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2화>
112화. 규정 (5)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박민규 역시 알아본 모양이었다.
“……!”
그 역시 김민정의 곁에 있던 사람이 이성하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당황한 마음을 김민정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위이이이잉!
순간 박민규의 손에 쥐여 있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기 때문이었다.
“전화 오신 거 아니에요?”
“아, 그러네요.”
“받으세요. 저도 약속 있어서 가 봐야 돼요.”
그 모습에 김민정이 전화를 받으라며 고개를 숙였고.
“그래요 선생님. 다음에 봬요.”
그에 박민규 역시 고개를 숙이며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에, 이성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다행이다. 인사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선배다 보니, 속으로 인사를 해야 되나 고민을 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건 여전했다.
‘뭐지? 두 사람이 어떻게 알지?’
오늘 확인한 김민정과 박민규의 관계 때문이었다.
서로 존댓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인척 관계는 아닌 듯싶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해 보였던 두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민규가 김민정한테 네 험담하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설마는 무슨? 너 박민규한테 불편한 티 엄청 내고 다녔잖아. 박민규가 퍽이나 좋은 소리 하겠다.]
‘끄응…….’
렉스의 말처럼 험담까지야 하지 않겠지만, 절대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사이가 자신과 박민규의 관계인 건 맞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밖으로 이동하며 김민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민정 씨, 그런데 아까 그 분은 누구세요?”
“누구요?”
“아까 3층에서 인사하셨던 분이요. 꽤 친해 보이셔서.”
그 말에 김민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민규 환자분이요?”
“……환자요?”
“네. 작년까지 제가 담당했던 환자분이에요. 작년 초에 퇴원하신 분인데, 오랜만에 봬서 너무 반가웠거든요.”
환자라는 말에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이성하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대답이었다.
‘다행이다. 아무 상관 없는 관계였어.’
[큭큭큭. 좋냐?]
‘그럼요. 만약에 두 사람이 지인으로 아는 거면, 제 입장이 난처하잖아요.’
그 말대로라면 더 이상 박민규와 자신의 사이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김민정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웠던 환자 분이에요.”
“아쉬움이요?”
“네. 저분 암 환자분이시거든요. 제가 6개월 동안 담당했던 환자였어요.”
박민규가 암환자라는 말 때문이었다.
“원래 위암 환자로 입원하셨는데, 다른 부위로도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치료를 거부하신 분이세요. 그래도 완전히 가망이 없던 건 아니라서 옆에서 열심히 설득했는데 결국 치료도 안 받으셨어요.”
그것도 단순한 암환자가 아니라, 전이가 심각하게 진행돼 스스로 치료를 포기한 환자였고, 그 상태는 말로만 들어도 암담할 정도로 심각했다.
“왜, 왜요?”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확실하게 살 수 있는 확률이 아니면 죽을 땐 죽더라도 원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서 죽고 싶다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설득했어야 했는데, 결국 말리지 못했어요. 사실 그분 말처럼 확률이 낮긴 했거든요. 폐랑 간에도 암이 전이돼서 말이에요.”
“…….”
김민정이 더 설득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예 가망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게 박민규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그럼…….”
그랬기에 박민규의 정확한 상태를 듣고 싶어 입을 열었지만, 김민정에게 더 이상의 이야기를 듣는 건 불가능했다.
“아, 내가 뭔 말을 하고 있지? 성하 씨. 죄송해요. 방금 말한 건 잊어 주세요.”
김민정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곤란한 표정을 지어서였다.
“제가 옛날 생각나서 실수했어요. 부탁 좀 드릴게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방금 한 이야기를 잊어 달라며 부탁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
“그럼요. 옛 생각나면 그럴 수도 있죠. 참, 우리 식사요. 이 앞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이 괜찮다는데 거기 갈래요?”
“레스토랑이요?”
“네, 전에 우리 한식 먹었잖아요. 오늘은 양식 먹어요.”
그녀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들을 순 없기에, 본래의 데이트로 화제를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아, 근데 그분 혹시 소방관 아니세요?”
다른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박민규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라는 말 때문이었다.
“네?”
“그 박민규 환자분이요. 다른 게 아니고 손 등에 화상 자국이 있어서요. 이게 우리 직업병이잖아요. 직업병. 하하하.”
이상하게 보는 김민정의 모습에 손등에 있는 화상 자국을 내 보이며 너스레를 떨었고, 다행히 그 모습에 김민정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와, 진짜 소방관들은 서로를 보면 안다더니 정말 맞나보네. 맞아요. 소방관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알기로 구조대? 음. 맞아. 구조대라고 했던 거 같아요. 저한테 사람 많이 구했다고 자랑하셨거든요.”
이성하가 이미 눈치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박민규가 구조대로 근무했다는 것을 말해 줬다.
그에 이성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은 건 당연했다.
“구조대요?”
현재 구급대를 맡고 있는 박민규가 예전에 자신과 같은 구조대로 활동했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두셨을 거예요.”
김민정이 박민규가 일을 그만둔 걸로 알고 있어서였다.
“그만둬요?”
“네, 그때 듣기로는 그만둔다고 들었거든요. 통증 때문에 암환자가 일을 하는 건 힘들어요. 억지로 한다고 해도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견디기도 힘들고요.”
일을 한다고 해도 통증 때문에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고, 그에 이성하의 뇌리엔 출동만 다녀오면 수시로 사라지던 박민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쉬고 있을 테니까 급한 일 있으면 불러라.”
“알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사무실에 붙어 있지 않고 밖으로 사라지던 박민규의 모습이 떠올랐으며, 그에 이성하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제길…….’
선배의 사정도 모른 채, 고문관이라 생각하며 멀리했던 자신의 모습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 것이다.
* * *
김민정과의 데이트는 무사히 끝났다.
“와, 여기 맛있네요.”
“그래요?”
“네, 맘에 들어요. 나중에 친구들이랑 한 번 더 와야겠는데요?”
고심해서 식당을 골랐던 덕분인지, 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즐긴 건 물론.
“성하 씨, 오늘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영화도 봐서 재밌었고요.”
“저도요. 간만에 보니까 재밌네요. 다음에 또 보러 갈래요?”
“정말요?”
“네, 그때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
“약속한 거예요?”
“네. 약속입니다.”
“호호, 좋아요. 잘 들어가요.”
“네, 민정 씨도요.”
이어서 봤던 영화까지 재밌던 덕분에, 김민정과 다음 약속까지 잡으며 웃으며 헤어졌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렇게 하루를 마친 이성하의 마음은 심란했다.
‘아, 미치겠네.’
출근하면 마주칠 박민규 때문이었다.
‘시한부라니…….’
김민정이 말한 시한부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결국 밤을 지새우고 출근했다.
“뭐야? 너 밤 샜냐?”
“네…….”
“미친놈, 구급대 출동 어떻게 하려고 밤까지 새고 오냐?”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이 단번에 밤을 새고 출근했다며 타박할 정도로, 퀭한 얼굴로 소방서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뒤의 일보다 지금의 일이 문제였다.
‘몇 시예요?’
[여덟 시 반.]
‘제길. 곧 오겠네.]
곧 박민규의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째깍. 째깍.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 소리가 귀에 천둥처럼 들리기 시작했으며, 잠시 후 들리는 렉스의 목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박민규 온다.]
‘제길…… 아직 결정 못 했는데.’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아직 박민규에게 뭐라고 말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민규와의 대면은 싱겁게 흘러갔다.
“좋은 아침.”
“안녕하십니까.”
“그래. 인계 들어가자.”
“아, 네…….”
선배들이 타박할 정도로 퀭한 이성하의 모습에도, 박민규는 출근하자마자 별다른 반응 없이 인계 회의에 들어갔다.
“밤에 바빴네요.”
“어. CPR 환자가 두 팀이나 있었거든. 그래서 창고 정리 하나도 못 했어.”
“괜찮습니다. 이성하, 회의 끝나면 네가 현우 데리고 바로 창고 정리 좀 해.”
“네…….”
이성하는 신경이 쓰여 죽을 거 같은데도,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깔끔하게 회의를 진행하며 할 일들을 정리했고, 그 모습은 이어진 출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너 뭐해?”
“네?”
“출동할 때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게 뭐야?”
“아…….”
“빨리 보호자 통화해서 환자 상태 체크 안 해!”
“죄송합니다!”
머리가 복잡해, 할 일을 잊고 있는 이성하에게, 언제나처럼 빡빡한 모습 그대로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은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휴게실 있을 테니까 급한 일 있으면 불러.”
“아, 네.”
누가 봐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이성하를 대하는 박민규였고, 그런 상황이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반복됨에 이성하는 미칠 지경이었다.
‘아,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분명히 병원에서 서로 얼굴을 봤음에도, 아무 말이 없는 박민규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 답답함이 어느 정도냐면 자신이 그날 본 사람이 박민규가 맞나 하는 혼동이 생길 정도였다.
“이성하, 밥 먹으러 가자.”
“네, 알겠습니다.”
매일 같이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대하는 박민규의 모습을 보면, 그저 닮은 사람을 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확실히 박민규가 맞았다.
[박민규 맞아. 외모는 그렇다 쳐도, 소방관에 이름도 똑같은데 다른 사람이겠냐?]
렉스의 말처럼 외모는 닮을 수 있어도, 이름과 직업까지 같을 순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이 좁은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둘이나 존재할 순 없었고, 결정적으로 병원의 박민규나 눈앞의 박민규 모두 오른 손등에 같은 화상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뭘 봐?”
“아, 아닙니다.”
날카로운 음성에 바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때 병원에서 봤던 화상 상처가 선배인 박민규의 손등에도 확실하게 자리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결국 억지로나마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에이, 나도 몰라. 알아서 하시겠지.’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나중에 본인이 요청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래. 무시해. 딱 봐도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거잖아.]
‘그렇죠?’
[그럼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거면 신경 끄는 게 답이야. 그렇다고 네가 먼저 이야기할 순 없잖아.]
렉스의 말처럼 일부러 모른 체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먼저 아는 척하는 것도 웃긴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결심은 이튿날 깨지고 말았다.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가자.”
“네!”
평상시처럼 울리는 뻐꾸기 소리에 긴급히 장비를 챙기고 구급차에 올랐지만, 정작 응급 상황은 출동하는 구급차 안에서 벌어졌다.
“우읍…….”
조수석에 앉은 박민규가 갑자기 헛구역질하는가 싶더니…….
“끄으으…… 우웨엑.”
“……!”
출동 도중, 주임인 박민규가 피를 토하며 자지러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