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소방대 105화>
105화. 생환 (1)
발견된 구조팀 여섯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헬기로 끌어 올려졌다.
“전부 고정했어?”
“네, 전부 단단하게 고정됐습니다.”
“좋아. 관제탑. 여기는 호크 아이. 구조팀 전원 확보하고 지금 바로 카트만두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하겠다.”
- 카피 뎃.
타타타타타타!
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모스가 바로 헬기를 출발시켜 인근 병원으로 구조팀을 이송했고, 그렇게 이송된 대원들이 의식을 차리기 시작한 건 병원으로 이송되고 하루가 지난 후였다.
“끄으으…….”
“으음…….”
하나둘 온몸을 데우고 있는 히터와 담요의 온기에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이성하도 정신을 차렸다.
‘으음. 여기는…….’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함에 주변부터 살폈다.
‘선배들…… 병원인가?’
링거를 단 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료들의 모습에 자신이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이성하는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났냐?]
‘병원이에요?’
[그래.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했어. 딱 헬기가 도착했거든.]
‘다행이네요.’
의식을 차린 자신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렉스의 말처럼,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왔음을 드디어 실감한 것이다.
심지어 몸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감각은 있어.’
아직 온몸이 얼얼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손과 발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이성하의 상태는 꽤 위중한 상태였다.
‘다들 괜찮은가.’
다른 동료들의 상태가 괜찮은지 걱정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끄으윽!”
순간 온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허억, 허억.”
그렇게 몸을 눕혔음에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성하의 모습에 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늑골 나갔어. 인마.]
‘느, 늑골이요?’
[그래. 너 산에서 내려올 때, 아이스 툴로 속도 조절하려고 몸으로 눌렀던 거 잊었어? 무려 3개나 나갔다. 인마.]
이성하는 몰랐지만, 산에서 내려오던 충격으로 갈비뼈가 골절이 된 상태였던 것이다.
‘끄응…… 진작 말해 주지…….’
그에 이성하가 고통을 호소하며 렉스를 향해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렉스로서는 어이가 없을 모습이었다.
[미친놈. 말도 하기 전에 일어나 놓고 왜 내 탓이야.]
일어나자마자 상태도 체크 안 하고 일어난 게 누군데, 왜 자신의 탓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렉스가 그에 대한 핀잔할 필요는 없었다.
“큭큭큭. 나랑 똑같은 짓하고 있네.”
그런 이성하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 때문이었다.
“데일?”
“혼자선 못 일어나. 그거 간호사한테 부탁해야 돼.”
먼저 깨어나 있던 데일이 그런 이성하를 향해 웃음을 지으며 침대 옆쪽으로 보이는 호출 벨을 눌렀고, 그 모습에 이성하는 아팠지만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안 아프냐?”
데일 역시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가슴에 보호대를 착용한 상태였다.
거기다 팔까지 다쳤던 데일이었기에 추가로 한쪽 팔까지 깁스로 고정된 모습이었으며, 그에 데일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존나 아프다…… 죽을 거 같아.”
이성하가 아파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기는 했지만, 사실 데일 역시 계속해서 느껴지는 고통에 말조차 하기 힘든 건 같은 상태로 보였다.
얼마나 위중하냐면 막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가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다.
“이렇게 누우면 안 돼요. 잘못하다가 틀어져서 장기라도 손상되면 수술해야 되는 거 몰라요?”
동상도 동상이지만, 다발성 늑골 골절로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게 두 사람의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에게만은 그런 두 사람의 상태가 상관없는 듯 보였다.
“미스터 이! 일어났군요!”
막 병실로 뒤따라 들어온 담당 의사였다.
“상태는 어때요? 머리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
데일에게는 살짝 눈인사만 하고는 바로 이성하에게 다가와 반색하며 상태를 살피는 의사의 모습에, 이성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 괜찮습니다…….”
자신이 아는 의사들과는 다른, 과한 반응 때문이었다.
“그래요? 손가락은 어때요? 잘 움직이나요?”
“네. 아프긴 하지만 움직이는 건 가능합니다.”
“다행이네요. 혹시 신경이 손상됐나 하고 걱정하던 참이었거든요. 하지만 손가락 움직이시는 거 보니 괜찮을 거 같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미스터 이.”
마치 지인을 대하듯 의자까지 당겨 앉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의사의 모습에, 이성하는 데일을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뭐야?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
환자를 걱정하는 의사의 반응치고는 너무 살가운 반응에, 자신이 모르는 사연이 있나 하는 생각에 데일에게 이유를 물은 것이다.
하지만 데일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큭큭큭. 제임스. 갑자기 그러면 애가 당황하잖아요.”
이유를 물은 자신이 아니라 앞에 있는 의사를 호명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야!”
“왜? 너 지금 얼굴 새빨개졌는데.”
당황해하는 이성하를 향해 데일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의사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이성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이거 실례했네요. 미국 구호팀의 의사 제임스 엘바라고 합니다. 편하게 제임스라고 부르면 되세요. 참고로 이번이 미스터 이를 두 번째 뵙는 겁니다.”
“두 번째요?”
“네, 박타푸르 임시 병원에서 신세 한 번 졌거든요. 기억 안 나세요?”
그 말에 이성하는 눈앞의 의사가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박타푸르 병원에서 수술하던 의사였다.
“그럼 어떻게 해? 이렇게 살려 달라는 환자를 죽게 나둬?”
철수를 결정하는 구조대 앞에서 환자를 버릴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하던 의사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에 반가운 표정으로 누워서 어색하게 제임스의 손을 잡았다.
“그때 그분이군요.”
“하하하. 기억나셨나 보네요.”
“어떻게 잊겠어요? 그때 정말 최고였습니다. 멋있게 살려 냈잖아요.”
직업은 다르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환자를 살렸던 동료였기에, 내심 친분을 쌓고 싶다고 생각한 의사가 눈앞의 제임스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제임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멋있는 건 미스터 이죠. 데일에게 들었어요. 우리 대원들 살리려고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고요.”
제임스는 먼저 깨어난 데일을 통해 이미 상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이성하가 아무도 나서지 않는 각국의 구조대 속에서 데일과 챈들러를 구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부터 시작해, 몇 번의 위험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원들의 목숨을 살린 것을.
“아니에요. 데일이 오버한 겁니다. 동료들과 같이한 건데요. 뭐.”
그런 자신의 말에 이성하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대원들만큼이나 이성하가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잘 아는 제임스였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데일과 당신만 늑골이 나갔는데도요?”
구조팀 중 유일하게 늑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게 데일과 눈앞의 이성하였다.
동상으로 발생한 피부 괴사 역시 다른 대원들보다 더 심각한 상태로 진행됐었고, 그 모습을 본 제임스는 이성하가 어떤 위험을 감수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길! 따뜻한 물 더 가져와!”
“여기도 필요합니다!”
“담요 더 없어! 체온이 너무 낮아!”
다른 이들보다 더 심각하게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몇 시간이고 그 옆에 붙어 치료한 게 제임스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제임스는 두 사람이 위급한 상황을 넘기자마자, 바로 헬기팀을 지휘하던 모스를 찾아갔다.
“이 친구들만 동상이 너무 심해. 어떻게 된 거야? 이 두 명만 아예 눈 속에 매몰이라도 됐던 거야?”
유난히 두 사람만 체온이 떨어진 증상에, 두 사람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듣게 된 상황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조난 폭죽을 든 채 기절해 있었다고?”
눈 속에 매몰돼서가 아니라, 영하의 찬바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결과였다.
“그래. 얼마나 오래 그 상태로 있었는지 하반신이 아예 얼어서 움직이지 않더라고. 의식을 잃은 동료들만 텐트에 집어넣고 계속해 조난 폭죽을 쏴 올렸던 거지. 우리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려고 말이야.”
그것도 폭죽을 쏘아 올리는 자세로 기절했다면 그 얼어붙는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며 버틴 상황이었고, 그에 제임스는 그 시간 이후로 두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뜨거운 물 더 없어?”
“여기 있습니다.”
“오케이, 고마워.”
간호사와 많은 후배들이 있음에도 직접 옆에서 두 사람을 정성껏 보살폈으며, 그에 데일이 가장 먼저 눈을 떴다.
“끄으으…….”
“이봐. 괜찮아? 내가 누군지 알겠어?”
“제임스…… 다행히 헬기팀이 도착했나 보네요.”
“그래. 이 사람아. 잘 버텨 줬어. 잘 버텨 줬다고.”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을 알아보는 데일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울컥한 감정을 드러냈고, 그렇게 흘린 눈물을 잠시 닦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성하가 깨어난 거였다.
“아…… 그건…… 야, 데일. 너 도대체 뭘 말한 거야? 제임스, 정말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긴 했는데, 다른 동료들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런 자신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끝까지 아니라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 이성하였지만, 제임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영웅.’
눈앞에 소방관은 영웅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상관없는 미국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목숨을 걸었던 진짜 영웅.
그 때문에 제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식으로 예의를 갖췄다.
“고맙습니다. 우리 대원들을 살려 줘서. 모스도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구호팀의 팀장 중 한 명으로서 꼭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미스터 이가 이번에 우리에게 보여 준 우정 잊지 못할 겁니다. 물론 우리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준 한국 구조대도요.”
미국 구호팀의 팀장 중 한 명으로서, 이성하와 한국 구조대가 보여 준 우정을 잊지 않겠다고.
“아, 진짜 왜 이래요.”
그 모습에 이성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임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에요. 언젠가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우정에는 우정으로 보답한다. 그게 우리 미국인의 긍지거든요.”
자신이 속한 미국의 긍지를 이야기하며 이성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고, 그에 데일 역시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번에 정말 고마웠다.”
“아, 너까지 왜 이래.”
“진짜 고마우니까 그래. 너 없었으면 못 내려왔을 거야. 정말 고마워. 나랑 내 친구들을 살려 줘서.”
제임스의 말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은혜를 입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게 그들이 속한 네이비실6의 자긍심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더 이상의 부정을 포기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데일 너도 그만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거북한 분위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으니까.
다행히 그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안 그래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기다리는 분들이요?”
“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상황이라 면회를 금지했었거든요. 이제 들어와도 된다고 할까요?”
병실 문을 가리키며 하는 물음에, 이성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유철 팀장님이랑 선배들이구나.’
구조팀 선배들이 밖에서 기다린다는 생각에서였다.
“네, 괜찮습니다. 들여보내 주세요.”
선배들도 선배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을 핸드폰으로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하는 몰랐다.
밖에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다른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아직이야?”
“좀만 기다려 보자고. 의사가 들어갔으니까 알려 줄 거야.”
데일이 깨어난 시점부터 오랜 시간 병실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던 이들이었고.
“들어오셔도 된답니다. 괜찮습니다.”
“좋아! 들어가!”
그들은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제임스의 목소리에 병실 문을 박차듯 들어왔다.
“CNN의 케이트 모슬러입니다. 이성하 소방관. 몸 상태는 어떤가요?”
“BBC의 조쉬 마터 기자입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성하 소방관의 빠른 완쾌를 빌었거든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NDR에서 나왔습니다! 크레바스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
들어오자마자 마이크를 들이대며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과, 그런 기자들의 뒤로 손을 흔드는 국제구조대의 선배들이 보였다.
‘미안.’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벙끗거리는 양유철과 다른 선배들의 모습이었으며, 그에 이성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는 아이언 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도 이성하 소방관의 이름이 유명한데,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으십니까?”
기자의 입에서 잊고 있던 익숙한 별명이 들렸다.
“아이언 맨이라는 별명처럼 한국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여러 번 보여 줬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하시나요?”
“코리아 아이언 맨. 대단한 별명인데요. 알아보니 저번 여진에서도 그 별명처럼 붕괴되는 병원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셨다고요.”
자신의 떨떠름한 표정이 재밌었는지, 너도나도 아이언맨을 외치는 그 모습에, 이성하는 조용히 덮고 있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렸다.
‘하…….’
한국에 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