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3화>
113화. 규정 (6)
그 모습에 구급차 안이 아수라장이 된 건 당연했다.
끼이익.
“주, 주임님!”
“괜찮으세요? 주임님!”
난데없이 피를 토하는 박민규의 모습에 급하게 구급차를 정차시키고 상태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까.
하지만 정작 깜짝 놀란 두 사람과 달리 박민규는 침착했다.
“괘, 괜찮아…… 콜록. 콜록.”
피를 토하면서도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였다.
“하, 하지만.”
“진정해! 별거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안해하는 두 사람에게 진정하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고는 가슴팍에서 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됐고, 물 좀 줘 봐.”
“여, 여기요.”
태연한 그 모습에 송현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을 건네자, 박민규가 익숙하다는 듯 받아 들었다.
“꿀꺽. 꿀꺽.”
그대로 약을 입에 넣고는 받아 든 물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송현우를 보며 앞을 가리켰다.
“출발해.”
“네?”
“출발하라고. 환자 이송해야 될 거 아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송현우에게 바로 출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 모습에 이성하가 놀란 건 당연했다.
“안 됩니다. 주임님! 지금 몸 상태로는 무리입니다. 그 몸으로 출동이라뇨!”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피를 토할 정도의 상태가 약을 먹었다고 바로 진정될 리 없었다.
[미친놈. 아직도 손 덜덜 떨면서 무슨 출동을 한다는 거야?]
렉스 역시 바로 핀잔을 내뱉는 것처럼, 각혈만 멈췄다 뿐이지, 아직도 고통 때문에 박민규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박민규의 의지는 확고했다.
“시끄러워…… 도착할 때면 약효 돌아서 괜찮아지니까 상관하지 마. 빨리 출발해.”
“아니……. 알겠습니다.”
완곡한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송현우와 이성하가 차를 출발시켰고 정말 그 말대로 박민규는 도착할 때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고령 노인분이야. 환자 상태 확인하고, 신고 내용대로 단순 타박상이면 바로 병원 이송한다. 올라가!”
각혈 때문에 옷에 조금 피가 묻은 것만 빼면, 전혀 이상 없는 모습으로 구급차에서 내려 환자 이송에 들어간 것이다.
그 때문에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72세 여성분입니다. 특별한 외상은 없는데, 오른쪽 다리가 살짝 부어서 통증 호소하는 환자인데 진료 가능한가요?”
- 네, 오시면 되세요.
“알겠습니다.”
병원으로 환자로 이송하는 과정은 물론.
“은평서 구급2호차. 환자 이송하고 복귀하겠습니다.”
- 오케이. 알겠습니다.
이송을 마치고 소방서로 귀서하는 과정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됐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소방서로 돌아온 구급 2소대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어이, 왔냐?”
“…….”
“뭐야? 쟤들 왜 저래? 뭔 일 있었나?”
차고에서 장비를 점검하는 진압대원들이 수고했다며 손을 드는 모습에도 그저 눈인사만 하며, 어색하게 서 안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서에 도착한 대원들이 향한 장소는 평소와 같은 사무실이 아닌 휴게실이었다.
“말씀해 주십쇼. 주임님.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주임님 몸 상태 말씀입니다. 피 토할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닙니까? 병원 가 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휴게실에 들어가자마자 이성하가 바로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출동 때 봤던 박민규의 상태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없는 휴게실로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박민규는 피식 웃었다.
“심각은 무슨. 별거 아니야. 그냥 감기 심해서 그런 거야.”
평소와 달리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이었다.
“주임님!”
그 말에 이성하가 말도 안 된다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박민규의 웃음은 여전했다.
“정말 감기라니까. 내가 기관지가 약해서 가끔 기침 심하면 이래. 오늘은 좀 더 심했던 거고.”
“……감기라고요?”
“그렇다니까. 내가 기관지가 좀 약해.”
되묻는 이성하의 말에도 틀림없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웃으며 이어서 하는 말에 이성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본 거 비밀로 해 주라.”
“네?”
“오늘 내가 피 토한 거 비밀로 해 달라고.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분명히 자기 입으로 단순한 감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야기해 놓고,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비밀로 해 달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갑자기 출동하다 또 그러시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다 나중에 진짜 큰일 생깁니다.”
박민규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안 될 일이었다.
[그래. 오늘 보니까 꽤 심각했어. 각혈까지 할 정도면 폐가 심하게 망가졌다는 거야.]
렉스의 말처럼, 피까지 토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휴직을 신청하고 몸조리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박민규가 피식 웃었다.
“그때 들었나?”
“…….”
“들은 게 맞네. 이래서 말 섞고 싶지 않았는데.”
당황해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그러고는 옆에 있는 송현우를 쳐다봤다.
“송현우.”
“네!”
“일단 오늘 일은 비밀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에 이성하를 흘깃 쳐다본 송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케이. 넌 나가 봐. 난 이성하랑 이야기 좀 하다 갈 테니까.”
알아들은 듯한 송현우의 모습에 박민규가 자리를 비켜달라며 눈짓했고, 그렇게 송현우가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박민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게 무슨 말씀…….”
“표정 보니까 다 아는 거 같은데.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김민정 선생이 전부 말해 줬나?”
순간 이성하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망했네. 민정 씨한테 피해 가면 안 되는데.’
김민정을 이야기하는 박민규의 말에 일이 커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민정 씨가 예전에 담당했던 환자셨다고 들었습니다. 전이가 심해서 수술을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고요.”
그 때문에 김민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며, 곧장 박민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가 물어본 겁니다.”
“뭐?”
“민정 씨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궁금해서 돌려 물어봤습니다.”
혹시나 자신 때문에 김민정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박민규에게 사죄를 청한 것이다.
하지만 박민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괜찮아. 김민정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너만큼이나 잘 알 거야. 나 때문에 운 적도 있으신 분이거든.”
옛 생각이 나는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둘이 생각보다 유대감이 깊구나.’
두 사람이 평범한 의사와 환자의 관계보다 더 서로를 친밀하게 여기는 것을.
자신 역시 같은 경험이 있기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표정 보니까 민정 씨가 정말 정성껏 대했나 보네.]
‘그러게요.’
렉스의 말처럼 지금 박민규가 보여 주는 표정은 요구조자가 생명을 구해 준 소방관을 바라보는 표정과 비슷했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주임님, 민정 씨가 많이 걱정합니다.”
“김민정 선생이?”
“네. 끝까지 주임님을 설득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더 설득했어야 했는데 못했다고요. 그래서 말인데 다시 치료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김민정의 이야기를 하며 다시 치료해 보자고.
“치료는 무슨.”
그 말에 바로 박민규가 냉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성하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늦은 건 아닐 거야.’
그로부터 시일이 꽤 지나 정확한 건 검사해 봐야겠지만, 아직 현장을 뛰는 박민규의 체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떠나 이런 선배가 암으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살 수 있는 확률이 아니면 죽을 땐 죽더라도 원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서 죽고 싶다고 했나?’
김민정의 말대로라면, 시한부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도 죽는 날까지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복귀한 소방관이 눈앞의 박민규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그 마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가망이 없던 건 아니라면서요. 제가 주임님의 정확한 상태는 모르지만, 그 말은 확실히 들었습니다. 가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그럼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거 아닙니까? 아직 정확한 건 모르지 않습니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아직 정확한 건 모르기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고.
하지만 그 말에 박민규가 차가운 그러나 서글픈,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도전? 무슨 돈으로 하지?”
“네?”
“그 도전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너 내가 어떻게 암에 걸린지는 들었나?”
그 말에 이성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독 가스 때문에 걸리신 거 아닙니까?”
“유독 가스?”
“네. 소방관이 암에 걸리는 경우는 그 상황밖에 없지 않습니까.”
추측이지만 거의 확실할 터였다.
[미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야. 화재 출동 중 흡입한 유독 가스로 암에 걸리는 동료들이 꽤 있었거든.]
렉스의 말처럼 미국에도 여러 번 발생할 정도로, 소방관들이 화재 출동에서 흡입한 유독 가스로 암에 걸리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박민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내가 암에 걸릴 일은 그것밖에 없거든. 그런데 인사혁신처에서 나 보고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고 했습니까?”
“담배를 펴서 암에 걸렸다고 하더라. 끊은 지 5년이 넘은 담배 때문에 말이야. 그게 뭘 뜻하는지 알아?”
“비공상…….”
“그래. 공상 신청했는데 소방 활동과는 아무 상관없는 암이라고 거부 받았어. 그런데 치료를 어떻게 받아? 무슨 돈으로? 응?”
웃겼는지 헛웃음까지 내뱉으며 하는 말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했다.
‘무슨…….’
생각지도 못했던 선배의 상황과, 함부로 말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답답한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런 이성하를 보며 박민규는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됐지? 그러니까 비밀로 좀 지켜 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남한테 내 설명하는 거 또 하고 싶진 않거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성하의 모습에,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나가려는 박민규에게 이성하가 힘없이 물었다.
“그럼 왜 복귀하신 겁니까?”
“뭐?”
“일하다 얻은 재해도 인정 못 받았는데 왜 또 위험한 현장으로 다시 오셨냐고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조심스레 토해진 음성이지만, 그 말에 박민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상은 받아야지.”
“공상이요?”
“어. 현장에서 죽어야 순직 처리 받을 수 있거든. 그래야 내가 떠나도 가족들이 보상금 받고 살지.”
이성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하는 말이었다.
“먼저 내려가마.”
할 말은 다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박민규였고, 그 말에 이성하는 아무 말을 못했다.
“공상…….”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묵직한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