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15화 (115/235)

<강철 소방대 115화>

115화. 그래도 하는 이유 (2)

그 모습을 본 이성하가 바로 앞에 쌓인 포대 위를 넘어 하천 앞까지 달려간 건 당연했다.

콰르르르르!

거센 급류 소리로 인해 뭐라 말하는지 들리진 않지만.

“#$%@.”

희미하게나마 들리는 고함 소리에 눈앞에 보이는 형상이 사람이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하지만 포대를 넘어 뛰어 넘어갈 것도 없었다.

콰르르르르!

이미 폭우로 인해 하천이 불어나 유속이 엄청나게 증가한 상태였다.

콰아아아아아!

거기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들게 만드는 비바람 탓에 마치 홍수가 밀려 오듯 하천이 범람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성하는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서 떠내려가는 요구조자를 볼 수밖에 있었다.

“사, 살려.”

콰르르르!

“제길!”

요구조자가 엄청난 하천의 유속에, 도움을 줄 새도 없이 단번에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한탄도 잠시, 곧장 정신을 차린 이성하가 바로 다리 위로 올라와 하류 쪽을 바라봤다.

‘어디야. 어디!’

구하진 못했지만 아직 떠내려가는 요구조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 요구조자 확인 가능한 대원 없나! 상황 보고 바란다!

쉴 새 없이 외쳐지는 무전의 음성처럼, 자신 역시 방금 본 요구조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이는 건 없었다.

콰가가가가!

그저 보이는 건 거센 흙탕물을 일으키며 홍수처럼 밀려가는 진흙 빛의 하천뿐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절망한 표정으로 무전을 들 수밖에 없었다.

“방금 증산2교 지나갔지만 구하지 못했습니다. 유속이 너무 빠릅니다. 요구조자 상태 확인 불가능합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너무 빠른 하천의 유속에 요구조자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야, 잠깐만. 저거 뭐야!]

렉스가 무얼 봤는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토했다.

[표지판 쪽에! 저기!]

하류 쪽에 물 위로 끄트머리만 살짝 보이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고, 그쪽 방향을 바라본 이성하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보라?’

아까와 달리, 표지판 뒤로 거센 물보라가 일고 있었다.

콰르르르르!

표지판과 함께 물결을 거스르느라 거센 물보라를 토해 내는 물체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하류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야? 어디 가!”

“주임님, 잠시만요!”

갑작스런 이성하의 움직임에, 본부와 무전을 주고받던 박민규가 고함을 질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 살려 줘요…….”

‘요구조자!’

다가선 곳에서 보이는 광경에 주먹을 움켜쥘 수 있었다. 표지판 뒤에서 요구조자가 살려 달라며 고함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확인한 상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운이 좋았어.’

표지판에 매달려 있는 요구조자의 상태 때문이었다.

[그러네. 우비가 어떻게 저기에 걸리냐.]

황당해 하는 렉스의 말처럼, 운 좋게 입고 있던 우비가 표지판에 걸려 더 이상 떠내려가는 걸 막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안도하기엔 일렀다.

콰르르르르!

여전히 거센 빗줄기에 하천이 홍수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콜록, 사, 살려…… 우웩…….”

그 때문에 물에는 떠 있음에도, 조금씩 물을 먹어 고통을 호소하는 요구조자를 보면 얼마 버티지 못할 상황임에 분명해 보였다.

“여기는 은평 구급 2소대. 요구조자 현재 증산 2교 아래쪽에 멈춰 있습니다. 구조대 지원 필요합니다.”

조금만 지체하면 정말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요구조자의 상태에, 구조대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무전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구조대 현재 다른 곳으로 출동해서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뭐라고요?”

- 진관동에 지반이 침수된 건물이 있어 그쪽으로 출동 나가 있습니다.

구조대는 현재 다른 곳으로 출동을 나가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 센터라도 보내 주십쇼. 출동 가능한 센터 없습니까?”

- 북가좌 센터가 바로 앞에 있긴 한데, 그쪽도 현재 출동 중입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센터를 떠올리고 물어봤지만, 그곳 역시 이번 침수로 다른 곳에 출동을 나간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분통을 터트렸다.

“제길, 그럼 어떻게 합니까? 보고만 있어요!”

해결책은 제시 안 하고 계속 불가능하다고만 이야기하는 CP의 대답에 짜증이 치솟은 것이다.

- 아닙니다. 하류 쪽에서 대기하던 성산센터가 장비 챙기고 출발합니다. 조금만 버텨 주십쇼.

물론 CP 역시 놀고만 있던 건 아닌지, 바로 출동 가능한 진압대를 수배해, 진원을 나간다고 전해 왔지만, 그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산? 절대, 안 돼.’

성산센터의 위치는 현재 지점에서 2km 거리에 위치한 센터였다.

그것도 하류 쪽에서 대기했다는 말은, 바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그런 센터로 복귀해 장비를 챙기고 출발한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그때까지 요구조자가 버티는 건 불가능하단 사실이었다.

콰르르르르!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는 물보라를 생각하면, 언제 요구조자가 다시 물속으로 끌려갈지 몰랐으니까.

그랬기에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에서 먼저 구조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지원조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구조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 그게 무슨……

그에 당황한 CP의 음성이 들렸지만, 이성하는 그 말을 한마디로 대답했다.

“은평서 구조대 소속 이성하 소방교입니다. 시간 더 지체하면 요구조자 위험합니다. 수영 구조법은 익숙하니 직접 들어가겠습니다.”

자신의 소속이 구조대임을 밝히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보고했고, 그에 CP 역시 망설이다 수락의 뜻을 비쳤다.

- ……무리는 하지 마십쇼. 하류 쪽에도 대원들 대기시킬 테니 할 수 있는 것만 하시는 겁니다. 명령입니다.

구급대가 아닌 인명 구조를 목적으로 하는 구조대 소속이라는 말에, 현장에 있는 이성하의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도착해 상황을 듣던 박민규가 바로 고함을 질렀다.

“안 돼!”

금방이라도 이성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하는 말이었다.

“주임님. 성산센터 저 밑에 있는 거 아시잖아요. 센터 직원들 도착할 땐 이미 상황 끝납니다.”

그 말에 이성하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박민규의 대답은 똑같았다.

“너 미쳤어? 지금 물에 들어가는 거 자살행위인 거 몰라?”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였다.

콰르르르르!

그 역시 구조대로 근무한 경험이 있기에 이렇게 폭우로 늘어난 하천에 몸을 던지는 위험도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안 돼. 방금 보고 취소한다. 지원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

이성하의 결심을 꺾기 위해, 직접 CP에 연락해 방금 올린 보고를 취소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박민규가 본부에 무전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임님.”

이성하가 처연한 표정으로 박민규의 손을 붙잡아서였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안 놔!”

“들어가야 됩니다. 지금 아니면 늦는 거 아시잖습니까.”

놓으라는 고함에도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버티는 그의 모습에, 박민규는 새빨개진 얼굴로 이성하의 멱살을 잡았다.

“공명심에 목숨 버리고 싶냐?”

“…….”

“말해 봐. 무슨 목숨이 두 개야?”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러는데? 자칫하면 너까지 잘못되는 거 몰라! 왜 그러는데!”

누가 봐도 확률이 낮은 구조에 목숨을 걸려 하는 이성하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가 웃으며 말했다.

“소방관이잖아요.”

“뭐?”

“누군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어도 손길을 뻗는다. 그게 우리 소방관 아닙니까?”

소방관의 마음가짐이었다.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되며 수십, 수백 번을 외고 외는 소방정신의 헌신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박민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헌신…….’

잊고 싶던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소방공무원은 위기에 처한 국민의 요청에 주저하지 않고 대응하며, 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구호의 손길을 내민다!”

오래된 일이지만 소방관으로 임용되며 국가의 깃발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맹세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멍한 표정을 지었고, 힘 풀린 박민규의 손을, 이성하가 잡아 살며시 풀었다.

“규정을 어기는 일은 아니니까 주임님께 피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너, 그게 무슨…….”

“규정에 어긋난 일 아니잖아요. 지금은 저희밖에 없으니까요.”

구급대에게 화재 진압이나 구조 작업을 벌이지 말라는 규정은 없었다.

원칙적으로 현장에 대기하며 구조되는 응급환자를 수송하는 게 구급대의 임무지만, 그런 구급대 역시 기본은 소방관이었다.

화르르르!

“주수해!”

상황이 급박하면 방화복을 입고 현장에 투입되는 건 구급대 역시 다른 대원들과 같았고, 그에 이성하는 웃으며 구급조끼를 벗었다.

“괜찮아요. 이거나 맡아 줘요.”

“너…….”

당황해하는 박민규에게 입고 있던 구급조끼를 맡기며 씨익 웃음을 짓고는, 포대로 이동해 비상용으로 비치된 구명환을 집었다.

[펜스 쪽에 묶어. 단단하게.]

‘네.’

렉스의 말처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구명환에 걸린 로프를 도로의 펜스에 단단하게 묶었고,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갈게요.’

[그래.]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첨벙!

조금도 망설임 없이 거세게 몰아치는 흙탕물 속으로 단번에 뛰어 들었다.

“서, 선배님!”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에 적응 못하던 송현우가 그제야 당황해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뒤였다.

콰르르르르!

“본부! 여기는 구급 2소대. 성산센터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나!”

입수하자마자 순식간에 떠내려가는 듯한 이성하의 모습에, 박민규가 다급한 모습으로 무전에 고함을 질렀으니까.

하지만 정작 물속에 들어간 이성하는 침착했다.

어푸. 어푸.

거세게 몰아치는 물속에서도 제대로 요구조자를 바라보며 물살을 갈랐고, 잠깐 사이 목표로 잡았던 표지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터억!

[꽉 잡아!]

‘제길.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깜짝 놀란 렉스의 반응처럼 거센 물살에 타이밍을 놓칠 뻔하긴 했지만, 다행히 목적한 표지판을 확실히 잡아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엔 일렀다.

“우욱, 우우욱.”

간신히 버티고는 있는 듯 보이지만, 요구조자의 안색은 꽤 안 좋은 상태였다.

꼬르륵.

“사, 살려. 콜록. 콜록.”

너무 오랫동안 물속에 있어 힘이 빠진 탓에 계속 물 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지체 없이 들고 온 튜브를 요구조자에게 내밀었다.

“잡아!”

“……허억.”

꼬르르!

“잡아!”

의식이 흐려지려는 요구조자에게 튜브부터 잡으라고 고함을 질렀으며, 다행히 그 고함이 닿았는지 요구조자가 튜브를 잡는 데 성공했다.

“흐으윽. 사, 살려 주세요. 으허헝.”

물을 많이 먹은 탓에 두려움에 질리긴 했지만, 일단 위급 상황만은 넘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드디어 안도의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됐어.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돼.’

쉽진 않겠지만, 이제 튜브 끝에 매달린 로프만 잡아당기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그그그그.

잡고 있던 표지판에서 묘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어?”

그와 동시에 몸이 뒤쪽으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고.

“제, 제길!”

그에 느껴지는 불안함에 이성하가 튜브의 로프를 잡는 순간, 두 사람을 지탱하던 표지판이 그대로 사라졌다.

[빠졌어!]

‘젠장!’

렉스의 말처럼 거센 하천의 흐름에 지금까지 서 있던 표지판이 단번에 빠져 물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에 우비가 걸려 있던 요구조자까지 같이 끌려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이성하의 움직임이 빨랐던 덕분에 간신히 요구조자를 끌어 낼 수 있었다.

찌이이익!

“꽉 잡아요!”

“허억, 허억.”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콰르르르르!

현재 이성하와 요구조자는 오로지 튜브에 의존해 물길 위에 떠 있는 상태였다.

트드드드드.

당연히 거센 물살에 튜브가 요동치듯 흔들리는 상황이었고, 그에 로프를 묶어 두었던 펜스가 조금씩 우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끼이이익.

이성하가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파캉!

“제, 제길!”

고정대 역할로 묶어 두었던 펜스가 부서지며, 거센 강물 속으로 이성하와 요구조자가 그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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