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14화 (114/235)

<강철 소방대 114화>

114화. 그래도 하는 이유 (1)

이성하는 송현우와 박민규의 비밀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정말 비밀로 해도 되는 겁니까?”

“네. 그렇게 해요. 우리가 낄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는 자신들이 함부로 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따로 송현우를 불러 이번 문제를 정리한 것이다.

그렇게 이성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구급대의 정신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출동이다! 준비해!”

“네!”

쉴 새 없이 울리는 뻐꾸기 소리에 반응해.

“끄으으으.”

“쇼, 쇼크 상태입니다!”

“의식은?”

“반응 없습니다!”

위급한 요구조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긴박한 일상 속으로.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신원 확인하고 바로 보호자 통화해서 상태 확인해.”

“네!”

예전이라면 바로 환자의 혈당부터 체크하자고 했겠지만, 보호자와의 통화로 상태를 확인하라는 박민규의 지시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주임님! 당뇨 환자랍니다.”

“당뇨? 오케이. 포도당 수액 준비해.”

“네.”

조금은 늦지만 그렇게 보호자를 통해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환자의 처치를 시작했고, 그 모습은 그 뒤로 이어진 구급 출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전도 3유도로 검사해!”

“네!

오로지 규정에 맞춰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시, 심정지!”

“제길! CPR해!”

“네!”

툭! 툭! 툭!

그 때문에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다 심정지가 오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박민규의 노하우와 이성하의 노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했었다.

물론…….

‘이건 아닙니다, 주임님…….’

이성하의 입장에선 규정을 지키려 하다 보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 박민규에게 속으로 백 번은 소리쳤지만.

“고생했다.”

“주임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일 있으면 부르고.”

“네.”

정작 출동을 마치고 고생했다는 박민규의 앞에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정말 괜찮겠죠?”

그 모습에 신입인 송현우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바라봤지만, 이성하는 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제길…… 이걸 어떻게 말해.’

박민규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이제 막 임용돼 사명감에 불탈 송현우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때문에 표정을 바로하고 송현우에게 웃음을 지었다.

“없어요. 일은 무슨요. 얼른 올라가서 쉬세요. 저도 금방 따라 올라갈게요.”

아무 일도 아니라며 먼저 올라가 쉬라고 웃으며 말했고, 그러고는 혼자 사무실로 들어와 창밖을 바라봤다.

쏴아아아아!

‘진짜 신나게도 내리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유는 박민규 때문이었다.

죽음 앞에서 공상을 받기 위해, 사람을 구하고 있는 동료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꼈으니까.

“공상은 받아야지.”

“공상이요?”

“어. 현장에서 죽어야 순직 처리 받을 수 있거든. 그래야 내가 떠나도 가족들이 보상금 받고 살지.”

며칠 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순직을 이야기하던 박민규의 표정이 아직까지 선명했기에.

‘제길…….’

가슴 깊이 답답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엔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어길까도 생각해 봤다.

‘권 대장님께 말씀드리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문득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제시하던 권일섭이라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오늘 박 주임이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지?”

그날 퇴근을 하려던 자신에게 권일섭이 말을 걸었다.

“네?”

“아까 박 주임한테 들었어. 그 친구 상태 안 좋은 건 서장님이나 간부급들은 알고 있거든. 이제 너도 알았으니까 네가 옆에서 신경 좀 써 줬으면 좋겠다. 그 친구 사정이 딱해서 말이야.”

이미 박민규의 사정은 다 안다는 듯 이성하를 향해 신경 써 달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처음 송현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 문제는 자신이 낄 문제가 아니었다.

수천, 아니 심각한 박민규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수억이 깨질지도 모르는 게 암이라는 질병이었고, 사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누구보다 박민규의 선택을 이해하고 있었다.

‘가족…….’

남는 가족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나 왔어요!”

“아이, 가게 오지 말라니까.”

“괜찮아. 자습 다 마치고 온 거야. 나 설거지하면 되지?”

어린 시절,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매일 같이 학교만 끝나면 가게로 달려가던 게 자신이었던 만큼, 박민규의 걱정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책임감인 거지.]

‘네…….’

렉스의 말처럼, 지금 박민규의 선택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많은 고심을 통해 나온 선택이라는 걸 잘 알았기에.

덕문에 터져 나오는 감정은, 분노였다.

‘개 같은 놈들.’

현장도 모르면서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윗대가리들에 대한 분노였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과 명예를 바친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라고 앞에서 잘만 이야기하며, 정작 그 소속원인 소방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윗대가리들에 분노가 치밀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성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박민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팀장으로 존중하며 따르는 것뿐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 좀 자. 야간 근무 설 때 잠이 제일 중요한 거 알잖아.]

렉스의 말처럼 오늘 근무는 야간이었다.

대부분 12시가 넘으면 체력 보충을 위해 당직실에서 눈을 붙이고는 했으니까. 때문에 이성하는 간단히 세면만 마치고 당직실로 올라갔다.

코오오오.

‘다 자네.’

피곤했는지 곤히 잠든 박민규와 송현우의 모습에 조심히 자신의 침대로 이동했으며, 그렇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코오오오……

이성하 역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출동에 대비하기 위해 깊은 숙면에 든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의 수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순간 울리는 뻐꾸기 소리 때문이었다.

“주임님. 현우 씨. 출동이요.”

그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박민규와 송현우를 흔들어 깨웠고, 그러고는 바로 1층으로 내려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119인데요. 환자분 상태 어떠세요?”

가장 먼저 구급차에 올라탄 만큼 바로 신고자와 통화부터 시작했으며, 그에 막 구급차에 올라타던 박민규가 피식 웃었다.

“제법인데?”

근무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자연스레 보호자와 통화부터 시작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흡족한 마음이 든 것이다.

다행히 환자는 그렇게 위급한 환자가 아니었다.

쏴아아아아!

“이거. 좀 늦게 도착하겠는데.”

빗줄기 때문에 꽤 느린 속도로 운행하긴 했지만, 미리 연락해 본 대로 환자의 상태는 가벼운 외상이었다.

“할머니, 다친 다리가 어디세요?”

“여기, 아파서 못 움직이겠어요.”

“오른쪽 다리네요. 일단 병원으로 옮겨서 상태 볼게요.”

다리가 살짝 부은 걸 제외하고는 이상이 없는 환자의 상태에 바로 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했고, 그렇게 구급대는 출동한지 40분 만에 CP에 상황 종료를 보고할 수 있었다.

“보고도 했으니 가자. 얼른 가서 다시 자야지.”

“네.”

운이 좋았는지, 단번에 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로 귀서해 잠을 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 구급 2호차. 미안한데 서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업무 지원 좀 가능합니까?

방금 막 무전했던 CP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무슨 지원입니까?”

- 증산 2교 쪽에 포대 쌓아 둔 게 흩어져서 물이 넘친다고 했는데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박민규가 하늘을 바라봤다.

쏴아아아아!

며칠 전부터, 하루 종일 내리는 비로 인해 쌓아 둔 흙 포대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은평구에는 장마 기간마다 침수 피해가 일어나는 불광천의 지대 낮은 지역 위주로 흙 포대를 쌓아 둔 상태였다.

야간 근무 중이라 제법 피곤한 상태였지만 박민규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서 체크하겠습니다.”

원래는 진압대가 할 일이지만, 일손이 부족할 때는 언제든지 소속 상관없이 지원을 나가는 게 소방관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물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빨리 가서 체크하고 들어가자.”

“네, 알겠습니다.”

무전의 내용처럼 쌓아 둔 포대의 상황만 체크하고 돌아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급차 안의 분위기는 차를 운행할수록 조금씩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주임님 저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송현우가 손가락으로 창밖 전면을 가리켰다.

콰르르르르!

창밖으로 시커멓게 불어난 하천이 도로와 거의 비슷한 높이로 무섭게 흘러가는 광경이 보였고.

“상황실. 방금 지시 받은 은평서 구급 2호입니다. 설마 하천이 벌써 범람하는 겁니까?”

그에 박민규가 당황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았지만, 무전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상황 보고는 암울했다.

- 방금 막 한계 강수량이 넘었습니다.

“뭐라고요?”

- 신응교 아래쪽으로 지대가 낮은 곳은 이미 침수 상태고, 그쪽에 대원들이 나와서 흙 포대를 쌓는 중입니다. 현재 비상 대피 상황 고려 중입니다.

“끄응…….”

낮도 아니고, 모두가 잠든 시각에 대형 침수 재난의 전조 증상이 보이는 것이었다.

“비, 비상 대피요?”

그 무전에 운전대를 잡은 송현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이성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다.

“체크가 아니라 준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한쪽에 접혀 있는 우비를 착용하며 하는 말이었고, 그에 박민규 역시 짜증 섞인 표정으로 우비를 착용했다.

“제길, 야밤에 제대로 고생하게 생겼구먼.”

진압대와 구급대 할 거 없이, 조금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근무하는 전 대원이 불광천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할 게 있었다.

“주임님! 증산2교 확인은 해야 합니다!”

처음 CP에 지시 받았던 증산2교 확인이었다.

“증산2교?”

“네! 지하철 바로 앞이라서 체크해야 합니다!”

박민규는 정확히 몰랐지만, 이성하가 알기론 증산2교는 지하철 바로 앞에 있어, 자칫하면 지하철 내부가 수해로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철썩!

이미 도로 곳곳으로 꽤 많은 물이 튀어 오르는 만큼, 중요 시설이 근접한 증산2교의 확인은 우선돼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증산2교의 침수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좋아. 포대만 위쪽으로 다시 쌓자. 그러면 이쪽은 안심할 수 있겠어.”

박민규가 도착하자마자 환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포대가 생각보다 멀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 제길! 하류에 대원 없나?!

공용 채널로 맞춰 놨던 무전기에서 날선 목소리가 울렸다.

- 의용 소방대원이 물에 빠졌다. 현재 위치 와산교! 근처에 있는 대원 응답 바란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는 무전이 날카롭게 울렸고, 그 말이 무섭게 송현우가 경악한 표정으로 하천 위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

새카만 물속에서 거세게 첨벙이는 무언가를 보며, 이성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확실하진 않지만,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거센 급류에 요동을 치며 떠내려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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