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34화>
134화. 사명 (3)
* * *
한편, 3층에 진입한 구조대는 차츰차츰 불길을 잡으며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수!”
“네!!
쏴아아아아!
권일섭의 지시에 이성하와 지원으로 붙은 진압대원 한 명이 앞장서 필사적으로 길을 뚫었고, 그런 노력에 구조3팀은 기어코 고립된 요구조자들을 만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콜록, 콜록.”
“괜찮으십니까?”
“괜찮…… 콜록, 콜록.”
“전원 보조 마스크 착용시키고 상태 파악한다! 빨리!”
“네!”
다들 유독가스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긴 하지만, 다행히 요구조자들이 의식을 잃기 전에 도착해 순식간에 보조 호흡기를 착용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련의 상황을 정리한 권일섭은 김필주와 지원으로 붙은 진압대원만 남겨 두고 팀을 두 개로 나눴다.
“석훈이랑 성민이는 오른쪽, 성하랑 동민이는 왼쪽 수색한다.”
건물에서 탈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요구조자 수색을 하기 위함이었다.
“콜록, 콜록. 삼 층에는 남아 있는 인원은 여기 있는 우리가 전부입니다.”
그 모습에 관리자로 보이는 이가 여기 있는 인원이 전부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권일섭의 명령은 변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훑고 돌아온다. 일 있으면 무전 치고.”
선임대원 역할을 맡긴 허석훈과 이성하를 향해 매서운 눈빛으로 각 방향을 가리켰으며, 그에 두 사람은 대답과 동시에 자신들에게 딸린 후배들을 데리고 맡은 방향으로 흩어졌다.
“도성민, 가자.”
“넵!”
“마동민!”
“알겠습니다!”
관리자의 말대로 추가로 구할 요구조자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탈출 전에 모든 구역을 확실하게 수색한 것이다.
그렇게 모든 구역 수색이 끝나고, 다행히 더 이상 남아 있는 요구조자는 없었다.
- 우측 없습니다.
- 좌측도 없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졌던 허석훈과 이성하가 남은 요구자조가 없다는 무전을 보내왔다.
“확실해? 꼼꼼히 체크한 거 맞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권일섭이 다시 한번 물었지만.
- 없습니다.
-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하와 허석훈 모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더 이상의 요구조자는 없다고 다시 대답했다.
“여기는 은평 구조대. 3층에서 요구조자 8명 확보하고 이제 빠져나가겠습니다. 진입로 쪽 주수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에 권일섭이 밖에 있는 지휘팀장에게 바로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작하겠다는 무전을 보냈으며, 잠시 후 수색을 위해 흩어졌던 대원들이 돌아오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나간다! 준비해!”
상태가 가장 위중한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하는 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 권일섭을 따라 다른 대원들 역시 요구조자들을 부축하며 움직일 준비를 했고.
쏴아아아아!!
잠시 후 깨진 창문을 통해 물줄기가 쏟아지는 모습에, 모두가 전력을 다해 들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모두 앞만 보고 간다.”
“요구조자들 확실히 챙겨!”
“불길 조심해!”
“알겠습니다!”
이제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끝난다는 사실에, 모두 정신없이 걸음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나가는 길은 들어오는 길보다 어려웠다.
“대장님. 막혔습니다. 여기선 돌아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불길 때문이었다.
쏴아아아아!
밖에서 깨진 창문을 통해 열심히 불길을 진압하고 있지만.
화르르르르!
탈 것이 많은 물류 창고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불길이 더 거세진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대원들은 침착했다.
“좌측! 좌측으로 길 뚫어서 이동한다!”
길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었다.
“주수!”
“네!”
쏴아아아아아!
대장인 권일섭의 지시에 이성하와 진압대원이 악착같이 다시 길을 뚫었고.
치이이익.
“끄으으으.”
“허억. 허억.”
그 과정에서 이성하를 비롯해 몇몇 대원이 열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구조팀은 무사히 입구까지 되돌아 나올 수 있었다.
“은평서 입구 도착 완료했습니다. 요구조자 전원 무사합니다.”
바로 지휘 팀장을 향해 무전을 날리는 권일섭의 모습처럼, 한 명의 낙오 없이 모든 요구조자를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와 전혀 다른 상쾌한 공기에 이성하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휴…… 위험했어.’
탈출 도중 느꼈던 심장의 압박 때문이었다.
‘크윽.’
요구조자를 데리고 나오는 도중 순간적으로 심장을 옥죄는 느낌을 받았었고, 그에 이성하는 말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 불길을 뚫었다.
‘나가야 해. 빨리 나가야 해.’
쏴아아아아!
그 느낌을 받을 때마다 일이 터진다는 걸 자각했기에, 한시라도 빨리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길을 만들었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이번 위기 역시 그 노력 때문에 무사히 넘긴 듯 보였다.
[그래. 다행이야. 나는 또 큰일 일어나는 줄 알았잖아. 어휴, 저기서 일 벌어지면 끔찍하다. 끔찍해.]
렉스 역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항상 문제가 생기던 평소와 달리 동료들과 요구조자 모두 큰 부상 없이 빠져나온 상황이었다.
“팀장님. 4층 상황은 어떻습니까?”
- 4층도 빠져나오는 중이네. 요구조자의 숫자가 좀 많긴 하지만 3층보다 불길이 약해서 문제없을 거 같아.
권일섭과 지휘팀장의 무전 내용을 들어 보면 4층에 진입한 구조대의 상황도 큰 문제는 없을 듯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웃으며 건물을 나올 수 있었다.
“구급대! 이쪽입니다! 이쪽!”
요구조자들의 응급처치를 위해 달려오는 구급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며.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달려온 구급대에게 요구조자들을 인계하고는 그제야 얼굴에 찬 면체를 벗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냐, 성하야. 고생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주어진 임무를 모두 끝마치고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밝은 얼굴로 동료들과 웃음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어라, 성수 선배 어디 있죠?”
분명히 먼저 나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오성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성수? 야, 오성수. 너 지금 어디야?”
그제야 오성수의 빈자리를 확인한 허석훈이 바로 무전기를 들어 오성수를 불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야, 오성수 어디야? 대답 안 해?”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김필주가 이어서 무전을 했음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자,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이 새끼 아직 안 나온 거 아냐?”
“에이, 설마요.”
“그럼 왜 무전을 안 받아?”
아무리 무전을 보내도 회신이 없는 상황에, 오성수가 혹시 지하에서 나오는 도중 사고가 발생했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아까 지하에 진입한 대원 찾는 거면 저쪽으로 가던데요.”
그런 구조팀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구급대원이 건물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쪽이요?”
“네. 아까 지휘막사 들렀다가 방화복 입은 채로 저쪽으로 가더라고요. 화재 진압하는 거 도와야 한다고요.”
직접 이야기를 들었는지 화재 진압을 돕기 위해 이동했다며 구급대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대원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가 진짜. 말도 안 하고 거기 가서 뭐 하는 거야?”
“원래 성수가 그렇잖아요. 괜히 할 거 없나 해서 도와주러 갔나 봐요.”
“아, 이놈 라면이나 좀 챙겨 달라니까. 너무하네.”
평소 오성수의 오지랖 넓은 행동을 잘 알아서였다.
‘진압대 도우러 갔구나.’
이성하 역시 그 말에 안도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현장에서만큼은 가끔 타 팀의 업무를 돕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게 소방관 오성수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무전이 안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진압대는 주수 중이네. 그래서 못 들었나 보다.]
렉스의 말처럼 주수를 하는 상황에서는 관창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에 무전기의 소리가 먹히는 상황이 되기 충분했으니까.
‘아니면 또 혼선 났을 수도 있죠. 이거 맨날 이러잖아요.’
그게 아니라도 툭하면 먹통이 되는 무전기의 상태를 보면 이번에도 같은 상황인 듯 보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잠깐 건물 뒤편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대장님, 일단 쉬고 계세요. 저희가 찾아볼게요.”
자리를 비운 오성수를 대신해 반장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동민아. 너는 저쪽 가서 성수 선배 있나 확인하고 와. 있으면 우리 온 거 알려 드리고.”
“알겠습니다.”
막내인 마동민에게는 확실히 하기 위해 오성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오라고 보냈으며.
“성민이 형. 형이 선배들 물 좀 챙겨 줘요.”
“응. 알았어.”
동기인 도성민에게는 의용소방대 막사를 가리키며 선배들이 마실 물을 부탁하고는, 자신은 지휘막사로 향했다.
“쉬고 계세요. 전 인식표 챙기러 다녀올게요.”
“오케이. 고맙다. 성하야.”
“아닙니다. 금방 다녀올게요.”
구조가 끝나면 서로 복귀하기 위해 철수 준비를 하는 게, 반장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건 아니지만, 인식표는 현장에서 나오면 바로 회수하는 게 원칙인 만큼 미뤄서는 안 될 일이었다.
[빨리 빼 오자. 괜히 지휘 팀 헷갈리게 하지 말아야지.]
렉스의 말처럼 지휘 팀이 위험한 현장에 몇 명의 대원이 활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게, 소방관들이 현장에 진입하기 전 지휘막사의 상황판에 인식표를 걸어 두는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막사에 도착한 이성하는 걸려 있는 인식표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곱 개…….”
상황판에 걸려 있는 은평서 소방관의 인식표는 여섯이 아닌 일곱이었다.
<권일섭>, <김필주>, <허석훈>…… <오성수>
권일섭으로 시작해 걸려 있는 인식표 줄에 마지막으로 오성수의 인식표가 걸려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마동민, 성수 선배 거기 있어?”
- 네?
“성수 선배 거기 있냐고! 빨리 확인하고 응답해!”
오성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럴 거야. 급해서 잊고 간 걸 거야.’
상황판에 걸려 있는 오성수의 인식표를 바라보며 간절한 표정으로 마동민의 무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들려온 말은…….
- 어, 없습니다. 여기 안 왔다고 합니다. 여기 왔다는 사람 성수 선배가 아니라, 성수 선배랑 같이 진입했던 진압대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미친.”
그 대답에 이성하가 성난 표정으로 그대로 지휘막사를 뛰쳐 나갔다.
끔찍하게도 믿기 힘든 현실이지만, 마동민의 말대로라면 아직 오성수가 건물 안에 남아 있었다.
그랬기에 바로 선배들에게 뛰어가며 무전기를 잡고 고함을 질렀다.
“성수 선배! 어디에요! 지금 어디 계세요!?”
어떻게든 오성수가 응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성수 1980, O형>
손에 들린 선배의 인식표가 불길하게 번뜩이는 모습에.
“응답하라고! 성수 선배 어디예요!”
제발 오성수가 무전에 응답하길 바랐으니까.
- 성하냐……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마음을 이해라도 하듯, 무전기에서 그토록 원하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