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8화>
118화. 그래도 하는 이유 (5)
주변이 순식간에 혼란으로 뒤덮인 건 당연했다.
“지, 지금 투약한 거야?”
“맙소사…….”
“끄응…… 대형 사고다…….”
심전도나 혈당 체크 같이 암묵적으로 허락하던 응급치료가 아닌, 정말 소방청 내에서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규정 위반이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이성하는 요구조자의 가슴에 얹은 손에 계속 힘을 불어 넣었다.
“정신 차려!”
매서운 눈빛으로 고함을 지르는 박민규의 기세 때문이었다.
“컴페션 속도 좀 더 빠르게 해!”
매일 할 일만 다하면 그만이라는 표정으로 손을 내젓던 양반이 압박 속도를 빨리 하라며,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에.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다시 희망을 가지고 요구조자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거센 펌프질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길. 반응 없어.]
렉스의 말처럼 에피네프린을 주사했음에도 제세동기에 뜨는 요구조자의 심장 리듬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
삐이이이.
심장이 정지해 있음을 알리는 무수축의 곧은 직선만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었고.
‘좀만 더! 좀만 더!’
투욱. 투욱.
좀 더 힘을 내 가슴 압박을 시도해 봤지만 요구조자의 상태는 여전했다.
삐이이이.
“틀렸어…….”
“하…….”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동료 소방관들이 실망 어린 표정을 짓는 모습처럼, 요구조자의 심장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끝났어…….’
에피네프린을 주사했음에도 계속 이런 상황이라는 건, 정말 요구조자의 상태가 가망이 없다는 걸 뜻했으니까.
변하지 않는 모습에 이성하가 좌절하려던 그 순간.
“포기하지 마라.”
그런 이성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박민규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이성하가 놀란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지만, 여전히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같았다.
“끝날 때까지 안 끝난 거야. 포기하지 마.”
제세동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는 확신에 찬 어조와 함께 고함을 지르며 자세를 바꿨다.
“교대!”
힘이 빠진 이성하를 위해서가 아닌, 요구조자를 위해서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요구조자의 심장에 조금이라도 더 강한 압박을 주기 위해, 힘이 충분한 박민규가 직접 CPR에 들어간 것이다.
격정적으로 움직였지만,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착잡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주임님…… 그냥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수액을 들고 있던 송현우조차 씁쓸한 표정으로 병원을 언급하는 것처럼, 이미 요구조자의 상태는 구급대원이 뭔가를 할 수 있은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박민규의 생각은 달랐다.
“쓸데없는 소리.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익수자의 골든타임은 4분이었다.
정확히는 물 밑에 가라앉아 호흡이 정지한 이후부터 적용되는 골든타임이 4분이었다.
심지어 처음 물 밖으로 꺼냈을 때 심정지가 아니었던 걸 생각하면 소생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심정지부터 8분. 그럼 2%야. 완전히 0은 아니야.’
투욱! 투욱! 투욱!
수년간 공부하고 현장에서 익혀 왔던 익수자들의 생존확률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CPR을 이어 갔으며, 그 노력 덕분인지 순간 제세동기 모니터에 반응이 일어났다.
삐익! 삐익! 삐익!
불안정하게나마 요동치는 그래프였다.
“……!”
삐익! 삐익! 삐익!
방금까지 반응이 없던 환자의 심장 리듬이 거세게 요동쳤고, 그렇게 제세동기에서 외쳐지는 음성에 모두가 고함을 질렀다.
- 제세동 필요합니다!
“미친!”
“모두 물러나!”
“VF, 심실세동이야! 바로 준비해!”
제세동이 필요하다는 말은 요구조자의 심장이 불규칙하긴 하지만 소생의 가능성을 뜻하는 심실세동의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이 요구조자가 살아났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눌러!”
“네!”
투웅!
“반응 없습니다!”
제세동기의 음성에 바로 전기 충격을 가했음에도 심장의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박민규는 CPR을 계속 이어 갔다.
삐익! 삐익! 삐익!
여전히 제세동기에 심실세동의 리듬이 표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 리듬을 어떻게든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다시 힘을 불어넣어 요구조자의 가슴을 압박했고, 그렇게 2분, 박민규가 손을 떼며 고함을 질렀다.
“물러서!”
두 번째 전기 충격이었다.
투웅!
모두가 주먹을 움켜쥔 채 바라보는 상황에서 전기 충격으로 요구조자의 손이 공중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동시에 요구조자의 입에서 깊은 숨이 토해졌다.
“우웨엑!”
“……!”
“우웨에에엑!”
심폐소생술과 여러 번 가해진 전기 충격으로, 드디어 요구조자의 기도를 막고 있던 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좋았어!”
“맥박 돌아왔어!”
“살았어! 살았다고!”
그 모습에 지켜보던 소방관들이 모두 고함을 지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직 의식을 차리진 못했지만, 드디어 요구조자 스스로 자가 호흡을 시작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엔 일렀다.
“연성대 병원 전화해! 지금 출발한다고!”
바로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는 박민규의 모습처럼, 아직 위험이 끝난 건 아니었다.
삑! 삑! 삑! 삑!
숨을 쉬고는 있지만 너무 오랜 시간 심장이 멈췄던 요구조자다 보니 또 언제 심정지가 일어날지 몰랐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앞에 있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요구조자를 들것에 올려 구급차로 달렸다.
“끄으으으.”
이미 꽤 체력 소모가 큰 상태였던 터라 요구조자의 무게에 자동으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이성하는 억지로 그 신음을 주워 삼켰다.
“살릴 수 있어.”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박민규 때문이었다.
“숨 쉰다. 살릴 수 있는 거야. 살릴 수 있어.”
마치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 듯 확신에 찬 눈빛으로 되뇌는 모습에, 이성하는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쏴아아아아!
“천천히! 천천히!”
그런 이성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민규는 오직 요구조자만 바라보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 몸으로 가리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 역시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린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린다.’
박민규의 저 말처럼 반드시 요구조자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요구조자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주임님! BP떨어집니다!”
호흡은 지속하고 있지만 요구조자의 혈압이 무서울 정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길! 산소포화도도 내려가! 이성하! CPR 다시 들어가! 빨리!”
혈압이 떨어지자 산소포화도까지 같이 내려가 다시 가슴 압박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럼에도 요구조자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삐익! 삐익! 삐익!
“……!”
“이런 제기랄!”
요구조자의 심장리듬이 다시 심정지 전 상태에 해당하는 심실세동의 리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구급차의 속도는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제길!”
급박하게 변하는 뒤쪽의 상황에 송현우가 조심스레 엑셀에서 발을 뗐기 때문이었다.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배들이 저 가냘픈 요구조자의 심장 리듬을 꺼트리지 않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은평서! 그냥 밟아! 우리가 길 어떻게든 열 테니까 밟아!
송현우가 속도를 늦추자마자 구급차의 무전에서 고함이 울려 퍼졌다.
이에에에엥!
그와 동시에 구급차의 양 옆에서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고, 이내 눈앞으로 보이는 광경에 송현우의 얼굴에 화색이 어렸다.
부아아아앙!
자신의 앞으로 치고 나가는 3대의 소방차 때문이었다.
- 여기는 수색. 우리가 선두에서 길 연다.
- 상암이다. 병원까지 길 제대로 뚫어 주지.
- 은평대 늦어서 미안하다. 지금부터 성산대가 길 연다. 따라오도록.
펌프차, 구급차, 소방 버스로 이루어진 소방차 3대가 자신들의 소속을 밝히며 앞에서 길을 만들자, 송현우 역시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엑셀에 발을 올렸다.
“갑니다!”
요구조자를 살리기 위해.
부아아아앙!
지금 자신이 이송하고 있는 요구조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동료들을 믿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요구조자를 실은 구급차가 연성대 병원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오 분 남짓이었다.
“달려!”
“네!”
도착과 동시에 박민규와 이성하가 바로 들것을 밀며 응급실로 달렸고.
“이쪽으로요!”
그렇게 이송된 요구조자를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던 의료진이 빠르게 처치에 들어갔다.
“인투베이션!”
“네!”
미리 상황을 전달받았기에 빠르게 요구조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약물을 투여하는 모습이었고, 그런 빠른 처치에 잠시 후 요구조자는 정상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BP,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입니다.”
“맥박 확실히 뜁니다! ROSC됐어요!”
의료진이 ROSC라는 자발적인 심장 박동 상태가 되었다는 말처럼, 요구조자의 심장 리듬이 정상적인 파형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하와 박민규 역시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당연했다.
“주임님!”
“그래!”
기어코 요구조자를 살려 냈다는 만족감에, 서로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민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제길, 결국 저질렀나…….’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달아서였다.
꽈악.
주머니에서 현장에서 사용한 빈 앰플이 만져지는 것에 인상을 찌푸렸고, 그에 자연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징계…….’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의약품 사용에 대한 중요 규정을 어긴 것에, 자신에게 내려질 징계 처분이 그제야 걱정된 것이다.
그랬기에 나오는 건 후회였다.
‘지은아. 미안…… 나 사고쳤네…….’
자신이 떠나고 남겨질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선 안 됐는데,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여, 여기 이정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환자 있나요?”
한 여성이 정신없는 모습으로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흐윽. 정훈이 아버지.”
베드에 누워 있는 요구조자가 남편이었는지 바로 달려가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었고,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구급대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흐윽. 제 남편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처한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고맙다며 박민규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그 모습에 박민규가 당황해 손을 흔들었지만, 여성의 눈물은 계속됐다.
“아니에요. 소방관님이 없었으면, 우리 남편…… 흐윽. 우리 남편 죽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요. 정말이요. 흐윽.”
박민규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죽었을 거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터트렸고, 그에 박민규는 더 이상 여성을 말리지 못했다.
‘아…….’
잊고 있던 감정이 가슴을 채워 나갔다.
“소방관님. 살려 줘서 고마워요.”
“엄마. 이 소방관 아저씨예요. 이 아저씨가 저 살려 줬어요.”
“흐으윽. 소방관님. 고마워요. 소방관님 때문에 아빠가 살았어요.”
자신을 붙잡고 감사를 표하는 보호자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에 박민규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제길…….’
비로소 자신이 무얼 위해 소방관이 됐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보호자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겁니다…… 전 소방관이니까요.”
소방관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었다.
요구조자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을 절대 거절하지 않는 게 소방관이기에 보호자에게 괜찮다며 웃음을 지었고, 그런 선배의 모습에 이성하 역시 웃음을 지었다.
‘멋있네요.’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했던 자신과 달리, 끝까지 요구조자를 포기하지 않은 선배였다.
짝짝짝짝.
그에 소리는 작지만 진심을 담아 선배를 향해 작게 박수를 보냈으며, 그런 박수 속에서 박민규는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소방.’
오랜만에 느끼는 그 단어의 묵직함에 조용히 그 여운을 감상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