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4화 (104/235)

<강철 소방대 104화>

104화. 세계의 지붕 (9)

물론 이성하가 몸을 일으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끄으으.”

어떻게든 몸을 흔들어 움직여보려 했지만, 온몸에서 전해지는 찌릿한 통증에 또다시 고통의 신음을 토해 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성하는 몸을 흔들었다.

“으으으으!”

방금까지는 방법이 없어 포기했지만, 이제는 살아날 희망이 생긴 상태였다.

- 움직여. 어떻게든 움직여서 캠프3까지 이동해. 그럼 살 수 있다. 이성하.

잡고 있는 무전기에서 끊임없이 이성하의 움직임을 재촉하는 권일섭의 목소리가 울렸고, 그에 이성하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제발! 제발!’

얼어붙은 몸에 어떻게든 자극을 주기 위해 몸을 흔들었으며, 그에 이성하의 몸에서는 서서히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됐어! 혈액 순환이 다시 되고 있어!]

그 모습에 렉스가 환호의 고함을 내지른 것처럼, 추위로 멈췄던 몸의 혈액이 다시 온몸을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기에 이성하는 기어코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조심해!]

‘괘, 괜찮아요.’

여전히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비틀거리긴 했지만, 악착같은 집념으로 기어코 스스로 몸을 세우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기뻐하기엔 일렀다. 그 전에 걸음을 옮겨야 했다.

‘선배, 데일.’

의식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자신과 달리, 아직 눈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하아…… 하아…….”

“선배, 잠시만 참아요! 끄으으으!”

그랬기에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동료들을 눈 밖으로 꺼냈지만, 생각보다 동료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허억. 허억.”

“으으으…….”

자신보다 더 오래 눈 속에 파묻혔던 덕분인지, 코끝이 새카매질 정도로 심각한 동상에 다들 가쁜 숨을 토해 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성하는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에 있는 핫팩을 모조리 꺼냈다.

[빨리 해! 벌써 피부 괴사가 시작되고 있어!]

렉스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증상이 동상으로 인해 피부 조직이 괴사하고 있었다.

‘제길!’

뿌드득, 뿌드득.

자칫하면 괴사한 부위를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증세에 다급히 핫팩을 발열시켜 동료들의 얼굴에 가져다 댔고, 그러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동료들의 장갑을 벗겼다.

‘설마, 다른 곳도 그런 건 아니겠지.’

심장과 가까운 얼굴이 검게 변한 동료들의 모습에, 혹시 다른 곳도 괴사가 진행됐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제길, 손끝도 괴사가 시작됐어.’

모두 장갑을 벗겨 봤더니, 다들 범위의 차이만 있지 손끝이 검게 변한 상태였다.

장갑을 꼈음에도 손끝이 변했다는 건, 등산화를 신고 있는 발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었고, 그에 이성하는 바로 몸을 일으켜 동료들의 허리에 묶인 로프를 나눠서 묶었다.

[빨리 캠프로 가야 돼. 어떻게든 캠프에서 텐트 확보해서 애들 몸 녹여야 돼!]

‘네!’

렉스의 말처럼 헬기가 올 때가지 기다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동료들의 체온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다들 목숨을 잃게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대략 오백 미터인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캠프3의 위치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눈보라가 그치며 드러난 시야로 본다면 족히 500m는 내려가야 캠프3에 도달할 수 있었고, 문제는 그 거리를 정신을 잃은 동료 여섯을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길……]

빨리 캠프3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던 렉스마저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거리를 혼자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든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때보다는 나은 거 아니에요?”

북한산 화재 때의 순간이 떠올라서였다.

화르르르!

“끄으으윽.”

쫓아오는 불길 속에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도 악착같이 동료들을 로프에 끌어 산을 내려가던 그때의 순간이 떠올랐고, 그랬기에 이성하는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어.’

아직 동상 때문에 몸이 저릿하긴 하지만, 그때보다는 나은 몸 상태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이성하의 뒤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콜록, 콜록. 뭐라는 거야?”

정신을 차린 데일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혼잣말을 하는 이성하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거였고,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시 몸을 눈 속에 처박았다.

“끄으으…….”

털썩.

익숙한 고통이었다.

‘동상…….’

정상에서 고립됐을 때 느꼈던 지독한 고통이 다시 느껴짐에 자신의 몸 상태부터 파악했고, 그렇게 확인한 스스로의 상태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잘하면 오른쪽 어깨를 잘라 내야 할 수도 있겠는데…….’

동상도 문제지만 크레바스로 떨어지며 빠졌던 어깨 아래로 아예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한쪽 팔이 완전히 괴사가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걸로 좌절할 생각은 없었다.

“끄으으으으!”

다른 팔과 다리에서는 미약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에 필사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너 괜찮냐?”

“아니. 그래서 말인데 손 좀 잡아 주라.”

그런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성하를 향해 손 좀 잡아 달라며 성한 팔을 내밀었고, 그렇게 도움을 받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하아…… 하아…….”

동상으로 말을 듣지 않는 몸에 자극을 주는 행위였으며, 그렇게 몸을 풀어 가며 이성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캠프3까지만 가면 되는 거냐?”

“뭐?”

“무전 나도 들었어. 지금 우리 대장이 오고 있다며.”

이성하는 데일이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눈 속에서 무전을 들으며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그랬기에 데일은 이성하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성하가 분리한 자신과 동료들의 로프를 다시 하나로 연결했다.

“너 뭐해?”

“뭐하긴. 여기서 내려갈 생각이지. 혼자보다는 둘이 하는 게 낫지 않겠냐?”

부상자가 아닌 구조대로서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한 번에 가자고. 함께.”

자신까지 함께하면 한 번에 동료들을 데리고 내려갈 수 있다며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동료들의 로프까지 모두 연결하고는 허리춤에 걸린 아이스 툴을 잡았다.

“가자.”

이성하 혼자에게만 모든 부담을 안길 수 없기에.

“콜록, 콜록. 빨리 가자고.”

고통 어린 기침을 토하면서도 산을 내려가자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이성하로서는 기가 찰 상황이었다.

[저 새끼도 진짜 꼴통이네. 너랑 같은 과네.]

‘그러게요.’

렉스의 말처럼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몸인데도 불구하고, 의욕을 부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비웃고 싶지는 않았다.

‘저도 저래요?’

현장에서 매번 목숨을 걸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빨리 가자고. 콜록, 콜록.”

몸 상태와 상관없이 요구조자를 구하겠다며 걸음을 옮기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에 이성하는 더 이상 말리지 않고 데일처럼 동료들에 연결된 로프를 잡았다.

“방해되면 버리고 간다.”

국가는 달라도, 자신과 같은 눈빛을 지닌 소방관이기에.

“너나 방해하지 마. 새끼야.”

서로 같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두 소방관이, 다시 가파른 설산 아래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캠프1에 있는 다른 소방관들이 알았다면 기겁하며 말렸을 생각이었다.

[야이, 미친놈아! 그래도 무리야! 네 명이면 400kg이잖아! 그걸 어떻게 한 번에 내려가려고 해!

렉스의 고함처럼 고작 둘이서 400kg에 달하는 무게를 감당하며 어떻게 산을 내려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데일의 판단이 맞다고 봤다.

‘괴사할지 모른다면서요.’

의식을 차린 데일은 몰라도 상태가 심각한 동료들의 상태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탈진해 쓰러진 선배들의 상태도 문제지만 크레바스 때부터 계속 의식을 잃고 있는 챈들러와 마샬이 언제까지 버틸지 가늠이 되질 않았고, 그에 이성하는 이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간다.”

“그래.”

데일과 눈빛을 주고받고는 동료들을 밑으로 밀었으며, 그렇게 미끄러지는 동료들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들고 있는 아이스 툴을 온 힘을 다해 바닥에 박았다.

파가가가각!

[미친놈들아! 무슨 썰매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짓이야!]

울려 퍼지는 렉스의 고함처럼, 아이스 툴을 브레이크 삼아 가파른 눈길을 썰매 타듯 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생각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이게…… 된다고?]

곁에 있던 렉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어떻게든 속도를 유지하며 눈길을 내려가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에 따른 고통은 엄청났다.

파가가가각.

미끄러져 내려가는 두 사람의 위로 길게 파인 아이스 툴의 흔적처럼, 이성하와 데일은 그로 발생하는 반동을 그저 몸으로 버텨 내는 상황이었다.

“버텨!”

“끄으으으으!

동료들를 살리기 위해.

파가가가각!

“버텨!”

“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품에서 날뛰는 아이스 툴의 반동을 온전히 몸으로만 받아 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타타타타타타!

- 미국 구조대 현재 상황은 어떤가?

“바람이 심하지만 어떻게든 올라가는 중이다.”

바로 구조팀을 구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미국 구조대였다.

휘이이잉!

관제탑에 보고한 무전처럼 강풍 속에서도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가며 산을 오르는 중이었고, 담담하게 보고한 무전과 달리 헬기의 상태는 꽤 심각한 상태였다.

이에에엥! 이에에엥!

“대장님!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이대로는 추락할 위험이 있어요!”

바람도 바람이지만 일정 고도 위로 올라가자마자 불안정해진 엔진의 연소에 헬기가 미친 듯이 경고음을 토해 내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종간을 움켜쥔 소방관은 그런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고도를 상승시켰다.

“아니야. 할 수 있어.”

미국 구조대의 대장인 모스였다.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우리 헬기라면 버틸 수 있어!”

헬기가 강풍에 미칠 듯이 흔들리는 상태에서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조종간을 잡았고, 그런 집념 덕분인지 헬기는 기어코 강풍을 뚫고 7천 미터 지점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대장님! 성공입니다! 7천 미터 지점입니다!”

기어코 구조팀과 약속했던 캠프3의 높이까지 헬기를 끌고 도달하는 데 성공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구조팀. 여기는 호크 아이. 7천 미터 지점에 도달한 상황이다. 현재 어느 쪽에 있나?”

“…….”

“구조팀. 여기는 호크 아이. 응답 바란다. 구조팀.”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해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대원들을 향해 무전을 보냈지만, 구조팀의 답신은 오지 않았다.

“구조팀. 여기는 호크 아이. 구조팀.”

“…….”

다시 한번 무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헬기를 조종하던 모스가 분통을 터트렸다.

‘제길, 왜, 안 되는 거야!’

약속된 캠프3에 도달했음에도 무전이 안 되는 구조팀의 상황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훑으며 대원들을 찾으면 안 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에베레스트의 기상 상태는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었다.

화아아악!

눈보라는 아니지만 고도 때문인지, 자욱한 안개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착륙해서 대원들을 찾는 것 역시 불가능한 상태였다.

“대장님. 위치를 알지 못하면 착륙은 무리입니다…….”

“제길…….”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착륙을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헬기가 전복될 위험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때, 아래를 내려다보던 모스의 눈에 뭔가 다른 색깔의 연기가 보였다.

‘핑크?’

그것은 희미하지만 하얀 안개 사이로 피어오르는 핑크색 연기였다.

화아아악!

그 뒤로도 초록색과 노란색의 연기가 희미하게 흩어지는 게 보였고, 그에 모스는 그대로 헬기의 조종간을 위로 들어 올렸다.

“조난 폭죽이야!”

“뭐라고요?”

“구조팀 조난 폭죽이라고!”

누가 봐도 구조팀이 보내는 조난 신호에 그대로 헬기를 몰아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지점에서 모스는 폭죽을 들고 주저앉아 있는 두 명의 소방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착륙 시도한다!”

“알겠습니다!”

폭죽 덕분에 조금은 밝아진 시야에 천천히 헬기를 착륙시키며, 장장 12시간에 걸친 구조 작업을 펼친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장님…… 저기…….”

“그래. 알아…….”

텐트 앞으로 폭죽을 든 채 기절한 둘의 모습에, 대원들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얼마나 오랜 시간 신호를 보냈는지, 그 주변으로 불꽃이 꺼진 조난 폭죽이 여러 개 떨어져 있었고, 그에 모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놈들아. 으허허허헝.”

온몸이 얼어붙음에도 어떻게든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추위 속에서 끝까지 신호를 보내온 두 소방관의 처절함에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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