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 소방대-102화 (102/235)

<강철 소방대 102화>

102화. 세계의 지붕 (7)

* * *

‘제길, 왜 안 되는 거야. 왜!’

양유철이 입술을 깨물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여기는 제가 보고 있을 테니, 잠깐 텐트 가서 쉬시죠.”

그런 양유철의 모습에 곁에 있는 박근석이 텐트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길 권했지만, 양유철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됐어.”

“그래도.”

“됐다고 인마. 애들이 눈 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게 뻔한데, 어떻게 나만 편하게 쉬고 있어?”

구조팀과 무전이 끊어질 때만 해도 잠깐인가 싶었던 상황이 벌써 7시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양유철은 현재 미국 텐트로 넘어와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산 위에 있는 구조팀과 다시 무전이 되길 기다리며 미국 팀과 같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무전은 계속해 불통이었다.

“여기는 캠프1, 구조팀 연락 바란다. 구조팀. 구조팀.”

수 시간째 무전을 담당하는 미국대원의 음성만 외로이 울리고 있었고, 그에 양유철은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근석아, 장비 준비하고 올라가자.”

“네?”

“올라가자고. 만약 애들 잘못돼서 구조를 기다리는 걸 수도 있잖아.”

혹시 사고가 벌어져 구조를 기다릴지도 모르는 동료들을 구하러 가자고.

“미스터 양. 설마 올라가려는 겁니까?”

“…….”

“무리예요. 게다가 당신 고소증 겪고 있잖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확정된 건 없습니다. 지금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양유철의 모습에 상황을 짐작한 미국 팀장이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만류했지만, 양유철은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올라가겠습니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팀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대기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올라갈 때 저도 같이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었어요.”

대원들이 올라가기를 결정할 때, 그깟 몸 상태 때문에 캠프에 남기를 결정한 게 잘못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팀과 함께하는 게 구조대였고, 많이 늦었겠지만 양유철은 지금이라도 그 본분을 지킬 생각이었다.

‘내가 허락했으니 내가 데리고 온다.’

항상 선두에서 대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팀장으로서, 연락되지 않는 대원들을 직접 데리러 갈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 지직, 지지직.

지금까지 송신 없이 불빛만 반짝이던 무전기에서 기계음이 토해졌다.

“주, 주파수 잡혔습니다!”

“뭐?”

“무전 가능합니다! 여기는 캠프1. 구조팀 연락 바란다. 구조팀. 구조팀.”

무전기를 조작하던 미국대원이 환한 표정으로 다시 무전을 시도했고, 그에 드디어 무전기가 소리를 뱉었다.

- 휘이이이잉.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매서운 눈보라 소리가 무전을 통해 울리자, 모든 대원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좋았어!”

“누구야? 마샬이야?”

“한국 대원들도 물어봐 주십쇼!”

“위치부터 물어봐요! 지금 어디 있다고 합니까?”

누가 봐도 야외에서 들리는 무전에, 구조팀의 연락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대원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는 건 순식간이었다.

“뭐야? 왜 응답이 없어?”

그 바람 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의 응답이 없었다.

“구조팀. 응답바랍니다. 마샬! 데일!”

당황한 미국대원이 계속해 무전을 시도했지만 이제는 그 바람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그에 양유철이 다급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남명호! 최영인! 이성하! 한 명이라도 응답해!”

본능적으로 일이 터졌다는 느낌에, 참지 못하고 대원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고함에 무전기가 반응했다.

- 휘이이이잉.

매서운 바람 소리가 다시 한번 무전을 통해 울렸고.

- 아…….

그 뒤로 메마른 숨소리가 이어졌다.

- 팀장님…….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양유철을 호칭하는 무전이 이어서 울렸으며, 그에 양유철은 다시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성하! 너 이성하 맞지!”

앳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무전의 주인이 막내인 이성하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으니까.

하지만 이성하는 그런 양유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 추워…… 너무 추워…….

“왜 그래? 이성하, 너 왜 그래!”

- 추워서 죽을 거 같아…….

상황을 묻는 양유철의 말에 그저 춥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에 텐트에 있는 대원들은 지금 이성하가 어떤 상황인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데일과 같아요!”

“혼절 직전입니다. 어떻게든 깨워야 합니다!”

어제 데일이 보인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이성하!”

“성하야! 내 말 들려! 나 근석이 형이야! 너 정신 차려! 이대로 정신 잃으면 안 돼!”

그에 양유철과 박근석이 어떻게든 이성하를 깨우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성하의 상태는 심각했다.

- 허억…… 허억……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는지, 그저 숨소리만 무전을 통해 겨우 전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 지직.

“무전 끊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숨소리조차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지지지직.

그저 무전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는 시끄러운 기계음만 울렸고, 그에 양유철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퍼억!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퍼억!

“제길!”

그저 애꿎은 바닥에 화풀이하는 수밖엔.

그런데 그런 양유철의 눈에 뭔가 넘어지는 게 보였다.

‘전화?’

외부 배터리에 충전 중인 전화기였다.

덜컥!

자신이 내리친 충격에 충전 중이던 전화기가 넘어졌고, 순간 든 생각에 미국 팀장인 카일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거 한국에 연결됩니까?”

“네?”

“어제 이걸로 미국 구조 본부와 통화했었잖아요.”

눈앞에 전화기로 미국 팀장 카일이 미국에 있는 본부와 통화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카일 역시 무슨 말인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한국에 있는 동료들과 연결해 주려는 겁니까?”

미국과 한국의 국제구조대 시스템이 다른 걸 알고 있어서였다.

특수재난 구조대라는 이름으로 담당 소방국이 정해진 미국과 달리, 한국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전국에서 대원들을 소집해 국제구조대를 조직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 무전을 나눈 대원과 친숙한 동료들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가능해. 어제 데일이 그 친구의 말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유대감이 깊은 동료들을 연결하려는 거야.’

어떤 유대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던 데일이 이성하의 목소리에 반응한 걸 떠올린 거였고, 그런 카일의 생각은 맞았다.

“현재 네팔에 파견 나와 있는 국제구조대의 양유철 소방위입니다. 위급 상황이니 바로 은평소방서의 구조대로 연결해 주십쇼.”

위성 전화를 건네받은 양유철이 바로 119로 전화를 걸어, 이성하가 근무하는 은평구조대로 연결을 요청했으니까.

은평구조대에서 전화를 받은 건 오성수였다.

“네, 은평소방.”

- 네팔 국제구조대의 양유철 소방위입니다. 구조대장님이나 팀장, 아무나 연결해 주십쇼.

“네? 대장님! 네팔에 있는 국제구조대랍니다!”

국제구조대라는 말에 바로 대장인 권일섭에게 전화를 넘겼고, 그에 권일섭이 단번에 전화를 받아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구조대장 권일섭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에베레스트에서 한국의 은평구조대까지 이어지는 핫라인이 단번에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권일섭의 목소리에 양유철은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에베레스트에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던 팀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정확한 상태는 파악되진 않지만 그중 이성하 대원이 세미코마 상태로…….”

구조팀이 처한 상황과 현재 무전이 연결된 이성하의 상태를 설명했고, 그에 권일섭은 바로 이성하와의 무전을 시도했다.

- 말하시면 됩니다.

“이성하. 대장 권일섭이다. 들리니? 이성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양유철의 신호에 바로 이성하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에 조용해졌던 무전이 다시 반응했다.

- 아…….

권일섭의 목소리가 자극이 됐는지, 지금까지 조용하던 이성하가 다시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그에 텐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대원들이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됐어!”

“반응했습니다! 효과 있습니다!”

계속 무전을 보내도 완전히 무응답 상태로 잠들었던 무전기가 다시 반응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 이성하. 권대장이다. 응답해라.

- 하아…… 하아……

계속되는 권일섭의 목소리에 이성하가 반응을 하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 성하야, 김필주다. 들리니?

- 으……

다급한 김필주의 음성도.

- 이성하, 정신 차려! 이성하!

- 하아…… 하아……

애타는 허석훈의 음성도.

- 야, 인마! 너 뭐하고 있어!

- 아……

절규하는 오성수의 음성에도 계속 거친 숨만 토해지는 무전이었고, 그러다 무전은 결국 다시 끊어지고 말았다.

“끊어졌습니다.”

“제길…….”

한국의 동료들에게까지 무전을 연결했음에도, 이성하의 의식을 잡는 데는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양유철은 고개를 떨궜다.

“제길…….”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방법마저 헛수고로 돌아감에,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 이거 번호 몇 번입니까?”

권일섭의 단호한 음성이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What?(뭐라고요?).”

- Phone number plz.(번호 알려 주세요.).”

의아해하는 미국 대원의 말에 바로 영어로 위성 전화의 번호를 알려 달라는 권일섭이었고, 그렇게 번호를 알아낸 권일섭이 하는 말은 양유철의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었다.

- 어머니 목소리라면 의식을 차릴 수 있을 겁니다.

“어, 어머니요? 근처에 계신 겁니까?”

이성하의 어머니였다.

- 근처는 아니지만 가까이 있습니다. 20분. 20분만 기다려 주십쇼. 그분 만나서 20분 내로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뚝.

이성하의 엄마를 만나 20분 뒤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권일섭이었고, 그에 양유철의 얼굴에는 희망이 다시 어렸다.

‘가능해. 엄마 목소리라면 정신을 차릴지 몰라.’

권일섭의 말처럼 누구보다 가까운 어머니의 목소리라면 이성하를 충분히 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간 든 생각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20분? 지금 근무 시간 아닌가…….’

지금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시간이었다.

분명히 은평소방서로 전화가 연결된 걸 보면, 지금 전화를 받은 이성하의 동료들은 모두 항시 대기 상태로 근무 중인 게 분명한 상황.

하지만 권일섭은 구조대장이었다.

“진압대, 만약 출동 명령 떨어지면 바로 전화주세요. 현장으로 바로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자체적으로 근무 방식 정도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에 구조 3팀이 탄 구조 버스는 그대로 사이렌을 울리며 도심을 질주했다.

“빨간 불입니다!”

“그냥 가!”

맹렬한 속도로 이성하의 엄마가 운영하는 신촌의 가게를 향해 무섭게 질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게 된 이성하의 엄마 강희은에게 위성 전화를 연결한 핸드폰을 내밀었다.

“제수 씨, 여기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여, 여기예요?”

“네, 그냥 말씀하시면 되세요.”

“서, 성하니?”

오는 도중에 미리 전화로 상황을 전해 들은 이성하의 엄마가 눈시울을 붉히며 핸드폰을 받았고, 그런 엄마의 목소리는 그대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에베레스트로 전달됐다.

- 성하야. 내 말 들려?

걱정이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눈보라 속으로 흩어지자, 방금까지 멈춰 있던 이성하의 몸이 움찔거렸다.

‘엄마…….’

보고 싶던 엄마의 음성이기에.

- 성하야.

“……엄마.”

이성하가 그 목소리에 반응해 드디어 의식을 차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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