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29화>
129화. 위 워 솔져스 (8)
‘갑자기 집에 가고 싶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솟아났지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성하 씨. 얼른 내려요. 시간 없어요.”
주차장에 들어가자마자 차에서 뛰듯이 내리며 재촉하는 작가의 말처럼, 방송이 시작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성하에게는 더 이상의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자, 이쪽으로 앉으세요. 메이크업 들어갈게요.”
“네…….”
평소엔 귀찮아서 로션도 잘 안 바르는 얼굴에 생전 처음으로 메이크업이란 것을 받았다.
“성하 씨, 이거 대본이거든요.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니까 숙지만 해 두세요.”
메이크업을 받자마자 작가에게 붙들려 연예인들이나 본다는 대본이라는 것도 받았고, 잠시 후 무대 뒤로 이동해 제작진과 대화할 수 있는 인이어를 착용했다.
- 성하 씨. 오늘 멋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급박한 나머지 잠깐 얼굴만 봤던 김원영과 인이어로 인사를 나눴으며.
“우리가 최고의 부대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킨다! 위 워 솔져스! 인사드립니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에서 이성하는 어색한 미소로 박수 치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짝! 짝! 짝! 짝!
연예인들의 멘트와 함께 울려 퍼지는 방청객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에, 저도 모르게 같이 자리한 부대원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박수를 치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큭큭큭큭. 저거 플래카드 어쩔 거냐?]
렉스의 말처럼 방청객들 사이로 보이는 플래카드 때문이었다.
<강철 소방관 이성하♥>
<성하 오빠!>
<아이언맨 이성하!>
<내 마음의 불도 꺼주세요!>
보자마자 바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닭살스러운 문구들에.
‘하…… 진짜 집에 가고 싶다…….’
또다시 집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솟아났으니까.
물론 그럴 순 없었다.
[그럼 박민규는 어떻게 하려고?]
렉스의 말처럼 박민규를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의무가 자신에게 있었다.
“다음은 지난 준결승전에서 CPR 장면으로 큰 화제를 모은 분이죠? 육군 정찰수색대의 이성하 대원입니다.”
“CPR하는 남자 이성하입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응원을 위해 와 주셨는데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공! 격!”
그랬기에 자신을 소개하는 MC의 손짓에, 평소와 달리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대답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그 덕분에 생방송의 분위기는 좋게 흘러갔다.
“자, 이성하 대원 이렇게 된 이상 여쭤 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떤 거죠?”
“바로 위 워 솔져스 최초로 팬클럽을 가지게 된 기분을요. 기분 어떠십니까?”
이성하의 밝은 모습에 MC를 보는 박성민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넘겼고, 그에 이성하가 주저하다 대답했다.
“다들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네? 뭐라고요?”
“팬클럽이요. 친구들과 선배들이 엄청 놀립니다. 제발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하하하하.”
“큭큭큭. 저게 뭐야.”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팬클럽을 진심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방송 시작부터 출연진들의 웃음꽃이 폈던 것이다.
그렇게 이성하가 포문을 유쾌하게 연 덕분인지, 위 워 솔져스의 생방송은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흘러갔다.
“그거 모르시죠? 임형석 대원 잠꼬대 엄청 요란한 거.”
“잠꼬대요?”
“아, 진짜.”
“왜? 이건 알려 드려야지!”
“말하지 마. 진짜 말하면 나 형이랑 오늘부터 안 본다!”
“하하하.”
흔히 다뤄지는 촬영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자, SDT의 강진우 대원. 이중에서 선임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대원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이성하 대원입니다!”
“이성하요?”
“네! 임무 같은 걸 수행한다면 진짜 든든하겠지만.”
“든든하겠지만!”
“너무 피곤할 거 같습니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요.”
“끄응…….”
“푸하하하하.”
“맞지. 성하 승부욕 엄청나지.”
토크쇼라는 주제에 맞게 서로 간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에 웃음들이 터져 나왔으니까.
물론 난감한 분위기도 있었다.
“그건 제가 잘합니다. 사실 제 취미가 캠핑이거든요.”
대화 중간마다 눈치 없이 끼어드는 김영철 때문이었다.
“요리하면 또 저 아니겠습니까? 우스갯소리지만 우리 707은 생존 훈련 때문에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압니다. 탕수육 같은 중화요리는 물론…….”
뭐 그리할 말이 많은지, 툭하면 자신이 근무했던 707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주도하려고 했고, 그 모습에 모두가 쓴웃음을 지었다.
[쟤 또 김지수에게 껄떡대네. 그렇게 욕먹고도 정신 못 차렸나?]
렉스가 그 모습에 바로 혀를 차는 것처럼, 김영철이 연예인인 김지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 사실은 출연진만이 아니라, 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알 정도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 와, 우리 지수. 오늘도 예쁘네.
- 어라, 지수 이 사진은 좀 살찐 것처럼 보이는데?
- 지수야, 나중에 방송 끝나면 내가 전에 말했던 가게 데려갈게. 거기 진짜 맛있어.
첫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연예인인 지수의 SNS에 찾아가 반말로 댓글을 남기는 출연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출연진의 정체가 밝혀지자 최근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우리 지수 오늘도 예쁘네.’ 김영철, 김지수에 반말 논란>
<위워 솔져스 김영철. 이상형 김지수로 밝혀>
<김영철과 김지수, 무슨 사이? 우선은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틈만 나면 김지수의 SNS에 친한 관계인 것처럼 댓글을 달아, 이미 기사로도 꽤 언급이 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진심으로 김영철이 신기했다.
‘눈치가 없는 건가?’
김영철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별종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안 그래요? 지수 씨. 하하하.”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렇게 김지수에게 관심을 표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을 두고 볼 마음은 없었다.
[김지수 완전히 저기압이네.]
표정이 싸늘해진 김지수의 모습 때문이었다.
“흠흠.”
렉스의 말처럼 조금만 더하면 폭발할 것 같은 김지수의 모습에 헛기침을 크게 하며 김영철에게 눈치를 줬고, 그 생각은 생방송을 주관하는 김원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 영철 씨. 이제 그만하세요. 원래 오늘 방송 못 나오는 건데, 조용히 있겠다고 해서 출연한 거 잊었어요?
모든 출연자들이 귀에 꽂고 있는 인이어를 통해 김영철에게 날 선 경고를 던졌다.
- 지금부터 아무 말 하지 마세요. 한 마디만 더 하면 생방송이든 뭐든 메인 피디 권한으로 영철 씨 그냥 하차시킬 겁니다.
장난이 아니라는 듯 메인 피디의 권한까지 이야기하며 김영철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에 김영철의 얼굴이 새빨개진 건 당연했다.
[호오, 그렇게 방송 나온 거였어?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렉스의 재밌어 하는 반응처럼, 제작진과 김영철이 그런 약속을 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
“풋.”
연예인과 출연자 모두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김영철을 바라봤으며, 그런 출연진들의 반응에 김영철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떨어트렸다.
“끄응…….”
굴욕적인 조건으로 방송에 나온 게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맛본 것이다.
그랬기에 메인 MC를 맡고 있던 연예인 박성민이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자,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생방송이니 만큼, 이런 상황이 방송으로 드러나 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 이야기면 역시 그건가요?”
“네, 오늘의 메인 주제죠. 전 화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던 이야기. 바로 성하 씨 이야기입니다.”
그 역시 김영철이 얄밉긴 했지만 프로그램에 지장을 줄 순 없다는 생각에 빠르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주제로 이야기를 넘어갔고, 그에 시청자들 중 더 이상 김영철을 떠올리는 이는 없었다.
- 이성하?
- 지금 김지훈 CPR로 구할 때 이야기하는 거 맞죠?
-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음. 나 이거 엄청 궁금했거든.
- 그래. 한번 들어 봐야지. 소방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하는지 궁금함.
- 절박함 100퍼센트.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소름돋음.
- 인정! 그때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봤음.
누가 뭐래도 위 워 솔져스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방영분은, 이성하가 CPR을 통해 UDT의 김지훈을 살렸던 준결승 회차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MC를 보는 박성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여쭤보겠습니다. 요즘 성하 씨가 한 CPR이 엄청 화제인데, 그렇게 CPR을 하시는 도중에 성하 씨가 에피네프린을 찾으며 화를 내셨잖아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에피네프린이요?”
“네, 에피네프린이 없다는 말에 낙담하는 성하 씨 표정이 워낙 이슈가 돼서요.”
이성하가 CPR 도중 사설 구급대원에게 찾았던 에피네프린 이야기였다.
“에피네프린은요?”
“…….”
에피네프린을 찾는 이성하의 모습과 그에 멍한 표정을 짓는 사설 구급대원의 모습은 아직도 여러 곳에 짤이 돌아다닐 정도로 유명한 장면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그에 이성하는 잠깐 고민했다.
‘이거 이야기해도 되는 건가?’
소방관으로서는 사용하면 안 되는 약물이 에피네프린이었다.
방송에는 굉장히 짧게 나와 운 좋게 넘어가긴 했지만, 여기서 그걸 다시 언급하게 되면 규정을 어겨서라도 사용할 생각이라는 걸 자백하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러나 고민도 잠시.
“에피네프린은 강심제입니다.”
“어…… 강심제가 뭔가요?”
“이번 상황과 같이 심정지가 일어난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특수 약품입니다. 심장 박동을 강화하는 약품이죠.”
자신이 알고 있는 에피네프린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소방관들은 사용할 수 없는 약품입니다.”
“아? 그래요? 왜 그런 거죠? 아무래도 최전방에서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이 오히려 쓸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잘못된 의료법 때문에 의사들만 사용할 수 있거든요. 주사만 하면 살릴 수 있는 확률을 5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약품인데도 말이에요.”
그동안 생각만 하던 현행 의료법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고.
“그렇다면 사용해선 안 되는 약물인데, 당시에 사용하려고 하셨단 거네요? 그만큼 급한 상황이었단 거겠죠?”
“……네. 그땐 급하기도 급했고.”
잠시 숨을 고른 이성하가 박성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요.”
조용해진 촬영장, 이성하가 박성민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없어서 사용은 못했지만 있었다면 꼭 사용했을 겁니다. 그래서 찾은 거예요. 당시 지훈 씨를 확실히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약이었으니까요. 물론 사용했다면 징계를 받았겠지만.”
방송 때문에 촬영장에 참석은 했지만 자신의 CPR로 아직 가슴 보호대를 하고 있는 김지훈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징계…….’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없다라…….’
무거운 책임감이 촬영장을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