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17화 (117/235)

<강철 소방대 117화>

117화. 그래도 하는 이유 (4)

에피네프린은 심정지 환자에게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강심제로 사용되는 의약품이었다.

심장 박동 수를 증가시키고 혈관 수축 및 기관 팽창을 유도하는 효능이 있어, 심장이 멈춘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적의 약품.

하지만 그 효능이 미치는 곳이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심장이다 보니, 이 에피네프린은 전적으로 의사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용하는 양에 따라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어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에피네프린이기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방관들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에피네프린? 진짜 에피네프린이야?”

“야,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냐?”

“미치겠네. 저 양반 사고치려나 본데?”

지금 상황에서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약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구급대원에게는 절대 사용이 허가되지 않은 약품이 에피네프린이었으니까.

하지만 박민규는 그런 동료 소방관들의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수액을 꺼내 송현우에게 내밀었다.

“꽉 잡고 있어!”

“네!”

시간이 없다는 듯 미처 송현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사기를 꺼내 들었고.

“주, 주임님!”

그 모습을 보며, 이성하가 CPR을 하는 와중에 불안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박민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살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린다.’

눈앞에 있는 요구조자를 어떤 일이 있어도 살리겠다고.

<에피네프린>

손에 쥔 앰플에 적힌 글자가 무거운 의미로 다가왔지만, 이미 방금 전 이성하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을 본 뒤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살릴 거예요. 살릴 거라고요!”

CPR을 하던 모습이었다.

“박민규!”

“살릴 수 있습니다! 살릴 수 있어요!”

선배의 만류에도 살릴 수 있다며 고함을 지르던 젊은 날의 자신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 * *

젊은 날의 박민규는 누구보다 사명감에 불타는 소방관이었다.

화르르르르!

“진입해!”

“진입!!”

여느 소방관들이 그렇듯, 요구조자가 있다면 뜨거운 불길 속이라도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소방관이었고, 그 덕분에 박민규는 대구에서 나름 유명한 소방관 중 한명이었다.

“귀하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자랑스런 소방 공무원으로서, 맡은바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지역 사회 소방 안전에 크게 기여해 이에 표창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수없이 많은 현장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사람들을 구조해, 수차례 모범 소방관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는 소방관이 박민규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박민규가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 속보입니다. 대구 지하철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역사 입구마다 계속해서 연기가 솟구치는 상황이며, 현재 수많은 시민들이 지하철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으며…….

12년 전,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였다.

- 달서구 소방서 광역 2호 발령! 광역 2호 발령!

“광역 2호입니다!”

“전부 연락해!”

“알겠습니다!”

도시의 핵심 시설인 지하철에서 발생한 화재다 보니, 박민규 역시 동료들과 함께 누구보다 빨리 출동했지만, 도착한 현장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역사 주변을 이미 새카맣게 물들인 연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악!

“진입 금지! 못 들어간다! 다들 물러나!”

역사 입구마다 솟구치는 새카만 유독 가스에 사실상 진입 불가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잠시, 죽음을 각오하고 진입했지만, 안타깝게 생존자는 찾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내에 질식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그그그.

자동으로 내려진 셔터 앞에서 다닥다닥 붙은 상태로 다들 쓰러진 채…….

그 모습을 보며, 박민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나르자…….”

“부장님…….”

“밖으로 날라. 얼른…….”

울컥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추스르며 사망한 사람들을 밖으로 나르는 것밖에.

하지만 그렇게 억누르고 또 억누른 감정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보인 광경에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제 딸, 제 딸 안에 있어요?”

핸드폰을 들고 앞으로 달려든 한 어머니 때문이었다.

“이, 이렇게 생겼어요. 내 딸 좀 찾아 줘요. 방금 전화 왔는데…… 흐윽. 아침에 화낸 거 미안하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흐윽.”

북받치는 감정에 차마 말을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우는 어머니였으며, 그 모습은 자신의 앞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 손주 안에 있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으허허헝.”

한 할아버지가 자신을 말리는 소방관을 어떻게든 뿌리치며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제 아내는요! 아직 제 아내가 안 나왔어요!”

구두 한 짝은 어디서 벗겨졌는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남성이 고함을 지르는 모습도 보였고.

“안 돼. 우리 엄마 안 죽었어…… 아직 안 죽었어요. 흐어엉.”

천으로 덮인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우는 젊은 여성의 모습도 보였다.

“아빠! 흐으윽.”

“내 딸. 내 딸 살려 줘. 으허허헝.”

“누나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역사 주변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으로 가득했으며, 그에 박민규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아…….’

“부, 부장님!”

“제길! 들 것 가져와! 여기 소방관이 쓰러졌다!”

지독한 슬픔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울음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박민규는 현장에 복귀할 수 없었다.

“살려 주세요…….”

지하철 근처만 다가가도 울리는 사람들의 통곡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흐어엉. 살려 줘요. 살려 줘.”

자신의 가족들을 구해 달라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으로 떠오름에.

“끄으으…….”

털썩.

“부장님!”

또다시 정신을 잃는 지독한 PTSD를 겪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박민규가 소방관의 길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구급대로? 진심이야?”

“네. 이 정도로 포기할 거면 애초부터 소방관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구급대로 근무하며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현장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구급대의 길을 택했다.

“박 부장 퇴근 안 해?”

“이것까지만 보고 가려고요. 집에 가면 애 때문에 공부를 못해요. 하하하.”

늦은 나이였지만 구급대로서 필수 자격증인 응급 구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에 박민규는 결국 구급대로서 다시 현장에 설 수 있었다.

“박 부장님! IV요!”

“잡았어!”

“CPR하세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소방관으로서 최전선에 해당하는 구조 현장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목숨이 위험한 사람들을 구하는 응급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민규에게 온 시련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 암이라고요?”

“네…… 위암입니다. 2기 정도긴 한데, 부위가 너무 안 좋네요.”

언제부턴가 느껴지는 통증에 간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

가망이 없다는 말기 판정은 아니지만 부위가 안 좋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렇게 몇 년을 항암 치료 받고 겨우 복귀했지만 암세포는 끈질겼다.

“전이요?”

“네…… 위뿐만이 아니라 폐랑 간에도 전이가 됐네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치료를 받은 지 몇 년 만에 다시 재발해, 폐와 간까지 전이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때문에 좀 더 확실한 진단을 위해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올라왔지만, 이곳 역시 크게 다른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

“흠…… 수술은 가능하지만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낮습니까?”

“네, 전이도 그렇지만 다시 재발한 부위가 너무 안 좋아요.”

서울의 병원 역시 박민규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거의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민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 여보 불쌍해서 어떡해. 여보…… 흐윽.”

“…….”

옆에서 슬퍼하는 아내의 모습처럼, 자신이 떠나고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박민규는 예전에 신청했다 거부당한 공상을 다시 신청했다.

‘이제 더는 돈이 없어. 무조건 수술하려면 공상을 인정받아야 돼.’

어떻게든 수술을 받기 위함이었다.

사실 첫 번째 항암 치료 때 이미 신청했다 거부당한 기록이 있지만, 다행히 이번만은 될 수 있는 듯했다.

“환자분 역학조사 보고서에 제가 서명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제가 봤을 때, 원인은 현장에서 흡입한 유독 가스가 확실해요. 이걸로 한번 해 봅시다.”

서울의 의사가 박민규의 암에 대한 역학조사 보고서에 전문가로 보증을 서 주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민규의 공상은 통과되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이걸론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공상을 처리하는 인사혁신처 조사관이 다시 박민규의 공상 처리를 거부했다.

“왜, 왜 그렇습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잖아요. 거기다 제가 알아보니 소방관님 예전에 담배 피우신 적 있더라고요.”

“그, 그게 무슨. 그건 끊은 지 한참 오래된.”

“아니요. 끊었어도 얼마든지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죠. 그러니 안 될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문가의 보증을 받았음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가하다며 그대로 선을 그었고, 그에 마지막 수단으로 본부인 소방방재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 역시 박민규를 외면하긴 마찬가지였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낄 문제가 아니네.”

“네?”

“공상은 엄연히 인사혁신처에서 관리하잖나. 우리가 항의하면 그쪽에서 월권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어. 사정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미안하네.”

소속된 대원의 생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관과 충돌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박민규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그랬기에 박민규는 지독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X새끼들.’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다 걸린 병임에도, 최소한의 대우조차 해 주지 않는 국가에게 느낀, 지독한 배신감.

그 때문에 박민규는 그날 이후로 가슴에서 소방관의 긍지를 지웠다.

“주임님, 심전도 검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니. 하지 마.”

“……네?”

“했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하지 마.”

더 이상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는 게 아닌, 그저 업무라는 생각만으로 출동을 하는 직장인의 삶을 살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그 마음이 오늘 깨져 버렸다.

“누군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어도 손길을 뻗는다. 그게 우리 소방관 아닙니까?”

자신을 향해 당차게 말하는 젊은 소방관 때문이었다.

“아, 안 돼!”

첨벙!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음에도 이게 최선이라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이성하의 모습에 거세게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을 느꼈고, 그 심장의 울림이 뭘 뜻하는지를 방금 깨달았다.

‘사람을 구한다.’

잊고 있던 울림이었다.

“아닙니다. 아직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후욱. 후욱.”

아직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CPR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자신의 심장 역시 포기하지 말라며 거센 고함을 질렀으며, 그에 박민규는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자신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CPR 계속해!”

포기하려는 이성하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는 바로 에피네프린을 담은 주사기를 환자의 정맥로에 연결했다.

‘살아라.’

사람을 구하기 위해.

“CPR 계속해!”

지금 이 순간, 박민규에게 사람 목숨 이상으로 중요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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