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32화 (132/235)

<강철 소방대 132화>

132화. 사명 (1)

이번 박민규에 대한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소방관에 대한 공상과 의료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소방관 공상. 이대로 그냥 두어도 되나?>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소방관들>

<암에 걸리게 된 증거를 본인이 직접 입증하라>

이슈는 이슈를 낳는다 했던가. 대세를 읽고 김정호 외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이에 대한 상황을 조사하며 기사들을 계속 뽑아냈고.

그 결과 다음 달 열린 정기 국회에서 논란이 된 공상과 의료법에 관한 법 조항이 전면 수정될 정도였다.

● 경찰·소방관 관련 공무상 상해 인정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

● 재난, 재해 현장에 3년 이상 종사한 공무원이 질병으로 장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인사혁신처장이 지도록 한다.

● 응급 상황 발생 시, 상부에 보고 후 119대원이 할 수 있는 응급처치 규제를 전면 해제한다.

● 구급대원의 응급 처치 활동으로 발생하는 공무상 책임은 상급기관인 소방청에서 책임진다.

국민들의 시위와 언론에서 집중 포격하는 날선 비판에, 그동안 눈치만 보던 국회의원들이 빠르게 백기를 들어 수정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켰던 것이다.

덕분에 현재 전국의 소방서들은 바빠진 상태였다.

“우리 서 관할에서는 새로 공상 올린 사람 몇 명이나 돼?”

“총 여섯입니다.”

“여섯이나 돼?”

“우린 적은 편이죠. 바로 옆 서대문구는 열이 넘는데요.”

그동안 공상이 거부돼 비용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소방관들의 전수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열이나 돼? 개판이구만.”

“그럼요. 저번에 기사 보니까 지난 10년간 공상 거부당한 인원만 대략 600명 정도 된데요. 암환자는 그냥 전부 불승인된 거나 마찬가지고요.”

권일섭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김필주의 말처럼, 그동안 어지간한 공상 승인은 대부분 거절당한 게 소방관의 현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대원들의 얘기를 듣던 권일섭이 신기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다.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대단하긴 대단하네.”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이 상황을 바꿔 버린 이성하의 공 때문이었다.

“그렇죠. 이거 바꿔 달라고 그렇게 얘기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그걸 단번에 해결해 버리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김필주의 말처럼 십수 년간 소방관들의 한으로 여겨지던 불합리한 처사를 단번에 해결한 부하를 보며 권일섭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이성하에게 툭 던졌다.

“얌마, 이거 먹고 해. 기특한 놈 같으니.”

박민규 일이나 도움 줬음 좋겠다 생각한 정도였는데, 그동안 난항으로 여겨지던 공상 문제까지 해결한 후배의 모습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터억.

권일섭이 던진 사탕을 무표정한 얼굴로 한 손으로 받았다.

빠드득. 빠드득.

그렇게 받아 든 사탕을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바로 까 입에 넣고는 보란 듯이 소리 내며 씹어 먹었고, 그에 김필주는 물론, 허석훈과 오성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일정이 그랬던 거라니까…….”

“맞아. 어쩔 수 없었어.”

“얌마, 너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왜 그래? 이제 좀 풀자. 하하하.”

이성하에게 뭘 잘못했는지 세 사람 모두 변명조의 말을 늘어놨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이성하의 화를 더 돋울 뿐이었다.

“제가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아시잖아요.”

몇 달 전 구조 3팀의 신입으로 들어온 도성민과 마동민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내가 그날만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재밌는 걸 어떻게 선배들끼리만 해요!”

선배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듯 분노에 찬 표정으로 하소연하듯 고함을 질렀고, 그에 권일섭이 한심한 표정으로 네 사람을 바라봤다.

“너희 아직도 그걸로 싸우고 있냐…….”

이성하가 위 워 솔져스의 마지막 촬영을 위해 자리를 비운 날,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왔던 구조대원들의 훈련 테스트가 있었다.

“우리 은평서의 명물 소피와 브룩 구하기다.”

바로 이성하를 비롯해 허석훈 오성수가 들어오기 전에 시험으로 봤던 실전 테스트.

이번에 새로 들어온 대원들은 발령 전 정식 테스트를 통해 들어왔던 만큼 뒤늦게 그 기록을 잰 상황이었고, 나중에야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이성하는 허탈함에 몸부림쳤다.

“같이하기로 했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 1팀이 낮 근무 때 했다고 해서 소문나기 전에 빨리 해야 했다니까.”

“그래도 같이해야죠!”

그 재밌는 신입들의 신고식을 선배들만 누렸다는 생각에 복장이 터져 오른 것이다.

그깟 훈련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런 거 가지고 서운해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이성하에게는 어떤 의미론 위 워 솔져스의 우승보다 중요한 것이 구조 테스트였다.

“나는 분명히 상황을 실제로 가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네가 구해 온 요구조자는 한 명이야. 그럼 뭘 해야 해?”

“아…….”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구해 와야 할 거 아니야!”

테스트 당시 1팀 팀장 정철호에게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기에.

‘아, 테스트 빨리 했으면 좋겠다.’

[테스트? 너 기록 테스트 말하는 거야?]

‘네. 성민이 형이랑 동민이도 곧 할 거 아니에요. 그럼 그때 제가 나가서 실력으로 보여 주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거죠. 이게 구조대야. 훈련이라도 만약이란 건 없어. 캬아.’

[크으. 야, 이거 좀 멋있다.]

‘그렇죠. 멋있겠죠?’

[그래. 꼭 그대로 하자. 애들 표정 상상하니까 너무 재밌겠다. 큭큭큭.]

렉스와 둘이서 낄낄대며 도성민과 마동민의 테스트 날만 기다려 온 게, 지난 몇 달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선배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선배들이 그래요?”

김필주는 몰라도 허석훈과 오성수만은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같이 놀림 받으며 같이 고생했는데!”

셋 모두 테스트에서 떨어져 정식 대원도 아닌, 보조 인력으로 근무를 해 온 지난 나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오성수에 대한 배신감은 더했다.

“뭐? 성수 선배가 그랬다고?”

“네, 제가 브룩만 구해 왔는데 성수 선배가 그러시더라고요. 항상 훈련은 실전처럼 해야 된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자신이 하려고 했던 역할을 얌체같이 빼 가 버렸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멋있는 말인데?]

그것도 렉스가 감탄할 정도로 멋있는 말을 늘어놨단 얘기에 절로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사수가 돼서 제 꿈을 뺏어갑니까.”

“야…… 꿈까지 거론하는 건 너무했다.”

“그렇죠. 꿈이었던 거죠. 이젠 꿈이 될 수 없어요. ……하루만 미뤄도 되는 거였잖아요. 크윽.”

직속 사수라는 양반이 한마디 말도 없이 후배의 꿈을 박살 낸 사실에 깊은 배신감이 차 오른 것이다.

“진짜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선배들이 어떻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그간 선배들에게 느낀 서운한 감정을 이 기회에 털어놓으려는 순간.

이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사무실을 울렸다.

-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서대문구 명인 물류 창고에서 화재 발생. 다시 한번 말한다. 서대문구 명인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팀, 구급팀, 구조팀 전원 신속히 출동 바란다.

화재 출동 사이렌과 함께 상황실의 심각한 무전이 고함치듯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고, 그에 방금까지 사무실에 있던 모든 인원이 벼락같이 뛰어 나갔다.

“뛰어!”

“서대문구! 지원 출동 지령이다!”

“장비 챙겨! 빨리 챙겨!”

구역 내의 출동이 아닌, 다른 구에서 요청된 출동 지령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 심각성이 익히 짐작됐던 것이다.

그랬기에 구조 버스에 올라탄 3팀의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

“제길, 오랜만의 큰 불인가 본데요?”

오성수의 말처럼 시작 전부터 분위기를 보아 큰 화재라는 생각에서였다.

“제길, 벌써 연기 보입니다!”

그 말에 운전대를 잡은 허석훈이 바로 인상을 찌푸렸고, 그 말처럼 이미 하늘 저편은 심상치 않은 검은 연기로 물들어 있었다.

화아아아악.

[이번 거 크다. 이미 저쪽은 광역 1호가 발령된 상태겠어.]

‘제길.’

렉스의 말처럼 항상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 겪었던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연기에 이성하는 방금 전까지 마음속에 품었던 선배들에 대한 배신감을 그대로 꺼트렸다.

“선배.”

“알았다.”

더 이상 장난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화아아아악!

어느새 주변을 가득 매운 검은 연기의 자태 모습에.

“실린더 앞으로 넘깁니다.”

“로프, 두 벌.”

“동민아, 라이프라인 챙겨라.”

“넵!”

심각한 표정으로 서둘러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처럼 상황은 심각했다.

화르르르르!

코너를 돌자마자 딱 봐도 거대한 물류 창고가 엄청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주수해!”

“주수!”

쏴아아아아아!

서대문 소방서의 소방관들이 화재가 발생한 물류 창고를 향해 거센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런 물줄기 사이로 다수의 소방관들이 요구조자를 부축해 나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들 것 가져와!”

“구급대!”

딱 봐도 고통을 토해 내는 요구조자들을 구조하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구조 3팀은 도착과 동시에 전원 달려 나갔다.

“뛰어!”

“모두 빨리 달려!”

“알겠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빨리 저 불길 속에서 구조하기 위해,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바로 접근이 가능한 1층의 요구조자만은 모두 구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아직 세 사람 더 남아 있습니다!”

“들어가! 들어가!”

사람이 있다는 말에 빠르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구조 3팀의 진입도 좋았지만.

“주수해 주수!”

“통로 쪽만 확실히 잡아!”

“알겠습니다!”

쏴아아아아아!

그런 구조3팀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전력으로 주수한 진압대의 호흡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전원 실린더 교체하고, 진입 준비한다.”

서대문 소방서의 현장 지휘 팀장을 만나고 온 권일섭이 바로 출발을 서둘렀다.

“진입입니까?”

“그래, 3층과 4층에 요구조자들이 있는 모양이야. 우리가 3층을 맡기로 했다.”

김필주의 말에 불타는 건물의 3층을 가리키며 요구조자들을 언급했고, 그에 모든 대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봤다.

화르르르르!

이미 건물 전체를 불길이 휘감고 있었다.

철커덩!

외관 자재가 불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되다 보니, 녹아내린 건물의 외판이 정신없이 바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혀가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예전 가구 공장 때보다 심한 거 같은데요?’

[심하지. 건물 크기도 크기지만 불길이 이미 완전히 성장기에 접어든 상태잖아.]

렉스 역시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것처럼 진입금지 상황인 최성기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성장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순 없었다.

‘요구조자가 있다.’

오로지 자신들의 구조만 기다리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요구조자들이 저 불길 안에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성수 선배는 남겨 두고 가시죠.”

“성수?”

“네. 내일 모레 웨딩촬영 있잖아요. 일생에 한 번 있는 촬영인데 상처 있으면 저 형수님한테 혼나요.”

지원을 나온 경우, 지휘관과 소통의 용이함을 위해 한 명의 대원이 밖에 남도록 돼 있었다.

그 자리를 웨딩 촬영이 얼마 남지 않는 오성수로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미친놈아. 남길 거면 성민이나 동민이 남겨야지. 내가 왜 남아?”

그 말에 오성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지만, 이어지는 이성하의 말에 아무 말을 못했다.

“부모님이 퍽이나 좋아하시겠습니다.”

“뭐?”

“안 그래도 맨날 다친다고 걱정하시는데, 웨딩사진까지 다친 상태로 찍어 봐요. 좋아하시겠어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전 형수한테 혼나기 싫어요.”

부모님과 여자친구를 언급하는 이성하 때문이었다.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이다 보니, 뵙지는 못해도 부모님과 몇 번 전화로 인사를 나눌 정도의 관계는 되는 이성하였고, 그에 오성수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끄응…….”

이성하의 말처럼 매일 부상을 입는 자신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게 걱정을 하는 분들이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피식 웃은 권일섭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렇게 하자. 오늘 성수가 남아.”

이성하의 의견을 확정짓는 말이었다.

“아, 대장님!”

“시끄러워, 새꺄. 네 결혼식 때 우리도 뵙고 인사드려야 되는데, 괜히 다치기라도 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아래서 변동 상황이나 전달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는 오성수의 말을 그대로 자르며 대기할 것을 명했고, 그에 이성하가 웃으며 말했다.

“구경이나 해요.”

“뭐?”

“제가 다 구해 올게요. 하하하.”

곤란해 하는 오성수의 표정을 보니, 아까 전 묵혀 놨던 선배에 대한 배신감이 조금 풀린다 느꼈으니까.

하지만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집중해!]

“가자!”

들려오는 렉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권일섭의 명령이 이어졌다.

“넵!”

불길 속에 고립돼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걸음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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