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10화>
110화. 규정 (3)
“주임님, 해야 됩니다!”
그런 박민규에게 이성하가 애타는 표정으로 항변해 봤지만, 박민규의 의지는 여전히 굳건했다.
“안 돼! 심전도 검사는 의사만 가능한 거 몰라? 당장 손 떼.”
“하지만…….”
“분명히 손 떼라고 했다.”
꽈아악.
검사기의 전극을 놓으라며 이성하의 손을 꽉 잡으며 엄포를 놨고, 그에 이성하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억지로라도 검사를 시행할지, 상사의 지시를 따를지에 대한 딜레마.
하지만 이내 보이는 광경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촉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박민규가 나머지 손으로 환자의 가슴팍을 눌렀다.
“여기 아파요?”
“끄으윽.”
“여기는요?”
“그, 그만! 끄으으으.”
마치 의사처럼 환자의 명치와 가슴 위쪽을 차례로 눌러보며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에 이성하는 검사기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구급대…….’
자신 역시 응급구조 기술을 교육받긴 했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은 구급대원이 실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에 박민규를 믿고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이내 보이는 장면에 실망했다.
“송현우! 검사기 전원 켜.”
구급대 신입 송현우에게 심전도 검사기의 전원을 켜라고 지시하는 박민규의 모습 때문이었다.
방금 자신에게 심전도 검사를 막으려 했던 박민규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정식으로 검사를 진행할 리 없었고, 그런 이성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양쪽 어깨에 옆구리. 3유도 방식이네.]
렉스의 말처럼 3유도 검사 방법이었다.
심전도 검사는 원래 12개의 리듬을 분석하는 12유도 검사 방법으로 진행해야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걸 약식으로 진행하는 게 3유도 방식이었다.
약식으로 진행하는 만큼, 정확한 환자의 상태를 검사할 수 없다 보니, 구급대원이 검사를 진행해도 의료법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었고, 당연히 이 방법으로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끄으으윽.”
“파악 안 됩니다. 파형 정상으로 나옵니다.”
분명히 환자가 고통을 호소함에도 심전도 검사기 모니터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올 정도로, 가장 일반적인 심장 질환만 확인되는 게 이 3유도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응에 박민규는 확신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학생! 베개 좀 주세요. 두 개만!”
한 쪽에 서 있는 어린 보호자에게 다급히 베개를 달라고 요청했다.
“끄으으으.”
“자, 좀만 앉힐게요.”
그러고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만들고.
“여, 여기요!”
그 사이 여학생이 베개를 찾아와 이성하에게 내미는 모습에 바로 고함을 질렀다.
“베개 무릎 아래랑 등 뒤에 넣어.”
“네?”
“무릎 아래랑 등 뒤에 넣으라고!”
환자의 몸을 받치며 하는 말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 박력에 순간 압도된 이성하가 바로 그 지시에 따라 베개를 환자의 무릎 아래와 등 뒤에 넣자, 환자가 보이는 반응에 이성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지셨나?’
환자의 찡그린 인상이 서서히 펴져 가고 있었다.
“으으…….”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긴 하지만, 방금보다는 훨씬 나은 표정으로 숨을 쉬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뭐가?”
“지금 한 거 심근경색 응급처지잖아요.”
분명히 아무 파형도 나오지 않았는데, 박민규가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단 사실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이내 다급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것보다, 빨리 병원으로 가야 돼!’
심근경색은 심장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 괴사하는 질환이었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해 주는 관상동맥이 혈전에 막히면서 언제든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 심근경색이었고, 그 때문에 이성하는 바로 뒤에 있는 송현우를 불렀다.
“현우 씨! 들것이요!”
“네?”
“병원 빨리 가야 돼요. 시간 지체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상태가 호전됐다지만,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환자가 겪는 질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성하의 행동은 이번에도 박민규에 또다시 제지됐다.
“안 돼! 바로 이동하다 심정지라도 오면 어떡할 거야!”
환자의 심정지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거 보면 완전히 안정된 게 아니야. 확실히 의식 회복시키고 이동한다. 그러니까 잠깐 대기해.”
아직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지 않아 의식을 회복시키고 이동하겠다며 들것을 들고 온 송현우에게 고개를 가로저었고, 그에 이성하는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의식을 도대체 어떻게 회복시킨다는 겁니까? 심근경색 환자입니다. 바로 병원으로 옮기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요!”
의사도 아니면서 심장에 무리가 와서 쓰러진 환자의 의식을 회복시키겠다는 박민규의 말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를 호전시키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니트로글리세린만 쓸 수 있다면 회복시킬 수 있잖아.]
렉스의 말처럼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약이 있었다.
심근경색이 온 환자가 복용할 경우, 일시적으로 막혀 있는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게 바뀌어 통증이 빠르게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는 약이었다.
무엇보다 그 약은 현재 공교롭게도 구급대에 있었다.
[그거 사용하려는 거 아냐?]
‘니트로글리세린을요?’
[그래. 불법이긴 하지만 그것만 사용하면 의식을 회복시킬 순 있잖아.]
한쪽에 있는 구급박스로 빠르게 날아가는 렉스의 모습처럼, 환자의 의식을 회복시킬 방법이 구급대에게 있었다.
하지만 이성하는 그 말에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가지고는 있지만 사용할 수 없는 약이 니트로글리세린이었다.
렉스가 불법이라고 말한 것처럼 환자에게 치료제를 투약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상 엄격히 금지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절대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심전도 검사도, 아니 그 간단한 당뇨 체크도 못하게 하는 사람이 니트로글리세린을 사용한다고요? 그건 진짜 의료법 위반이에요. 쓰면 무조건 징계라고요.’
그동안 암묵적으로 사용하는 심전도 검사나 당뇨를 체크하는 것과 달랐다.
치료제를 투약하는 건 이성하 역시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정도로, 법에서도 엄격히 금지하는 위반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피식.
그렇게 자신을 노려보는 이성하의 모습이 웃겼는지, 박민규가 작게 실소를 흘렸다.
“너 환자 넘어지지 않게 잘 잡고 있어.”
“뭐라고요?”
“환자 넘어지지 않게 잘 잡으라고.”
반문하는 이성하의 손을 잡아 환자의 어깨로 이끌고는 몸을 일으켰고, 그렇게 일어서서는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보호자를 불렀다.
“학생. 환자분 혹시 약 같은 거 드시는 거 없어요?”
“약이요? 아니요. 아빠 아프신 데 없는데.”
“아니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드시는 게 없으면 뿌리는 게 있을 겁니다. 심근경색은 이렇게 갑자기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거기다 환자분 나이면 자기 건강 상황은 꼼꼼히 챙겼을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보호자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호, 혹시 그건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황급히 거실로 달려가 서랍을 뒤적거렸고, 그렇게 서랍을 뒤져 보호자가 들고 온 건 작은 스프레이었다.
“이, 이거 맞나요? 아빠가 가끔 입에 뿌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립스틱 크기의 하얀 스프레이를 들고 와 박민규에게 내밀었으며, 그에 이성하는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소켓(Isoket)…….’
병 표면에 쓰여 있는 문구 때문이었다.
[협심증 치료제 맞네.]
렉스의 말처럼 이름은 다르지만 니트로글리세린과 같은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가 저 이소켓 스프레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스프레이는 환자에게 사용이 가능했다.
‘사용하던 약이 있었어…….’
애초부터 환자가 사용하던 약을 투약하는 건 의료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았고, 그에 박민규는 받아 든 스프레이를 고민 없이 환자에게 바로 사용했다.
툭! 툭!
“환자분 입 좀 벌릴게요.”
스프레이의 벨브를 몇 번 누르고는 환자의 구강 내에 일정량을 도포했으며, 그렇게 스프레이를 흡수한 환자는 잠시 후 힘겹게나마 눈을 뜨는 데 성공했다.
“구, 구급대…… 감사합니다…….”
앞에 있는 구급대원들을 알아보고 감사를 표할 정도로, 심각했던 상태가 완만하게 호전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큰 문제는 없었다.
“수고하십니다. 은평서 구급대인데요. 오십팔 세 심근경색 환자 이송중 인데. 의식은 있고, BP130에 산소포화도 98%유지 중입니다. 가능한가요?”
- 얼마쯤 걸리세요?
“5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네, 금방 가겠습니다.”
호전된 환자의 상태에 병원에서 흔쾌히 환자의 이송을 오케이했다.
“좋아, 바로 간다.”
“네!”
그에 환자를 실은 구급차는 조금도 지체 없이 이송을 허락한 병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그에 환자는 무사히 병원까지 이송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기하던 응급실 간호사가 그렇게 도착한 환자를 받아들였으며, 그에 이성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끝났네.]
‘그러게요.’
자칫하면 심정지까지 올 뻔했던 위급한 환자를 아무 문제없이 병원까지 이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잠깐 휴식을 위해 한쪽에서 담배를 피는 박민규를 새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단한 분 같은데요?’
[그러게. 단순한 고문관은 아닌 거 같다야.]
김영광의 이야기처럼 깐깐한 성격인 건 맞았지만, 그걸 납득할 수 있는 실력 또한 지닌 선배라는 생각에.
하지만 그때였다.
“여, 여기 계셨네요. 서, 선생님 도와주세요.”
환자와 같이 구급차를 타고 왔던 어린 보호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이성하를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
“의, 의사선생님이 아빠가 넘어지는 과정에서 뇌를 다친 거 같데요. 그래서 대학 병원으로 가야된다는데 이송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가요?”
“네. 지금 병원 구급차는 다른 곳으로 출동 나가서 오려면 한참 걸린데요. 제발요. 부탁 좀 드릴게요.”
빠르게 대학병원으로 가야하는 상황이라며 이성하를 향해 간곡한 표정으로 부탁했고, 그에 이성하가 다급한 표정으로 박민규를 바라봤지만, 그 입에서 나온 건 싸늘한 거절이었다.
“안 됩니다. 병원 간 이송은 안 돼요.”
“주임님!”
“안 돼! 병원 간 이송은 매뉴얼상, 사설 구급차에게 맡겨야 되는 거 몰라서 이래? 죄송합니다. 기다렸다 가세요. 저희는 안 됩니다.”
보호자가 더 이상 부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매몰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