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11화 (111/235)

<강철 소방대 111화>

111화. 규정 (4)

“하지만 주임님, 뇌 환자입니다!”

그런 박민규의 모습에 당황한 이성하가 다급히 항변했지만,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게 뭐?”

“네?”

“뇌 환자가 뭐? 방금 내가 매뉴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만하고 차나 좀 타지? 피곤하니까.”

적당히 하고 돌아가자는 말이었다.

“송현우! 뭐 하고 있어! 빨리 차에 안 타!”

“네!”

옆에 있는 송현우에게까지 일갈하며 돌아가자고 말했고, 그러고는 그대로 가슴팍에 있던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은평서 구급2호차. 환자 이송 끝내고 복귀합니다.”

- 오케이. 알겠습니다.

상황실에 출동을 마무리했다는 보고까지 올리며, 이성하에게 구급대의 일은 여기까지라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구급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병원 간 이송은 구급대원이 상황에 따라 거절할 수도 있잖아. 완전히 위급한 상황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긴 하죠. 의식은 있었으니까요.’

렉스의 말처럼 상식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박민규의 지시가 내려진 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보호자를 대하는 박민규의 태도 때문이었다.

[애라서 그래?]

‘네, 안 그래도 아빠가 쓰러져서 겁먹은 애한테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냐고요. 그냥 걱정하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해 줘도 될 텐데, 말이야.’

보호자가 아직 어린 미성년자다 보니, 좀 더 친절하게 말해 줘도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그 불만을 겉으로 드러낼 마음은 없었다.

[뭐 어때? 어차피 오늘만 지나면 같이 출동할 일 없잖아.]

‘그렇긴 하죠. 임시 지원이니까.’

렉스의 말처럼 박민규와 출동을 나서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이야, 김영광 대신 출동해 이렇게 같은 차에 앉아 있지만 자신의 소속은 엄연히 구조대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더 이상 박민규와 접점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조용히 가야지. 조용히.’

오늘만 지나면 별로 마주칠 일도 없는 선배였기에 조용히 침묵을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생각이었다.

삐뽀! 삐뽀!

막 소방서에 도착하니 구급1호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급하게 출동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석훈 선배?’

평소와 같은 구급 출동인가 하고 무시하려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구급차의 조수석에 선배인 허석훈이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그에 당황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야, 김영광 실려 간 거 아냐?]

‘그런 말, 하지 마요!’

그 불길함을 입 밖으로 꺼내는 렉스의 말에 바로 하지 말라며 속으로 고함을 질렀지만,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았다.

‘없어.’

사무실 안에 있어야 할 김영광이 보이지 않았다.

“힘내라.”

그런 자신을 보며 다 안다는 표정으로 오성수가 껴안았고, 그런 오성수의 뒤에서 김필주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너 며칠 더해야겠다…….”

“뭐라고요?”

“조금 전 토하더라고. 뇌진탕 같아.”

혹시나 했지만, 머리에 부상을 입었던 김영광이 뒤늦게 뇌진탕 증세로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이다.

“에이…… 농담하지 마요. 저한테 왜 그래요? 하하하.”

그 말에 이성하가 일부러 과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말에 웃는 사람은 없었다.

“…… 정말이에요?”

“응…….”

다시 한번 묻는 이성하의 말에 오성수가 끌어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런 이성하에게 확신을 주려는 듯 권일섭이 한쪽에 비치된 근무표로 향했다.

끼익. 끼익.

지우개를 들어 근무표에 적인 이성하와 김영광의 이름을 깨끗이 지우고는, 그 자리 중 구급대의 칸에 이성하의 이름을 새로 적었다.

<구급대 – 이성하>

“말도 안 돼…….”

임시라고 생각했던 구급대의 지원 근무가 정식으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병원으로 실려 간 김영광은 3주 입원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된 거야?”

“미세하게 뇌출혈이 있었대요.”

“뇌출혈?”

“네, 출혈이 많지는 않아서 수술은 안 해도 된다는데, 그래도 3주는 약물 치료하면서 지켜봐야 된답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구급차에서 떨어지며 이마만 찢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무방비한 상태로 떨어지다 보니 머리에 큰 부상을 당한 상황.

그 때문에 이성하의 구급대 지원은 완전히 확정 났다.

“제가 쭉이요?”

“어쩔 수 없잖아. 신입들은 교육 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돌아가면서가 아닌 김영광이 복귀할 때까지 계속 근무하는 걸로.

당연히 이성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시였다.

“진압대는요?”

진압대가 있어서였다.

“진압대?”

“네. 정훈 선배랑 영도 선배도 있지 않습니까? 공평하게 같이 근무해야죠. 같은 막내인데.”

구조 3팀의 막내가 이성하라면, 진압 3팀에도 선배이긴 하지만 김정훈과 이영도라는 막내급 대원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권일섭이 피식 웃었다.

“걔들이 하겠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성하의 반문에 권일섭이 대답 대신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5월 근무표……?”

지난 달 현장대응단의 근무표가 정리된 서류철이었다.

자신이 네팔에 간 첫날부터 돌아와서 병원에 있던 기간까지 현장대응단의 근무 기록이 정리된 서류철이었고, 그에 뭔가 하는 심정으로 서류를 넘겨 보던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5월 내내, 김정훈이랑 이영도가 너 야간이랑 당직 대신 섰네.]

렉스의 말처럼 진압대의 김정훈과 이영도가 자신의 근무 시간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것도 주간이 아닌, 가장 고된 야간과 당직만 두 사람이 대신 선 상황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너 같으면 하겠냐?”

“아니요…….”

자신 같아도 거부할 두 사람의 근무 기록에, 힘없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날 이후, 이성하는 김영광을 대신해 구급 3팀으로 완전히 합류했다.

- 뻐꾹! 뻐꾹!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가방 챙겨!”

“아, 알겠습니다!”

출동 횟수가 가장 많아 근무 강도가 가장 높다는 구급팀의 세계로.

그리고 그에 따라 이성하의 얼굴은 날로 야위어 갔다.

“CPR해!”

“알겠습니다!”

항상 생명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급대의 생활이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주임님, 당뇨 체크…….”

“안 돼!”

“네?”

“당뇨 체크 안 되는 거 몰라? 보호자 통화되는지부터 확인해!”

“끄응…….”

허구한 날 규정에 관련된 상황만 닥치면 ‘안 돼.’라고 외쳐 대는 박민규의 고함에 심한 스트레스를 느껴서였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구급대로 근무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한국에 입국할 때처럼 얼굴이 다시 검게 변한 상태였다.

[오늘은 잠 좀 자는 게 어떠냐?]

‘왜요?’

[너 요새 그놈 때문에 잠 설쳐서 다크서클 장난 아니잖아. 누가 보면 시체인 줄 알겠다.]

‘…….’

렉스의 말처럼 그동안 박민규로 얻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눈 밑이 다크서클로 짙게 물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이요? 오늘 안 나가면 저 민정 씨한테 죽을걸요?’

오늘은 김민정과 점심 약속을 한 날이었다.

네팔에 있을 당시, 문자 한번을 끝으로 연락을 하지 않은 죄가 있어 김민정이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겠다고 하고 잡은 식사 약속이 바로 오늘이었다.

- 아, 도대체 시간 언제 돼요?

“다, 다음 주 목요일이 비번이긴 한데.”

- 그래요? 그럼 그날 오후 근무 뺄 테니까. 같이 점심 먹고 영화 볼래요?

“여, 영화요?”

- 왜요? 싫어요? 저번에 뭐든 하겠다는 말 거짓말이었어요?

“아, 아닙니다. 조, 좋아요. 늦지 않고 병원으로 갈게요!”

모처럼 찾아온 비번을 맞아 김민정과 오후에 만나 영화를 보기로 한 상태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서둘러 준비에 들어갔다.

“새 옷 사 뒀던 거. 제가 어디다 뒀죠?”

[밑에 칸. 밑에 칸에 있어.]

이미 몇 번의 데이트로 뼈저린 경험을 얻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미리 구매해 놨던 새 옷을 꺼내 단정한 복장을 갖췄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자신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흠, 괜찮은데?’

다크서클이 걸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멋을 부린 자신의 모습이 꽤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미친놈.]

그 말에 렉스가 바로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성하는 상관하지 않았다.

‘남자는 얼굴보다 몸인 거 몰라요?’

그동안 운동을 헛하지 않았는지, 울룩불룩 튀어나온 자신의 몸 근육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확인한 시간에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저씨 연성대 병원으로 가 주세요!”

“네!”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금세 흘러간 시간에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한 연성대 병원으로 향했고, 생각보다 원활한 교통 상황에 이성하는 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병원에 들어섰음에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김민정이 근무하는 외과 병동을 향해 뛰었으며, 그 덕분에 이성하가 만난 건 천사 같은 김민정이었다.

“민정 씨. 왔어요?”

“어? 성하 씨. 언제 왔어요? 일찍 왔으면 전화하지.”

“아니에요. 기다리면 되는데요. 근무는 끝나신 거예요?”

“네, 올라가서 인계만 하고 내려오면 돼요. 호호호.”

먼저 연애를 시작한 오성수를 보며 배운 게 있었기에, 데이트의 시작인 만남부터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어 낸 것이다.

렉스로서는 어이가 없을 상황이었다.

[와…… 도착한 지 1분도 안 된 놈이…… ]

무슨 이제 도착한 놈이 한참은 일찍 도착해 기다린 것처럼 연기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하로서는 당연한 대처였다.

“호호호. 그래요?”

지금이야 앞에서 여신처럼 웃고 있지만.

혹여나 잘못이라도 한다면.

“뭐. 라. 고. 요?”

순식간에 돌변해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눈앞의 김민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그런 이성하의 대처는 현명했다.

“저 금방 가서 인계하고 내려올게요.”

“천천히 하세요.”

“아니에요. 할 것도 없어요. 금방 올 테니까 여기 있어요.”

그런 이성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민정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올라갔으며, 그에 이성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됐어. 완벽했어!’

오늘 자신의 준비는 완벽했다고.

그랬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김민정을 기다렸다.

‘뭐 먹으러 가자고 하지? 저번엔 한식집을 갔으니까. 이번엔 레스토랑을 가자고 할까.’

핸드폰으로 미리 알아 뒀던 음식점의 정보를 검색하며 김민정을 기다렸고, 잠시 후 등장한 김민정의 모습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와…….”

역시나 아름다운 김민정의 모습 때문이었다.

“왜요? 예뻐요?”

“네. 엄청요.”

항상 느끼지만, 안경을 벗은 김민정의 모습은 정말 연예인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어? 성하 씨. 잠깐만요.”

아는 사람을 봤는지, 김민정이 잠깐 손을 들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떠세요?”

환하게 웃으며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아무 생각 없이 김민정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을 본 이성하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야. 박민규인데?]

“……!”

김민정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구급대의 박민규라서였다.

“하하하. 잘 지냈죠. 이게 얼마 만이에요.”

“그러게요. 연락 좀 하지 그러셨어요.”

“요새 너무 바빠서요. 하하하.”

항상 칼 같은 모습으로 싸늘한 표정만 짓던 박민규가 처음 보는 인자한 표정으로 김민정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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