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7화 (107/235)

<강철 소방대 107화>

107화. 생환 (3)

“신입이요?”

신입이 들어온다는 오성수의 말에 이성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입니까? 그것도 두 명이나요?”

전혀 예상 못한 소식에, 이성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고, 그에 오성수가 피식 웃었다.

“오냐. 그렇게 좋냐?”

“당연하죠. 드디어 제 밑으로 막내가 들어온다는 거 아닙니까?”

“미친놈. 큭큭큭.”

드디어 막내를 탈출해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성하의 모습에서, 예전 막내를 탈출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좋아할 건 아니었다.

“웃기는. 서에서 인원 보충을 괜히 해 주겠냐.”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던 허석훈이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인원 보충 건은 청에서 내려온 거야. 은평구 인구수가 많이 늘어서 요즘 출동이 너무 많아졌잖아. 심지어 곧 여름이야. 너 여름이 뭘 의미하는지 알지?”

그 말에 이성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민원 신고…….”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애애애앵!”

허석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성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팔을 날갯짓하듯 휘저었고, 그에 이성하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네. 벌집 치우러 다니는 기간이 다시 왔구나.]

“X발…….”

렉스의 말처럼 지난여름 날씨가 더워지며 폭증한 벌들의 개체 수에, 미친 듯이 벌집을 치우러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가 왜 벌집을 치우냐는 멍청한 소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시민의 안전에 관한 출동이라면, 부서 가리지 않고 출동하는 게 119의 출동 시스템이었다.

그 때문에 민원 신고는 부서를 가리지 않고 출동해야 했다.

한마디로 폭증하는 민원 신고를 감당하며 기존에 맡고 있던 안전 사고와 재난까지 해결해야 하는 게 소방관의 여름 기간이었고, 그에 이성하의 얼굴엔 해탈의 감정이 떠올랐다.

‘죽었구나…….’

매일같이 시체처럼 서에서 대기하며 출동에 대응하던 자신의 모습이 자연히 그려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병원에 오래 있고 싶어졌다.

“콜록, 콜록.”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졌는지 기침이 흘러나왔고.

“선배님들이 많이 고생하시겠네요. 저도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콜록. 콜록.”

그런 몸 상태를 선배들에게 어필하며 아픈 표정을 지어 봤지만, 그 행동은 허석훈과 오성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가 그러더라. 2주면 퇴원해도 된다고.”

“…….”

“어쩌냐? 이미 의사선생님 만나고 왔는데. 진단서 받았어.”

언제 의사를 만나고 왔는지 이성하의 이름이 적힌 진단서를 들어 보이며 야비한 미소를 지었고, 그에 이성하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로 했다.

“2주가 뭡니까. 일주일만 쉬어도 됩니다. 퇴원하면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웃고 있지만 묘하게 입꼬리가 늘어지는 두 선배의 모습에, 더 이상 버텨 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호호.”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옆에 있던 형수 정유경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성하는 진지했다.

“이걸 확!”

“하하하…… 농담한 거예요. 농담…….”

순식간에 주먹을 들어 보이는 허석훈의 모습에, 다급히 항복을 선언했으니까.

다행히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허석훈이 주먹을 내렸다.

“꼭 맞을 짓을 해요. 맞을 짓을. 아무튼 전달할 건 다 전달했으니까 우린 이만 들어간다.”

“벌써 가시게요?”

“가야지.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벽면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일어나겠다고 말했고, 그 말에 오성수와 정유경 역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어머,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도 일어나요. 오빠. 성하 씨 쉬어야죠.”

“그러네. 슬슬 가야겠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 버린 상황이었다.

“한번 또 들를게요.”

“몸조리 잘해라.”

“대장님이랑 팀장님은 내일 오신단다.”

“네, 와 주셔서 감사해요. 들어가세요.”

그에 이성하 역시 더 이상 선배들과 형수를 잡지 못하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조용해진 병실에서 혼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좋냐?]

‘네. 드디어 돌아온 기분이 나네요. 하하.’

시끌벅적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나니, 정말 한국에 돌아왔다는 게 드디어 실감이 나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몸은?”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무슨. 네가 무슨 코난이야? 어떻게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냐? 걘 몸이라도 멀쩡하지.”

“…….”

바로 이튿날 찾아온 권일섭과 김필주에 크게 혼이 나 한참을 석고대죄했고, 그 뒤로 찾아온 김민정의 앞에서는 거의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한 번을 연락 안하냐.]

‘문자 하나는 보냈는데…….’

[답장 안 보냈잖아. 새끼야!]

‘끄응…….’

렉스의 말처럼 네팔로 넘어간 뒤부터 김민정에게 문자 하나를 끝으로 연락을 못했기에.

“연락도 안 하고.”

“하하…….”

“진짜 이럴 거예요?”

“죄송합니다…….”

쌍심지를 켜고 이야기하는 김민정의 화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반성과 후회를 하는 시간을 거쳐 이성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국민안전처가 있는 세종시로 내려갔다.

“귀하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자랑스러운 소방공무원으로서, 맡은바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대한민국의 명예를 크게 드높인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축하합니다.”

오랜만에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국민안전처 장관에게 직접 표창장을 받았으며,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와 이튿날 아침 일찍 은평소방서로 향했다.

‘다들 잘 있으려나.’

구조팀 동료들의 얼굴은 봤지만, 같이 움직이는 화재진압대와 구급대 선배들의 얼굴도 보고 싶어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출근한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다들 보면 억 소리 내지 않을까요?’

[억 소리?]

‘최연소 소방교잖아요. 아마 동기들 중에서 제가 제일 빠를걸요?’

이번 표창으로 진급한 새 계급장을 선배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이게 소방교의 마음이란 말이지.’

나름 고참으로 취급되는 소방교 계급장을 단 자신의 모습을.

물론 그런 이성하의 계급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누구야? 이성하 아냐?”

“이성하요? 와! 진짜 이성하다.”

“우리 막내. 이리 와. 너 몸 괜찮냐?”

그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기에 반가워만 하는 동료들이었다.

“소방교 이성하. 오늘부터 정식으로 복귀하겠습니다!”

그 때문에 같은 팀 선배들에게는 계급장을 바꿔 단 걸 티내기 위해 소방교라는 단어까지 언급해 봤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었다.

“소방교? 아, 육각수 세 개?”

“어이쿠, 저랑 같은 계급 되셨네요. 대단하세요. 이성하 소방교님.”

“야, 너무 놀리지 마. 저때는 저게 자랑스럽잖아.”

“저게요? 전 안 그랬는데.”

“저도요. 이제 병아리에서 청소년된 건데, 뭐가 자랑스럽습니까. 풋.”

허석훈과 오성수는 물론, 말리는 김필주까지 슬쩍 웃음을 짓는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후배들 언제 옵니까?”

“후배?”

“네, 오늘부터 신입들 출근한다면서요.”

말로만 듣던 신입 대원들이 오늘부터 출근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부상 때문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며칠 전 구조3팀의 신입 대원들을 뽑기 위한 테스트가 열린 건 알고 있었고, 그렇게 뽑힌 대원들의 출근이 오늘이라는 건 이미 인트라넷을 통해 공지된 사항이었다.

‘그래도 후배들은 선망 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겠지.’

선배들은 몰라도, 이제 갓 들어온 신입 대원이라면 소방교의 직급을 단 자신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오성수가 피식 웃었다.

“신입이라…… 이걸 신입이라고 해야 되나?”

묘한 놀림을 담은 웃음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뭐 그런 게 있어.”

본능적으로 느낀 불길함에 이유를 물었지만, 오성수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고, 잠시 후 이성하는 그 웃음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구로소방서 신도림센터에서 근무하던 도성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왔구나. 이쪽으로 앉아.”

“성하야. 신입 왔네.”

신입답게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에 허석훈과 오성수가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성하는 웃지 못했다.

“형이 왜…….”

새로 들어온 신입은, 아는 사람이었다.

“너 몸 괜찮냐?”

같은 방 동기이자 바쁜 와중에도 간간이 얼굴을 볼 정도로 친한 도성민이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에, 이성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큭큭큭. 계속 막내네.]

‘제길…….’

도성민의 등장에 렉스가 바로 웃음을 터트린 것처럼, 새로 온 신입이 말이 신입이지, 신입이 아닌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새삼 느낀 자신의 돌머리에 좌절했다.

‘잊고 있었어…… 구조대는 기존 대원들 중에서 뽑잖아…….’

선배들이 신입을 뽑는다는 말에 몰두한 나머지, 얼마든지 년차가 있는 소방관들도 시험을 치러 들어올 수 있는 게 구조대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으니까.

그랬기에 간절한 표정으로 오성수를 바라봤다.

“아니죠? 그렇죠?”

다른 한 명만은 제발 신입이라 말해 달라고.

그리고 그 간절함을 오성수는 외면하지 않았다.

“아니야, 인마. 저기 왔네.”

웃는 모습으로 이성하의 뒤를 가리켰다.

“안녕하십니까! 마포소방서 염리센터에서 근무하던 마동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뒤를 바라보자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덩치 있는 소방관이 보였고, 그에 이성하는 울컥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육각수 2개…….’

자신이 어제까지 달고 있던 소방사 계급장을 단 소방관이었다.

얼굴이 좀 삭아 나이는 있어 보이지만 확실히 자신보다 낮은 계급이었고, 거기다 호봉 역시 자신보다 낮았다.

“작년 가을에 임용됐데.”

“가을이요?”

“그래. 1호봉이야.”

놀린 게 미안했는지 오성수가 옆에서 새로 온 신입의 호봉까지 정확히 말해 줬고, 그에 이성하는 비로소 만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많이 알려 드릴게요. 이성하 소방교라고 합니다. 올해 2년차예요. 하하하.”

진짜 후배가 팀에 들어왔다는 것에 흡족한 웃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네가 뭔데 나한테 지랄이야? 난 규정 외의 일은 절대 안 해.”

입구 쪽에서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콰악.

“그만해라. 참고 있는 거 안 보이냐?”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소방관이 막 말을 붙이던 소방관의 멱살을 잡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멱살을 잡힌 소방관은 이성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광 선배?’

같은 3팀 구급대의 김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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