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8화 (108/235)

<강철 소방대 108화>

108화. 규정 (1)

“끄응…….”

목을 졸리지는 않았지만 꽤 과격하게 멱살을 잡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었으며, 그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으로 바로 걸음을 옮겼다.

“이게 무슨.”

상황은 모르지만 심하게 과열된 두 소방관의 모습에 일단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하를 오성수가 잡았다.

“끼어들지 마. 팀 문제니까.”

“팀이요?”

“어, 저분 이번에 구급대에 새로 오신 주임님이야. 그러니까 끼지 마.”

처음 보는 중년 소방관을 김영광과 같은 구급대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선후배 간의 일이라는 말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쩝…….’

오성수의 말처럼 구급대 안의 일이라면, 보직이 다른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년 소방관은 김영광의 멱살을 금방 풀었다.

“에휴, 내가 어린놈이랑 뭐하는 짓인지.”

워낙 많은 소방관들이 있는 사무실이다 보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적당히 해. 어차피 오래 안 볼 사이잖아. 부탁 좀 하자. 응?”

멱살을 잡았던 김영광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고, 그에 이성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김영광에게 조심스런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선배. 저 왔어요.”

“왔냐?”

“네, 괜찮으세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껴안으며 오랜만의 해후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후배로서 선배가 혼나는 민망한 상황을 본 직후였으니까.

하지만 김영광에게 방금의 일은 상관없는 듯했다.

“새끼야. 당연히 괜찮지. 몸은 어때?”

오랜만에 보는 이성하의 모습이 반가웠는지 오히려 활짝 웃으며 반겨 주었다.

“괜찮아요. 흉터 좀 남은 거 외에는.”

“오호, 지금 신입들 왔다고 센 척하는 거야? 성수야. 이놈 흑역사 오늘 한번 까 볼까?”

“하하하. 그럴까요?”

괜찮다는 이성하의 말에 뒤에 있는 신입 대원들을 보며 오성수와 장난부터 치는 모습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비로소 안도의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웃는 거 보니 별로 큰일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게요. 현장에서 작은 사고 하나 있었나 봐요. 저도 가끔 돌아오면 선배들한테 혼나잖아요. 현장에서 얼 탄다고.’

렉스의 말처럼 바로 웃음을 보이는 김영광의 모습에, 방금 있었던 상황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작은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저분은 누구예요?”

“박민규 주임님?”

“네. 새로 오신 분 같은데 몇 팀에 계신 분이에요? 다음에 보면 인사드리려고요.”

팀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상사였기에 정보를 알아 두기 위함이었다.

‘깐깐하신 분인 거 같으니까 미리 기억해 둬야 나중에 안 혼 나겠지.’

말단 소방관으로서 깐깐한 선배들의 성격을 미리 파악해 두는 건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김영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팀 아니야. 우리 팀이셔.”

“우리 팀이요?”

“어, 너 매년 각 서에서 구급대원 뽑아서 해외 연수 보내는 거 알지?”

우리 팀이라는 말에 잠깐 놀랐던 이성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매년 나라 바꿔 가면서 연수 가는 거 말하는 거잖아요.”

서에 근무하는 소방대원이라면 모두가 아는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작년에 1팀의 호영 선배가 갔던가.’

작년 길현대에 있던 한 선배도 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돼 해외로 갔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매년 고정적으로 행해지는 게 지금 김영광이 말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

그 작은 단서 덕분에 이성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거기에 장 주임님이 뽑힌 겁니까?”

안 그래도 김영광의 사수인 장호철이 안 보이던 참이었다.

그 물음에, 김영광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네팔 가고 바로 장 주임님 이번 해외 연수팀 팀장으로 뽑혀서 파견 나가셨어. 나만 버리고 말이야. 흐윽.”

공교롭게도 이성하가 국제구조대로 파견을 나간 사이, 구급팀의 장호철 역시 연수팀으로 선발돼 해외로 파견을 나간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이성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얼마나 오래 가시기에 지원을 오신 거예요?”

자신과 달리 장호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바로 인원이 충원된 구급대의 상황 때문이었다.

‘아무리 구급대가 바쁘다고 해도 이렇게 인원을 바로 채우나?’

기본적으로 한 명의 대원이 파견 등의 상황으로 자리를 비우면, 같은 서의 동료들이 그 자리를 메우며 근무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이성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두 달…….”

“두 달이요?”

기껏해야 3주 남짓 네팔에 다녀온 자신과 달리, 장호철의 연수 기간은 두 달이었다.

“어…… 잘하면 세 달까지 갈 수도 있어. 이번 연수 장소가 뉴욕 소방서라서 소방청에서 이번 연수는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더라. 그래서 오신 게 박 주임님이야. 그전엔 휴직 상태셨다는데 이번에 복귀하시면서 타이밍이 맞았나 봐. 다른 서 발령 전까지 장 주임님 자리 채우기로 한 거지…….”

그것도 성과에 따라 그보다 더 기간이 길어질지도 모르는 장기 연수였고, 그에 이성하는 선뜻 위로의 말을 던질 수 없었다.

‘엄청 깐깐해 보였는데…….’

자신이 보자마자 바로 정보를 파악해 두려고 한 것처럼, 첫인상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피곤해 보일 것 같은 소방관이 방금 본 박민규 주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조용히 손을 앞으로 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가 봐도 깐깐한 주임과 두 달 이상을 함께 할 김영광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하지만 김영광은 그런 이성하의 장난을 받아 줄 기분이 아니었다.

“하…….”

평상시였다면 바로 헤드락 같은 걸로 응징했을 선배가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우울함을 토해 냈다.

“형, 이리 와.”

“흐윽, 성수야. 나 어떡하냐.”

정말 끔찍했는지 손을 벌리는 오성수를 껴안으며 울상을 지었고,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허석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저 병아리들 서장님께 인사 좀 시키고 올게요.”

팀장인 김필주에게 새로 온 신입들을 눈짓하며 하는 말이었다.

“그래. 다녀와.”

그 말에 김필주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허석훈과 신입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오성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었어?”

“하…….”

“빨리 이야기해 봐. 그 인간이 또 뭔 짓했는데?”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김영광을 향해 어서 말하라며 다그쳤으며, 그렇게 듣게 된 내용에 사무실 안에 있는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구급 출동…… 70대 실신 환자였는데 경련 증세가 있어서 혈당 체크하려고 했더니 못하게 했어.”

“또 규정 위반이야?”

“어. 규정에 어긋나는 처치는 절대 허락 못한대…… 다행히 가족이랑 통화가 돼서 당뇨병 환자인 걸 알고 빠르게 포도당 주입해서 응급 처치는 했지만, 조금만 늦게 알았어도 위험했을 거야.”

구급대원에 해당하는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한계 규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혈당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 구급대원들은 그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혈당 체크를 으레 하지만, 법적으로 응급구조사에 해당하는 구급대원은 혈당체크가 불가능했다.

예전에는 가능했지만 병원 응급실에 응급구조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에 위기를 느낀 간호사 단체가 응급구조사의 병원 내 업무 범위 축소를 요구한 탓이었다.

심지어 이 요구를 보건복지부가 받아들이면서 응급실과 무관한 119구급대원들의 업무 범위까지 축소됐다.

*치료제 투약 불가.

*심전도 검사 불가.

*산모 응급 출산 시, 탯줄 절단 불가.

*심정지 환자에 수동제세동기 사용 불가.

*혈당 체크 및, 환자 채혈 불가.

말이 응급구조사지, 몇 가지 처치를 제외하고는 병원으로 환자만 빨리 이송하라는 가혹한 의료법 개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119 구급대원들은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황이었다.

위 사항을 어길 시 무허가 의료 행위에 해당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그걸 감수하며 위급한 환자들에게 응급 처치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대표적인 처치가 심전도 검사와 혈당 체크였다.

<심전도 검사>

<혈당 검사>

직접적인 치료가 아닌,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비교적 약한 범위의 불법 처치만이.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이번에 지원을 나온 주임은 그 규제를 엄격하게 지키는 듯했다.

“X발…… 맨날 그놈의 규정, 규정…… 아우, 진짜!”

듣고 있던 오성수가 그 말에 바로 짜증을 토하는 걸 보면 꽤 여러 번 있던 일인 듯했고, 그에 이성하는 진심으로 안쓰러운 마음으로 김영광을 바라봤다.

[고문관인가 보네.]

‘네, 진짜 제대로 걸렸나 봐요.’

소방관에게 모든 규정을 지키며 일을 하라는 것만큼이나, 토 나오는 일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팀장님, 애들 서장님께 인사시키고 왔어요.”

신입들을 데리고 눈치껏 빠졌던 허석훈이 돌아왔다.

“아, 그래. 애들 자리부터 만들어 줘야지.”

그 모습에 김필주가 눈을 찡긋거리며 듣고 있던 대원들에게 눈치를 줬고, 그에 이성하는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서 안내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럴래?”

“네, 원래 막내가 하는 일이잖아요.”

두 달이나 그런 고문관과 함께할 김영광의 처지가 안타깝긴 했지만,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새로 들어온 후배들을 챙기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몰랐다.

‘저놈인가.’

방금 잠깐 마주쳤던 박민규가 2층에서 자신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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