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09화>
109화. 규정 (2)
* * *
이성하가 정식 출근을 시작한 건 그로부터 3일 후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냐, 좋은 아침!”
언제 자리를 비웠냐는 듯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밝게 인사하며 출근한 이성하는 예전의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보고서 올렸어?”
“네, 다 올렸습니다.”
구조대지만 공무원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지루한 서류 작업과.
“멧돼지 출몰한 곳이 여기야?”
“네, 맞습니다.”
“좋아! 나랑 석훈이가 위쪽에서 훑을 테니까 성수랑 성민이는 왼쪽 맡는다. 성하랑 동민이는 오른쪽 맡고.”
“알겠습니다!”
각종 민원 신고로 인해 쉴 새 없이 출동하는 바쁜 삶속으로.
그리고 그런 출동 속에서 이성하는 웃고 있었다.
“멧돼지 발견했습니다! 오른쪽 언덕 부근. 바로 포획하겠습니다!”
바쁘지만 그리웠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삶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 야, 이 미친놈아! 뭔 포획이야? 위험하니까 기다려!
“에이, 지금 놓치면 하루 종일 산 뛰어다녀야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만두라는 허석훈의 익숙한 무전에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러고는 눈앞에 등장한 멧돼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동민아. 오른쪽만 확실히 막아 줘.”
“알겠습니다.”
신입이자, 한 살 어린 마동민에게 퇴로를 막게 하고는 천천히 손에 든 대형 뜰채로 멧돼지를 도발했으며.
뀌에에엑!
그에 흥분한 멧돼지가 달려든 순간, 옆으로 몸을 틀며 뜰채로 멧돼지를 낚아챘다.
콰당탕!
“끄응. 힘 엄청난데?”
달려드는 멧돼지의 힘에 바닥으로 나뒹굴긴 했지만, 단번에 사나운 멧돼지를 뜰채 안으로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뀌에에에엑!
멧돼지가 어떻게든 뜰채를 벗어나기 위해 난동을 부렸지만, 그 움직임은 금세 잠잠해졌다.
탕! 탕!
“이성하, 괜찮냐?”
무전을 받고 달려온 오성수가 바로 소지하고 있던 마취총을 격발해서였다.
“야! 마동민! 위에서 눌러!”
“넵!”
그런 멧돼지를 바로 육중한 덩치의 마동민이 위에서 눌러 마취약이 돌 때까지 시간을 벌었고, 그에 이성하는 웃으며 소방서로 복귀했다.
“어휴, 멍청한 새끼.”
“에이, 일찍 마무리해서 좋으시면서.”
“안 좋아, 인마! 넌 도대체 언제 철들래!”
“죄송합니다!”
“에이, 말이나 못하면.”
“하하하.”
소방서로 돌아가는 내내 허석훈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출동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웃으며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소방서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어수선했다.
“이런 X발.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맞습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사무실에서 분노에 찬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이건 내가 정식으로 이야기…….”
“이야기하면 뭐합니까? 바뀌는 게 없잖습니까.”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너희들 일 키워 봤자 시끄러워지는 거 몰라서 이래!”
대원들과 현장대응팀장이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 이유는 뒤로 보이는 한 명의 대원 때문이었다.
“여, 영광아. 너 왜 그래?”
“그렇게 됐습니다…….”
김영광이 씁쓸한 표정으로 막 들어온 구조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다쳤는지, 하얀 붕대로 단단하게 머리를 동여맨 모습이었으며, 그에 허석훈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개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너무 잘 알아서였다.
“누구야? 신고는 했어?”
“네…….”
“도대체 어떻게 맞았길래 이래? 너도 한 대 때리지 그랬어!”
그랬기에 바로 김영광의 곁으로 다가가 상처를 살피며 울분을 토했고, 그건 이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 미친놈들. 술 좀 작작 마시지. 진짜.’
지금 김영광이 부상을 입은 이유가, 이송하던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해 얻은 부상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다 부상을 입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애초에 그가 다칠 정도의 큰 사고가 발생했다면 구조대인 자신들이 모를 리 없었다.
소방관이 부상을 입을 정도의 사고라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게 그들이 속한 구조대였고, 그런 이성하의 예상은 정확했다.
“주취자 폭행이야.”
사무실에 남아 있던 권일섭 대장의 말이었다.
“40대 남성이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여는 영광이를 그대로 발로 찼단다.”
“문 열 때 말입니까?”
“어.”
“아니, 도대체 왜요?”
“경찰 말로는 영광이가 자신을 깔보는 것처럼 쳐다봐서 참을 수가 없었단다.”
“네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영광이가 자신을 무슨 거지 보듯 쳐다봤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제길.”
어지간히 열 받았는지, 욕설까지 섞으며 하는 이야기에, 구조대원들이 광분한 건 당연했다.
“그거 미친 새끼 아닙니까?”
“술 취했으면 곱게 집에나 들어가지 뭐하는 놈이랍니까? 왜 애꿎은 우리 애한테 난리야, 난리가!”
생각보다 위험했던 상황도 문제지만, 김영광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하지만 대원들은 그 분노를 억지로라도 삭혀야 했다.
뻐꾹. 뻐꾹.
스피커에서 울리는 뻐꾸기 소리 때문이었다.
- 구급대 출동, 구급대 출동. 불광동에서 구급 환자 발생. 빠르게 출동 바란다.
뻐꾸기 소리가 증명하듯 구급대의 단독 출동 지령에, 이성하는 막 일어나려는 김영광을 억지로 앉혔다.
“어디 가게요?”
“어딜 가긴. 출동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요. 머리까지 다쳤는데.”
다른 부상도 아니고 머리가 다친 선배를 출동에 나서게 할 순 없었다.
[그래, 성하 네가 가는 게 낫겠다. 뇌진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렉스의 말처럼 지금은 괜찮지만, 만약 뇌진탕이 있을 수도 있기에, 하루 이틀은 지켜봐야 하는 게 김영광의 상태였으니까.
그 때문에 이성하는 김영광을 억지로 앉힌 것도 모자라 입고 있는 구급조끼까지 벗겼다.
“조끼나 벗어 줘요. 제가 갈 테니까.”
“뭐?”
“출동은 해야죠. 빨리요.”
선배를 대신해 출동할 마음이었다.
“대장님, 제가 갈게요.”
“괜찮겠냐?”
“제가 가야죠. 신입들은 아직 교육 기간이잖아요.”
진압대나 구조대 모두 신입이 들어온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 교육 기간이기에 자신이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렇기에 권일섭에게 자신이 대신 출동하겠다고 말했고, 그에 권일섭은 한쪽에 서 있는 박민규를 향해 물었다.
“박 주임. 괜찮겠나?”
장호철을 대신해 3팀의 구급 2호차를 통솔하는 박민규의 의사를 묻자, 그는 조금도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달렸다.
“너 구급박스 들고 따라와. 송현우, 바로 시동 걸어!”
“네!”
잠깐이지만, 안 그래도 출동 명령이 떨어진 지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기에, 김영광을 대신할 대원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출동을 서두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출동하겠다고 손을 든 이성하는 그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맞다…… 박 주임님이 있었지…….’
잊고 있던 박민규의 존재를 그제야 떠올렸다.
복귀한 지는 좀 됐지만 구급대와 같이 출동할 정도로 큰 사건이 없다 보니, 그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당황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오성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멍청한 놈…….”
가만히 있었으면 진압대에서 지원을 나갈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자원해서 고생을 자처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한숨이 흘러나왔으니까.
“아…….”
그런 오성수의 모습에 이성하가 뒤늦게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구급대로 출동하는 건 바꿀 수 없었다.
“뭐해! 빨리 안 가고!”
얼른 출발 안 하냐며 소리치는 권일섭의 모습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구급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삐뽀! 삐뽀!
‘제길, 미리 좀 말해 주지.’
눈치 없이 나선 자신의 잘못보단, 치사하게 말을 안 해 준 선배들을 저주하며 출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들을 저주할 때가 아니었다.
“환자 나이가 어떻게 되죠?”
- 오, 오십팔 세요. 갑자기 안방에서 쿵 소리가 나서 들어가 봤더니 아빠가 쓰러져 계셨어요.
차에 타자마자 바로 통화를 시작했는지, 조수석에 탄 박민규의 핸드폰에서 다급한 여성의 음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환자분 혹시 겪고 계시는 병 같은 게 있으신가요?”
- 아니요. 없어요.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환자분 현재 상태가 어떠세요?”
- 계속 아파만 해요.
“어디를요?”
- 가슴이요! 가슴이 아픈 거 같아요!
울음이 가득한 여성 신고자의 음성은 물론.
- 끄으으!
- 아빠!
- 끄으으으!
환자로 보이는 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에 이성하는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같은데?]
‘네, 맞아요. 저렇게 아파하는 걸 보면 틀림없어요.’
정확한 건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환자의 상태가 렉스의 말처럼 심장에 관련된 부정맥이나 심근경색이라고.
아니, 확인할 것도 없었다.
‘갑자기 넘어져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거면 틀림없어.’
단순히 넘어지는 걸로 저렇게 가슴 통증을 호소할 순 없었다.
질환으로 발생하는 심장 통증만이 저런 고통을 호소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이성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구급차 한쪽에 비치된 심전도 검사기를 바라보게 됐다.
‘심전도 검사!’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빠르게 심전도를 검사해 병원에 자문을 구하는 것이 최선의 응급 처치였다.
하지만 그 심전도 검사는 오늘만큼은 사용이 힘들 듯했다.
‘박 주임님…….’
조수석에 앉아 있는 박민규 때문이었다.
‘허락할까요?’
[하겠냐? 당뇨 체크도 막았다는데.]
렉스의 말처럼 김영광에게 들었던 그 완고한 성격을 떠올려 보면, 자신이 해선 안 되는 심전도 검사를 절대 허락할 리 없었다.
‘제길, 왜 이게 불법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도 안 되는 의료법이었다.
[왜긴 왜겠냐? 현장을 모르는 윗대가리들 때문이지. 심전도 검사기의 전극은 붙일 순 있어도 버튼은 의사만 누를 수 있다? 에휴, 병신들. 욕도 아깝다.]
그 말에 바로 비웃음을 던지는 렉스의 말처럼 환자의, 가슴에 심전도 검사기의 전극은 달 수 있어도, 그 동작 버튼을 누르는 건 의사만 가능한 게 현재 의료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조심히 한쪽에 있는 심전도 검사기를 챙겼다.
[할 거냐?]
‘해야죠. 어쩔 수 없잖아요.’
허락하지 않으면 몰래라도 사용할 마음이었다.
‘써야 되는 상황이라면 써야 해.’
환자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박민규가 허락하지 않아도 사용할 마음으로, 이성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차 문을 열고 신고된 주소로 뛰어올라갔다.
끼이익!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잠깐!”
“허억, 허억. 먼저 올라갈게요!”
가장 먼저 구급상자를 챙겨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는 주택으로 단번에 뛰어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성하를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 여기예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는지, 문 앞에서 이성하를 향해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가 확인한 환자의 상태에 이성하는 바로 챙겨 온 심전도 검사기를 꺼냈다.
“끄으으윽.”
‘심혈관 증상이 맞는 거 같아요!’
가슴을 부여잡은 환자의 모습에 바로 심전도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어디야?”
“허억, 허억. 여기입니다!
박민규와 다른 구급대원의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환자 어디 있죠?”
“여, 여기요.”
그런 두 사람에게 바로 안내하는 보호자의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성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터억!
“너 뭐하는 거야!”
박민규가 막 버튼을 누르려는 이성하의 손을 잡아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