다.
“PTSD? 누구? 허 부장이야? 아니면 이 반장이야?”
“이성하입니다.”
“끄응…… 확실한 거야?”
“네, 확실합니다. 방금 현장에서 불안장애 증상을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인상을 찡그리며 확실하냐고 확인하는 서장의 물음에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서장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이성하 데리고 바로 병원부터 가.”
이성하의 정신과 검사였다.
“서장님, 그 전에 PTSD 전담 대원한테 상담부터 받게 하는 게…….”
그 말에 같이 있던 유상명이 서마다 한 명씩 있는 PTSD 전담 대원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서장의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PTSD 전담 대원은 무슨. 바로 병원부터 가.”
말이 PTSD 전담이지, 사실 서에 오래 근무한 진압대원이니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서였다.
“가능한 빨리 치료 받아야 돼. 안 그럼 그놈 진짜 심각하게 고장날 거야.”
그 역시 한때 현장을 담당했던 소방관으로서, PTSD 환자에게 빠른 병원 치료만큼 좋은 치료가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의를 권일섭은 거부하지 않았다.
“필주야. 성하 데리고 병원 다녀올게. 이성하 넌 빨리 나 따라오고.”
“그, 그게…….”
“빨리!”
“네…….”
팀장인 김필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바로 이성하를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했으니까.
다행히 진료엔 큰 어려움이 있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그간 몇 번의 인연으로 친해진 김민정의 도움 덕분이었다.
“허석훈 소방관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제가 대신 접수했으니까 접수처에서 사인만 하시면 돼요.”
허석훈의 연락을 받았다며 이성하가 빠르게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접수처로 안내했고, 덕분에 이성하는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대기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PTSD라면서요. 그럼 빠르게 진료 받아야죠.”
서두른 권일섭 덕분도 있지만, 미리 연락을 받은 김민정이 빠르게 접수를 도운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이 모든 상황이 귀찮았다.
“대장님. 저 진짜 괜찮습니다. 민정 씨 정말 괜찮아요. 아까는 잠깐 현기증 났던 거예요.”
권일섭과 김민정이 너무 유난을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괜찮기는 무슨. 잔말 말고 진료 받아. 너 지금 심각해, 인마.”
그 말에 권일섭이 허튼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이성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잠깐 피곤해서 그런 거예요. 보세요. 아무 문제없잖아요.”
아까 겪은 환상이 정말 꿈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김민정의 생각은 달랐다.
“안 돼요. PTSD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서 그래요?”
김민정은 예전 이성하에게 부탁을 받고 동료 의사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선배님. 혹시 소방관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상담해 보신 적 있어요?”
“소방관? 해 봤지. 그런데 소방관은 왜?”
“아는 지인이 소방관인데 구하려던 요구조자가 눈앞에서 바로 사망했대요. 그래서 요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데, 그 PTSD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궁금해서요.”
이름은 모르지만 이성하의 동기 중 한 명이 PTSD를 겪는다는 말에 평소 친분이 있는 정신과 의사 선배에게 찾아가 그에 대한 상담을 구했고, 그렇게 듣게 된 내용에 할 말을 잃었다.
“흠, 소방관이면 꽤 증상이 심각할 텐데.”
“얼마나요?”
“단순히 비교하면 전쟁에 나간 군인 다음 정도? 원래 PTSD 환자 대부분은 불안 증세와 대인 기피증 정도로 끝나지만, 소방관들은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다 보니, 그 증상이 남들보다 더 심해. 자살까지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자, 자살이요……?”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단순 불안 증세가 아닌, 자살까지 시도한다는 선배의 말 때문이었다.
“응. 소방관들이 겪는 PTSD는 정말 만만한 게 아니야. 남들이 두려워하는 불길 속으로 직접 걸어가는 사람들인 만큼, 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해. 거기다 생명을 구하는 게 그들이잖아. 만약 눈앞에서 사람을 잃었다면 두려움에 그치는 것만이 아닌 죄책감까지 느끼게 돼.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거지. 내가 3년 전에 맡았던 환자가 그 경우였어. 현장에서 동료를 잃고 PTSD를 겪는 소방관 환자였는데, 결국 자살했어.”
“…….”
“견디지 못한 거야. 동료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단순한 이론적 접근이 아닌,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말하며 씁쓸하게 웃는 선배의 모습에 아무 말을 못했으며, 그랬기에 김민정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꼭 받아요. 꼭이요. 꼭.”
이성하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르지만, 그때 들었던 선배의 말을 생각하면 무조건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게 이성하의 상태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지금 병원에 있는 게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받아, 인마. 그냥.]
“네, 받을게요.”
렉스마저 무조건 진료를 받으라는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지금은 전혀 이상이 없는 몸 상태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나서부터는 그 생각이 달라졌다.
“흠……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하지만 꽤 심각한 중증입니다.”
이성하의 상태를 듣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의사의 표정 때문이었다.
“……중증이요?”
“네. 일반적인 불안 증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순간적으로 기억까지 잃었다는 건 방어기제가 꽤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거예요. 성하 씨의 몸이 그 상황을 버티지 못한다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말인데 아마 제 생각으로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된 PTSD 같습니다.”
“그게 무슨…….”
“단발적인 PTSD가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는 소방관으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아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입은 정신적 데미지가 머릿속에 많이 누적된 걸로 보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시라 저도 성하 씨를 아는데, 그간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부상을 입은 상황이 많았잖아요. 저희 병원에도 꽤 여러 번 입원했고요.”
지금 이성하의 PTSD가 이번 오성수의 사망 때문만이 아닌, 그 전부터 겪어 온 정신적 데미지가 누적돼서 발생한 거라 설명했고, 그에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자리해 있던 권일섭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
지금까지 이성하가 겪어 온 재난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라서였다.
콰콰쾅!
“이성하!”
콰르르르르!
“제기랄! 뛰어!”
그때도 아찔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 재난들의 상황이.
그걸 생각하면 지금 이성하의 상태는 이해가 됐다.
‘괜찮은 게 아니었어. 그동안 쌓여 왔던 거였어…….’
지금까지 운 좋게 넘어왔지만 그간 이성하가 헤쳐 온 현장들은 경험이 얕은 소방사 따위가 감당할 정도로 만만한 사고들이 아니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권일섭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이성하를 책임지는 대장으로서, 왜 그 상태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는지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아직도 그 심각성을 알아듣지 못한 듯 보였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심각하진 않습니다. 선생님.”
정신과 의사의 말에 PTSD 상태라는 건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그렇게 심한 상태는 아니라며 웃으며 대답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의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일을 그만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지금 상태로 현장에 나가는 건 위험해요.”
안타까운 눈으로 이성하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일을 그만두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말에 이성하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의사는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행동으로 대답했다.
“현재 환자 분의 상태를 보여 드릴게요.”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찰칵.
“왜 성하 씨에게 휴식이 필요한지를요.”
라이터를 켜 피어오른 작은 불꽃을 이성하의 앞에 갖다 댔고.
“지금 뭐하시는.”
그에 피식 웃으며 뭐라 말하려던 이성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게 무슨…….”
작디작았던 라이터의 불꽃은 순식간에 병실을 채워 나갔다.
화르르르!
“으으으.”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하는 불길에 저도 모르게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설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의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휴식만이 답입니다. 쉬셔야 돼요. 정말 위험합니다.”
틀리길 바랐지만, 작은 불꽃만으로도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이성하의 모습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사의 말에 이성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 채 진료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덜덜덜덜.
아직도 불꽃을 본 충격을 해소하지 못했으니까.
“성하 씨. 괜찮아요. 치료하면 돼요. 그때 동기 분처럼 치료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 모습에 밖에서 기다리던 김민정이 상황을 짐작하고 어떻게든 다독이려고 애썼지만, 그 위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후…… 서에 말해 둘 테니까. 오늘은 일단 들어가서 쉬어. 내일 이야기하자. 성하야.”
집에 가서 쉬라는 권일섭의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 내일 뵙겠습니다…….”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권일섭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막연히 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무작정 걸어서 도착한 곳은 병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엄마의 순댓국집이었다.
“어머, 아들 무슨 일이야? 아직 근무 시간 아니야?”
그런 이성하의 등장에 엄마가 환한 표정으로 다가왔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웃을 수 없었다.
“……엄마, 저 소방관 못한대요. 저 어떡하죠?”
항상 자신과 함께하던 근무복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