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21화>
121화. 방법 (3)
“성하 씨,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이성하의 출연 허락을 받아낸 김원영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저 피디님.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하고 가시는 게.”
“아니에요. 촬영이 얼마 안 남아서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식사는 저희 쪽에서 다음에 대접하겠습니다. 그럼.”
김필주가 온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김원영 PD를 붙잡았지만, 시간이 없다며 다급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김원영이 사라지자마자 현장대응단 사무실은 소방관들의 시끄러운 고함으로 가득 찼다.
“이야! 대박!”
“야. 이성하. 2억 받으면 한턱 쏴라. 너 제대로 쏴야 돼.”
“쏘겠죠. 2억인데. 와, 이게 도대체 얼마야?”
같이 일하는 동료가 티비에 나오는 것도 신기했지만, 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쁨의 함성을 터트린 것이다.
“2억이 아니고 5천이에요. 그리고 그것도 우승해야 받는 거고요.”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이성하가 피식 웃으며 항변했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소방관은 없었다.
“미친놈. 서울 지역 최강소방관까지 한 놈이 이걸 우승 못 하겠냐?”
무려 서울 모든 소방관을 대표하는 최강소방관이었다.
“에베레스트까지 다녀온 놈이 질 리 없지. 클클클.”
“동아랜드도 있잖아. 후룸라이드 사고.”
“북한산도 있었죠. 아우,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소름 돋는다니까요.”
거기다 지금까지 보여 준 활약만 떠올려도 체력 면에선 다른 이들에게 절대 밀릴 리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 증거가 지금 눈앞에서 떠드는 동료들이었다.
“특전사? 몇 기 애들 나오려나. 내가 있던 부대 출신도 나오려나?”
마침 오늘 팀장 회의 때문에 일찍 출근해 대기하는 정철호부터가 육군의 특수 부대에 해당하는 특전사 출신이었다.
“거기 SSU도 있습니까?”
“어라, SDT도 있네.”
“이야, 이거 보니까 옛 생각 나네요. 제가 육군 수색대 출신이었거든요.”
“어? 너 수색대였어? 나 특공여단 출신인데.”
그 외에도 많은 동료들이 자신의 부대들을 이야기할 정도로, 대한민국 군대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게 소방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는 게 이성하였다.
“그래서 자신 없어?”
“에이, 자신 있죠. 우리 서의 명예가 걸려있는데.”
“고럼고럼!”
“그렇지. 그렇게 나와 줘야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선배들과 웃고 있지만, 기왕 출전하는 거 은평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절대 질 생각이 없었다.
[박민규 위해서라도 우승해야지.]
‘그럼요. 그게 우선이죠.’
렉스의 말처럼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박민규 주임을 위해서라도 그랬고.
물론 그 전에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야, 서장 왔다.]
성환용 서장이었다.
“어? 서장님?”
“서장님. 사무실에 무슨 일 있으세요? 사무실에는 웬일이세요?”
피디가 돌아간 걸 들었는지, 성환용 서장이 성큼성큼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그게. 흠흠.”
잘못한 건 알았는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고.
“서장님. 저 드릴 말씀 있습니다.”
그에 더 이상 호구를 잡혀선 안 된다는 생각에 말을 걸기 위해 다가갔지만.
“자, 모두 주목!!”
서장의 뒤에서 슬쩍 나타난 유상명 과장 때문에 말을 섞는 건 불가능했다.
“오늘 서장님이 회식 준비하셨으니까 모두 일 끝나면 참석하도록 하세요.”
“회식이요? 정말입니까?”
“네, 이미 예약까지 해 놨습니다. 이 앞에 암소 갈비집이니까 다들 그쪽으로 오면 돼요.”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 앞에서 성환용을 가리키며 바로 회식 공지를 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박! 서장님 최고입니다!!”
“오오오! 얼마 만의 고기야?”
“서장님 멋있습니다!”
“성환용! 성환용!”
‘끄응…….’
회식을 공지하자마자 날뛰듯 좋아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차마 서장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일이 끝나고 시작된 회식에서도 이어졌다.
‘회식하기 전에 서장님께 이야기드려야겠어.’
회식이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하기 위해 가게 앞에서 성환용을 기다렸지만.
“저기 서장님.”
“아, 무슨 말인지 알아. 근데 나중에 이야기 하지. 안에서 다들 기다리잖아.”
성환용은 자신이 말을 꺼내자마자 웃음과 함께 어깨를 두드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장님.”
이번에는 꼭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 들어갔지만.
“서장님. 여기입니다.”
“어, 정 팀장.”
“서장님. 저도 있습니다. 이쪽입니다. 이쪽!”
성환용을 반기는 팀장들의 환대에 아무 말을 못했고, 그 뒤로도 성환용에게 말을 거는 건 불가능했다.
“하하하, 정말 그랬어요?”
“그렇다니까요, 서장님. 1팀 애들 요새 멘탈이 가루가 됐어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저번 주 우리 팀이 제거한 벌집만 14개예요. 진짜 끔찍하다니까요. 하하하.”
성환용이 은평서의 우두머리인 서장인 만큼, 그 옆으로 빼곡히 앉은 팀장급 선배들의 모습에 도저히 이야기할 타이밍이 나지 않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힘들겠는데?]
‘끄응…… 서장님. 나중에 꼭 복수할 겁니다.’
아무리 성환용이 자신에게 실수했다 하더라도, 아직 한참은 어린 자신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불만을 토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이성하의 모습이 웃겼는지 선배들이 피식 웃었다.
“서장님. 이러다가 진짜 막내 삐지겠습니다. 빨리 하시죠.”
허석훈이 크게 웃으며 성환용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럴까? 그럼 시작하지, 뭐.”
그 말에 성환용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정신없이 고기를 뜯던 오성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차. 성민이랑 동민이 가자.”
“네, 선배님.”
“네.”
옆에 앉은 도성민과 마동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으며.
“부장님, 뭔데 갑자기들 일어나요?”
그런 갑작스런 오성수의 행동에 이성하가 일어나며 허석훈을 바라봤지만, 허석훈은 그저 웃음만 지었다.
“그냥 앉아 있어. 인마.”
오성수가 일어나며 저도 모르게 같이 일어난 이성하를 억지로 앉히며 기다리라 말했고, 그렇게 잠시 후 돌아온 오성수에 이성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급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는 오성수 때문이었다.
<축! 이성하 소방교 진급>
“진급 축하합니다~”
이성하의 진급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힌 케이크를 들고 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에 모든 소방관들이 박수 치며 오성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사랑하는 우리 성하. 진급 축하합니다!”
“와아아아!”
“이성하, 축하한다!”
“야, 빨리 초 불어!”
노래가 끝나자마자 빨리 초를 불라며 다들 고함을 질렀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이성하는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너 우냐?”
“아, 안 울어요.”
“에이 우는데?”
“아닙니다. 제가 무슨 애입니까?”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동료들이 준비한 깜짝 파티에 벅찬 감동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성환용이 활짝 웃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늦었지만 진급 축하하네. 원래 진급 날 바로 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늦었어. 서운한 거 아니지?”
“아, 아닙니다.”
“그래. 서운한 거 있으면 앞으로 풀도록 해. 내가 더 잘할 테니까. 응?”
따뜻한 표정으로 이성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성하는 그 말에 당연히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서장님. 저 때문에 회식도 열어 주시고. 진짜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체 진급식이 아니라, 개인 진급식에도 이렇게 모두가 모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게 눈앞의 성환용 서장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방금까지 성환용에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에이, 아니야. 이런 걸 가지고 뭘.”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진짜 괜찮다니까.”
괜찮다며 손을 내젓는 성환용의 말에도 또다시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하…… 단순한 거야. 정말 바보인 거야…… ]
그 모습에 렉스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성하의 마음은 이미 들뜬 상태였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서장이 자신과 모두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더해.
“마셔!”
“마셔어어!”
“와아아아!”
지금의 회식이 자신의 축하 자리라는 것에, 들뜬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당연히 성환용은 흡족한 표정으로 권일섭과 술잔을 나눴다.
“거 보십쇼. 제가 먹힌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러네. 다음에도 또 써먹어야겠어. 하하하.”
성환용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해 줘야 할 진급식을 진행한 걸로 싸게 먹힌 상황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덕분에 이성하는 성환용에게 가졌던 불편한 마음을 깨끗이 털어 버렸다.
“이성하! 우승 가자!”
“당연하죠!”
“우승! 우승!”
동료들의 환호 속에 이번에 출연하게 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겠다고 고함을 질렀고, 그렇게 다음 날부터 동료들의 지원을 받으며 촬영을 대비해 훈련에 들어갔다.
“무게 더 늘려 줘?”
“네, 5kg씩만 더 늘려 주세요.”
“오케이.”
엄연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기에 짧은 기간이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만들었으며, 일주일 후 드디어 피디에게 사전에 들었던 촬영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성하, 잘 다녀와라!”
“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하하, 알겠습니다!”
은평서의 이름을 걸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서에 들려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걸음을 옮긴 것이다.
군대를 주제로 진행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만큼, 앞으로 진행될 촬영에 긴장할 법도 했지만 이성하의 표정은 태연했다.
‘흠, 예능이라고 했으니까 엄청 빡세거나 하진 않겠죠?’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라서였다.
[그렇겠지. 교양이나 다큐면 거의 실제처럼 한다지만, 예능은 좀 아니잖냐.]
‘그렇죠. 진짜 사나이들이었나요? 그 프로그램도 보니까 거의 짜고 치더라고요. 말도 안 되게.’
현재 유일하게 방영되는 군대 예능인 진짜 사나이 들만 떠올려도 절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촬영지 근처에 도착해서 생각이 달라졌다
“여기가 아니에요?”
“네, 여기서 더 들어가야 돼요. 일단 군복으로 갈아입으시고 이 스타렉스 타시면 되세요.”
제작진이 알려 준 집합 장소는 삼척시였는데, 실제 촬영 장소는 그곳에서 더 들어가야 했다.
덜커덩.
“뭐? 뭐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인지 타고 있는 스타렉스가 격하게 요동칠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고,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교관……?’
내리자마자 보이는 5명의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 때문이었다.
“달려옵니다.”
“……?”
“뭐합니까! 안 뜁니까!”
“넷!”
딱 봐도 진짜 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매서운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