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35화 (135/235)

<강철 소방대 135화>

135화. 사명 (4)

“서, 선배? 선배 맞아요?”

그 목소리에 이성하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무전을 보냈지만, 들려오는 오성수의 목소리는 좋지 못했다.

- 어, 나야……

고통이 섞인 목소리였다.

- 하하…… 미치겠네. 진짜.

평소와 달리, 마치 고통을 참으며 웃음을 토하는 듯한 오성수의 목소리에 이성하는 고함을 질렀다.

“대장님!”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들을 향한 고함이었다.

“장비 챙겨!”

“실린더 교체해. 바로 진입 준비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배들이 누구보다 빨리 다시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성하 역시 벗어 뒀던 장비를 챙기며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지하 맞죠? 조금만 버텨요. 금방 진입할게요. 선배.”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상태가 좋지 못한 오성수의 목소리에, 최대한 빨리 건물 진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안 돼. 들어오지 마.

그 순간 들려오는 오성수의 무전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가 자신들의 진입을 반대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요?”

당황한 마음에 다시 물었지만.

- 들어오지 말라고. 이미 늦었어. 대장님, 안 돼요. 절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미 늦었다며 대장인 권일섭에게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오성수의 무전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배 미쳤어요! 들어오지 말라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 말에 답하는 이성하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의 뜻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성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투욱. 투욱.

“어쩌겠냐…… 진짜 늦었는데.”

헬멧 위로 떨어지는 돌가루 소리를 들으며 자조 어린 웃음을 지었다.

그그그극.

그 웃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질 것처럼 괴음을 토했고, 그런 곳에서 오성수는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다리에 감각이 없네…….’

거대한 콘크리트가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입할 때만 해도 별로 크지 않던 불길은 매섭게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사실상 이런 상황에서 구조는 불가능했다.

‘지하란 말이지…….’

불길도 문제지만, 딱 봐도 중장비가 있어야 들 만한 콘크리트에 깔린 게 오성수가 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오성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러냐…….’

가볍게 나선 수색이 이런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사실 그렇게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다.

‘소리만 확인하자. 소리만.’

진압대원에게 말한 것처럼 오성수는 정말 소리의 정체만 확인하고 돌아갈 마음이었다.

다른 층과 달리 지하의 경우엔 크게 불이 확산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달그락. 달그락.

다시 자신의 귀로 들리기 시작하는 저 소리의 정체만 확인할 마음이었고, 실제로도 크게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에이, 뭐야. 물건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별거 아니었네.”

문제의 소리가 화재로 인해 선반 위에 있는 박스가 불타올라,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걸 확인하고 바로 걸음을 돌렸던 것이다.

하지만 오성수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화르르르르!

그 순간 1층은 이미 오래 지속된 화재로 인해 한계에 이른 상황이었다.

끼기기긱.

콰직!

“무슨 소리?”

때문에 고열을 견디지 못한 1층의 바닥이 천천히 붕괴의 과정을 밟고 있었고, 하필 가장 먼저 시작된 붕괴가 오성수를 덮쳤다.

와르르르!

오성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천장이 무너져, 떨어지는 콘크리트 자재에 매몰된 것이다.

“커헉.”

그리고 그 충격에 오성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동료들에게 전달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의식을 회복한 게 방금이었다.

- 성수 선배! 어디예요! 응답하라고! 성수 선배!

포켓에 넣어 둔 무전기에서 고함치듯 울리는 이성하의 목소리에.

“끄으으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뜰 수 있었고, 그렇게 확인한 상황에 절망했다.

“하…… 아프네…….”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콘크리트는 물론, 주변을 감싼 매서운 불길의 모습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물론 포기한 건 아니었다.

“허억, 허억.”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다리를 짓누르는 콘크리트를 잡았다.

“끄으으!”

어떻게든 그 콘크리트 더미를 들어내기 위해 양손에 온 힘을 불어넣었고, 그에 다리를 짓누르던 콘크리트가 들썩였다.

드드득-

“으아아아아아!”

온 힘을 쏟아 붇는 오성수의 노력에 서서히 콘크리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들썩.

콘크리트가 허락한 건 말 그대로 약간의 움직임이었다.

“끄아아아아!”

아무리 힘을 내서 밀어 봐도 그 이상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에 오성수는 무전을 잡았다.

“성하냐…….”

- 서, 선배? 선배 맞아요?

“어…… 나야…….”

놀라는 이성하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하…… 미치겠네. 진짜.”

어떻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고, 그러다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나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는 상황에 두려움이 차오른 것이다.

그랬기에 무전으로 들리는 소리들이 너무 고마웠다.

- 오성수 이 새끼야!

- 장비 챙겨!

- 실린더 교체해. 바로 진입 준비한다!

자신의 상태를 짐작하고 바로 진입을 준비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져서였다.

- 지하 맞죠? 조금만 버텨요. 금방 진입할게요. 선배.

맨날 겁 없이 날뛰는 건방진 후배가 준비하는 모습 또한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짐에.

씨익.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됐다.

그그그극.

천장에서 토해지는 괴음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투둑. 툭. 툭.

떨어지던 돌 부스러기 역시 무서운 기세로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고, 그에 오성수는 다시 무전을 잡았다.

“안 돼. 들어오지 마.”

이런 곳에 동료들을 들어오게 할 수 없었다.

- 뭐, 뭐라고요?

“들어오지 말라고. 이미 늦었어. 대장님, 안 돼요. 절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당황한 이성하의 음성에도 권일섭을 부르며 절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당부했고.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배 미쳤어요! 들어오지 말라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에 이성하가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오성수의 대답은 같았다.

기기기긱.

파캉!

서서히 무너지는 천장의 모습이 눈으로 보이기에.

“이미 늦었어. 붕괴 시작됐어. 들어오면 다 같이 죽게 될 거야.”

굳은 마음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동료들에게 무전을 보낸 것이다.

- 너 그게 무슨 소리야!

- 정확한 상황만 말해. 현재 정확히 어떤 상황이야!

- 오성수!

그 무전에 불안함을 감지한 동료들이 정신없이 흥분한 목소리를 토해 냈지만, 오성수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크흑.”

무서웠다.

와르르르.

붕괴가 시작돼 눈앞으로 떨어지는 천장의 잔해에.

‘안 돼. 그러면 안 돼.’

저도 모르게 동료들에게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지를 것만 같았으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휘이익.

그랬기에 오성수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손에 든 무전기를 멀리 던졌다.

멀리 날아가 떨어지는 무전기의 모습에 잠깐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선배들도. 성하 녀석도 이렇게 했을 거야.’

동료들도 자신의 상황이었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고, 그렇게 무전기를 던지고는 품 안으로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하하.”

지갑 안에 넣어 뒀던 사진을 보기 위함이었다.

“유경 씨 미안해. 약속 못 지킬 거 같아. 우리 꼬물이 얼굴도 못 보고 가서 어떡하지.”

사랑하는 연인의 사진과 함께 있는 둘만의 결실을 보며 돌아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죄했고.

“안 그래도 어제 전화하고 싶더라. 진짜 미안해. 엄마…….”

그다음으로 보이는 가족사진을 보며, 부모님께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대장, 팀장님, 석훈이 형, 성하.”

마지막으로는 길현대 시절부터 끈끈하게 함께해 온 동료들을 부르며 그리운 웃음을 지었으며, 그렇게 혼자된 공간에서 오성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와르르르르.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 동료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작별을 고한 것이다.

하지만 구조3팀은 그런 오성수를 포기할 맘이 없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권일섭이 눈에 불을 켜며 주차장 입구를 향해 달린 건 물론.

“오성수!”

“이 새끼!”

“성수 선배!”

이성하를 비롯한 대원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으니까.

그런 구조 3팀을 서대문서의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너희들 미쳤어!”

“안 돼! 물러나!”

“권 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화르르르르!

어느새 거센 불길이 모든 층을 불태우고.

콰콰쾅!

그것도 모자라 몇 군데의 창문에서 폭염이 터져 나왔다.

와장창! 파캉!

“제길, 대피해!”

“모두 뒤로 물러나!”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듯 건물 곳곳의 외벽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으며.

“안 돼! 성수 녀석이 저 안에 있어!”

“놔! 저 안에 있다고 새끼들아!”

그럼에도 구조3팀은 오성수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리는 소방관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지하로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그그그그극.

파가각!

더 이상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물류창고가 단번에 우그러지며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저 처참한 잔해 속에 방금까지도 대화를 나누던 선배가 그대로 매몰됐단 의미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동료들과 함께 아직도 불타고 있는 잔해들을 맨손으로 파헤쳤다.

“성수 선배, 어디 있어요! 성수 선배!”

“오성수 대답해! 제발 대답해! 대답하라고, 이 새끼야! 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오성수의 이름을 부르며 무너진 잔해를 파헤치며 오성수의 이름을 불렀고, 그 모습은 현장을 파헤치기 위해 중장비 팀이 도착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살아 있어.”

“이렇게 쉽게 갈 선배가 아니야. 분명히 살아 있을 거야.”

손이 찢어지건 말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며 오성수의 흔적을 찾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 시간 후, 그런 이성하를 맞이한 건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온 오성수였다.

“서, 성수 선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며 눈을 감은 오성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다른 구조3팀 모두 마찬가지였다.

“성수야…… 일어나……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일어나, 성수야…….”

“선배님…… 그만하세요…….”

“뭘 그만해! 성수가 이렇게 갈 놈이 아니야. 이 새끼 다음 달에 결혼식 있다고. 곧 결혼한다고 매일 웃던 놈이란 말이야. 지금도 웃고 있잖아. 결혼해야지. 으허허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웃고 떠들던 동료가 이렇게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것에 다들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으니까.

그리고 그런 구조3팀의 머리 위로 하얀 눈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려 주겠다는 듯 거세게 내렸지만, 그 눈발은 결코 구조3팀의 눈물을 가릴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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