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28화>
128화. 위 워 솔져스 (7)
* * *
위 워 솔져스는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이었다.
제목의 뜻이 한국말로 풀이하면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는 표현처럼, 각 부대의 전역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여 자신들의 부대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랬기에 위 워 솔져스의 첫 화는 각 부대 간의 신경전과 경쟁을 유도하는 내용이 방송됐다.
찌릿.
매서운 눈빛으로 서로를 살피며 견제하는 모습들과.
“할 수 있어!”
“명훈아! 좋아! 속도 좋아!”
“김성민 뭐하고 있어! 스퍼트 내!”
“으아아아아!”
크로스핏의 타임어택 경쟁인 프란으로 서로 대결을 펼치는 각 부대의 모습이.
하지만 2화부터 방영된 위 워 솔져스는 달랐다.
“첫 번째 미션은 40kg 산악 행군입니다. 거리는 총 10km로 가장 늦게 결승점에 도착한 부대는 바로 탈락하게 됩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MC 연예인이 바로 한 부대가 탈락한다는 룰을 설명했다.
서로를 떨어뜨리고 또 낙오시키는 데스매치.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어지는 내용은 경쟁이 아닌 각 부대들의 화합이었다.
“SDT. 저희 에너지 바 넉넉히 챙겨 왔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드실래요?”
“정말요? 저희야 완전 감사하죠. 안 그래도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무조건 한 부대가 탈락한다는 데스매치 룰에도, 시작 전 다른 부대와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좋은 모습이 나왔다.
“SSU 호흡 조절하세요. 산악 행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에요.”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대결 중에도 공정한 경쟁을 위해 행군이 익숙지 않은 부대에 다른 부대의 대원이 조언을 던져 주는 모습을 보여 주며 회차를 이어갔다.
심지어 그런 모습은 탈락자가 결정되는 방송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병수색대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재밌었어요.”
“우리가 더 재밌었지. 정말 아쉽다.”
탈락이 결정돼 더 이상 프로그램에 참가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간 팀이나 떨어진 팀 모두 서로를 껴안으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화합의 내용은 그 뒤로 이어진 다음 회차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UDT! 끝까지 가자!”
“그래, 가자! 정찰수색대!”
미션의 결과로 인해, 한 개의 부대가 탈락하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응원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SSU 형들. 내일은 오후부터 촬영한다는데 오늘 저녁 식사 같이하실래요?”
“저녁이요?”
“네, 오늘 낮에 저희 도와주신 거 너무 고마워서 저희가 식사 대접하려고요.”
“와, 완전 좋죠. 무조건 갑니다.”
그런 중간중간 왜 대원들이 사이좋게 지내는지를 보여 주는 이유들이 흘러나왔고, 그런 스토리가 이어짐에 따라 위 워 솔져스의 시청률이 폭발하고 있었다.
키야. 개쩐다.
- 인정. 출연자들 너무 멋있음. 해병수색대 애들이 UDT 강민성 쥐난 거 풀어 주는데, 너무 멋있음. 남자인 내가 심쿵함.
- 특전사 멋있지 않음? 저 미션을 그냥 단번에 해결하네요.
- 저는 SSU요. 와, 어떻게 경쟁 미션인데 SDT를 도와주지?
- 미쳤어요. 군인 아저씨들 너무 멋있음 ㅠㅠ
- 맞아요.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면서 나아가는 거 너무 멋있어요. 이런 거 진짜 쉽지 않은데.
- 저렇게 멋있는 경쟁 보여 주는 게 흔치 않죠. 완전 리스펙!
- 정말 볼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며 봅니다. 긴장감 있는 미션에 감동까지. 위 워 솔져스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의 최정예 부대 출신들이 박진감 넘치는 모습으로 경쟁을 펼치는 모습도 멋있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우정을 쌓아 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드디어 준결승전 영상이 방송됐다.
“준결승 미션은 우선 이곳에서 나눠 드릴 20kg씩 총 4개의 탄약 박스를 들고 해변에 비치된 IBS로 이동하는 게 시작입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스포로 알려졌던 준결승 대결이었다.
“패들 저어!”
“더 빨리 저어!”
“으쌰! 으쌰!”
준결승에 참가한 세 부대가 해변까지 행군해 IBS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이 펼쳐졌고, 그러다 UDT의 한 대원이 블랙아웃으로 물에 잠기는 모습에 인터넷은 아수라장이 됐다.
- 잠깐만 블랙아웃? 이거 실제임?
- 에이, 설마요? 방송인데 다 연출이겠죠.
- 실제인 거 같은데요……
- 실제 맞네요. 제가 겪어 본 블랙아웃이랑 거의 똑같아요.
- 맙소사…… 진짜 맞네. 물거품 뿜는 거 보여요.
- 이거 방송 나와도 되는 건가요? 완전 방송사고인데?
- 대박. 김지훈 어떡해요? 지금 아예 의식 잃었어요. 그대로 물속에 가라앉아요……
부상을 입은 대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방송이 진행되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위 워 솔져스의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 글들이 쇄도하는 건 당연했다.
‘끄으으으.’
뒷모습이긴 하지만, 출연진이 사고를 당해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에.
- 와, 이 방송 막장이네. 이걸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요?
- 진짜 대박…… 안전요원 없이 촬영한 거 같은데요?
- 지금 물에 들어간 대원 김지훈 맞죠? 김지훈 어떡해 ㅠㅠ 진짜 위험한 거 같은데 흑.
- 와, 미쳤네. 지금 카메라 잡고 있는 수중 요원들 뭐하는 거임? 지금 김지훈 상황 모르는 건가?
- 잘한다잘한다 했더니, 개판이네요. 제작진이 상황을 모르고 있어요. 이게 말이나 되나?
다들 촬영에 안전을 기울이지 못한 제작진을 향해 일제히 성토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비난 일색이던 시청자 게시판이 순간 반전됐다.
- 대박, 이성하 나옴!
멀리서 무서운 속도로 팔을 저으며 등장한 이성하 때문이었다.
휘익 휘익.
대원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는지, 도착과 동시에 대원의 몸을 잡고 바로 물 위로 상승하는 모습이 나왔고, 그렇게 이어지는 장면에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후우, 후우. 자리 만들어요! 자리!”
수면 위로 상승하자마자 UDT 대원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건 물론.
지이이익!
“하나! 둘! 셋! 넷!”
단번에 UDT 대원의 옷을 찢어 버리고 CPR을 들어가는 이성하의 모습에.
- 와, 진짜 이거 뭐야?
- 대박! 완전 개 소름.
- 제발 살려라!
- 진짜 살려야 됨. 이성하 힘내라!
- 김지훈 어떡해 ㅠㅠ
- 이성하, 제발! 제발!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며 이성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쏟아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응원이 이내 환호로 바뀐 건 당연했다.
“우웨웩. 우웨웨웨웩.”
오랜 시간 반응이 없던 김지훈이 물을 토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하하하…….”
털썩.
그에 만족의 웃음을 지은 이성하가 탈진해 쓰러지는 장면까지 방송으로 생생하게 흘러나왔고, 그 덕분에 위 워 솔져스의 시청자 게시판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피, 피디님. 다운됐습니다…….”
“뭐?”
“시청자 게시판 다운됐다고요! 접속자 터졌습니다! 대박입니다!”
시청자 게시판을 확인하던 조연출이 김원영에게 대박이 났다며 고함을 지를 정도로, 이번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당연히 이성하에게도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부재중 통화 130건>
“…….”
출동을 나갔다 왔더니 핸드폰에 쌓인 부재중 통화가 무려 백 건이 넘었다.
[야, 문자 온 것도 만만치 않아.]
‘그러네요…… 이것도 백 개가 넘네.’
전화를 못 받아서 그런지 날아온 문자 메시지의 숫자 역시 그에 만만치 않았고, 그보다 더 놀란 건 이튿날 행정과장인 유상명이 전해 준 소식이었다.
“야, 이성하!”
얼마나 급했는지 매일 존댓말을 고수하던 양반이 이성하를 반말로 부르며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이성하!”
그럼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다시 이성하의 이름을 고함치듯 불렀고.
“무, 무슨 일 있어요?”
그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이성하를 향해 보란 듯이 한 장의 종이를 펼쳐 보였다.
“당연히 있죠. 박민규 주임 징계위원회 출석. 아예 다음 달로 미룬대요.”
“다음 달이요?”
“그래요. 듣기로는 이번 방송 때문에 소방청 게시판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대요. 제대로 먹힌 겁니다. 이번 방송이요. 하하하.”
이번 방송의 여파 때문인지 징계위원회를 주관하는 소방본부에서, 박민규의 징계위원회 출석을 완전히 뒤로 미룬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은 박민규의 징계를 걱정하던 이성하로서는 진심으로 쾌재를 부를 사안이었다.
‘제대로 먹혔네요.’
[그래. 계속 2주씩 연장하다가 이번에 한 달이나 연장한 걸 보니까. 확실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게 맞네.]
렉스의 말처럼 한 달이나 연기를 한 이번 소방본부의 결정을 보면, 징계위원회를 구성하는 간부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확실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일주일간 특별히 몸 관리에 신경 썼다.
‘생방송이라…… 어떤 대결을 하려나.’
다음 주로 고지된 생방송 녹화 때문이었다.
“생방송이요?”
- 네, 마지막 방송이라서 좀 여러 가지를 준비해 봤거든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성하 씨. 하하하.
마지막 방송인만큼 기대해도 좋다는 김원영 피디의 전언이 있었기에 방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이성하는 일주일간 탄탄히 몸을 만들었다.
“한 타임 더?”
“허억, 허억.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그랬듯 훈련만이 최선의 준비라는 생각에 동료들과 몸을 만들며 마지막 방송을 준비했으며, 그렇게 일주일 후 피디에게 들었던 상암의 MBS 방송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 볼까요?’
[그래. 가자.]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예능 촬영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단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이성하는 MBS 앞에 도착해 걸음을 멈췄다.
‘일단 전화부터 하라고 했나?’
도착하면 들어오지 말고 연락을 하라는 제작진의 지시 때문이었다.
“작가님. 저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충실히 따라 자신을 담당하는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들을 수 있는 대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아, 도착하셨어요? 제가 금방 차로 데리러 갈게요.
“차요?”
- 네, 금방 갈게요. 거기 꼭 그대로 계세요.
“아…… 네.”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리에도, 차로 데리러 온다는 작가의 말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작가와 만나 차에 올라타고 본 광경에, 왜 작가가 자신을 데리러 온지를 알 수 있었다.
‘사람……?’
당연하게도 방송국 입구에는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만.
[우와, 이게 몇 명이야? 백 명은 넘는 거 같은데?]
몇몇 플래카드를 확인한 이성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끄응…….’
절대로 익숙해지기 싫은, 보기도 싫은 문구가 여러 곳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철소방대>
당연히 연예인들의 팬일 것이라 생각한 이들이, 모두 이성하의 팬클럽 회원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