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9화>
119화. 방법 (1)
요구조자는 빠르게 회복됐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아닙니다. 의용 소방대로 지원하시다가 물에 빠지셨다면서요. 동료인데 당연한 겁니다.”
애초부터 큰 병으로 입원한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의식을 차린 요구조자가 구급대에 감사를 표했고, 그렇게 사건을 마무리한 구급대는 또다시 정신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이성하, 가방 챙겨!”
“네, 알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출동 벨에 반응해, 위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긴박한 일상 속으로.
하지만 그중 바뀐 게 있었다.
“주임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출동을 마치고 돌아온 구급대의 분위기였다.
“따뜻하게 커피나 한잔할까요.”
“좋지. 난 프림 둘에 설탕 하나.”
“선배님 제가 탈게요. 앉아 계세요.”
예전 같았으면 출동을 마치자마자 각자 흩어져 휴식을 취할 세 사람이 웃으며 같이 커피를 마셨고, 그런 분위기를 이성하는 누구보다 반겼다.
[좋냐?]
‘당연히 좋죠. 저게 진짜 소방관 아닙니까. 진짜 소방관.’
아직 자신과 신입인 송현우에게만 웃음을 보이긴 하지만, 선배인 박민규가 서서히 은평서 식구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다시 출근합니다.”
며칠 후, 그간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영광이 드디어 치료를 마치고 정식으로 복귀했다.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단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의 복귀였던 만큼 출근을 하자마자 간부급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던 김영광이, 소속돼 있던 구급대에 다가가는 순간 박민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라.”
인사하는 김영광을 보지도 않은 채,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는 말이었다.
“……네?”
“흠흠. 뇌출혈이었잖아. 그거 신경 많이 써야 돼. 안 그러면 나중에 또 터지거든.”
당황해하는 김영광의 목소리에, 헛기침하며 다시 걱정의 소리를 내뱉은 그가, 귀가 빨개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잘 돌아왔어.”
김영광과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어색했는지 그 어깨를 두드리고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소방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박 주임님. 어디 가요!”
“와, 박 주임님. 이런 성격이셨네. 가지 마요!”
“큭큭큭. 아이고 배야.”
창피했는지 바로 자리를 피하는 박민규나, 그 모습에 당황해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영광의 모습이 너무 웃겼던 것이다.
“오늘 비도 안 내리는데 밥 먹고 족구 한판 어때요?”
“족구?”
“네. 진압대 대 구조대랑 구급대 묶어서 오늘 간식 내기 한판 하시죠.”
그런 구급대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소방관들이 족구 내기까지 벌일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그 분위기는 잠시 후 사무실에 찾아온 불청객에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과, 과장님?”
행정과장 유상명이었다.
“에휴, 짜증 나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알림판에 종이를 붙이는 모습에, 김영광을 제외한 모든 소방관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끄응…… 역시나인가…….”
유상명이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박 주임님…….”
“끄응…….”
그에 몇몇 대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으며, 그에 몸을 일으켜 알림판을 확인한 박민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늦게 나왔네요.”
며칠 전 사용한 에피네프린에 대한 징계 위원회 출석 요구서였다.
“말도 안 돼.”
“정말로 나온 겁니까?”
그에 다른 대원들이 말도 안 된다며 알림판으로 다가와 내용을 확인했지만, 유상명이 붙인 공고문에는 확실히 박민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출석 통지서>
성명 : 박민규
직급 : 소방장
이유 : 중앙소방본부 징계 위원회 출석 진술
일시 : 2015년 7월 13일 14시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1길 42 이마빌딩 중앙소방본부
- 공무원 징계령 제10조에 따라 출석 통지함.
- 2015년 6월 26일.
- 소방공무원 징계 위원회
상세한 이유는 적혀 있지 않지만, 누가 봐도 이번 에피네프린 사용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박민규를 중앙소방본부로 부른 것이다.
그 공고문에 이성하가 난리를 친 건 당연했다.
“미친, 이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리 규정으로 금지된 사항을 어겼더라도, 그 사정조차 감안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징계 위원회만 소집하는 멍청한 본부의 행태에 분통이 터져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 모습에 오성수가 눈치를 보냈다.
“조용해, 인마.”
“왜요?”
“지금 누가 제일 답답하겠냐? 어휴.”
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 답답한 건 박민규 본인이었다.
물론.
“괜찮아.”
“아니, 그래도.”
“진짜 괜찮아. 뭐, 잘되겠지. 에휴…….”
동료 소방관들의 걱정에 괜찮다며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그 역시 걱정되는지 반사적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이성하는 짜증 난 표정으로 머리를 박박 긁고는 권일섭에게 다가갔다.
“대장님.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권일섭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뭘?”
“대장님이면 방법 있으시잖아요. 이럴 때 힘 한번 써 주시면 안 돼요?”
구조대장이라는 직급이 말해 주는 것처럼, 은평서에서 직급으로만 따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간부가 눈앞의 권일섭이었으니까.
하지만 권일섭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자식아, 내가 뭔 힘이 있다고 나한테 난리야. 방법 있었으면 내가 작년에 징계 받았겠냐?”
은평서 내부의 일이라면 몰라도 의약품에 관련된 사항은 본청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항이었다.
그것도 본청보다 윗줄에 속하는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는 게 의약품에 관한 사항인 만큼, 권일섭의 손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다.
정말로 답답한지 화내는 듯한 권일섭의 모습에 이성하는 깨갱하는 표정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가, 인마!”
“…….”
“안 가?”
“가, 갑니다.”
한마디만 더 하면 그대로 발길질을 할 것 같은 권일섭의 표정에,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내쫓긴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이! 이 소방관!”
그런 이성하에게 손을 흔들며 소방서 내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김 기자님!”
“여, 잘 있었지? 그것보다 분위기 왜 이래?”
반가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온 자양강장제 박스를 근처의 대원들에게 넘기며 인사하던 김정호가 소방서 내의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해 냈다.
저번 사건 이후 예전처럼 종종 들러 소방서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한 만큼, 미묘한 변화를 못 읽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를 본 이성하는 바로 권일섭의 눈치를 살피며 김정호를 밖으로 이끌었다.
“어? 왜 그래?”
“잠시만 나와 봐요.”
“뭐야, 왜 이래?”
당황해하는 김정호를 그대로 옥상으로 끌고 가, 박민규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었다.
“에피네프린?”
“네, 뭐 방법 없을까요? 기자님은 저희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더 잘 아시잖아요.”
사회부 기자로서 현직에 있는 소방관들만큼이나, 자신들에 대한 일상을 잘 아는 김정호라면 혹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예전에 자신을 공상 받을 수 있도록 기사를 써 준 적이 있어 비슷한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말에 김정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흠…… 이건 문제가 좀 복잡한데?”
“복잡해요?”
“어, 규정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분명히 위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구급대원이 에피네프린을 사용한 건 분명한 의료법 위반이란 말이야.”
상황이 딱하긴 했지만 현재 박민규가 어긴 규정은 소방청만이 아닌, 의료계까지 연결된 문제였다.
에피네프린처럼 심장과 같이 중요 기관에 직접적인 효과를 끼치는 약품은 현행법상 의사라고 명시된 의료진만 사용 가능했다.
그렇기에 소방청 역시 사람을 살렸음에도 징계 위원회를 소집한 것이었다.
‘끄응……. 간호사협회에, 임상병리사협회까지 다 일어나는 건가.’
김정호의 한두 마디로 이성하조차 바로 다른 의료업계를 떠올릴 정도였다.
단순히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며 넘어갈 정도로 가벼운 규정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성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그에 김정호가 말을 이었다.
“사실 방법이 있긴 한데.”
“방법이요?”
“어. 너 예전 동아랜드 때 내가 기사 써서 공상 받은 거 기억하니?”
김정호가 웃으며 하는 말에 이성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때 기자님 덕분에 월급 받아서 얼마나 고마웠는데요.”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었다.
“마, 만세!”
[그렇게 좋냐?]
“그럼요! 월급 나오는 거잖아요! 월급!”
김정호가 써 준 기사가 이슈가 된 덕분에, 신청하지 않았던 자신의 부상이 공상으로 인정돼 열심히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했으니까.
그랬기에 이성하는 바로 김정호의 생각이 뭔지를 깨달았다.
“이슈를 만들면 되는 거군요!”
자신이 공상 처리를 받았던 때처럼 사건을 키우는 거였다.
“맞아.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거든.”
그런 이성하의 말에 김정호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성하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잠깐만 여기 계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뭐? 어디 가는데?”
“박 주임님이요. 기자님이 인터뷰하려면 데려와야 되잖아요.”
활로를 찾았다는 생각에 바로 박민규를 데려와 김정호와 만나게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김정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친구는 안 돼. 네가 해야지.”
“제가요?”
“그래. 그 박민규라는 분이 징계까지 각오하면서 에피네프린 사용한 거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 ‘그저 대단하신 분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끝일 테지. 근데 그걸 네가 말하면 이슈가 돼.”
“…….”
이해를 못 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는 이성하의 모습에 김정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아이언 맨>
<아이언 맨 소방관, 또 일내다>
<은평구의 아이언 맨, 이성하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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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하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자마자 아이언 맨이라는 이름으로 뜨는 기사들을 보여 주며 씨익 웃음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기사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제가 해야 된다……?”
비로소 김정호가 하는 말이 뭘 뜻하는지를 알아차려서였다.
[오…… 너 요즘도 기사 많이 올라오네.]
‘끄응…….’
렉스의 말처럼 지난 국제 구조대로 미국 구조대원들을 구한 일이 아직까지 화제가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바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김정호에게 말을 꺼내 봤지만, 김정호는 듣기도 전에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셀러브리티의 말이야. 그리고 현재 소방관들 중에 가장 유명한 셀럽은, 너고 말이야.”
박민규로는 안 된다며 이성하를 손으로 가리켰고, 그에 이성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하죠. 인터뷰하면 되는 거죠.”
언론에 또 노출돼 선배들에게 놀림을 받는 건 싫었지만, 안타까운 사정의 박민규를 위해서라면 그깟 인터뷰 따위 백 번은 하겠다는 생각에, 당당한 눈빛으로 김정호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어서 들을 수 있는 말에 이성하의 눈빛에 균열이 일어났다.
“인터뷰 아냐.”
“네?”
“에베레스트 기사 터졌을 때 바로 했으면 모를까 지금은 인터뷰로 안 돼.”
당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김정호 때문이었다.
“그, 그럼.”
“있어 봐. 내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걱정 말라며 씨익 웃은 김정호가 그대로 옥상을 내려갔다.
그리고 이튿날.
이성하는 전날의 김정호를 붙잡고 자세히 묻지 못한 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성하 소방관님 안녕하세요. 김정호 기자님 소개로 이렇게 뵙네요. 김원영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들으셨겠지만, 이번 프로는 예능국에서 정말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잠깐, 어디서라고요?”
“아, MBS 예능국이요. 제가 설레서 제대로 말씀도 못 드렸네요. 다시 한번 소개드리겠습니다. MBS 예능국 소속 PD 김원영입니다. 반갑습니다.”
“하…….”
김정호가 생각한 방법이 자신의 예능 프로 출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